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과 기독교교육


기독교교육
현대신학과 기독교교육 : 설화신학
2006/12/16 오후 1:12 | 기독교교육 | [HE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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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 론
Ⅱ. 설화신학에 대하여
1. 설화신학이란
2. 설화신학의 신학적 배경
3. 설화신학의 기초
4. 설화신학의 내용
5. 설화신학의 요소
6. 설화신학자들의 이론
7. 설화신학에 대한 평가
Ⅲ. 설화신학이 기독교교육에 주는 통찰
1. 기독교교육을 위한 설화신학의 중요성
2. 교육에 관한 실천적 이해속에서의 설화의 형태
3. 설화신학의 기독교교육적 수용 - 파울러와 그룸을 중심으로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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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바알 셈 토프의 제자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 랍비가 한번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그는 “ 이야기는 그 자체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면서 이 이야기를 하였
다. “나의 할아버지는 몸이 마비가 되었었다. 한번은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그의 선생님인 토프 께서 얼마나 거룩한 사람인지, 또 그가 기도할때에는
춤을 추며 뛰면서 기도하였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나의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
면서 일어섰다. 이야길 하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어떻게 뛰고 춤을 추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의 선생님이 하셨던 것과 같이 보여주어야 했다. 이 순간, 할아버지는
마비가 치료되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인간경험의 애매한 경계를 하나님의 신비한 존재와 연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화신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은 위의 이야기에서의 랍비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자체가 도움이 되도록 말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설화신학의 정의, 배경, 기초, 그리고 설화신학의 내용, 설화신학의 신학자 3명(죤 던, 제임스 맥랜던, 샐리 맥패그)의 이론에 관해 알아보고 아울러 설화신학에 대한 평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화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화신학이 기독교교육에 어떠한 통찰을 주는지 살펴보고, 설화신학의 이론을 수용한 기독교교육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Ⅱ. 설화신학에 대하여

1. 설화신학이란?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야기꾼이다. 모든 부족과 민족은 신화와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들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표현한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역사를 서술하고, 자신의 삶에 관한 증거를 기억하며, 자서전과 전기를 써오고 있지만 인간의 자기이해를 표현한 이야기의 중요성을 신학적 과제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등장했다.
설화 신학운동은 하나님의 내재성이 자리잡도록 하는 한편, 초월성을 개념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열었다. 설화 신학이 전개한 새로운 개념화는 시간적 범주를 넘어서는 곳으로 올려 놓았다. 설화 신학의 진수는 신앙이란 우리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종교적 공동체의 초월적/내재적 이야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와의 결합이라 주장하는 데 있다.
새로운 설화 사상은 이야기들이 어떤 종결이 있다고 느끼게끔 사건들을 배열함으로써 시간 순서대로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일관성있게 통합한다는데 일반 설화와 다른 특징이 있다. 설화 사상가들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즉, ‘이 세상에서 인간의 상황은 어떠한가’ 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이야기로 눈을 돌린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누군가의 삶을 공동체의 이야기 속으로 흡수시키는 일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신학적 성찰의 중심에 있는 종교적 확신을 알기 쉽게 해주고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면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므로 설화는 신학에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

2. 설화신학의 신학적 배경
설화 신학 운동은 70년대에 출현했지만 그 기초는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졌다. 한스 프라이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성경내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이 실제세계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시작하면서 성경내의 설화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시대의 두 신학적 거장인 쉴라이에르 마허와 불트만이 기독교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사건들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주는 의미를 우리 내면에 주는 의미로 축소하였으며 불트만은 성경의 설화 속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신비적인 이야기여서 과학세계에 살고 있는 현대의 신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또 말하길 이 설화는 내적인 진실을 가지고 있어서 신자들이 이기적인 자아의 죽음으로 사랑을 베푸는 삶으로의 부활을 경험한다고 하였다. 설화는 이제 원시적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산물로써 역사적 사실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형태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설화신학은 신학에서의 성경의 기능과 신학 작업의 본질과 관련된 위기로 인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자 스콜라신학은 완전히 붕괴되고 신학의 임무를 계속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게 됐다. 그리하여 몇몇 학자들이 성경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것이다. 많은 교회 성도들의 경우, 기독교 신앙의 언어나 신앙 공동체에의 참여도 이제는 그들의 ‘정체성 설화’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설화 신학은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이 추상적이고 명제적인 형식을 밝히는 전통적 역할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학이 비판적 성찰을 하는 임무에서 신학적 성찰의 원동력인 설화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화 신학자들은 이야기를 교리보다 우선적인 최고의 자리에 두었으며 스탠리 하우어웨스도 “교리는 이야기들의 결론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야기들의 핵심도, 그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야기를 더 잘하도록 우리를 돕는 도구들이다”라고 했다.

