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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교회 교육의 실제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김 근 수(칼빈대학교)
Ⅰ. 서론
한국 교회는 그 동안 많은 위기들을 겪어왔다. 밖으로는 일제 치하에서의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의 강압과 군사 정권의 독재속에서도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지켜왔으며, 안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의 맹렬한 도전에 당당히 응전해 왔다. 참으로 한국교회사는 고난사(苦難史)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세계 어느 교회보다도 처음에 복음을 전하여 준 선교사들의 신학적? 신앙적 전통들을 소중하게 계승하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의 자랑이다.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개혁주의 신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열매를 맺어온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의 과제는 이러한 고귀한 전통들을 다음 세대들에게 잘 계승해야한다는 데에 있다. 필자는 과거의 위기상황들을 극복한 한국 교회가 세대분열과 다원주의라는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 교회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지나치게 편승하는 상황화의 오류를 피하고, 교육을 중심으로 ‘신앙 계승’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오는 세대들에게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쳐야할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경, 신조, 신앙고백, 요리문답같은 교육이 중요함을 피력한 바 있다.
사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처음부터 항상 이러한 진리들을 가르치는 데에 힘써왔다. 예수님은 그의 사도들에게 이를 친히 명하셨다(마 28:18-20). 사도들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의 증인들이 되었다(행1:8).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바를 전파하였다(행4:20, 행22:15, 요일1:3). 참으로 그들은 교회를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따라서만 교육했던 것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사도적 신앙을 계승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 교육은 그것의 목적과 취지 그리고 방법론을 오직 기독교의 본질속에서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교회가 세속적인 인본주의와 심리학에 정착하려한다는 폴 비에스(Paul Vieth)의 비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 논고의 목적은 초대 교회가 어떻게 사도적 증거를 통해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게 되었는 지를 연구함이다. 특별히 이 연구는 주된 자료를 바울 서신들을 중심으로 하였다. 그 이유를 Dunn의 말을 빌리자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에 대한 기억이 기독교의 첫 세대동안 이미 상당한 신학적 성찰을 거쳤다는 것과 이에 대하여 신약의 다른 저작들이 바울의 서신들보다 시기가 이른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바울 서신들만큼 그 의의가 크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사도 바울의 위대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에 대한 방대한 저술들중에서 교회 교육에 대한 연구들이 미흡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본 논고는 초대 교회의 교회 교육에 대하여 논하되, 특별히 그 업적이 탁월한 사도 바울의 교육의 실제에 대한 것이다. 그의 회람용 서신들은 그가 주의 몸된 교회를 주의 명령으로 교육한 주된 방편이었다(고전 14:37, 살전 5:27, 골4:16). 따라서, 우리는 그의 서신들에서 그의 교회 교육의 실제와 다양한 방법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방편들로써 주의 명령과 사도적 신앙을 교회에 가르쳤다. 그것들은 주로 신앙고백과 찬송, 기도, 설교, 성만찬등과 같은 예배의 요소들로 볼 수 있다. 사도가 이렇게 예배의 요소들을 활용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알프레드 깁스(Alfred P. Gibbs)의 정의처럼 “예배는 기독인의 최상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기의 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에 그 글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할 바 없다(골4:16, 살전5:27, 딤전4:13). 이것은 우리에게 예배의 교육적 기능에 관심을 돌리게 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사용했던 원리들과 방법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서, 우리가 이를 오늘에 잘 되살려 예배에 적극 활용한다면, 교회 교육을 통하여 신앙을 계승하는 데에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는 사도적 신앙이 교회를 통해 실제로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신앙계승을 위한 교회 교육이라는 우리의 과제를 위한 열쇠라는 성경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도 바울의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사도적 신앙계승을 위하여 그가 행한 교회 교육을 위한 실제들을 살펴보자.
Ⅱ. 본론
1. 신앙고백
켈리(J. N. D. Kelly) 박사가 “일정하게 고정된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필수적 항목들을 요약하고 있으며, 교회의 권위를 재가(裁可)하고 있다”라고 정의한 의미에서 완전한 구조의 신경은 신약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기의 기독교회는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던 공동체이다.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규정된 복음적 진리체계가 있다는 가정하에서만, 명확한 예배의식과 신앙 규범(고후9:13, 빌1:27)을 갖추고 있고 엄격한 회원 자격(고전5:3-5, 딤전1:19-20, 요이9-10)과 징계조치를 시행했던(고후2:5-11) 공동체를 조직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랄프 마틴의 주장은 참으로 옳다.
