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8편 1-2 강해


나의 손을 들자/시28:1-2


다윗은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게 됩니다. 그는 목숨을 담보로 한 전쟁터에 나가서 피 흘리는 전쟁을 겪기도 하고 또한 자기가 나은 자식으로부터 쫓겨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그는 이러한 인생의 위기 속에서 자기 자신이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시편 40편 말씀을 보면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또 시편 41편 말씀에 재앙의 날에, 혹은 병상에 있을 때 기도한 사람 역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기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와 함께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다윗은 시골에 묻혀서 양을 치는 양치기에 불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명장으로, 영웅으로, 성웅으로, 성군으로 만들었던 것은 오직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시편을 읽으면서 시편의 감동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뭉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가 문학을 했습니까? 시를 연구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영감에 넘치는 말씀을 고백할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을 울리고 움직이는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오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붙들려 역사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다윗이 찾아갔던 성소를 우리도 찾아가고 다윗이 들었던 그 손을 우리도 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소원들이 주님으로부터 응답 받기를 원합니다.

1. 다윗의 기도장소를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기도의 장소가 특별하게 정해진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광야에서, 성전에서, 길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장소를 초월해서 기도했고 또 필요할 때마다 기도했던 예수님은 기도는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드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집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때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성전의 목적이 기도하는 집에 있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열왕기상 8 : 29절 말씀에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솔로몬은 생각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그리고 주의 눈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심령을 살피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여기서 무릎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특별히 기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별한 집이라는 것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의 거실, 안방, 침실이 기도의 장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성스러운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이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보다는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보다는 백 이십 명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뜨거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백 이십 명보다는 천 이백 명이, 천 이백 명보다는 만 이천 명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 역사, 그 은혜,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더욱더 크게 임할 것은 사실입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던 솔로몬, 성소에 찾아가서 기도했던 다윗, 우리는 그 발자취를 더듬어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전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야 될 줄 믿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만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 기도의 방법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는가?
1)손을 들고 기도 했습니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그랬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모세가 전쟁터에서 손을 들고 기도함으로 패전의 위기에서 승리의 개가를 올리게 된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이미 다윗도 그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그 소식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손을 드는 자를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역사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되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겠습니까? 실제적으로 나의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손을 드는 것입니다. 영적인 손을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1)세상에 대한 포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한번 깊이 만났으면, 체험해 봤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 정욕들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내가 한번 하나님께 깊이 빠져 보았으면, 그런 마음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세상 정욕들이 그 모든 일들을 방해하고 있음을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합니다. 입술로는 회개를 하고, 고백을 하고, 용서를 빌고 있지만 마음은 그것이 아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로는 \'나는 죽고 주님만 살기를 원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일편단심 주님만 뜨겁게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지만 이 고백이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버리고 내 심령 속에서 터져나오는 고백이 되지 못하고 내 가슴이 뜨겁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내 가슴은 아직도 답답하고 멍든 그 상태, 이러한 심령 상태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대해 포기하고 빈 손들고 하나님 앞에 손을 들어야 할 내 자신이 아직도 세상 것을 붙들고 거기에 연연하고 깊이 빠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잠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지 못하고 하나님의 큰사랑 속에 내 자신을 묻히지 못하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 정욕에서 우리 성도들이 분연히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세상 정욕이 나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정말로 모든 것을 놓고 주님을 향해서 빈손 들고 주님을 붙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아니면 죽을 듯이, 그것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줄 알고 붙들고 있는 욕심들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그것을 놓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 수 있는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 적인 모든 것들을 놓고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들 수 있는 성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말씀하실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기도는 영적인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을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를 방해하는 많은 사탄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문을 닫지 않고서는 주님을 온전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유혹들을 차단하고 진정 주님 앞에 마음을 꿇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야 될 줄 믿습니다.

