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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시대의 기독교교육의 과제
Tasks of Christian Education in the era of Bio-technology
오 춘 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기독교교육, Ed.D.)
Oh, Choon-Hee (Asian Center for Theological Studies and Mission,
Christian Education, Ed.D.)
1. 서론
어느 사이인지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이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학문 분야가 되었다. 종래의 생물학은 “생명현상이나 생물의 여러 가지 기능을 밝히고 그 성과를 의료나 환경보존 등 인류의 복지에 응용하는 종합과학”이라는 정의를 가진 생명과학이 되었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 생명공학은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는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7년 최초의 체세포 복제양 돌리의 탄생으로 소위 ‘생물학의 혁명’이 시작된 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체세포 복제 젖소 영롱이와 복제 한우 진이를 만들어내는 등 복제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왔다. 2004년 황우석․민신용 교수 연구팀이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를 통하여 인간배아줄기세포의 추출에 성공하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술과 복제된 배아줄기세포에 대하여 국제특허를 출연함으로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수정란 배아복제를 통하여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여 보유하고 있다고 미국립보건원(NIH)에 등록된 국내 기관이 이미 세 군데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배아복제연구의 선도적인 위치가 되었다.
인간배아복제연구의 일차적 목적은 만능 줄기세포를 추출하려는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노다지로 불리고 있는 줄기세포는 인간의 난치병을 해결하고 장기를 만들어내고 노화를 방지하여 인간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는 기대속에 각광을 받고 있다. 생물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세포분화기전의 신비를 풀고, 복제 기술에 의하여 병과 노화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열광하기도 한다. ‘21세기는 BT의 시대이다’, ‘유전자를 장악하는 자가 21세기를 지배한다’, ‘생명공학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등의 선정적인 표어들이 일반인들의 우려 섞인 마음을 사로잡아 생명공학의 기술의 발전 앞에 침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인간배아복제의 문제에 대해서마저도 사회적 동의를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요컨대,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이거나 수정란을 이용한 배아복제이거나 현재 한국은 인간복제에 있어서 선도적인 국가가 되었다. 배아복제를 연구하는 생명공학자들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치료적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지 인간 개체를 복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언론들은 한국에서 인간복제가 가장 먼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상급의 복제기술과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친자녀를 원하는 유교적 가족문화, 해외자본을 유치하려는 정부 정책, 과학자들의 생명윤리의식의 결여, 배아복제를 허용하는 법률 등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기실 우리는 복제인간의 등장이라는 엄청난 대사건의 전야에 있다. 어쩌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인류 진화의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보는 진화론자들이나 드디어 과학적 영생을 찾았다고 흥분하는 사이비종교 라에리언들이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는 한편, 기독교인들은 과학기술의 무한질주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명백하게 반대하거나 찬성하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도 막대한 국가의 이익이 달려있기에 강경하게 반대하지 못하고, 찬성하는 사람도 인간 생명의 파괴라는 문제 때문에 드러내고 찬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독교인 지도자들 가운데도 국가가 나서서 배아줄기세포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과학적인 연구의 발표들에 대하여 언론이 발표하는 것 이상을 접하지 못한 경우에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논문은 2에서 생명공학의 배아줄기세포의 최근 연구와 문제점 및 이를 둘러싼 논쟁들의 논점들을 간략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3에서 한국인들의 이 문제와 관련한 의식을 개관하고, 4에서 기독교적 생명윤리의 확립을 위하여 두 가지 방향에서 고찰하려고 한다. 첫째는 복음주의 기독교회가 기독교생명윤리를 확립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기독교 내적인 과제를 중심으로 생각해보고, 둘째, 복음주의 기독교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론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2. 배아줄기세포연구의 논쟁점들
2.1 배아줄기세포연구와 인간복제의 문제
배아줄기세포연구가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이것이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인간복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배아가 생명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원초적 발현인 배아를 사용하여 줄기세포를 생산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하며, 그 기술의 발달은 인간복제의 문을 연다는 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요컨대, 배아줄기세포연구 문제에 관한 논쟁들은 배아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혹은 인간복제의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따라 각기 다른 논점을 구성하고 있다.
