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 강해


시편 22:1 - 21 구원을 호소함



오늘은 스물 두 번째의 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교적 장문의 시이기에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는 시의 구조상 나누기가 매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서로 다른 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1절로 21절까지는 전형적인 애가시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슬픔 중에 탄식하며 구원을 호소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22절로 31절까지는 찬양과 감사시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뚜렷이 구분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시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이 시는 신약에서 대표적으로 인용되고 있는 시라고 하는 점입니다. 이사야 53장과 함께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하여 인용되는 대표적인 시인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야 시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가 분명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성취적으로 인용되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이 시의 배경은 일차적으로 다윗의 배경을 가진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의 배경 가운데서 이 시를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역사적 성취를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여기 있던 예언이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역사가 어떻게 전체적으로 옛 언약의 말씀을 성취하셨는가를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취된 역사에서 신약의 사도들이 어떻게 구약을 성취적으로 인용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그가 삶에서 당한 커다란 고난 가운데서 이 시를 지은 것입니다. 그 고난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을 볼 때 그는 모든 백성들로부터 따돌림과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로부터 두려움으로 간장이 녹을 정도의 커다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절대 절명의 순간에 그가 이 시로 주 앞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가 시작되는 첫 소절부터 그러한 다윗 자신의 절박한 심정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1상\"----------\"



이 구절은 히브리어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입니다. 누가 한 말입니까? 예수께서 하신 말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 소리치신 말입니다.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맛보시면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말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처절한 고통 속에서나 내 뱉을 수 있는 말, 가장 악한 상황에서나 내 뱉을 수 있는 말을 지금 다윗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가혹한 상황인가를 우리로 추측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것과 같은 상황, 가장 악하고 가장 비참한 상황, 더 이상 나빠지려야 나빠질 것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 그가 처한 것입니다.



그는 당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고 신음 중에 부르짖고 있습니다. 온 밤을 지새워가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1-2\"---------\" 그는 온 낮과 밤을 지내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고통이 너무 심하여 저절로 신음소리가 날 정도입니다. 입술의 침이 마르고 기력은 쇠하여 애간장이 녹을 정도입니다. 그 고통을 다윗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14-15\"---------\" 자신의 몸은 쏟아진 물처럼 쳐저버렸고, 모든 뼈는 으스러진 것 같이 고통스럽게 하며, 심장은 마치 촛농처럼 자기 안에 녹아 내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력은 옹기처럼 말랐고 침이 말라 혀는 입천장에 들러붙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상상이 가십니까?



우리가 상상은 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좀처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바로 그런 상황에서 그는 밤낮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런 상황에 두시고 응답하지 않으셨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분명 거기에는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으리라 우리는 믿습니다. 마치 주님을 십자가상에 버리심에는 그를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자 하시는 선하신 뜻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다윗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과 같은 처지에 처하여 애타게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가녀린 탄식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3-8\"------------\"



