시편 19편 강해


시편 19 편 영광의 성소를 사는 의인의 삶



오늘은 시편 19편의 말씀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로, 그 주제는 \'영광의 성소를 사는 의인의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구조는 여러분이 보셔도 잘 아실 수 있듯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겠습니다. 그 한 부분은 1절로 6절까지요, 다른 한 부분은 7절로 14절까지가 되겠습니다. 이 시는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가 엮인 것처럼 그 주제와 내용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주제와 내용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와 분위기 그리고 운율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가 한 시임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를 두 개로 나누어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각기 독립된 한 편의 시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1절로 6절의 내용은 이어지는 뒷부분의 내용이 없다면 반 토막 생선처럼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이 시를 한 주제를 갖는 한 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상호 연관성을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강조하는 주제가 뒷부분에 있고 그것을 위해 앞부분을 도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주제를 \'하나님의 영광의 성소를 사는 의인의 삶\'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니 강조는 의인의 삶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통상 이 시를 자연계시와 말씀계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말하는 동등한 두 구조로 보기 때문입니다. \'앞부분은 하나님의 자연을 통한 일반적인 계시요, 뒷부분은 말씀을 통한 특별한 계시다\'라고 하는 신학적 전제를 가지고 시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는 시 자체가 증거하는 메시지에 먼저 충실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다윗이 지금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를 말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유대인이 우리처럼 분리된 두 계시 개념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만물을 자기영광의 거처요 성소로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지으신 만물에서 충만히 자기 영광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들에게 말씀해 오신다고 하는 것이 그들이 갖는 사상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언약의 말씀으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두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하는 그런 것보다, 만물을 지으심에서 자기 영광을 나타내신 이가 어떻게 언약의 말씀으로 말씀해 오시는가 하는 그런 통합된 구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이 시는 우리에게 많은 점들을 생각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로 만물 가운데 자기 영광을 보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생명 되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다윗이 자연을 바라보며 어떠한 묵상을 하였는지, 그의 하나님께 대한 열망은 얼마나 컸는지, 그 열망은 구체적으로 그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등,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에 있어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을 생각 수 있도록 이 시는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시는 내용상 구분해 볼 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겠는데, 먼저는 6절까지로 다윗이 자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11절까지로 그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으로서 율법의 말씀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13절까지로 율법을 따라 걷는 삶에도 불구하고 혹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자신으로 죄의 길을 가지 않도록 도우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14절에서 이러한 자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먼저 1절로 4절을 보면, 시인이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를 보면서 얼마나 그 영광에 압도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4\"---------\" 시인은 드높은 하늘을 보며 거기에서 음성을 들었습니다. 다름 아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큰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푸른 하늘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선언하는 우렁찬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낮이 낮에게 쉴새없이 이야기하고 밤이 밤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록 그것들에게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시인은 말하기를 \'그 음성이 온 땅에 울리고 그 소리가 땅 끝까지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다윗의 표현이 놀랍지 않습니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낮이 낮에게 이야기하고, 밤이 밤에게 속삭인다\' 저는 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그가 삼천 년 전에 이미 시에 의인법을 적용했다고 하는 점은 놀랍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가 자연을 보며 이러한 묵상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점 또한 놀라운 점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그는 목동생활 가운데 아니면 쫓기는 생활 중에서, 때로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맑고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과 묵상들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알퐁스 도데는 밤하늘을 보며 소설 구상을 했겠지만, 다윗은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다윗은 하늘과 창공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낮과 밤이 서로 말을 전하고 지식을 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들이 지금 무엇을 서로 주고 받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전하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리십니까? 그것들의 서로 지절거리는 소리, 끊임없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그 영광을 선포하는 하늘의 우렁찬 음성이 들리십니까? 창공의 큰 외침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어쨌든 그는 하늘뿐 아니라 이글거리는 태양을 보면서도 주님을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5-6\"----------\" 그는 주께서 해를 위하여 쉴 수 있는 장막을 쳐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마치 신랑이 그 장막에서 삐그시 나오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치 신랑이 해맑은 모습으로 그 신방에서 나오는 것처럼, 해가 그렇게 떠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는 곧 어떻게 변합니까? 어느덧 해는 힘센 용사가 되어서, 용사가 그 길을 달리는 것처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달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사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온 세상을 후끈 달구고 있다\'고, \'그 열기에서 피할 자가 누구이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해의 열기에서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구도 주님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온 세상은 하나님의 품안에서 그 영광을 노래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구석구석에 은혜의 빛을 비추셔서 그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그 가운데 만물은 그 생명으로 살며 그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과연 온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요, 성소인 것입니다. 저 하늘은 하나님의 옷자락이요, 저 태양은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입니다. 저 광활한 대지는 하나님의 가슴이요, 그 가운데 뛰며 노니는 것들은 하나님의 뛰는 심장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고 그 앞에 피하여 도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망한들 한 순간도 그 음성을 듣지 않을 수 없고, 그 얼굴을 피한들 그 빛나는 영광 앞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품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대자연의 품안에서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음성듣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영광의 성소에서 그 영광을 봅니다. 지으신 세계에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길가에 난 조그만 풀 한 포기에서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으신 세계에서 그 영광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새들의 울음소리에서도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듣고 보아야 할 영광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부활의 영광입니다. 보이는 세계 너머,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아니할 영원한 영광의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하늘의 해가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영광의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어진 세계에서 죽음을 이긴 승리의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세상에 영생을 주신 어린양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늘은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은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선언하는 도다. 낮은 낮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니, 거기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그 음성 온 땅에 울려 퍼지고 그 소리 땅 끝까지 이르도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 노래해야 할 노래가 아니겠습니까? \"저 하늘의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고 우리가 노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시를 짓는다면 바로 이러한 시를 지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지으신 만물에서 그 영광스런 소식을 듣는 자로, 그리고 그 영광스런 승리를 노래하는 자로 주 앞에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