배아복제의 방법은 수정란 복제와 체세포핵이식 복제로 나누어진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체인 수정란을 이용한 복제는 수정란이 8세포로 분열하였을 때 세포를 감싸고 있는 막을 단백질 분해효소로 녹여 세포를 각각 분리한 후 여기서 핵을 추출한 다음, 이를 핵을 없애버린 난자와 결합시키면 8개의 새로운 수정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반복하여 수정란을 냉동보관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개체를 계속 복제해 낼 수 있다. 체세포 핵이식복제는 성체의 체세포에서 핵을 추출하여 핵을 제거한 난자에 전기충격을 주어 핵치환을 시킨 후 세포가 분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성인의 체세포에서 핵을 뽑아내어 핵을 뺀 인간의 난자에 넣어서 만든 배아를 배양하는 것이다. 수정란 배아복제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수정란을 분할시킴으로 동시에 동일형질의 쌍둥이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라면, 체세포 배아복제는 현존하는 인간을 원본으로 한 동일형질의 배아를 만들어 냄으로서 본격적인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체세포배아복제는 2004년 2월 발표된 황우석․민신용 팀에 의하여 성공하게 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 생명윤리의 논쟁을 가열시켰다. 이 실험은 16명의 여성이 기증한 242개의 난자를 탈핵 시키고 체세포의 핵을 이식시켜 배양한 뒤, 30개의 배반포를 얻어 20회 분열시켜서 하나의 배아 줄기세포주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일한 체세포핵이식방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복제양인 돌리가 277개의 배아 가운데 단 하나의 성공 사례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많은 인간배아들이 만들어지고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흔히 배아연구자들을 인간복제를 생식용 개체복제와 치료용 배아복제로 나누어 말한다. 자신들의 인간배아복제는 치료용 배아복제라고 규정한다. 배아줄기세포연구자들은 생식용 복제는 안되지만 치료용 복제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배아 실험을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배아도 자궁에 착상되기만 하면 복제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줄기세포를 위한 인간배아복제연구와 생식용 ‘인간복제’ 연구를 엄격하게 구별되거나 분리시킬 수 없다. 물론 이들의 의도는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를 통하여 환자에게 거부반응이 적은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치료용 복제라 하더라도 배아복제를 공식적으로 허가한다면 인간복제가 시도될 개연성은 매우 커진다. 그래서 체세포복제에는 인간복제의 문제가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로 대두되며, 두 가지 복제기술 모두 생명체인 배아를 만들고 배양하고 파괴하여 치료용 줄기세포를 뽑아내겠다는 의도자체가 도덕적 문제로 비판되는 것이다.
배아복제연구자들은 불치 혹은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줄기세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 배아복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즉, 배아의 생명을 파괴하지 않고서도 인간을 위한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마치 배아줄기세포가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호도하는 연구자들과 언론이 문제이다. 줄기세포에는 배아줄기세포만이 아니라 성체줄기세포도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과학자들이 수십년간 연구해왔으며, 윤리적인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다.
일반세포는 보통 10번 이상 분열하면 분열이 정지되는 데 비하여 줄기세포는 무한정으로 분열하면서 살 수 있다. 초기 분열 단계의 배아에게 줄기세포가 많이 존재한다. 배아의 줄기세포는 모든 세포계로 배양될 수 있는 만능세포이며, 수가 많으며 비교적, 분리 추출하기가 쉽다. 그러나 아직까지 원하는 세포계로 분화되도록 유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성체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 자기재생이 가능하고, 자기유지기능 및 다분화능을 보이는 모든 장기로부터의 줄기세포■■이다. 골수이식이나 조혈모 세포 등의 이식은 바로 이러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이라고 하겠다. 성인의 몸에서 얻어지는 성체줄기세포는 여러 가지 조직에서 추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발견되고 있으며, 또한 성숙한 성인의 조직 세포를 활성화시켜 줄기세포 역할을 하게 할 수도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자기복제능력이 무한하고 모든 장기로 분화되기 때문에 그 기전을 밝혀 이용하면, 모든 난치병의 치료에 신기원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는 기대사항일 뿐, 아직 실험 단계일 뿐이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역시 미지수이다. 배아줄기세포연구는 연구과정에서 무수한 배아의 생명이 파괴되어 진다. 더욱이 아직 시험 단계라서 얼마나 많은 배아들이 희생되어야 할지 모른다. 또한 실제로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도 그 기술을 실용화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배아가 희생되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문제는 병치료를 위하여 배아를 희생시켜도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각 국가는 이를 심각하게 여기며 법률을 정하고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생명윤리위원회’를 두면서 배아연구를 관리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3년에 발의되었던 ‘인간복제금지 및 줄기세포 연구 등에 관한 법률안’이 오랜 진통을 겪으면서 계류되다가 2004년 법률 제7150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로 입법되어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인간복제를 뚜렷이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배아복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오히려 지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제인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연구목적이라면 시험관아기 시술 후 남겨 보관중인 잔여배아나 체세포복제배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서 생명윤리의 확립보다는 생명과학기술의 진흥에 가까운 내용으로 보인다.
