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38편 강해


침묵의 무기를 통한 영적 승리/시38:1-22


두 가지의 슬픈 소식이 우리의 기도를 더욱 필요로 합니다. 첫째는 우리 조국이 정치적으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좌우파의 대립으로까지 비쳐지기도 합니다. 둘째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테러 사건으로 200여명이 죽은 일입니다. 더욱 기도하는 일을 통하여 주님의 위로와 테러가 없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두 일을 통하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내용이 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끄러운 시위 후에 결국은 침묵하며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이제 세상에서 침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침묵은 입을 다무는 것만 아닙니다. 침묵은 잘못된 것에 대하여 권력에 짓눌려 가만히 있는 그런 비겁함도 아닙니다. 침묵은 무지해서 하는 그러한 무지의 산물도 아닙니다. 침묵은 단지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적극적인 믿음 생활의 표현인 것입니다.

유럽에는 수없이 많은 수도원과 수양관이 있는데, 교단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공통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과 이 모인 수도원에서 침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번잡하기로 소문이 난 미국 뉴욕 시나 서울과 같은 대 도시의 교회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이 침묵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데, 현대인들은 이 시간을 통해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다시 찾고 있습니다. 지난 9,11 테러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침묵의 힘을 빌어서 하나님께 더욱 간구하게 되었고, 이 침묵을 통하여 악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관통력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수도사요 묵상가이자 문학가인 토마스 머톤이란 사람이 가입하였던 씨토회 소속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평생 침묵할 것을 서원하며, 말을 하는 것을 금기시할 정도로 침묵의 엄격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침묵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해야 하며 자기 죄에 대하여 침묵하여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 생활에 간섭하시도록 사람인 나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첫째로, 기도의 침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잘못한 것이 없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사방으로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동방의 의인 욥도 단지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처럼 엄청난 시련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 않았던”(욥 1장 8절)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바 사람에게서 땅을 빼앗겼고 그 종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가축과 종들이 타 죽었고 자식들이 집이 무너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결국 악성 피부병에 걸려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깨닫고 결국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욥 40장 4절 이하)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더합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장 3절)

오늘 본문 말씀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나는 귀먹을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13절 이하) 왜 사람이 침묵하게 됩니까? 아니 왜 사람이 침묵을 해야 합니까? 사람은 무지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을 함으로써 인격이 깎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그러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 안에서 찾은 우리의 생명을 해하려는 사람들이 올무를 놓고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찾고 있습니다. 저들은 괴악한 일을 말합니다. 하루 종일 흉계를 꾸민다, 다윗은 오늘 시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바로 침묵입니다. 원수를 갚고 싶을 때도 있으나, 바로 침묵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대로 눌러 버릴 능력이 있으나, 바로 침묵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외적으로 침묵하나, 불의에 대하여 결코 침묵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전능하신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미래를 전적으로 주님께 내어 맡길 뿐입니다. 우리의 조국과 유럽의 여러 불행한 일들에 대하여 더욱 기도로 먼저 고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침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보다 강하신 분이십니다.

다윗은 한 때 실족할 뻔 하였습니다.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16절) 다윗은 원수들이 자기의 실족할 때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단의 한 특징을 알 수가 있는데, 사단은 평화로운 때에는 온순한 모습으로 함께 하지만, 성도가 실족하기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실족할 때에 여지없이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또 다윗은 이 세상을 보면서 이렇게 한탄합니다.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19절 이하) 그렇습니다. 사람과 만나다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는 선으로 선을 갚는 사람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악으로 선을 갚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참으로 심오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 때문에 어려운 일을 겪은 적이 없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고난도 함께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나오지만, 자기 시련이 닥칠 때에, 주님의 품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는 이 어려운 환난 중에도 주님을 붙잡는가? 그것은 주님이 원수보다 강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집어 삼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장 23절) “여호와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21절 이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나갈 때에, 우리로 연단을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어중이 떠중이로 살아나가지 않도록, 분명한 주의 제자로 살아나가도록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환난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주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강한 손을 드시사, 역사를 인도하시고 주의 백성을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침묵의 기도 가운데 임마누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11절) 어려움에 있던 다윗에게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내가 병에 걸리니, 사랑하는 자들이 다 떠납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던 친구들이 다 떠나고 맙니다. 그들은 상처 보기를 싫어하고 그들의 기억에서 고난 당하는 나를 다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척들도 나 몰라라 합니다. 멀리 서서 죽나 사나 지켜볼 따름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을 의존하고자 하나 다 떠났고, 친척을 의지하고자 하나 다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가 체험한 것은 하나님 한 분만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생활이 편할 때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내 일이 잘 될 때는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이었습니다. 물질이 많을 때는 하찮게 생각하던 하나님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되자, 명예가 필요 없고 내 혈족이 필요 없고 내 물질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시련 후에 성도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임마누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온하다 할 때에 더욱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시련에 빠졌다 하여도,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에, 여러분은 생명의 길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장 13절)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에, 이 영적인 침묵을 통하여 여러분은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침묵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더욱 발견하여 나가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