3. 설화 신학의 기초
(1) 신정통주의
설화 신학은 신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전의 이해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신정통주의의 계시이해를 받아들였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책은 리처드 니버의 ‘계시의 의미’와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의 처음 두권이 그것이다. 니버는 성경의 대부분이 이야기의 형태로 주어졌다는 사실에 담긴 중요한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한 최초의 사상가들 중 하나가 되었는데 기독교의 근본적 확신의 근원과 배경이 성경의 설화에 의해 결정된 역사적인 틀속에 있다고 했다. 니버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역사에 대한 이중적 이해였다. 내적인 역사는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반면 외적인 역사는 객관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중적 역사이해의 바탕에서 니버는 계시를 정의하길, 모든 다른 사건들의 해석을 위한 기초로서 개인이나 공동체 속에서 기능하고 그럼으로써 개인과 그룹의 정체성 형성의 핵심이 되는 내적 역사의 부분이며 일련의 사건이라고 하였다. 설화 신학자 죠지 스트룹은 니버가 ‘객관적’ 혹은 ‘외부적’ 역사 속에서의 사건들과 개인과 공동체 개개의 역사가 만날 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돌리게 했다고 결론짓고 이 이야기들간의 만남의 상황속에서만 우리는 계시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구조를 찾을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즉 계시 사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반드시 설화라는 수단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칼 바르트가 그의 ‘교회 교의학’의 첫 두권에서 계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은 설화적 관점의 발달 과정에서 니버가 제시한 그림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것의 기초가 된 것은 바르트가 창안한 개념 즉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적 성격 곧 성육화된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이다. 이는 자연히 계시에 대한 그의 이차원적 개념 즉 하나님의 말씀이 가시화된 역사적 사건으로서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 객관적 차원과 또 현재,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차원으로 이어진다. 이 주관적 차원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 가운데서 하나의 실재가 되는지를 묘사한다. 바르트의 저술은 이야기를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도구로서 사용하도록 개념적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설화 신학자들은 계시의 사건을 개인의 사적인 역사와 공동체의 역사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묘사하기 위해, 이러한 바르트의 이해와 니버의 이해를 결합시켰다.
(2) 성서 연구의 배경
신학에서의 이러한 기념비적 발전은 성경연구분야에서의 중요한 변화와 병행하여 나타났다. 성경의 본질과 계시에 대한 신학적 질문들이 신학적 위기로 이어졌던 것처럼 성경 연구 역시 20세기가 시작된 이후 계속 일고 있던 역사 비평적 방법과 관련된 점증하는 위기로 인해 혼란스런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방법이 우세해진 결과 주어진 본문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해 무의미하다거나 부정적으로 대답되어지는 경향이 커지고 있었은데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가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속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성경 신학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주도적 인물인 G.E.Wright는 성경 신학의 핵심은 본래 명제적 교리도 아니고 한 인물의 내적 삶과 말씀, 사역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성경 신학을 ‘이야기 낭송’ 또는 역사속에서 하나님이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선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이는 성경은 정적인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책이며 그 중심 인물은 하나님이며 주요 관심사는 그 분이 인간을 구원하고 이 땅에 그 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신 일들을 담은 이야기를 증거하는 것이다라고 함으로써 성경과 역사 이야기의 관계 및 성경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이해를 가져왔다.