2.2 배아연구에 관련한 논쟁과 논점들
배아연구는 국내외 여러 나라에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연구에 찬성하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점에서 논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관련된 최근 논쟁들의 성격을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두드러진 것이 생명윤리상의 논쟁이다. 배아연구는 임상적 이익이 크다고 하더라도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경시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므로 도덕에 위해하다고 보는 입장과 기술에 잠재된 남용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대되는 치료상의 혜택이 크다면 기술연구와 적용이 도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 사이의 윤리․도덕적 논쟁이다.
둘째, 종교 중심의 논쟁으로 생명현상에 대한 일체의 인위적 개입을 금지하는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이다. 배아의 생명을 파괴하는 연구는 범죄라고 보는 ‘생명보호’(Pro-Life)의 입장에서 배아복제에 반대하는 논쟁이다.
셋째, 헌법상의 권리에 관한 논쟁이다. 배아복제를 통한 생식의 자유와 배아복제 연구를 하고자 할 때 연구의 자유의 권리가 이에 대응하는 배아의 권리 및 생명존중의 권리들과 충돌하고 있다고 보며 어느 권리가 더 우선적인 성격인지 이들 사이의 비교를 시도하는 논쟁이다.
넷째, 물질적 진보 내지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생태주의 논쟁이다. 인간중심 사고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보고 생태중심 사고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생명을 파괴하는 배아복제만 아니라 동물 복제, 유전자조작 등 생명공학기술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며, 생태적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전환하자는 근본적인 주장이다.
다섯째, 생명과학이 야기하는 사회적 윤리적 법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률의 적극적 기능을 강조하는 입장과 법률이 이에 개입할 수 없다고 보는 법의 기능을 둘러싼 상반된 입장에서 벌어지는 입법논쟁이다.
여섯째, 여성주의 논쟁으로 주로 남성인 생명과학자, 기술자, 의사들의 남성중심적인 사고와 이익관심 때문에 생명과학과 의료기술이 여성의 관심과 이익, 경험을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여성의 몸을 오․남용하고 도구화하는 문제에 비판을 제기한다.
이러한 논쟁들의 배경에는 서로 다른 견해와 가치관들이 작용하고 있다. 각기 다른 논점을 취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크게 두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즉, 과학기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와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는 가에 의하여 논점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생명과학과 기술에 대한 견해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는 과학이나 기술은 중립적인 것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문제일 뿐, 기술자체의 연구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단 과학자들이 기술을 발명 내지 발견하도록 허용하고 그 기술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선용하도록 상용화 및 제도화하면 된다고 보는 태도이다. 생명공학을 실제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대부분 취하고 있는 태도이며, 한국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며,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생각이다. 이 견해는 대체로 자연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두 번째는 과학이나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 자체에 윤리적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배아복제의 기술이 비윤리적이라고 본다. 이 입장은 흔히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a slippery slope argument)’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마치 경사길에 세워둔 차량을 조금 이동시키기 위하여 잠금 장치를 풀었지만, 한번 풀리게 되면 조금만 이동하려던 기준은 어느새 무의미하게 되어 다시 내려가게 됨으로 결국 계속 바닥으로 미끄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번 허용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배아복제기술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의 기술이 낙태를 만연하게 만들며, 피임약이 성적 방종을 가져왔던 역사적 결과들처럼 생명공학의 기술이 분명 복제를 야기할 것이기에 반대한다.
세 번째는 생명공학의 연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과학주의자와 과학만능론자들이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진보와 구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적 과학자들과 반기독교적인 철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복제인간을 시도하고 있는 라에리언 같은 집단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극단적인 유물론자들인 이들의 수는 소수이지만 실제적인 사건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안락사, 동성애, 낙태 같은 문제에 대하여 대다수가 반대를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야기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부의 사람들이 복제를 시도할 경우 복제인간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논쟁을 첨예하게 만드는 더 중요한 요인은 배아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차이이다. 즉, 인간배아를 언제부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배아의 지위에 관해서 크게 3가지의 관점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배아가 완전한 인간(a human being with potentiality)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생명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에 배아는 이미 완전한 인간존재이다. 그러므로 배아연구에 원천적으로 반대한다.
둘째는 배아를 단순한 세포 덩어리(bunch of cells)로 보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분만에 의해서 인간으로 인정되며, 출생 후 자체 생존 가능한 경우에만 인간이라고 본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하여, 유전자조작한 배아를 만들어 인류의 진화를 꾀하며, 혹은 유물론자의 영생을 위하여 배아연구를 진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입장이다.
