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생명으로 회복하라/시36:7-9 메사추세츠 주의 어느 교회에서 부활주일 아침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한 다음에 에그 쉘을 나누어주면서, 너희들에게 15분을 줄 테니까 교회 밖에 나가서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담아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을 넣어 가지고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한 아이가 에그 쉘을 열고는 꽃을 보여주면서 아름답고 예쁜 꽃이 생명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가 에그 쉘을 엽니다. 거기에는 나비가 들어있는 겁니다. 이 나비가 생명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아이가 와서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사귀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네 번째 아이 차례가 됐어요. 이 아이는 필립인데 정서 장애자입니다. 필립이 앞에 나오니까 학생들이 조용하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필립이 뭘 가져 왔을까?\" 이 필립이 앞에 나오더니 주저주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위로해 주려고 \"필립아, 필립아 괜찮아. 뭐 가지고 왔니? 한 번 열어봐.\" 그러니까 필립이 에그 쉘을 엽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순간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필립은 아무 것도 못 가지고 왔어.\" 그 때에 필립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조용히 해,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 순간 교실 안에 정적이 흐릅니다. 계속해서 필립이 말합니다. \"선생님,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그 분은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저는 이 에그 쉘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담아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하고 신비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금은보석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귀영화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기 좋고 물 좋은 샌프란시스코에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이 아름답고 귀한 생명은 세상에 퍼져 있고, 이 신비로운 생명이 온 세상을 감싸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러한 생명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이야기할 때에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부활이 주는 두 가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나는 우리도 장차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첫 열매라는 말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지요. 우리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너머에는 우리가 체험해 보지 못했던 영원한 세계,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천국에서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활이 주는 다른 하나의 의미는 이 땅에서도 하늘의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호흡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살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로 알고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쉬워하면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생명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아십니까? 생명의 근원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지 아십니까? 생명은 땅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생명이 진정한 생명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정말로 중요하고, 그것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들은 땅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햇빛도 그렇고 공기도 그렇고 비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은 인간이 제 아무리 능력 있다고 해도 만들지 못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최첨단 기술이 있어도, 산업혁명이 다시 한번 일어나서 세계가 깜짝 놀란다고 해도 흉내를 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진정한 생명을 만드는 일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생명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2년 전에 제가 이사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Back Yard가 있는 거예요. 그 뜰을 놀릴 수가 없어서 과일 모종을 사다가 심었어요. 토마토 10그루, 딸기 10그루. 5월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좀 늦었다 싶었지만, 열매가 열리면 감사하고 잎만 무성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어요. 열매가 주렁주렁 맺었어요. 아이들도 좋아하고 저도 심심하면 따먹고..., 꽤 재미를 봤어요. 그래 그 재미에 지난해에는 아예 때를 맞추어서 더 많이 사다가 심었습니다. 그런데요 어찌된 일인지 이 녀석들이 자라야 하는데 만날 그대로 있는 거예요. 자랄 생각을 안 해요. 아침 저녁으로 시시때때로 물주면서 문안 인사를 드리는데도 반응이 없는 거예요. 매가리가 없이 힘이 쭉 빠져 있어요. 그러더니 점차적으로 줄어들어요. 잎사귀가 떨어져요. 결국은 토마토 다섯 그루가 죽었어요. 나머지도 죽으려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토양이 시원찮아서요? 거름이 없어서요? 아니에요. 지난해에 심은 그 자리에 심었거든요. 햇빛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도 경험하셨지만 지난해에 비가 얼마나 많이 왔습니까? 지난해 이맘때에 크로니컬에서 보도한 것을 보니까 3월 달에는 시애틀보다도 샌프란시스코가 더 많이 왔더라구요. 3월 한달 동안에 25일 비가 왔잖아요. 102년 만인지, 104년 만인지 기록이라고 하잖아요. 허구한날 비가 오니까 햇빛을 받을 날이 있어야지요. 햇빛을 받지 못하니까 토마토나 딸기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생명은 땅에서 얻는 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은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공급받는 생명이 없으면 땅에서 공급받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것이 딸기나 토마토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땅에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가 해당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도 뭐라고 말합니까? 따라서 합시다.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아멘. 생명의 원천이 누구에게 있어요? 주께 있어요.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공급해주시니까 우리가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공기를 공급해 주시니까 우리가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햇빛을 공급해 주시니까 우리가 사는 거예요.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학위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영어를 잘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미국에 살기 때문이 아니에요.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유능하고 권세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생명을 공급해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산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살고 계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때문에 살고 있다고 고백하세요? 물론 제가 이렇게 사는 것은 부모님이 낳아주신 생명 때문도 있지요. 의사가 불어 넣어준 생명 때문도 있지요. 제가 의학적으로 죽을 사람이었는데 수술을 통해서 살아났으니 의사의 역할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이 넣어주신 생명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넣어주셨기 때문에 목회도 하고, 하나님이 생명을 넣어주셨기 때문에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키우셨기 때문에 이해가 되실 겁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생명을 넣어 주어서 애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랐나요? 부모가 걷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걷게 되었나요? 오른 발부터 나가고 왼발은 나중에 나가라고 가르쳐 주어서 잘 걸어다니나요? 아닙니다. 부모는 단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 밖에는 없는데, 아이들이 자란 거예요. 아이들이 걸어 다니는 거예요. 뛰어 다니는 거예요. 신기하지 않아요? 에이 목사님, 아이가 자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의학적으로 당연한 것 아니에요? 