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5편 강해


시편 25 편 자비와 인자를 간구


오늘은 스물 다섯 번째의 시입니다. 이 시도 표제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아마 다윗이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지은 것 같습니다. 시를 보면 다윗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고, 또 그것 때문에 원수들로부터 조롱 받고 핍박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곧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원수들의 조롱의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서 용서와 구원을 간구하는 시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의 배경은 그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쫓기던 때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울에게 쫓기던 때는 자기 죄로 인한 핍박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 때의 시들을 보면 자기의 무죄를 호소하고 애매한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다윗은 자기 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그로 인해 야기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 시편 25편의 시의 특징으로는 이 시가 이합체의 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합체의 시란 알파벳 순서를 따라 시의 첫 글자를 쓴 시를 말합니다. 여기 25편의 시 뿐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살펴 본 9편에서 10편으로 이어지는 시와 34편, 37편, 111편 등 모두 아홉 편의 시가 이러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완벽히 알파벳 순서를 따라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알파벳 순서를 따라서 시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 번역에 있어 애로점이 있고 시의 본 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과 영 동떨어지거나 그 내용이 심각히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다윗의 당시의 심경과 마음의 소원,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간절한 열망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오늘 시가 이합체의 시라는 점을 알아두고 본문의 구조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파벳의 형식을 따라 구조를 나누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그냥 내용을 따라 구분해 보자면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7절까지입니다. 여기는 다윗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구하고 속히 원수의 세력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15절까지로 자신이 아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가를 말하므로 시를 읽고 있는 상대를 권면하고 더불어 자신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겠노라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이 모든 상황을 야기시킨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 자신의 죄에 대해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 자신을 구원하실 것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럼 첫 단락을 한 번 보겠습니다. 1-7\"-----------\" 자신은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있고 전 영혼을 다해 앙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진정 한치의 거짓도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섰고 그의 생이 그러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있어 한가지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의 정직성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한 점, 바로 그 점이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입니다. 사실 그의 드러난 행동들을 보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그런 죄들을 범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간음하여 빼앗았고, 그 남편을 사지로 몰아 죽게 하였습니다. 사실 다윗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내치지 아니하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지만 그가 그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솔직히 시인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이 늘 하나님 앞에 진실햇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아끼셨고 그 나라를 위한 귀한 도구로 들어 쓰셨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그러하셨다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십니다. 그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자신을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전 마음으로 하나님을 앙망하는 삶, 그 앞에 진실한 삶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다윗이 간구하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가 지금 바라는 바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으로 부끄럼을 당하지 않게 하시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도를 보이시고 자신을 진리에로 인도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모든 죄와 과오를 용서하시고 자비와 인자하심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기도일 수 있지만 다윗은 구체적으로 하나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으로 부끄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 개인의 수치와 부끄럼이자 그 나라가 당할 수 있는 수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나라는 두 동강 났고 대적들은 기세를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22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소서\"하고 기도하고 있고, 또 2절에도 보면 \"나의 대적들로 제 위에서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나라의 언약의 머리인 다윗의 범죄로 인해 고통하고 있고 다윗은 부끄러움을 당할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로부터도 어쩌면 조롱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자신에게 하나님의 길과 진리를 보이시고 가르쳐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도를 보이시고, 길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로 인도해 달라는 말은 아마도 부끄럼을 씻을 수 있는 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의를 얻을 수 있는 길, 자신이 하나님 앞에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하는 말입니다. 지금 그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율법을 몰라서 가르쳐달라고 하겠습니까? 그것보다는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할 바를 가르쳐 주실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신과 하나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풀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해석이 더 옳을 수 있는 것은 5절 하반절에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제가 온 종일 당신을 바라나이다\"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이 처분하신 대로 무엇이든지 할 마음에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6절과 7절에서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구하고 있고, 지난 날, 젊은 시절의 죄와 과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여기 지난날의 죄와 과오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에 대한 살인의 문제일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생에 있어 두고두고 따라 다니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선지자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통회했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습니다.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고 그렇게 이레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언은 취소되지 않았고 그후로 그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의 첫 아들이 낳자마자 죽었고 그 집안에 다툼과 싸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제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지금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문제를 다윗은 지금 거론하고 있고 그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라 용서하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선하심을 의지해서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나 우리나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 그의 선하심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하튼 다윗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그러면서도 불평의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죄로 인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그 고통이 심히 컸을 테인데 원망의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끝까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모습만을 보였습니다. 그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어떠합니까?