셋째는 잠재적 인간(a potential human being)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자궁에 착상이 되어야 인간으로 인정하는 견해, 척수를 이루기 시작하는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나는 14일 이후에 인간으로 인정하는 견해, 혹은 심박동의 개시, 뇌파작동 개시 등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시점을 적용한다. 그 특정한 시점의 이전은 배아가 세포의 덩어리이기에 실험이나 연구가 허용된다고 본다.
배아복제연구에 가장 반대하는 입장은 기독교를 비롯한 전통적 종교인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중립적으로 보는가, 아니면 가치함의적인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소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배아를 완전한 인간으로 보고 또 과학기술이 가치함의적이라고 보는 입장이 가장 배아복제연구에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배아를 세포덩어리로 보고 과학기술이 인류 미래의 구원자라고 보는 유물론적 과학주의자가 아마 가장 강하게 찬성을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을 양극에 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은 그 중간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은 절충적인 관점이라고 보인다. 즉, 과학기술은 중립적인 것이며 배아는 명백하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어떤 기간 동안은 실험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조건부 배아복제연구를 허용하는 것이다. 한국의 생명공학자들은 대체로 이 의견이다. 우리 법률도 이를 채택하고 있다.
조건부 배아복제연구를 강행하려는 논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실용주의적인 관점이다. 인공수정시에 여분으로 이미 만들어져 냉동 보관중인 잔여배아들을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다. 어차피 폐기될 운명인 냉동배아들을 공익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잔여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낸 박세필박사는 ‘윤리를 쫓을 것인가 실용을 택할 것인가’의 물음에서 배아복제와 인간복제를 구별할 것을 주장하고 냉동보관중인 잔여배아들을 폐기처분하는 것보다는 이용하고 공공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였다. 수정 후 14일까지는 척수가 되는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이므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실용주의적인 관점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정 후 14일 이내의 배아는 정말 세포덩어리에 불과한 것인가? 수정란이 만들어진 후 어떠한 외부의 관여 없이 세포분열을 거듭하여 연속적인 성장을 하여 태아가 되고 탄생하여 어린이가 되고 자라서 성인이 된다는 점에서 본다면 14일 이후라야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과학자들이 대다수 여기에 동조한다고 해서 14일 이전의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4일 이전의 배아가 세포덩어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척수로 규정된다고 하는 발생학적 유물론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배아의 발생적 외현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생명의 연속성을 고려한다면 어떤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인간과 비인간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험대상인 배아를 인간의 자궁 내에 착상시킨다면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이 배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배아실험은 난치병 치료에 정말 도움이 되는가? 배아실험은 배아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누군가의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 병의 치료와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난치병의 치료는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배아복제연구자들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택하자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심각한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이들이 ‘치료적 복제’를 운운하는 것은 의도적인 용어 혼란처럼 보인다. 실제 연구대상이 되는 인간배아의 입장에서는 치료 아니라 파괴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적 복제’가 될 수 없다. 말 못하는 생명들을 희생하는 연구를 하는 것은 바로 그 연구의 대상자들에게 유익을 가져올 수 있을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배아연구를 하는 것은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나 다른 목적을 위하여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연구대상인 배아 자체를 위한 것일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장애인을 연구한다고 할 때 그 연구의 수혜대상이나 목적이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면 허용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것도 역시 연구 대상이 되는 장애인의 생명을 파괴한다면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비장애인을 위하여 장애인의 생명을 파괴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되는 것이다.
배아실험이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허용되어야 한다는 경제주의적인 논점이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하여 인간의 생명을 희생해도 좋다는 것인가?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가치관이다. 경제적인 이득을 위하여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는 패륜아들이 설치는 시대라고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인간배아를 희생해도 된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살인면허를 허가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국가는 경제가 아니라 생명을 더 중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배아실험을 허용하는 것은 인간을 세포덩어리로 보는 유물론적 사고를 사회에 더 만연하게 만들게 하여 결국에는 국가의 기본 토대인 가치관과 윤리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또 하나 자주 듣게되는 논점은 배아복제연구를 다른 나라들은 허용하고 있으므로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것은 국내 과학의 발목을 잡아 후진국에 머무르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안해도 어차피 다른 나라들은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지 않으면 BT후진국이 되어 많은 비용을 주고 기술을 사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개발하여 기술을 통한 로열티를 받는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의 지도적 인물들이 주로 펴는 논리이며, 이 논점에서 생명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익을 저해하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연구를 우리나라처럼 허용적으로 다루는 나라는 없다. 기독교문명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배아복제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기독교는 생명의 창조를 하나님의 영역으로 생각하기에 인간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신다고 생각하여왔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하는 존엄한 영역이라고 본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을 조작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노릇’(playing God)하려는 월권이라고 생각하고 생명윤리를 보호하는 법규를 만들고 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통제를 하고 있다.