후시대의 신경들과 유사한 어떤 완전한 구조의 것이 바울의 서신에서 발견되지는 않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한 교리적 내용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도가 “주께 받은”것이며, 교회에 “전하여 준” 것이다(고전11:23). 또한, 이사도적 신앙은 직접적으로 혹은 다른 충성된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회에 계승되었다(딤후2:2). 특히,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주께 받은 것”은 직접 주께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를 말함이다(갈1:12).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계시의 독자성을 주장하며(갈1:1, 11-12), 다른 사도들의 복음에 대하여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한다(갈2:6, 11-14).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 복음은 모든 전승에 우선한다.
먼저, 초기 기독교회에 있어서 빈번히 반복되는 한 신앙고백은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간명한 진술이다(롬10:9, 고전12:3, 고후4:5). 바울이 이 진술을 신앙고백으로 역설하였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하였고,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15:2)고 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바울 서신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적 구절은 고린도전서 15:3-5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경적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네 개의 접속사(?τι)로 각 항이 시작되고 있음을 주목하라.
1항 o[ti Cristo.j avpe,qanen u`pe.r tw/n a`martiw/n h`mw/n kata. ta.j grafa.j
<NIV :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2항 o[ti evta,fh
<NIV : that he was buried>
3항 o[ti evgh,gertai th/| h`me,ra| th/| tri,th| kata. ta.j grafa.j
<NIV : that he was raised o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4항 o[ti w;fqh Khfa/| ei=ta toi/j dw,deka
<NIV : that he appeared to Peter, and then to the Twelve>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복음이었고, 그들이 받은 것이었다(고전 15:1). 그러나, 11절(“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에서 바울이 이것을 다른 사도들과 동일한 선포임을 밝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사도적 신앙을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 보이셨다
여기서 “성경대로”(kata. ta.j grafa.j)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바울이 구약성서에서 복음을 본질적으로 규명하였다는 것을 말하며, 초기 기독교회가 구약 성경을 근거로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이해를 확증했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구약 성경을 근거로한 신앙 고백문들의 편린들이 초기 기독교회에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주께로부터 직접받은 계시와 구약 성경에 근거한 신앙 고백문 형식들 그리고 초기 교회들의 신앙 고백 전승들을 자신의 서신들을 통해서 선포하고 반복함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사도적 신앙을 온전히 계승하도록 교육한 것이다.
또한 바울은 간접적으로는 질문을 통해서 교회에 신앙고백을 하게 하는 교육을 하였다. 복음서를 통해 볼 때, 예수께서는 공적 사역에서 총 225번의 질문을 던지셨으며, 사도 바울은 이보다 더 많은 250번의 질문을 했다는 통계가 있다. 바울은 서신서들에서 교리와 실천적 오류들을 다룰 때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로마서 3:29에서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이미 바울은 그 대답을 질문의 형식속에 암시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 교인들에게 그가 원하는 고백을 얻어냈다. 이러한 방식은 바울이 유대교의 가장 기본적 신념인 유일신론을 취하여 유대교를 반박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2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는 질문은 개인적 체험으로부터의 논증에 속한다. 개인적 체험이 교리적 진리의 표준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직 계시뿐이지만, 어떤 문제를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체험도 유력한 요인일 수 있다. 바울은 율법과 은혜라는 그의 논증이 추상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리한 질문들을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체험과 연결시켰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교리적 내용들을 전제한다. (1) 개인의 성령 체험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보증이다. (2) 이 생활의 지속성은 성령을 더 의존하는 것이다. (3) 갈라디아 교인들이 경험한 그 영적 투쟁들은 그 믿음의 점진적 발전이 끝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보증이다. (4) 성령께서는 율법으로는 전혀 산출된 적이 없는 그런 이적적인 일들을 아직도 그들 가운데 수행하고 계신다. 이 네가지가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생활에서의 표준들로 간주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은 이같이 질문하고 대답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갈라디아서 3:19에서 “그런즉 율법이 무엇이냐?” 질문을 한다. 이것은 바울의 질문이라기보다 율법에 대한 그의 논증을 유대교 대적자들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이 그 질문을 던지고는 있으나 사실상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명쾌하다. 곧 율법은 ‘약속한 자손이 오기까지 죄를 인하여 천사에 의해 더하여진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명쾌한 대답의 출처는 성경임을 밝히고 있다.(22절). 따라서, 그의 질문은 곧바로 성경에 의한 교리적 진술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바울의 이러한 질문을 활용한 교육은 서신서에 수없이 나타난다. 이는 질문을 듣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대답하거나 배우려는 욕구를 유도함으로써, 교리적 내용을 알게하는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 이것은 기독 교회의 전통적인 요리문답 공부를 생각나게 한다. 바울의 교리적 질문에 대한 교회의 대답뿐 아니라, 교회의 의견과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이러한 문답식 교육을 통해 신앙 계승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문답식 교육, 캐터키즘의 교육적 기능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매우 탁월하다. 바울이 사용했던 이러한 문답식 신앙교육의 방법론은 지금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교육과정의 필수 원리이다.