뭘 그렇게까지 접근하십니까 하실 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셔서 자라게 하셨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고, 하나님이 생명을 주셔서 걷게 하셨기 때문에 걷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생명을 주셔서 뛰게 하셨기 때문에 뛰는 거예요. 여러분, 생명의 원천은 주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찬양 곡에 \"생명 주께 있네 능력 주께 있네 소망 주께 있네\" 그래서 생명이 주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의학적으로 보아도 주께 있고 과학적으로 보아도 주께 있는 것이고, 신앙적으로 보아도 주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이러한 생명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저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간에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니까 7천년전의 식물 뿌리에서 싹이 나왔답니다. 지난 2월말에 우리 나라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적을 발굴하다가 지름이 2cm 정도 되는 식물의 뿌리를 발견했는데, 연구팀에서 보존을 위해서 증류수에 담아 놓았는데 2-3센치의 싹이 났다는 거예요. 7천년전의 식물인데..., 그것도 지하 4m 정도 되는 깊은 곳에 있었는데 싹이 났어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유가 뭘까요?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이 식물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의 삶은 회복됩니다.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갖기만 하면, 이 부활의 생명을 믿기만 하면, 이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기만 하면 모든 것들이 회복됩니다. 죽었던 것 같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나의 심령 속에 들어오면 내 삶은 회복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회복시키십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저런 이유로 삶이 힘드신 분이 계세요. 신앙생활의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삶을 사는 분들이 계세요? 믿음의 열정이 식어져가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분이 있으세요?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기도를 해도 입술만 움직이고 찬양을 해도 뜨거움이 없는 분들이 있으세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분이 있으세요?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면 됩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즉시 부활의 생명이 나에게 그대로 들어옵니다. 부활의 생명이 나를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믿음이 회복되고 열정이 회복됩니다. 예배가 회복됩니다. 가정이 회복됩니다. 대인관계가 회복됩니다. 사업이 회복됩니다. 이민사회가 회복됩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인하여 기가 막히게 놀라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불일듯 막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낙심했습니다. 그 중에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8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엠마오로 향해서 갑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십니다.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묻지요? \"두 분들이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말들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글로바라는 사람이 침통한 얼굴을 하고는 대답합니다. \"예루살렘에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을 왜 혼자만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묻지요. \"무슨 일입니까?\" 여러분, 제자들이 얼마나 낙심했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을 하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듯 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대도 여전히 죽은 지 사흘이나 되었습니다. 몇몇 여자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빈 무덤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럴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제자들의 낙심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겼고 다시 살아나셔서 영광을 받으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부활하신 주님이 낙심해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들의 신앙이 단번에 회복되었다는 겁니다. 낙심했던 제자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제자들은 부활의 생명으로 자신의 신앙을 회복하고, 즉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니까 낙심해서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가 고기를 잡습니다. 얼마나 낙담했으면, 얼마나 실망했으면, 얼마나 좌절했으면, 그래도 명세기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많은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던 베드로인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겠습니까? 그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셔서 부활의 생명을 전해주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너무 많이 잡아서 그물을 끌어올리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시지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물으시면서 부활의 생명을 주십니다. 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부활의 생명으로 신앙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물을 내려놓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과 함께 위대한 두 기둥이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Lion King 이라는 영화를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동물의 세계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무파사(Mufasa)가 왕으로 정치를 잘해서 여러 동물 가족들이 평온하게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인 스카(Scar)가 정권에 눈이 어두워서 형을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려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스카(Scar)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대지가 메말라서 죽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힘들어합니다. 후에 심바(Simba)가 장성하여 삼촌이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심바는 정권을 잡은 삼촌과 싸워서 아버지가 가졌던 왕위에 다시 복귀하여 King이 됩니다. 심바가 왕의 자리에 오르자 비가 오고 메말랐던 대지가 단번에 푸르게 됩니다. 화면 이쪽에서 저쪽까지 단번에 푸르른 초원을 이루게 됩니다. 새들이 날고 동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처럼 모든 것들이 회복이 된 겁니다. 여러분, Lion King은 애니메이션 영화이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이 가능했지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었든 단번에 회복됩니다. 라이온 킹의 영화 장면보다도 더 빨리 더 신속하게 더 정확하게 더 신실하게 회복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체험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서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가정 생활하는 사람은 가정이 행복할 것이고,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승리할 것이고,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에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을 공급해 주시기 위하여 무덤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면 나의 신앙과 삶은 저절로 회복되어 구원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더욱 빛날 것이고, 그러한 삶을 사는 여러분을 통하여 세상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말씀하신 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면서, 그 부활의 생명이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날마다 순간마다 충만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생명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생명의 근원과 생명의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부활의 능력인 생명을 경험하게 하시고, 생명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삶과 세상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