이러한 성경 신학 운동은 다른 신정통주의자들이 말했던 역사 이해와 유사한 역사 이해를 받아들였다. 역사의 구성요소는 사건과 해석의 결합이다. 성경에서는 어떤 중요하거나 주목할 만한 일이 발생해도 그것이 계시의 사건이 아니라면 즉 그것이 의미를 갖도록 해석되어야 하는 사건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건이 아니다라고 라이트는 말했다.
역사 비평적 방법의 위기는 새로운 정경비평이라는 방법론을 출현시켰다. 정경비평에서는 성경에서 이야기된 사건의 실제 역사적 사실성 여부는 덜 중요하고 오히려 성경의 문맥안에서 설화라는 장르의 기능에 대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
(3) 설화적 접근- 구조주의
많은 설화 사상가들 사이에는 설화라는 범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일치를 보지 못하고 또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러한 방향과 표현의 다양성 속에 나타난 도전 가운데 하나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실재의 설화적 구조와 연관시키려는 것이었다. 이 사상가들의 기본적인 관심은 이야기의 ‘내용’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보는 것인데, 이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무엇이 표현되는지를 상당히 결정한다고 가정하였다. 그들은 설화의 구조가 인간 경험의 보편적인 내적 형태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주의적 접근에 토대를 놓았던 한스 프라이는 ‘성경설화의 소멸’에서 서구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이야기의 의미를 그 진실성에서 떼어내고 그 결과 이야기를 실재와 분리시킴으로써 현대 비평에 직면하여 성경의 이야기를 구출하려는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의 이야기의 의미를 그 진실성에서 떼어놓으려는 잘못된 시도를 함으로써 각각 별개의 조화될 수 없는 성경신학과 역사비평을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한스 프라이는 이제 연구의 초점은 단일한 이해구조로 바꾸어서 성경 이야기의 역사같은(historylike)성격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곧 성경 설화)는 역사적 진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표현 양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성경 설화의 역사성에 관한 논의를 극복하는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프라이의 구조주의와는 반대로 샐리 맥패그의 관심은 한 구체적인 구조 즉 비유의 구조로 좁혀져 있다. 그녀는 성경 비유의 특별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비유가 보여주는 구조는 인간의 사고 구조와 인간이 인지하고 있는 실재의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 세상에 대한 모든 인간 이해의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르면 성경 설화의 진실성 여부는 실재의 구조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4) 설화에서 의미에 관한 문화적, 언어적 접근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설화신학자들은 문화와 언어가 종교적 경험에서의 의미를 형성한다고 보는 견해를 우세하고 따르고 있다. 인간의 경험은 언어 뒤에 교묘하게 감춰진 문화적 언어의 과정을 거의 알아내지 못한다. 헬렌 켈러의 개인적 증언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그녀는 나면서부터 귀머거리, 맹인이었으며, 그녀의 경험은 혼란속에서 언어를 배우고 그것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녀의 경험이 일반적으로 인간경험에 있어서 사실이라면, 먼저 종교적 경험이 있은 후에 그것을 기술할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언어 그 자체는 문화적 맥락에서 표현되는 것으로, 종교적 경험을 형성하는 데에서 우선하며 그 후에 그 의미를 찾게 된다.
이런 문화의 언어적 관점을 취하는 설화신학자들은 설화를 종교적 의미가 문화적으로 전달된 풍부한 언어의 형태이라고 본다.

4. 설화 신학의 내용
(1) 이야기와 삶
이야기가 삶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가 제2의 설화 신학자들의 특별한 관심사가 되었는데 그들은 구조와 관련된 형식적인 범주가 아니라 성경의 설화를 통하여 표현된 윤리와 그것이 오늘날의 삶에 함축하고 있는 바를 이끌어 내려고 했다. 이들은 특별한 주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성품’과 ‘공동체’같은 개념의 우선성, 윤리학을 위한 설화의 우선성, 신학적 과업에서 윤리의 우선됨 같은 것이다.