2. 찬송시와 신령한 노래들
바울의 서신들속에는 기독교적 찬송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고린도전서 14:26은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라고 했으며, 15절에는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하여 찬송시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골로새서 3:16에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으며, 에베소서 5장 19, 20절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여, 우리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바울 사도는 교회에 찬송을 권면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직접 찬송을 하는 자였다.
바울의 서신에는 유대적 기독교 찬송의 그룹에 속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와 긍휼과 지혜를 논증한 바울은 경이에 가득한 찬양을 올린다. 로마서 11:30-33은 바울이 이미 존재하는 찬양을 전수받아 기록한 것이라기 보다는, 바울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우리는 이 부분에서 바울과 함께 “아멘”이라고 화답하게 된다. 이렇게 바울이 9-11장에 걸쳐 제기된 논증들은 이제 송영속에서 결론들을 맺게 되는 것이다. 곧 교회는 바울이 논증한 주제들에 대한 결론적 이해에 도달하게 되고, 이를 송영을 통해서 찬양함으로써, 그 안에 든든히 서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것들로서 바울이 찬송하는 것들도 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디모데전서 1:17절에 있는 이 찬송은 하나님을 ‘만세의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유대적 만찬기도들(“만세의 왕 우리 하나님, 오 주님 당신께서 찬양받으시옵소서”)과 회당의 찬양에서 사용된 구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널리 사용되던 문구인 것이다. 이와 유사한 출처를 가진 것으로는 디모데전서 1장 15, 16절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전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지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특히, 에베소서 5장 14절은 바울이 독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다.
“잠자는 자여 깨어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바울은 인용이라는 것을 알도록 “그러므로 이르시기를”(dio. le,gei)이라고 먼저 기록하였다. Hodge는 이 부분이 구약의 이사야의 인용이라고 말한다(9:2, 26:19, 60:1). Bruce는 더 나아가 이 찬송이 세례의식에 수반된 찬송으로 여긴다.\'잠, 죽음, 빛’과 같은 용어는 그리스도인의 회심때의 영적 생명과 기독교적 교제에의 참여를 말하는 은유이기 때문이다(롬6:4이하, 골2:12). 이런 찬송을 인용하는 바울의 목적에 대하여 랄프 마틴은 “오늘날 설교자가 널리 불려지고 있는 유명한 찬송을 인용하면서 어떤 점을 강조한 것과 같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한 권면에 그것을 환기시키고 있다”라고 말한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을 보자.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6연의 찬송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찬송의 한 조각으로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승천과 같은 분명한 교리적 진술을 포함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찬송으로는 빌립보서 2:6-11이 있으며, 그리스도와 창조, 그리스도와 교회를 주제로 한 2연의 찬송은 골 1:15-20,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우주적 통치에 대하여는 히 1:3을 들 수 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여러 자료들을 합하여 자신이 직접 지은 찬송시와 신령한 노래들이나 당시에 교회에서 사용된 유명한 그것들을 그의 서신들에 인용함으로써, 그것들에 반영된 진리를 교회에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교리적 논증들 후에 이러한 찬송시를 기록하고 인용하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에게있어 찬송은 결코 그의 교육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사도적 신앙은 찬송을 통해 널리 가르쳐졌다.