(2)하나님께 붙들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어떤 종교 의식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호흡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젖줄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 앞에 반드시 붙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기도 속에 파묻혀야 합니다. 기도는 분명 염불과는 다릅니다. 간절한 기도가 있는가 하면 형식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할지라도 실패적인 기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에서 기도를 했음에도 실패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신분에 따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초라한 세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신분이 아니라도, 장로의 신분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진실로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 기도를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붙들려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자가 등장합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통 하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기 병을 고쳐보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쓸 만큼 쓰고 용하다는 의사는 만날 만큼 만나봅니다. 그렇지만 자기 병을 고쳐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절망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기의 손을 댔습니다. 접촉을 했습니다. 접붙임 했습니다. 그때 예수의 능력이 이 여인에게 그대로 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여자가 예수님을 붙들었다고 봅니까?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붙드신 것입니다. 그 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혈루병으로 고통받는 여인에게 그대로 있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린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손에 붙들릴 때에 주님의 능력, 은사, 축복, 지혜, 모든 것들이 나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주님께서 이 여인을 붙들었습니까? 주님이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왜 유독 이 여인을 붙들어야 했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여자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믿음의 손을 드는 것입니다. 믿음의 손을 드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그 손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들어 주시고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3)항복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사이에서 대단히 갈등한 사람입니다. 롬 7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법과 죄악의 법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자기 속에 두 자아가 서로 갈등하고 대적하고 충돌하고 계속해서 싸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나약함, 한계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두 자아의 갈등 속에서 몸부림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 두 자아가 계속 싸웁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이 충돌하고 갈등할 때에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복이건만 이렇게 살기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내 주장과 내 의지를 접고 하나님의 의지대로 내 자신을 복종시킨다고 하는 것이 축복이건만 이대로 살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오늘 기도를 잘못 이해하고 기도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저 기도를 하루아침에 일확천금 하는 방망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를 몇억 짜리 복권을 사들고 그것을 당첨되게 하는 어떤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내 연약한 몸, 연약한 지식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옵소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그 길을 알려 주옵소서. 기도를 통해서 그것을 찾았으면 그대로 내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기도행위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도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고 손익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하고 자기 임의로 손익계산을 하면서 자기 임의로 결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려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실패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았을 때에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눈을 감고 주님만 보여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만 들어야 됩니다. 주님의 길만 걸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붙들었으면 주님의 뜻에 내 자신을 완전히 순종시키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손을 드는 것입니다. 즉 내 뜻 포기하고 내 의지 포기하고 주님 뜻에 복종합니다. 믿습니까? 이런 기도가 성도들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4) 일하는 손을 들어야겠습니다. 기도를 놀고먹는 편리한 방편쯤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가만히 누워서 돈벼락이 맞겠지, 이것은 기도에 대한 무서운 오해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군살이 박힌 손을 들 수 있어야 됩니다. 일하는 손을 하나님 앞에 펴야 됩니다. 주님,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런 주님의 칭찬과 음성을 성도들이 들어야 됩니다. 주님의 것을 땅 속에 묻어 놓고 일하지 아니하고 빈손 주님 앞에 내밀 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열매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 어리석은 것입니다. 또한 가꾸지 아니하고 흉년이라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이 역시 신앙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이 돼야지 기도가 만능이라는 허울좋은 이름 앞에 내 두 손을 꽁꽁 묶어놓고 하늘에서 돈벼락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기도자가 되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일하는 손을 높이 들고 모세가 기도했던 것처럼, 다윗이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말씀에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다윗은 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라고 하는 것은 간구하는 기도,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는 마음을 집중시켜야 됩니다. 일심정력을 쏟아 부어야 됩니다. 울부짖어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눈물이 콧물이 되도록 하나님을 부여잡고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이런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는 어떤 방법이나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의 맛을 성도들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살아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하늘 문을 열리게 하는 기도입니다.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 생명 있는 기도입니다. 성령이 역사 하는 기도인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앞으로 32일이면 호렙산 축복 40일 새벽기도회를 열어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40일 새벽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였습니다. 그 120명 중에는 울부짖어 기도한 사람, 뜨겁게 기도한 사람, 간절히 기도한 사람, 가슴을 두드리면서 기도한 사람, 어떠한 목적을 두고 기도한 사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저 막연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울고불고 뜨겁게 기도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120명은 다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바로 영적인 분위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도 영적인 분위기에 포함되어 지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성도들을 초청하여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민족이 사는 길인데, 내 가정이 사는 길인데, 교회가 부흥되는 길인데, 미래가 보장되는 길인데 이것을 뒤로 물리고 마다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모아서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꿇고 손을 들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축복의 현장, 기적의 현장으로 만들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앞으로 32일! 40일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이 역사를 만들어 내고 정말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은혜를 받는 놀라운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손을 들어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능력을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함께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