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편 강해


시편 20 편 당신이 고난받는 날에


오늘은 스무 번째의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이 시에 부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이 고난받는 날에\'라고 부제를 붙여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 부사절은 전체를 지배하는 절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강조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족한 강조를 보완하기 위해 제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는 지은이가 다윗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왕의 출전을 앞두고 제사장과 백성들이 왕을 축복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승리를 기원하는 시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의 대리왕 다윗은 전쟁을 위해 출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원수들과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싸워야합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제사장과 백성들이 그를 축복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고난의 직접적인 의미는 전쟁으로 인한 어려움과 위험과 고통들, 그런 것들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환란으로부터 주께서 왕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지켜주시기를 원하며 승리를 주시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당신\'의 직접적인 의미도 다윗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편을 우리의 시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 안에서 전체적으로 우리 가운데 성취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이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주님의 좋은 군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의 일차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을 조금은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것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를 바르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성취의 빛 가운데 이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쓰여졌고 그들을 위해 쓰여진 시들이지만, 지금은 교회가 그것을 읽고 교회를 위한 시로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모든 역사를 하늘의 질서로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완성하시므로 이 모든 것을 신약백성인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의 기업으로 이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교회가 이 시들을 통해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사함으로 받고 이러한 다양한 시들을 통해 풍성한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주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로를 축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적 축복을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백성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일반인들이 그것도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이방인들이 대제사장의 축복을 한다는 것은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이방인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그들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신성모독죄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당연한 것 같고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으나 유대인들에게는 칼을 빼들 만큼 분노를 일으키는 일인 것입니다. 바로 그런 위치에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이제 대제사장의 축복을 뛰어넘는 탁월한 내용으로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여러분도 저를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만 손들고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도 저를 위해 축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를 인도하는 자로서, 한 교회를 다스리는 직무자로서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서로를 향해 이러한 축복으로 축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있기를 서로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여하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은혜의 직무자 제사장이,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백성이, 출전하는 왕과 병사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자, 먼저 1절로 5절까지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5\"----------\"