4. 기도
바울은 뛰어난 기도의 사람이었다. 회심한 후의 바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요점들중의 하나는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행 9:11)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명하였다. 그럼에도 Arthur W. Pink가 그의 책 서론에서 밝힌 것처럼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기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다. 서신서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는 대략 33군데나 된다. 우리가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공동체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개인적 특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개인의 기도 모범은 공동체를 통해 발전해 왔으며 공동체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바울은 그 자신이 고린도전서 14장 3절-5절에서 하나님께 방언을 말하는 자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음을 분별치 못하여 악기를 알 수 없는 것’과 ‘ 나팔 소리가 분명치 못하여 전쟁을 예비할 수 없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고로 바울은 기도의 교회적 유익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바울의 기도의 내용들이 교훈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바울의 서신서들이 집회에서 낭독될 때, 그의 기도의 내용이 함께 들려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하나의 교육적 모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바울의 기도가 어떤 특징들을 갖는 지를 알려면 먼저 그의 기도의 사상적 배경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바울이 자기 스스로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율법교육을 받은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기도가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그가 살고 있던 세계가 헬라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유대교의 문헌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기도를 살펴보자. 유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3개의 성경 본문(신6:4-9, 11:13-21, 민15:37-41)으로 이루어진 “쉐마 기도문”을 낭송하면서 그들의 신앙의 고백했다. 이것과 함께 가장 중요한 기도문으로서는 18개의 간구와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18간구 기도문인 “쉐모네에스레”가 있다. 그 내용으로는 찬미와 회개와 죄 용서, 치유, 축복, 회복, 통치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울은 적어도 이러한 구약 성경을 근거로 한 유대교 기도에 영향을 받았다. 바울 서신의 축복기도들이 특히 그렇다. 예를들어 롬 1:25절의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나 롬 9:5절의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같은 축복 기도는 바로 유대교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헬라의 영향아래에 있었다. 적어도 그의 서신에는 헬라문화의 이미지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헬라의 정치적 개념이나(빌1:27, 3:20, 엡2:19), 헬라에서의 경기 묘사(고전9:24-27, 고후4:8-9), 헬라의 상업 용어(몬1:18, 골2:14), 헬라의 법적 용어(갈3:15, 4:1-2, 롬7:1-3), 노예 시장의 모습(고전7:22, 롬7:14)등이다. 이 영향은 그의 기도에서도 보여진다. 골1:9절의 “지혜와 총명”(sofi,a| kai. sune,sei)의 이중적 표현은 헬라적 표현이다. 또한, 빌립보서 1장 9-11절에 나오는 기도에서 그가 사용한 용어들 곧 “지식”(evpignw,sij), “총명”(aivsqh,sij), “선한 것”(ta. diafe,ronta)등은 헬라의 도덕 철학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기도의 형식과 기능면에서는 헬라 서신의 형식과 용어들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 내용인 감사, 중보같은 것은 구약과 유대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바울 기도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우리의 논지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가 유대교와 헬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기도가 이방의 여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바울의 기도문들중 몇 가지를 살펴봄으로써그 중심 내용을 파악해 보자.
먼저, 에베소서 1장 17절-19절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영광”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이 “영광”은 그가 이미 6절이하에 언급한 바있는 창조에 나타난 모든 권세와 위엄, 섭리와 구속이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어서 2개의 병행구에서 지식에 관계된 중보를 위한 기도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지성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 관한 성경적 개념 곧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시111:10)임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기도는 단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진리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살아있는 진리를 얻도록 하기 위한 기도이다. 또한 바울은 “힘의 강력”, “능력”, “지극히 크심”같은 유사 용어들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유일하고 월등한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그 중심 내용이 하나님에 대한 영광의 선포와 그의 성도를 향한 섭리와 그의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빌립보서 1장 9절-11절의 기도 내용을 살펴보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같이,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가 구하는 내용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4가지 간구의 주제는 “풍성한 사랑”, “분별있는 지식”, “허물없는 성품”, “의의 열매”이다. Moises Silva는 이 부분에서 바울이 사용한 문학적 기능에 주목한다. 그는 9절의 “e;ti ma/llon kai. ma/llon”이 점점 강조하는 양식(a stylistic cersecndo)을 통해 논리적인 점진이 있으며, 이를 통해 바울이 3가지의 목적들을 독자들에게 설정한다고 보았다: (1) 선한 것을 분별하고 (2) 그리스도의 날에 흠이 없는 완전함 (3)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 바울이 사용한 문학 양식을 고려해 볼때 이중 가장 고상하고 최종적인 목적은 단연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다.