8-15\"-------------\"



그는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으로, 항상 옳으신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을 돌이켜 가야할 길을 지시하여 주시고 겸손한 자를 인도하시며 겸비한 자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신실함과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은 자기 죄로 인하여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셨던 것입니다. 정말 그렇지요? 다윗의 말처럼 그분은 선하시고 항상 옳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을 향해 늘 인자하게 그 길을 가르쳐주시고 혹 곁길로 갈 때 그 길을 지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자비하신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겸손하고 겸비한 자에게 그 길을 가르치시고 그 언약과 계명을 지켜 사는 자에게 신실함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의 삶에서 저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도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하튼 다윗은 하나님을 선하고 옳으시며 신실함과 사랑을 베푸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그분 앞에 자신의 죄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11\"-----\" 바로 선하시고 옳으시며 자기 백성에게 항상 신실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서 그 이름을 위해, 자신의 큰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괜히 하나님을 추겨 세워드리고 거기서 덕을 볼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따른 우리의 기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분의 어떠하심에 호소해서 간구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기도의 태도요, 자세인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아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그런 기도의 태도를 삶에서 배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높이 찬양하면서 그 이름에 의지하여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그러면서 이 시를 읽는 우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 볼까요? 12-15\"---------\" 한 마디로 무슨 말입니까? 이 시를 읽는 독자들도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이지요? 왜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갈 길을 보이시고 그의 삶을 평탄케 하시며 풍성한 삶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신임하시고 그 은혜의 언약들을 알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알리신다는 것은 새로운 은혜들을 더하신다는 말이 되겠지요? 여하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경외함 중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있고 언약의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입니까? 결국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죽음의 덫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고 신실히 의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당하는 고통의 현실은 여전합니다. 여전히 괴로움과 고민 속에 그는 힘들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통 속에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16-22\"----------\" 그의 기도는 간절하고 심지어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외로움과 마음의 고통과 고민으로, 그리고 원수들의 조롱과 생명의 위협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 중에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자신을 이 고통에서 자유케 하시기를, 자신의 괴로움과 고민을 보시고 모든 죄과를 제거해 주시기를,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따라 자신의 생명을 지키시고 구원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모든 간구를 들어주셨고 그를 그 고통에서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겨 괴로움으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를 다시 보좌에 오르게 하시므로, 원수를 정복하고 평화를 얻게 하시므로 나타났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시고 그 언약에 신실하시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따라 그에게 갚으신 것입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나타났습니다. 그 언약의 머리된 왕에게 보이신 선하심과 인자하심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왕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입었으니 그 안에 모든 백성들이 평안할 것이고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왕이 긍휼을 입었으니 그 결과를 백성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치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요 언약의 머리되신 주님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옛 언약의 중보자 다윗은 자기 죄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야 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백성의 죄,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큰 자비하심과 은혜를 베푸셨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시는 영원한 인자하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를 영원히 하늘 보좌에 오르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온전한 자비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언약의 중보자요, 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신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주어진 바 되었고, 그에게 허락하신 신실한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속했다는 것만으로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아들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우리 곁에 오셨고, 단지 아들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모든 죄과를 제거하셨습니다. 영원한 인자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망의 고통에서 자유케 하셨고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겪는 외로움과 괴로움, 큰 고민에서 건지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 진리에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주님을 떠나 살 수 없고, 우리의 언약의 왕을 붙들지 않고 살 방법이 없습니다. 이 분을 떠나 우리 존재를 생각할 수 없고, 이 분을 떠나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를 떠난 곳에는 부끄러움이요, 수치요, 고통이요, 외로움이요, 괴로움입니다. 사망의 큰 고통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분 안에서 인자와 긍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모든 겸손과 신실함 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제 나타내신 의를 따라 언약의 백성으로 걷는 길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우리의 영원한 왕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쉼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의 신실한 백성으로 주 앞에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