이 논점에 대하여 독일의 철학자 로베르트 스패만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할 것이라는 널리 퍼져 있는 타락한 주장은 모든 도덕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자연에서도 인간은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죽여야 하며 죽여도 되는 것인가?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우리는 책임이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공학자의 행위에 대하여 함께 책임이 있다. 생명공학자들이 하는 일이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윤리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실제로 행하는 행위의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한해 신생아가 60만이 태어나지만 낙태는 200만 건이 행해지는 사회이다. 수십년간 행해져온 일상적인 낙태의 허용이 가져온 생명경시의 가치관이 배아의 실험에 더 둔감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왜 우리가 인간배아복제나 실험을 막을 힘이 없는가? 이는 눈에 보이는 인간인 태아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낙태시키는 사회에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인 배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부시 대통령이 생명공학계에서 이미 배아를 파괴해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해놓은 60여 가지 배아 줄기세포주의 연구에 대해서만 연방기금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은 연구윤리에 대한 법적, 윤리적, 과학적 검토를 수용하여 내린 결론이라고 하겠다. 이는 지금까지 연구되어 만들어진 전세계의 60여개의 배아줄기세포주는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더 이상의 배아를 파괴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기금을 지원하지 않고 허용하지도 않겠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3. 한국인의 생명의식의 현주소
이인영과 김미숙은 일반국민과 생명과학자들의 생명의식을 비교 연구하였다. 생명과학자들은 전국대학의 생물학과 유전공학, 생물공학 등의 교원, 526명을 조사대상으로 하고, 일반국민은 1020명을 16개 도시를 대상으로 남자 46.6%, 여성 53.4%, 연령대별로 전국인구 대비한 비율을 맞추어서 표본을 추출하여 실시된 신뢰도가 높은 연구이다. 조사 대상은 종교가 없는 경우가 38.6%이며, 불교 27.6%, 기독교 26.1%, 천주교 6.6%로 구성되었다.
일반인의 경우 조사대상자의 83.9%가 자궁에 착상하기 이전의 수정란부터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수정란에서 생명이 시작된다고 보지 않는 사람은 12.1%이었다. 이는 종교에 관계없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생명관은 수정란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 없이 체세포핵이식 복제기술을 이용하여 수정란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90.5%가 동의하지 않았으며 동의한다고 하는 의견은 6.8%에 불과하였다. 수정란을 불임부부를 위하여 파는 것은 62.1%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34.2%는 동의하였다. 실험 연구를 위하여 매매하는 것은 76.6%가 동의하지 않았다. 20.8%가 동의하였다. 연구를 위하여 수정란을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가 48.2%,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48.3%로 비슷하다. 실험 연구를 위하여 수정란을 매매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더라도 연구를 위하여 사용을 할 수는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95.3%가 반대하였으며, 동의는 3.3%로 나타났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부모가 원하는 아이를 출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가 81.9%, 동의한다는 16.2%였다. 복제인간보다 맞춤아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적은 수이기는 하나 한국 사회 속에 인간복제를 원하거나 유전자조작 맞춤아기를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람의 수정란을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가 비슷하게 나타났는데 연령별로 나누어 보자면 40대가 57.4%로 가장 긍정적으로 높고 50대가 54.5%이다. 10대가 67.3%로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60대 51.4%, 70대가 84.2%의 동의를 보여 연령이 높아질수록 동의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줄기세포를 통한 질병의 치료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종교별로 보자면 기독교인은 동의하지 않음이 49.6%, 동의함이 46.6%, 천주교는 52.2%가 동의함, 40.3%가 동의하지 않음으로 나타났다. 불교는 48.6%가 동의하였고, 동의하지 않음이 47.1%이다. 종교에 따라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하여 종교별로 차이를 가질 만큼 각 종교에서 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남자의 경우 동의가 51.1% 여자는 45.8%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좀 더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생명과학자들을 조사대상으로 하였을 때에는 수정란이 인간 생명의 시작인지에 대한 질문에 50.3%가 동의하였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없이 체세포 복제기술로 수정란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83.7%가 부정적이었다. 불임부부를 위하여 매매하는 것 역시 79.1%가 동의하지 않으며, 연구를 위해서도 79.9%가 동의하지 않는다로 나타났다. 연구목적으로 수정란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는 54.4%가 동의하였고, 동의하지 않는다가 45.6%이다. 복제인간에 대해서는 98.3%가 동의하지 않으며, 맞춤아이 출산에도 90.0%가 부정적인 반응을 했다.