제임스 맥렌던은 초기에 그의 ‘신학으로서의 전기’에서 전기의 주제들이 동일한 신앙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신학에 공헌한다고 하였으나 나중에 설화적 윤리의 정립에 집중하면서 인간의 공동적인 삶을 위해서는 성품 개발이나 미덕의 발달이 중요함을 강조했고 그러한 인격 형성을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기독교 윤리학은 설화적 윤리학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스탠리 하우어웨스는 이야기들이 인간 행동의 양식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개인이 종교적 확신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설화속에서 발견했다. 그에게서 윤리학의 핵심질문은 ‘선한 행동의 구성요소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선한 사람의 구성요소는 무엇인가’이므로 자연히 ‘선한 사람’이란 설화적 공동체와 관련이 된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임무는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충실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즉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기에 충분한 덕을 갖춘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설화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공동체는 설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성경과 신앙 공동체는 상호 연관을 맺고 있으며 성경은 신앙공동체에 의존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의존한다고 했다.
이러한 설화 신학자들은 도덕적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을 바라보는데 이는 성경이 그들의 공동체적, 개인적 삶의 지속적인 안내자인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도록 그들을 돕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2) 설화적 조직 신학
역사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하나님의 이야기)와 설화의 관련성은 설화 사상가들의 마지막 그룹들의 관심사였다. 이들은 설화의 범주를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를 진술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설화 신학자들은 설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는데 동의하지만 체계적인 신학정립에 설화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며 다만 건설적인 신학작업의 다리나 서론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설화 신학’은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지 스트룹, 가브리엘 팩커, 클락 피녹은 설화가 인간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설화의 범주는 신학적 작업의 서론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전기와 자서전
설화적 글에 사용된 전기는 일반적으로 개인적 정체성의 설화와 기독교 공동체의 설화 사이의 ‘충돌’로부터 나온 것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인생 이야기에 대한 연구는 설화 사상가들이 신학적 과업을 인식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야기는 인간의 상황은 물론 인간의 삶의 목적과 기원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그 차원을 넘어서 종교적 전기나 자서전은 개인적 공동체적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이야기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설화 신학의 목표는 교회의 설화들 속에 구현된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 사회적 존재를 새로이 해석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5. 설화 신학의 요소(형태) : 인생 이야기, 공동체 이야기 그리고 정경이야기
(1) 인생이야기와 개인의 정체성 발달
인생이야기는 한 개인의 분리된 삶의 이야기,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주고 도덕적 방향성을 제공해 주는 이야기를 말한다. 설화신학은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성격과 행동을 형성하기 위해 정경적이야기와 공동체이야기를 가지고 인생이야기를 어떻게 합치시키는 가에 초점을 주고 있다.
정체성 발달은 설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필수적인 형태라는 면에서 설화와 관련된다. 스트룹에 따르면 정체성의 발달은 시간속에서의 개인의 영속성 뿐 아니라 한 개인이 어떤 인간이 되어 가는지에 대한 인간됨의 속성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역사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하다. 역사적 차원에서 그것은 기억에 기초를 두는데 기억을 통하여 과거로부터 어떤 사건을 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 전체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기초로사용한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이란 기억이 개인의 역사로부터 되살려내어 미래로 투사하는 유형이다. 또한 개인의 가치관, 이상과 같은 무형적 자료들은 그 개인의 자료로부터 뽑아낼 수 없고 사회적 측면 즉 전통에서 발견되어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은 결코 사적인 존재가 아니라 개인이 소속한 공동체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공동체적인 요소를 가지는 것이다.
