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쳔 강해


시편 23 편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


오늘은 스물 세 번째의 시입니다. 이 시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또 즐겨 부르는 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많은 시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시를 외우기도 하고 또 이 시를 가지고 작곡을 하기도 합니다. 이 시를 통해 마음에 위안과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그만큼 성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이 시를 보다 잘 알고 주의 교회를 위한 우리의 시로 잘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 시는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표제를 보면 \'다윗이 지은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상 구분해 보면 이 시는 \'신뢰의 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곧 주를 향한 믿음과 신뢰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상 이 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는데, 먼저는 1절로 3절까지로,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 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과 5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말하고, 그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6절에서 자신의 다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노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조금의 부족함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절과 3절에서 그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을 어떻게 이끄시는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윗을 어디로 이끌어 가십니까?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 가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평안과 안식, 풍부와 기쁨의 삶에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 막 사망의 골짜기라 할 수 있는 죽음의 길을 헤쳐 나온 것입니다.



그간의 다윗의 삶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구원치 아니하시며, 어찌하여 나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시나이까\"라고 호소할 정도로 극한 고난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마치 자신은 사망의 진토 속에 버려진 것처럼 되었고, 버린 바 된 아이처럼 두려움으로 떨며 울어야 했습니다. 멸시와 조롱 속에 사람들에게 벌레의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고난의 때는 끝났습니다.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의 날은 지나갔습니다. 그야말로 가혹한 폭풍이었다 할 수 있는 험한 폭풍 속을 지나온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이끄실 것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에로 이끄실 것입니다. 평안과 쉼이 있는 곳으로 그를 이끄실 것입니다. 부족함 없는 풍성한 생명에로 이끄실 것입니다. 죽은 것 같았던 그의 영혼은 이제 소생함을 얻고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옹기처럼 말랐던 기력은 회복될 것이고 입천장에 붙었던 그의 혀는 맑고 시원한 물로 적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큰 영광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친히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 이름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국에 자기 영광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하고, 그가 모든 고난 중에도 자신과 함께 하셨고 이제 영원한 생명의 길에로 이끌고 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요한 생명에로 이끌고 계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 등은 그 나라의 복 된 상태, 평강으로 가득한 모습을 지시하는 표현들이 될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므로 어떤 부족함도 없는 만족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들이 신선한 풀을 뜯고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한가로이 노니는 그런 그림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자의 평안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목자가 되셔서 그를 영광과 생명의 길에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을 3절에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의의 길\"은 어떤 길이 되겠습니까? 앞서 22장에서 살핀 대로 하나님을 따라 모든 공의의 통치를 베푸는 길이 되겠지요?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왕의 길이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리왕 다윗을 통해 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자비가 나타나는 나라, 그의 영광이 나타나는 나라, 그리하여 온 열방의 모든 민족들이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도다\"하며 엎드려 경배하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를 이루시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공의의 통치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생명이 모든 백성에게까지 미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우신 대리왕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어져 있던 자들, 모든 가난한 자들, 억눌렸던 자들, 가난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았던 자들이 함께 그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친히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다윗은 보고 있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의 목자가 되셔서 그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목자로 주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에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마치 목자가 그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여 내는 것처럼 주께서는 우리를 불러 인도해 내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들었고 그가 우리의 참 목자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리실 수 있는 그런 목자이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위해서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고 이로서 참 목자이심을 보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은 고난의 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사망의 폭풍 속을 걷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은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자되신 주님께서 결코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늘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늘 우리의 선한 목자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인생에 있어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터널이 일생동안 지속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 자체가 고난의 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업보로서의 고난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잠시 이 악한 질서 아래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이 가리운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믿음을 따라 보좌 우편에 계신 영광의 주님을 보며 살고 있으나, 이 세계 사람들에게는 가리워있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터널을 지나고 나면 우리 앞에는 영원한 생명의 초장의 펼쳐져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가히 말할 수 없는 세계가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영광의 세계,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로 이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로 우리에게 고난이 온다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지금 그것을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4\"----------\" 그는 지나온 생을 돌이켜 보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고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이끄셨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목자가 그 지팡이로 그 양을 이끌 듯이, 곁길로 가는 양을 바른 길로 이끌 듯이, 그렇게 자신을 이끄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으며 그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심히 악한 경우에 처해 보면서 그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자신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비록 또다시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된다 할지라도 그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왜냐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고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끄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으시지요? 여기 다윗처럼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다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노라\"고 고백할 수 있겠지요?



희미한 빛을 따라 걸었던 다윗이 이런 고백을 했을 진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광명한 빛을 따라 걷는 우리가 이런 고백으로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망의 권세가 내게 어찌하리요\" 하는 그런 담대함과 확신으로 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가, 나아가, 설사 사망의 권세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가 우리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데 그 생명을 앗아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확신하는 것이고 그 확신에서 나오는 담대함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새시대의 백성, 부활의 영광 아래 사는 백성의 삶인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사는 권세 있는 믿음의 백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이런 믿음의 삶을, 이런 신앙고백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5절을 보면 주께서 다윗에게 행하신 일들이 나와 있습니다. 주께서 그를 어떤 영광에로 이끄셨습니까? 5\"---------\" 하나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잔을 채우시므로 자신의 잔이 넘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표현들입니까? 승리의 영광을 말하는 표현들이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들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높이셨는가를 말하는 표현들이 되겠지요?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융숭한 대접으로 영접하는 주인\'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든 수고를 마치고 돌아오는 종을 영접하는 주인처럼 자신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믿음의 신뢰를 잃지 않은 다윗을 융숭한 대접으로 영접하셨고 하나님의 상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기름을 부어 대리왕의 영광스런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넘치는 잔을 들게 하셨습니다. 바로 원수의 목전에서 그를 그렇게 높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 왕이 하나님 앞에 누리는 영광입니다. 모든 고난 중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잃지 않았던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머리된 다윗왕의 영광에 그 모든 백성이 함께 참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머리되신 우리 주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살 것 같으면, 변함없는 신실함과 주께 대한 사랑으로 주와 함께 걸을 것 같으면, 우리 또한 상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융숭한 대접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여하튼 이제 다윗은 마지막 절에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지입니까? 6\"---------\" 자신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의 언약 아래 거하겠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며 사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며 사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와서 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하심 아래 거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친히 하나님의 성전이시요 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생명의 길이요 진리이십니다. 우리를 영생에로 이끄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그에게만 의의 길이 있고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에게만 참 쉼과 안식 그리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세계로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양으로서 그를 따르는 것만이 요구됩니다. 모든 것을 그에게 의탁하고 그 안에 거하는 것만이 요구될 뿐입니다. 그러면 그가 우리 삶을 이끄실 것입니다. 참 생명의 처소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따르는 양으로서 그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가 결코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이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우리의 영원한 목자장되시는 주님을 따라 참 생명의 길을 가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