일반국민과 생명과학자간의 인식 차이가 가장 큰 부분은 수정란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수정란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응답이 일반국민은 83.9%인데, 생명과학자들은 50.3%이다. 연구목적으로 수정란의 사용에도 일반국민은 48.2%가 동의한데 비하여, 생명과학자들은 54.4%가 동의하여, 일반국민의 경우 보다 높게 나타났다. 수정란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일반국민들 중에는 필요한 경우 연구목적으로 수정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상반된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생명과학자들 중에도 수정란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수정란을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정란 매매에 대해서도 생명과학자들은 목적이 연구이든 불임부부를 위한 것이든 응답률은 비슷하였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연구를 위해서는 동의하지 않음이 높으나 불임부부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일반국민의 정서는 불임부부의 경우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 비율이 생명과학자들의 경우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
입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규정’에서 인간복제행위에 대하여 금지규정을 둔 것은 95.9%가 동의하였다. 체세포핵치환 복제배아를 통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제한적 허가규정의 경우 43.6%가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는다가 52.3%이었다. 잔여배아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제한적 허가규정의 경우 43.6%이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는다가 56.4%로 우세하였다. 동물의 난자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제한적 허가규정에 대해서도 57.6%가 동의하지 않았다. 수정란의 매매금지조항에는 82.0%가 동의했다.
일반적으로 한국민은 인간복제에는 부정적이지만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수정란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배아줄기세포연구는 폐기될 운명인 냉동잉여배아들을 사용하는 경우에 상당히 허용적이었다. 일반 국민들은 수정란이 인간 생명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연구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수정란이 인간생명의 출발이라고 보는 비율과 실험을 허용해야한다는 비율 사이에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대체로 일관성 있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국민들은 83%가 수정란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보면서도 연구를 위해 허용하는 것에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일반 국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인은 동의하지 않음이 49.6%, 동의함이 46.6%,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수정란을 생명의 출발로 볼 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조작이나 도구화를 거부해야 할 것 같은 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생각과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고 있음은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윤리적인 사고가 확립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4. 기독교교육의 과제
4.1 기독교생명윤리의 확립과 교육의 필요성
생명윤리는 197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분야이지만 현재 윤리학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학문적 논의의 중심에 있을 뿐 아니라 첨예한 현실 문제가 되고 있다. 낙태, 안락사, 유전자 조작, 시험관아기, 맞춤 아기, 장기이식과 뇌사, 이종간 복제, 배아복제, 복제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윤리의 문제는 생명공학이 발달함과 함께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판단은 기존의 일상적인 가치판단의 방법으로는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고 있다.
기독교생명윤리는 성경이 구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문제에 유일무이하고 정확무오한 지침을 제공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물론 오늘날의 상황과 성경이 기록된 당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보조학문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준칙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쫓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왜곡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인영․김미숙의 연구에서도 드러났듯이 기독교인들의 관점이 다른 일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독특한 생명윤리가 확립되지 않았거나 확립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기존의 기독교윤리학이 자유주의 신학에서 발달한 영역이라서 기독교윤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논문이나 책들도 상대적으로 복음주의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교회 내적인 차원에서 시급하게 기독교생명윤리의 확립과 교육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첫째,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생명윤리의 확립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굳이 배아복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낙태, 자살, 안락사, 장기이식, 장애인, 노인문제 등 생명의 여정에서 노정되는 모든 문제들을 포괄하여 다루고 생명의 존귀함을 확고히 견지하는 기독교생명윤리의 확립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기독교생명윤리의 확립은 개교회의 차원에서나 개인 학자가 수행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한 영역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신학자, 윤리학자, 법학자, 교육학자, 과학자 등 여러 관련되는 영역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교회 전체 연합의 차원에서 전문적인 연구기구가 설치되고 지원되어야 한다. 마치 창조과학회나 기독교학문연구소 처럼 전문적인 연구를 담당하고 축적될 수 있는 조직과 체계가 구비되고 문제에 대한 다학문적인 심도 있는 접근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합의되고 만들어지는 기독교생명윤리는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확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 확립된 생명윤리를 기독교인들에게 교육하기 위해서는 생명윤리교육을 담당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전반적인 생명윤리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의 개발, 그리고 이를 각 교회와 학교로 지원해줄 행정 및 조직을 갖춘 교육의 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교회나 단위 학교 차원에서 이러한 생명윤리의 문제를 다룰 길이 없기 때문에 연합적인 대응이 시급히 필요하다. 가톨릭은 전체 교황청의 차원에서, 한국의 주교회의의 차원에서, 또한 대학의 차원에서 일관성있고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데 비하여 기독교는 이러한 중심기구가 거의 없다. 현재로는 창조과학회와 누가회 같은 전문인 단체에서 이를 한 분야로 다루고 있으나 신학적 지원이나 교단 교육적 기구가 없기에 기독교 전체에의 파급효과는 크지 않다.