(2) 설화와 공동체
기독교 설화 사상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이다. 즉, 성경의 설화들을 그들의 정체성과 세상을 해석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자원으로 여기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사건 특히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부각시켜 성경 설화의 핵심에 둔다.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를 성경 해석의 역사로 받아들인다. 또한 그들은 교회 역사속에서 신앙 공동체가 전체 설화 역사를 당대의 세계와 관련시키려고 했음을 발견한다. 이야기는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들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게 함으로써 자기 비판적이 되게 하는 힘이 있다. 스트룹은 이 경험을 ‘이야기의 충돌’이라고 했는데 이 과정을 통하여 한 개인이 공동체의 설화와 상징으로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재건설함으로써 공동체의 삶의 한부분이 되려 할 때에 신앙이 완성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3) 정경이야기 : 계시와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 설화가 펼쳐지는 그 순간들을 가리킨다. 즉 기독교 설화가 단순히 역사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일이 끝나는 순간, 그 지평이 독자와 청중의 지평과 충돌하는 순간, 이해의 과정이 시작되고 시인과 인정과 고백의 가능성이 있는 순간, 기독교 설화에 대한 인간의 말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순간들을 가리킨다고 한 스트룹의 말은 설화 신학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다. 그는 설화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오히려 그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믿는 배경상황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의 삶속에서 그 기능을 할 때 나타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경은 사사건건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고서도 여전히 진실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권위가 영속적인 규범적 권위를 갖고 있으며 성경은 공동체가 그 신앙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설화와 상징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6. 설화신학자들의 이론
(1) 죤 던(John S. Dunne) - 신화로서의 신학(Theology as Myth)
60년대 초기 이래로, 죤 던은 신화에 중점을 둔 신학의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였다. 그의 신학은 “설화” 또는 “이야기”의 의미를 가진 mytos라는 단어의 원래적인 의미에서 신화적이다. 그의 신학은 문화로써 그리고 개인으로써 “우리가 속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죤 던의 신학은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mythologems의 의미로 또한 신화적이다. 그의 신학은 고대 종교의 신화적, 비유적 표현과 그 후의 문학적 적응을 명백히 표시할 뿐만아니라, 그 신학적 유산의 위대한 모형과 주제를 표현하였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간모험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위기-후퇴-복귀, 또는 어린시절-청년시절-성인시적의 반복적 싸이클로써 그리고 선과 악, 평화와 투쟁, 해방과 고난, 우연과 필연, 순수와 범죄, 삶과 죽음의 끊임없는 갈등으로써 말해진다. 로마 카톨릭주의의 명상적인 전통에서 나온 던의 신학은 인간상호 관계와 영적인 인식의 집중적인 내적 탐구인 일련의 영적인 연습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명상과 헌신이라는 전통적인 훈련을 사용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감(passing over)\"과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되돌아옴(coming back)“이라는 그의 방법을 추구한다. 넘어감이란 다른 문화의 새로운 관점으로, 삶의 다른 방법으로, 심지어 다른 종교에로 바꾸는 것이다. 되돌아옴은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문화에로, 자신의 삶의 방법에로, 자신의 종교에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던의 넘어감과 되돌아옴의 방법은 종교적 다원론과 비밀주의에 대한 현대적 양보도 아니며 인식론적 주관주의와 객관주의를 중재하는 단순한 현대적 혁신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러한 신학의 방법은 신화적 유사자체에서 나온다. 던은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식“과 간디의 ”진리의 실험“과 같은 외견상으로는 다르게 보이는 기술에서 이 방법의 전례를 발견할 뿐만아니라, 넘어감과 돌아옴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종교의 ”대가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모든 참된 제자들의 삶속에서 재실현되는 것을 본다. 던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의 삶과 우리 모두의 삶은 인간이 무엇인가에로 넘어감이요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가 발견하기 위하여 되돌아옴이다. 그 변증법적 움직임은 모든 문화와 종교와 자아의 신화 속에 밝게 보이거나 또는 어두운 그늘로 덮여있다.