그가 그간 믿고 있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다윗이 믿었던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이스라엘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 모든 조상들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조상들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의 조상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좀처럼 수치를 당하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떻습니까? 자신은 수치정도가 아니라 벌레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은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모습입니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될 정도의 바로 그런 취급을 지금 그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은 벌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윗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자식에게 쫓겨나 이리 저리 떠도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을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을 비웃고 자신을 향해 입을 삐쭉거리고 머리를 가로 저으며 비아냥댑니다. \"저가 여호와를 신뢰하니 구원받을 걸, 주가 저를 기뻐하니 건지실 걸\" 이런 식으로 비아냥댄 것입니다. 누구 생각이 납니까? 우리 주님 생각이 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며 조롱의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했다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이런 식으로 모욕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했는데, \"저가 남은 구원하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러고서도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는도다. 네가 참으로 구원자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이런 식으로 조롱하였습니다. 그들뿐이 아닙니다. 그 곁에 함께 못 박힌 죄수들도 조롱하였습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구원하실 걸.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하실 걸.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하지 않았는가\" 이런 식으로 조롱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모욕을 지금 다윗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정도의 모욕은 아니어도 혹시 모욕을 당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조롱과 멸시를 받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도하다가 무시를 당해본 적은 있어도 이런 식의 조롱과 멸시를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과 백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이런 멸시와 조롱을 받았겠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가산을 빼앗기고 투옥을 당하고 온갖 모욕을 다 받았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버림을 받고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로 그 열매를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우리의 믿음의 후손들을 위해 기꺼이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다윗의 탄식 어린 호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9-21\"----------\"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모태에서 나오게 하신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빨 때부터 자신에게 믿음을 주신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자신은 하나님께 맡겨졌고 그 품에서 자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 다윗이 무엇을 말하기 위함입니까? 무엇을 말하기 위해 다윗이 지금 \'하나님은 저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신 분이라고, 제게 믿음을 주신 분이시라고, 처음부터 저의 하나님이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도움을 호소하기 위함이지요?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 위함이지요? 한마디로 다윗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제게 믿음을 주시고 또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저를 기르신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제가 이제까지 섬겨왔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를 이런 상황 가운데 두시는 것입니까? 왜 저를 멀리하시는 것입니까? 제발 저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환란이 닥쳐왔으나 저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왜 저를 돌아보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달라는 것입니까? 자신을 돌아봐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멀리하시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던 조상들에게 은혜를 입히셨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은혜를 입혀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다윗의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많은 황소가 자신을 에워싼 듯한 상황입니다. 마치 화난 군중에게 에워싸이듯이 그렇게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으르렁거리며 다가서는 사자처럼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은 쏟아진 물처럼 흐느적거리고, 그 모든 뼈는 으스러진 것처럼 고통스럽고, 그 심장은 자기 안에 녹아 내리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움직일 힘조차 없으며 그 입은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어 있습니다. 마치 사망의 구렁텅이 빠진 것처럼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에워싸고 칼과 창으로 손과 발을 찔러대고 있습니다. 그의 옷은 벗겨져 깡마른 몸뚱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야위었든지 뼈 하나 하나를 셀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걸린 마른 몸의 주님을 바라보듯이 말입니다. 그 악한 자들은 다윗의 옷을 벗기어 서로 나누어 가지고, 또 속옷을 가지기 위해 제비를 뽑고 있습니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 그는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망의 구렁텅이 가운데 내 던지셨습니다. 철저히 그를 외면하시고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런 고통과 치욕을 안기신 것일까요? 다윗의 말처럼 하나님은 다윗을 지으신 하나님이시요, 어미젖을 빨 때부터 믿음을 가르치신 하나님이시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를 기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왕으로 지목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런 고통 가운데 두시는 것입니까? 다윗이 버림받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악한 상황에 두시는 것입니까? 왜입니까? 그를 왕으로 세우시기 위함이지요? 그를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지요? 그를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에게 무너지지 않는 나라를 약속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택하신 자의 고난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끝까지 인내함으로 이 고난을 이겨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끝까지 주를 신뢰함으로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 것 같으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나라의 왕권을 이어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보좌를 영원토록 견고케 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인내로 기도하며, 끝까지 소망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죽음을 맛보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신가,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신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버지께 대한 신뢰를 놓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순종으로 그 모든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을 이겨내신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버지께서는 그런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 나라를 아들에게 주셨고 그를 지극히 높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광의 보좌를 그에게 주셔서 영원토록 그 권세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예기치 않는 어려움을 만날 수 있고, 극한 실험 가운데 놓일 수도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의심할 수 있는 그런 악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을 만큼의 큰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어야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그 뜻을 이루실 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십니다. 아들께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케 되시고 모든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는 때로 고난으로 우리를 연단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했던 욥처럼, 신실한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욥을 능가하는 더 온전하고 탁월한 고백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욥보다 더 온전한 시대, 탁월한 믿음의 시대, 영광의 빛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시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신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때로 당하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 신실한 믿음의 고백과 인내, 끝없는 신뢰와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