더구나, 이 기도는 골로새서 1장 9절-11절의 기도와 그 구조상 매우 유사하다. 이것은 바울이 교회를 향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같은 주제를 그 중심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 밖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본문들은 고후 11:31, 빌4:20, 롬1:25, 엡3:20-21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기도문들이 있지만, 특히 감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동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다. 그러나, 그 감사는 고전1:9에서 보는 바와 같이(“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끝나며, 골1:12에서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바울의 모든 기도를 살펴본다할지라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그 초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구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들이 서신들을 예배시에 낭독할 때에 그들이 바울의 기도 정신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기도의 목적으로 두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바울은 기도를 통해 그가 목회적으로 돌보는 교회에게 인간의 제일된 목적을 가르친 셈이다.
5. 설교와 가르침
사도 바울의 목회 핵심사역을 설교로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바울의 설교의 본문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적어도 사도행전에만 8개를 찾아 볼 수 있다. 누가가 기록한 바울의 설교가 실제 바울의 설교와 얼마나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가? 누가가 12년간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고동락하면서 바울의 문체, 어휘, 기술등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다. 또한, 누가의 기록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와 서신서들의 어구는 상당히 유사성이 많다는 것을 들어 누가가 바울의 설교를 집약적이고 요약적으로 정리했음을 알 수 있다.
누가의 기록에서 보는 바울의 설교는 상황과 청중에 따라 각각 다른 접근을 취하였다. 아담스는 이를 청중에 따라 잘 정리하였다 :
청중이 유대인인 경우에는 (1) 권위로서 성경 사용 (2) 일반적인 신학적 전통(옳을 때)과 문화적 전통에로 동일시 (3) 권위로서 세례 요한 사용 (4) 이방인을 향한 그의 사명 말하기를 보류 (5) 그들의 문제에 대한 이해 (6) 개인적인 간증 (7) 직접적인 개인적 호소이며, 청중이 이방인인 경우에는 (1) 일반 계시 사용 (2) 종교적인 관심에 대한 해설과 언급 (3) 헬라의 시를 인용 (4) 가까이 있는 환경을 이용 (5) 청중에게 적합한 연설체와 어휘
이로 볼때, 바울은 유연성있게 청중에 적응하여 설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청중을 알았으며, 상황을 직시하여 그의 메시지가 정확히 과녁(청중)에 명중하도록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가르침은 종종 “내가 권하노니”라는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와 함께 시작된다(롬12:1-13, 14-21, 13:1-7, 14:1-23등). 사실상 바울의 가르침은 서신들을 쓴 동기이기도 하므로, 그 가르침을 전부 나열한 다는 것은 매우 방대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서신들을 교회적 상황에 따라 일관성을 가지고 교리적인 체계를 세우기 위한 목회적 의도로 기록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울의 융통성있는 설교와 교리적 가르침의 중심내용은 무엇인가? C. H. Dodd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검토하여 바울 설교의 중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 예언대로 다윗의 씨인 그리스도의 오심
(2)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심
(3)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심
(4) 그리스도의 승귀
(5) 그리스도의 재림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울의 설교와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결코 타협할 수 있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 5대 진리에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은 바울의 설교 사역이 그의 교회에 사도적 신앙을 전수함에 있어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우리는 바울이 개인적인 간증을 여러번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울이 자신의 회심에 대하여 간증한 곳은 고전9:1, 15:8-10, 갈 1:13-17, 빌 3:4-11이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성경 해석가들은 롬 10:2-4, 고전9:16-17, 고후3:4-4:6, 고후5:16, 엡3:1-13을 여기에 더하고 있다.
우리가 다룰 것은 ‘왜 바울이 이토록 자신의 회심을 되풀이하여 간증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위의 추가적 구절들까지 포함하여 살펴보면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 사도직의 기원과 사명의 진정성을 제기(고전9:1, 9:16-17, 15:8-10, 엡 3:1-13)
(2) 바울 복음의 신적 계시(갈1:13-17)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 제시(빌 3:4-11, 롬10:2-4)
(4)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의 영광(고후 3:4-4:6)
(5) 그리스도의 새 창조(고후5:16)
이로 보건대, 바울은 자신의 회심이야기를 각 교회로 보내는 서신에 넣어 위와같은 진리들을 교회에 교육하는 밑천으로 사용한 것이다. 오늘날의 간증이 개인의 성공담과 자랑으로 일색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그가 교회에 자신의 사도직과 사명만을 주장하는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의의 복음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로 말미암는 새 창조와 같은 진리들을 설파하는 훌륭한 원천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간증은 강력한 교회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다.
6. 성만찬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바울이 서신들에 성만찬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을 통하여 바울은 교회에 무엇을 교육하려고 했는가?