(2) 제임스 윌리엄 맥랜던 - 전기로서의 신학(Theology as Biography)
맥런던은 도덕적 향상이나 헌신적 영감을 초월하는 “비범하고 현저한 삶”을 신학적으로 이행한다. 그는 그러한 이야기가 현대상황에 특별히 알맞은 신학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열어줄 것이라고 본다. “전기적 신학”은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핵심에 있는 살아있는 확신에로 신학을 돌려주고 신앙을 다시 일깨워 주는 약속을 한다. 맥런던은 그의 저서 ‘신학으로서의 전기’에서 그 약속을 설명하고 탐구한다. 맥런던은 전기적 신학의 필요성을 발견하는 방법으로서 윤리에 관한 토론과 함께 이 프로그램적 논문을 시작한다. 그가 윤리부터 시작하는 까닭은 모든 사상과 삶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는 문화적 감수성에 있어서 축의 변화가 도덕적 영역에 있어 가장 뚜렷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맥런던은 이러한 도전이 인간문제에 있어서 심사숙고와 명상에 관한 개성의 우위성을 재확인해주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믿는다. 맥런던에게 있어서 개성은 근본적으로 확신의 문제이다. 그러한 확신은 의식적으로 형성되거나 초래되지 아니하고 개인적이고 공동체적 생확 속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개인적이고 공동체적 도덕성은 그 뿌리부터 말라버렸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우리의 다양한 정치적이고, 직업적이고, 사회적이고, 가족적인 도덕적 공동체의 제도적 구조들과 그 회원들을 형성하고 채워줄 살아있는 확신을 재정립해줄 “개성의 윤리”라고 맥런던은 단언한다. 맥런던의 창의력은 이 연구를 하는데 가장 유망한 방법이 전기를 통한 것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전기적 신학의 요점은 신학을 삶의 이야기로 용해시키거나 신학의 현대적 책임을 면제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삶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기독교인과 오늘날의 교회를 위하여 성서메시지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와 건설적 재구성으로 인도하게 된다. 맥런던은 개인의 확신을 알려주고 지니고 있는 중심적 이미지를 탐구함으로써 그의 전기적 주제의 계속되었던 비젼에 도달할 것을 제의한다.
(3) 샐리 맥페그 - 비유로서의 신학(Theology as parable)
샐리 맥페그는 기독교 신학이 오늘날 엄청난 과제에 직면했다고 믿는다. 신학의 과업은 복음서와 현대사회의 이러한 간격(신뢰성과 위용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즉 “복음서가 현대에도 호소력있게 하려는 것이다.” 샐리 맥페그는 ‘비유로 말하기’에서 비유적 신학을 “중간”신학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이 신학이 살아있는 신학의 “첫번째 순서”의 언어와 조직신학의 “두번째 순서”의 언어 사이에 위치하는 것을 가리키는 방법이다. 비유적 신학은 한편으로, 그 자체가 비유는 아니며, 또 다른 편으로 조직신학도 아니다. 오히려 비유적 신학은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비유와 밀접한” 심사숙고의 형태로써 양자를 중재한다. 언어와 지식의 이러한 “변형(deformation)\"은 항상 은유적으로 보고 말하는 형성력이 있는 풍부한 창의력에로의 복귀이다. 샐리 맥패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나 하나님에 관한 모든 언어나 지식은 은유적이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항상 ”한 술어(one term)\"이기 때문이다. 신적인 측면에서도,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지식과 언어는 은유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존재는 “신의 본래적인 처소”이기 때문이다. 샐리 맥페그는 예수의 비유를 “확대된 은유”, 은유적 형태와 내용을 가진 이야기로 보았다. 비유신학자들은 고도로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의 저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믿게되는”과정을 반영한다. 또한 그들의 신학에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관련되어있다. 비유신학의 자원은 무엇인가? 샐리 맥페그의 모형은 확실히 예수의 비유와 생애이다. 샐리 맥페그는 진지한 기독교의 시가와 대중적인 기독교의 운문의 선별적이고 감각적인 해석을 통하여 이 능력을 예시한다. 비유신학은 자서전으로부터 신학적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성공적인 자서전은 불가피하게 비유적이다. 왜냐하면 자서전은 끝까지 은유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7. 설화신학에 대한 평가
긍정적인 면은 설화 신학이 아직 초기라 완전하게 정립되지는 못했지만 미래를 위한 전망을 제시해 주었고 신학과 윤리학으로 하여금 신자들이 훌륭한 백성으로 성숙하는데 있어 기독교 공동체가 하는 역할을 숙고해 보게 하였으며 설화 신학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바, 회심을 설화들의 충돌의 결과로서 묘사하는 것은 신앙을 갖게 되는 과정의 중요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설화는 모든 신학적 문제나 의견 차이를 해결해 주는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우선 설화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좀더 큰 문화적 설화내에서 하위 설화(소수 민족 이야기등)가 지닌 중요성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설화적 접근 내에서 궁극적인 진리 주장이 어떻게 조화될지,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는 다양한 이야기들 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근거로 어떻게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또 하나님과 세상의 관련성을 개진해야 하며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진리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다양한 종교적인 설화로부터 나타날 수 있느냐는 아직 대답되고 있지 않다.