이렇듯 지으신 만물에서 자기 영광을 증거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언약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니 율법의 말씀은 마치 하늘의 태양이 빛을 내어 만물에게 생명을 주는 것처럼 그 백성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근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늘과 그 하늘의 태양과 비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7-11\"---------\"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마치 하늘의 빛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 빛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듯이 말씀은 그 백성의 진정한 생명의 근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하고 우리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에 기쁨을 주고 우리의 눈을 밝혀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쇠하나 그 말씀은 영원하며 늘 한결같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정금보다 소중하고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말씀은 보화 그 이상의 것이요, 생명의 양식 그 이상의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늘 이 말씀으로 경계를 받고 그것들을 지키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자기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 생명이라는 말은 관계로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관계를 이루게 하는 핵심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가령 결혼생활의 생명은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랑에 있지요? 사랑이 없다면 그 관계는 곧 시들어버릴 것입니다. 사랑이 그 관계에 지속적인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활력 있게 하며 꽃피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지으신 백성간의 관계의 생명은 바로 말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시든 영혼을 소생케 하며 지혜를 주고 기쁨을 주며 눈을 밝혀 줍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 되도록, 그 백성으로 살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과 생명된 관계로 살도록 생명의 능력을 부여해 줍니다.



그러니 이 언약의 말씀은 정금보다 더 소중하고, 송이꿀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다윗처럼 \'주의 말씀은 내 영혼을 소생케 하고, 그 증거는 나를 지혜롭게 하며, 그 교훈은 내 마음에 기쁨을 주고 그 계명은 나의 눈을 밝혀준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 말씀들은 내게 정금보다 귀하고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할 수 있겠지요? 진정 주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침체되어 있을 때, 낙심하거나 무기력해져 있을 때, 주의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로 다시 힘을 얻게 합니다. 우리로 하늘의 지혜를 갖게 만들어 주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 자신과 세상을 보게 해 주며, 때로 우리를 경계시키고 교훈하여 의의 길을 가게 해 줍니다. 진정 그 말씀들은 정금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늘 그 말씀들로 경계를 받고 그것을 지켜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기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혹 자신에게 있을지 모를 허물을 위해 그가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면서도 짓는 죄는 철저히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12-13\"----------\" 자신이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있어 부끄러움이 없지만, 혹 자신이 모르고 지은 허물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만약 그러한 것이 있다면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여, 알면서도 죄를 지으므로 죄의 종이 되는 일은 철저히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자신이 거리낌없는 담대함으로 능히 죄를 이기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를 보면 마치 신약의 백성을 보는 듯 합니다. 그만큼 다윗의 나라에 하나님의 은혜가 탁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뜻을 따라 살면서도 혹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은 허물이 있다면 용서하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여 알면서도 죄를 짓는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주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사유하심의 은총, 그 은혜의 빛을 따라 죄와 싸우고 죄를 이기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은 14절에서 \'이 모든 자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시를 맺고 있습니다. 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들은 이제 부활의 영광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온 우주는 이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하늘의 질서로 성취된 말씀은 우리 영혼을 비추는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아들되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는 생명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빛을 따라 죄와 싸우고 능히 죄를 이기는 삶을 살며, 주께서 받으실만한 승리의 노래들로 주의 영광을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소중하다고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우리 영혼의 생명의 빛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능히 죄를 이기고, 그 승리를 노래하는 자들로 이 땅을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