바울은 성만찬에 대한 교훈에 관하여 이것이 “주께 받은 것”(고전11:23)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성만찬에 대한 자신의 교훈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의 만찬의 전통 혹은 전승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마가의 기록(막 14:22-25)과 비교해 볼때 몇 가지가 첨가되어졌다. 마가의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이 바울에게서 “너희를 위하여”로 바뀌었다. 또한 막 14:24절의 종말론적인 말씀은 바울에게서 “주가 오실 때까지”라는 형태로 축소되었다. 이와같이 마가의 기록과 바울의 것과 다소간의 강조점의 차이는 마가에 기록된 예수님의 전승이 바울에게서 초대 교회의 성만찬의 의식적인 재현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성만찬에 대한 교훈의 내용은 무엇인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1) 본질적 내용 :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26) (2) 적용적 내용 : 자기를 살피고 주의 만찬에 참예하라(11:27-28),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11:34)
특히, 우리가 고린도교회가 성만찬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11:17, 33), 바울의 언급이 단순히 성만찬의 의미를 설명하기 보다, 고린도교회의 성만찬 교리를 체계화하려는 계기를 마련하는 의도였음을 간파할 수 있다. 특히, (2)의 내용은 고린도교회의 성만찬의 혼란을 고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34절 끝에 바울이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바울이 후에 무엇을 가르치려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주의 만찬에 대한 관계된 것이라고 짐작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이로써 우리는 바울이 성만찬에 대한 전승을 단지 전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에 창조적인 첨가를 하여 성만찬에 대한 의식적 제도를 확립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비단 고린도교회뿐 아니라, 이 서신을 회람하는 모든 교회에게 성만찬의 의식제도 수립에 적지않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바울이 성만찬을 교회 교육의 아주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서신들을 중심으로, 바울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적 전승을 교회들에게 전달하고 계승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신앙고백, 찬송, 기도, 설교와 가르침, 간증, 성만찬과 같은 예배적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먼저 바울이 이러한 예배적 요소들을 그의 서신의 주요한 내용들로 포함시켰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울이 당시에 교회의 예배 의식을 반영한 것도 있거니와 바울의 서신들이 예배시에 낭독되면서 그 요소들이 새로운 예배 의식들로 정립되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정확히 이러한 것을 의도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많은 교리적 진술들을 예배적 요소들이라는 문학 형식의 그릇에 담아서 그의 교회들에게 전달하였다. 교회는 그것을 받아 신앙을 고백하고, 찬송하고 기도의 모범으로 삼고, 설교와 가르침과 간증을 읽고 들으면서, 심지어는 교훈대로 성만찬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적 전승을 그대로 계승하도록 교육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신앙 계승을 위한 교회 교육의 실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진리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경 교육을 도외시하고, 예배의 요소들속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할 진리들을 간과하고 단지 청중들의 상황에만 몰두하여 그들의 축제와 기쁨 일변도로 나아가려는 세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신앙 고백 하나에도, 찬송 한 곡에도, 기도 한 편에도, 설교 한 편에도 사도가 설파했던 귀중한 진리를 담아야 한다. 성찬이 자주 시행되지 못하므로 그 중요성이 무시되는 상황은 종결되어야 한다.
진리는 끊임없이 묻고 대답되어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이러한 요리문답을 훌륭하게 만들어 시행하여 그들의 신앙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이 귀중한 유산들은 오늘날의 언어 체계에 맞게 수정되어 계속해서 가르쳐져야 한다. 과거의 유산으로 남길 일이 아니다.
성경의 귀중한 진리를 담지 못한 현란한 음악이 교회 음악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불리워져야 한다.
아무 의미도 모르는,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각종 방언들은 그치고 진정한 진리를 담은 기도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기도는 그 자체로도 교육적 기능이 있어야 한다.
설교와 가르침은 상스러운 어투와 천박한 유머로 예배자들을 관객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영혼과 마음의 생각과 뜻을 쪼개어 진정한 예배자로 서게 하여야 할 것이다. 자신을 자랑하는 개인적 체험이 난무하는 강단이 아니라, 간증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구원과 역사를 증거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주의 성찬은 주께서 명하신 대로, 사도가 명한 대로 그 신앙적 의미를 되살려 경건하고 자주 시행되어서 교회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이런면에서, 성찬은 참으로 보이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들이 있을 때에, 비로서 지금까지 피와 땀으로 지켜온 우리의 신학과 신앙생활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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