셋째, 기독교의 관점에서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성체줄기세포의 연구는 지원해야 한다. 바른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하여 우수한 연구인력들을 키우고 지원하는 일을 기독교대학들이 중심이 되어 행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학자의 윤리영역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생명과학자들에게 기독교윤리적 관점을 확립하고 확신시킬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서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대한 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누가회가 자체적으로 행하는 의료윤리교육의 체계처럼 생명공학에 있어서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연구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연구자들을 격려해야 할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으로 정부나 과학자들이 규정하거나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 사회의 경제지상주의와 영적 대결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맘몬의 영을 대적하여 한국교회와 한국교인이 자유로워져야만 한국 사회의 맘몬의 영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천하보다도 더 귀한 생명의 가치를 훼손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 재앙을 불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간배아복제를 막기 위해서는 입양문화와 장기기증문화 등 생명문화를 기독교적으로 확산시켜 가는 것이 필요하다. 낙태를 막기 위한 입양운동, 잔여배아를 실험재료를 쓰는 것을 막기 위한 배아입양운동들이 범교회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같다. 모든 교인의 가정이 ‘한 자녀 더 키우기’ 운동을 벌인다면 낙태나 잔여배아의 문제는 어쩌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섯째, 교인전체를 대상으로 세계관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사고의 영역에서 지성의 영역에서 후퇴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복음의 퇴보를 가져온다. 사고의 영역에서 기독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구원을 받아도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인 기능을 해 낼 수 없는 무력한 기독교인이 되게 만든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사고와 지성을 배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롬 12:2). 또한 세상의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오히려 책망을 해야 한다(엡5:11).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드러나고 나타날 것이므로(엡5:13),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사회의 어그러진 문화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책망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배양해야 할 것이다.
4.2 사회 여론 형성을 위한 기독교생명윤리 교육운동
19세기 중반 세속화가 급물살을 탈 당시 가장 강력한 사상적 배경은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두 가지가 모두 생명에 대한 견해를 바꾸고 인간관을 바꿈으로 20세기 인류 문명의 성격을 바꾸어 놓게 만들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최고의 위치에 서기로 하여 유물론과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지난 한 세기동안 인류문명은 이러한 세속화의 보급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없으며, 인간의 생명은 오직 물질적인 것에 불과하고, 내세는 없으며, 이 세상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실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지성의 세속화에서 귀결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던 인간이 원시 물질에서 진화한 털없는 원숭이가 되자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현저하게 줄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 사이에 질적인 차이란 없으며, 오직 양적인 차이에 불과하다는 생각들은 유물론적 심리학의 등장으로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행동주의 등의 심리학적 이론들은 교육의 방법이나 교육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동물과 인간을 같이 본다는 것은 동물을 복제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다면 인간을 복제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당연히 인간도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쩌면 20세기 후반의 생명윤리의 대혼란은 자극과 반응의 동물적인 인간이해의 귀결일지도 모른다. 이미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은 자연이 행하는 진화의 과정을 인간이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행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고 드러내어 놓고 강변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생명과학기술의 영역에 대하여 도덕적 판단의 비중이 삭감된 것은 생명은 인간이 감히 손을 댈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전통적인 생명관념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오늘날 생명공학학자들은 생명을 존엄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로 유기체적 개념보다는 생명은 에너지와 정보의 결합이라는 물질적이고 공학적 생명개념을 취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배아복제는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성경이 우리의 형식원리이기에 성경적인 가치관에서 본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설득해 나가는 데에는 기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내적으로 기독교윤리를 확립한다고 하면 그것을 한국사회전체에 대하여 파급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논증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다. 사회나 문화 전체가 비복음적인 가치관이 확산된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서서 교회안의 우리의 자녀들마저 세상으로 잃어버릴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표준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대로 지켜야 하고 또 사회에 전해져야 하는 진리이다.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라는 이유는 빛을 비추라는 명령인 것이다. 