정말 진솔하고 은혜스러운 축복문 아닙니까? 한 절 한 절이 다 의미가 담겨 있고 그들의 신앙이 깊이 베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 서로를 향한 진실함과 사랑, 서로가 서로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공동체적 신앙 등, 그야말로 그들이 언약백성으로 사는 신앙하는 삶 전체의 모습들이 이 시(詩) 속에서 묻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시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과 신뢰가 깊이 베어 있습니다. 정말 주께서 그리 해 주시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도우시면 모든 것은 순탄할 것이라고 그들이 진정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함께 하시면 진정 왕과 가족들이 보호함을 입으며 승리의 영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편적으로 유대인들을 보기 쉽습니다. 몇몇 드러난 외식과 불순종의 모습만 보기 쉬운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 앞에 갖는 믿음과 신앙의 진실함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들과 고백문들, 그들의 기도문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했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기대하고 갈망했는지 하는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내용들이 종종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함과 기대함으로 서로를 축복했고 하나님의 지키심과 도우심을 기대하였습니다. 주께서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키시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으로 일컫는 것은 아마 주께서 환란 가운데 있는 야곱을 도우셨던 일들을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유독 크고 많은 환란을 당했고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를 구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지키실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소를 말하고 시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시온의 성소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시온의 성소로부터 그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온의 성소에 그 자리를 펴시고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의미로 지금 그들은 시온의 성소로부터 나오는 도움과 시온의 성소로부터 나오는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간구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늘 성소로부터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게 되겠지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나는 은혜를 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께서 휘장을 찢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은혜의 보좌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시편을 지어 노래한다면 하늘 성소로부터의 도움과 은혜의 보좌로부터 나는 은혜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여하튼 지금 옛 백성 이스라엘은 시온의 성소로부터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니 당신의 모든 소제를 기억해 주시고 모든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제는 곡물로 제사하는 것이고 번제는 동물을 드려 제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은 곧 드리는 자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하고, 드리는 자를 받으신다는 것은 곧 그와 함께 할 것을 인치는 표시가 되겠지요? 그런 의미로 앞에 나오는 시온의 성소로부터의 도움과 은혜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보니 4절에 \'당신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며 당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성취하시기를 원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어디 편지나 축전에 쓰면 좋을 것 같은 그런 구절입니다. 우리가 이런 구절로 서로를 축복하면 좋겠지요? 얼마나 좋습니까? \"주께서 당신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며 당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성취하시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들으면 기분이 좋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정욕적인 것으로 갖다 쓰면 안 되겠지요? 마치 \"네가 범사에 잘되고 형통하기를 원한다\"는 구절을 \"사업 잘되고 건강 장수하기를 원한다\"는 구절로 써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사업 잘 되고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이 주의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그 안에 팽배되어 있는 물질주의와 현세적 축복을 숭상하는 우상숭배적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것이 걷혀있다면 이렇게 서로 축복하는 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됩니까? 서로가 순전한 믿음 안에서 이렇게 복을 빌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축복합니다. \"주께서 진정 당신의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며 당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성취하시기를 원합니다\"(아멘) 여러분의 마음 속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주를 위한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진정 주께서 여러분의 소원과 계획을 이루어주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 소원이 자기를 추구하는 욕심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주를 위해 무엇인가를 계획하신다면 주께서 그것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을 신뢰함으로 의지하여 살아가십시오. 좋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또 5절에 보니 \"부디 주께서 당신의 모든 청을 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왕의 청을 들으셔서 승리를 주셨을 때, 그 승리를 함께 기뻐할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를 세우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왕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과 그 함께 하는 자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며 그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를 보면서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이 서로 나누었던 가슴 뜨거운 장면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서로를 주께 의탁하였던 그 감격스러운 장면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남겨진 교회를 생각함으로 울고, 장로들은 얼마 못되어 환란을 겪게될 바울을 걱정함으로 울었습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서로 만났고 믿음 안에서 서로를 진실히 아끼고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믿음 안에서 교제가 여기 다윗과 백성들 간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의 안전을 진정으로 염려했습니다. 왕과 함께 전장으로 떠나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큰 확신과 믿음, 평안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면서 그들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승리의 소식으로 기뻐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성도의 교제가 있기를 원합니다. 서로를 진실히 염려하고, 위하여 기도하며, 믿음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관계, 흉금 없이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진지한 권면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 축하하고 축복해 줄 수 있는 관계, 서로의 사정을 고하며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관계, 그런 믿음 안에서의 교제의 관계가 우리 안에서 더 풍성하여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부터는 시의 분위기가 바뀌어서 시를 쓰는 이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고백을 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6-8\"---------\" 이 고백은 승리를 확신하는 고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자신의 기름 부으신 자를 건지시고 하늘로부터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이제야 알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그의 강한 오른 손으로 붙드시는 분이심을 이제야 알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는 극적이고 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알았겠지요. 그러나 이제야 알았다는 말로 자신의 신뢰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바로 이 하나님을 자신들이 의지할 것이라고 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병거를 의지하고 많은 말을 의지하지만, 자신들은 주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병거를 의지하고 말을 의지한다는 말은 군사적인 힘을 믿고 의지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러나 자신들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결코 승리가 병사의 우위에 있지 않음을 알기에 하나님을 믿는 중에 승리의 소식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주실 것이고 그는 그 승리를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8절에 \"그들은 무릎꿇어 엎드러지나 우리는 일어나 견고히 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 무엇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환란과 고난을 겪게 될 때,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여기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노라고 고백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문제를 당하게 되면 쉽게 사람을 의지하기 쉽고, 가진 돈이나 힘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의지할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병거 없이, 말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궁극적인 승리가 주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오직 주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에서의 승리가 주님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주를 의지하는 자를 주께서는 건지실 것입니다. 거룩한 하늘로부터 응답하시며 강한 오른 손으로 구원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손길을 볼 것이며 승리한 후에도 그 영광과 감사를 주께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보이는 것을 따라 그것을 의지함으로 서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있는 어떤 것을 의지함으로 자신을 세우려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되고야 말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주님을 의뢰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분만을 의지하여야 하겠습니다. 바로 9절의 간절한 간구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은혜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모든 은혜와 승리는 주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의 간구에 대한 응답과 지키심과 도움과 붙드시는 은혜가 하늘에 오르신 주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이를 것입니다. 우리를 열납하심과 마음속의 소원의 성취와 삶의 모든 계획을 이루심이 오직 은혜에 보좌에 앉으신 주께로부터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혹 여러분이 고난 중에 있습니까?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혹 슬픔과 탄식 중에 있습니까? 주님을 붙들고 고난받으신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혹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이 있습니까? 능히 우리의 구원과 승리가 되시는 주님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승리할 것이며 그 승리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 여러분은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영광스러운 날, 모든 영광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날, 진정 여러분은 주께서 이루신 승리에 참여하며 주께 감사하고 그 승리를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를 세우는 참다운 영광스러움으로 승리를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들은 우리 모두가 그 영광된 승리를 바라보며 고난받는 날에 주를 의지하고, 주를 신뢰하므로 능히 모든 어려움을 이겨 가는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