Ⅲ. 설화신학이 기독교교육에 주는 통찰

1. 기독교교육을 위한 설화신학의 중요성
매킨타이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우리의 현대대중문명은 옛날의 로마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그것을 전통적인 도덕공동체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지와 암흑이 15세기 로마제국을 장악했을 때, 베테딕트 수도원 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로서 등장했고, 그안에서 도덕적인 생활이 유지되었다고 매킨타이어가 말한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질서를 구체화 시켰는데, 그것은 정경화 이야기와 수도자의 인생의 이야기를 통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매킨타이어는 그런 종류의 공동체가 현대사회에서도 그런 형태를 취하면서 생겨날 수 있는지 의문점을 제시하였다. 현대의 기독교 공동체가 그런 도덕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는 아직 의문점이다. 몇몇 학자들이 그리스도인 전승과 개인적인 생활에서 가치들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고 그것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방법을 추구 하고 있다. 설화신학도 이것에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기독교교육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 수 있다. 우리 기독교교육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전을 창조적인 응전 자세로 만나보아야 할 것이다.

2. 교육에 관한 실천적 이해속에서의 설화의 형태
(1)기독교교육안에서의 전기적 설화의 사용
제임스 맥랜던이 말하기를 전기를 어떤 신학으로서 가르치는 것은 독특하게 중요한데 이런 영감을 주는 사람들의 생활은 살아서나 죽어서 우리의 이성과 확신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호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맥랜던은 확신이란 것을 정의하기를 고집 센 믿음이라고 정의하는데, 그것은 공동체나 사람의 성격에서 명확성을 부여하여 준다. 확신이란 단지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확신하는 바이다. 맥랜던이 말하기를 사람이 자기가 확신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공동체도 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더욱이 맥랜던은 우리의 현재공동체 안에나 가까이에 때때로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삶은 우리 공동체의 확신을 구체화시키며 사는 사람들이다. 또한 우리 공동체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거기에 새로운 힘을 투자하는 그런 사람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생활은 우리공동체에 있어서 모델로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 각각에게도 모델로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영웅들을 그들의 전기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으로써 우리와 우리의 공동체들은 함께 그들과 연관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실제적인 지식을 얻으며, 그 지식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전통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우리는 전기설화의 도움으로 교육의 프락시스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2)우리의 영웅들의 삶에 관한 모방보다 행동으로서의 교육
이런 전기적 접근을 이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공동체와 개인의 이야기라는 문맥안에서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재행동하는 데 있어서 선생-학생간의 관계로 우리를 연관시킬 것이다. 오히려 원본을 재행동하고, 재시사하며 현대적인 형태로 그것의 본질들을 일깨움으로서 재해석, 재시사한다. 우리의 영웅들의 삶을 아주 성공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경이야기와 우리자신의삶과 공동체 이야기들의 관계들의 내부의연결고리를 찾아야만 한다. 마틴 루터 킹의 영웅적 행동을 재행동한다는 것은 다른맥락의 프락시스안에서 재행동하는방법과 응용하는방법들을 알게 될 때에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물론 설화신학이 우리의 종교적인 전통을 생활과 공동체 이야기에서 실제적인 면에서 적용하는 과정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줄순 없지만 기독교교육에서 도움이 되는 방향들을 설정해 줄수는 있다.