질그릇 같은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귀한 보배를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외쳐야 했던 선지자들처럼 말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생명복제가 왜 안되는 지를 외치고 그들의 도전을 받고 다시 대답하고 계속 진리를 말하며 진리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생명공학의 시대, 복제인간의 등장을 앞 둔 시대에 기독교회는 어떻게 사회와 시대의 방향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무엇보다 우선 우리 사회의 생명윤리의 문제에 심도있는 분석과 제안을 하고 전문적인 비판을 하고 전문가로서 방안을 강구할 수 있는 전략적인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이 기구는 기독교적 생명윤리를 확산하고 교육 보급할 뿐 아니라 생명윤리에 저촉하는 생명공학이나 과학의 영역에 대한 감시활동을 하며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대처하는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종간 핵치환 배아의 문제를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유전자 조작 아기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만약 복제된 인간이 태어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현재 전 세계는 인간 존엄성 훼손을 막기 위하여 배아복제를 법으로 관리하고 자궁내 착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복제된 배아를 자궁내에 착상하는 행위는 분명히 범죄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착상을 계획하고 실제 착상한 사람들은 벌을 줄 수 있겠지만, 복제에 의하여 탄생한 인간의 경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사회적, 윤리적, 법적 문제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식적인 의견을 발표하는 기관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기독교 시민운동의 단체들이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어야 한다. 전략적인 전문가연구집단들이 내린 결론을 실제로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압력단체로서 시민운동단체가 있어야 한다.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기능을 하게 되는 시대에 기독교도 교회이외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민단체 NGO를 구성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현재에도 활동하는 기독교 시민단체들은 주로 봉사활동에 치중하고 있는 형편이다. 봉사를 담당하는 단체도 필요하지만 의학, 공학, 생명과학, 법률, 교육, 윤리 등 각각 학문적인 영역에 대하여 비윤리적인 사회적 흐름에 대하여 항의발언, 항의서한전달, 항의집회 인터넷 활동 등 시민행동이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행동하고 대응해 갈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국내에서 입법활동에 영향력을 미치고, 법 집행의 감독 및 개정안의 발의, 헌법소원 등 국내법상의 대응을 할 뿐 더러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제적인 차원의 배아생명의 법적권리 보호 단체를 결성하고 세계적인 연대로서 활동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생명공학연구나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은 국가내부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규모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압력단체로 기능하고 대응해야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의 연합과 네트워크는 오늘날 인터넷의 시대에는 어렵지 않게 구축되고 서로 연계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전자조작을 한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없으며, 형질전환 동물과 식물을 일상 대하면서 살고 있다. 생명과학과 공학의 덕택으로 우리는 풍요로운 물질문명과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생명 자체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 무심하게 방관하고 온 결과 이렇게 흘러온 것이다. 현재 생명과학은 엄청난 자금과 임상실험을 위한 첨단 시설, 다수의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첨단산업이 되었고, 첨예한 정치적 논쟁점이 되고 있다. 생명과학 기술의 위험성과 유용성을 둘러싼 논쟁은 다양하고 매우 첨예해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여러 분야가 함께 얽혀있어서 일상적인 감각으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사이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생명윤리는 급속도로 급격하게 타락하고 있다. 생명에 관련된 범죄들이 도처에서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엽기적인 연쇄 살인, 가족 살해, 청부살인, 자살 등 생명경시풍조는 너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윤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생명경시 풍조가 다만 배아복제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생명경시풍조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환언하자면, 인간배아복제연구의 허용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배아복제가 현실화되면 윤리사회적 문제는 지금까지 있었던 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며, 그 사회적 비용은 우리가 능히 치르지 못할 만큼 큰 것이 될 것이다. 과학자 역시 인간사회의 일원으로서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과학이라고 해서 사회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의 진보결과를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아복제문제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투철한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전가의 보도처럼 계속 휘두른다면 과학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인간배아복제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고 개인을 해악에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선 혹은 유용성을 위하여 개인의 권리가 가공의 공공의 이익의 이름으로 손상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박상은의 말처럼 21세기는 예측 불가능한 시대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의 전쟁이 계속될 것이며, 유신론과 무신론, 창조론과 진화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기독교와 세속주의, 성경과 과학주의, 사이의 대립이 격심해질 것은 예견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관의 전쟁이며 신앙의 전쟁이다. 인간복제와 유전자 조작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며, 윤리적 문제라기 보다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생명윤리는 기독교인의 책임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로 이 땅의 파수꾼을 삼으신다.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파수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겔 33:6-7).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명윤리를 세우고 보존하고 가르칠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더 늦지 않게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월을 아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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