(3)설화신학, 임상 심리 그리고 기독교교육
Clinical Psychology 라는 것은 여기서 전문적인 인성상담의 과정을 의미하는데,여기서는 프로이드 나 융의 이론에 기초한 정신적인 치료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Clinical Psychology 와 기독교교육은 그 두 가지가 정경화와 인생이야기가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주는데 함께 관여하는 방식에 있어서 동일한 설화적인 문제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제임스가 말하기를 상담환자들은 이야기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치료자의 역할은 환자를 치료해주는 것인데 그것은 그의 아주 개인적인 인생의 이야기를 심리학적의 보다 큰 형태로 정렬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심리학에서 선택된 정경이 무엇이던 간에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권위적인 이야기의 빛 안에서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환자의 인생을 바꿀만한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기독교교육 과정에 적용이 될 때 이것은 전통적인 기독교 이야기를 현대공동체와 사람의 인생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주된 논점은 전통적인 이야기를 우리 자신의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자양분으로서 섭취하는 우리의 능력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인생이야기에 대한 우리자신의 재해석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을 형성해준다. 또한 우리자신 너머에 있는 내면의 인간을 찾으려고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는 보다 큰 이야기에 우리의 인생의 이야기가 속해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일으키게 되며 그 의문을 통해 정경의 이야기나 공동체의 이야기가 이미 형성된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형성해준다. 기독교교육이 다양한 층을 이루고 있는 서로 짜여진 이야기들의 의미를 해석하도록 요구되는 때는 심리치료에서와 같은 맥락이다. 이야기를 해석한다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필요로 하며 어떻게 이야기가 함께 모여서 플롯(plot)의 형태를 이루고, 시간의 연속선상 안에서 인물들의 상호작용을 이루는지를 알아야 한다. 플롯의 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필수적인데 그것은 플롯이 기본적인 틀을 제공해주면 그 안에서 인물들이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4)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의 해석속에서 플롯의 역할
기독교교육의 목적은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우리 모두의 인격이 보다 큰 기독교적인 플롯안에 있기 때문에 플롯이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가 들어서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문학안에서 발견하거나 우리의 생활에서 발견하는 플롯들은 우리의 비젼을 만들어준다. 어떤 플롯들은 우리를 구원해주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우리를 저주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안에 존재하는 플롯을 항상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끔 플롯들을 창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꾸기도 한다. 기독교교육자들은 어떤 종류들의 플롯을 우리의 이야기에 부여하는가?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대부분은 우리의 인생의 이야기를 어떤 특정한 플롯의 형태로 바꾸고 그 이야기들의 보다 큰 공동체이야기와 정경의 이야기와 함께 연관시키려고 추구한다. 종교교육가들이 성서의 이야기를 코믹한 형태로 재해석 했을 때, 금세기 초에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아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덕적인 원리로서 급진적인 환경면에서 이해하고 배워져야 할것으로 규정지었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해석이 전적으로 옳은것도 아니지만 전적으로 틀린것도 아니다. 자유적인 희극적인 해석의 장점이 무엇이건 간에, 대부분의 현대의 기독교교육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동의하고 있다. 현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은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요소들을 우리의 공동생활에 보여주었고, 공동생활은 진보적인 정신을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1990년대를 거쳐서 모호성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다음세기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 기독교교육가들은 되돌아보아야 한다 세속적이고도 종교적인 이야기들사이에서의 관계들을. 아마도 이 관계에 대한 가장 도피적인 접근은 정경화 이야기를 희극적인 형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인데, 그 학생들은 문화적인 설화(비극적인 플롯)의 맥락에서 살고 있다. 이야기묘사와 플롯에 초점을 둔 설화신학은 우리를 도와서 우리를 성경의 이야기가 단색적으로 희극적인 방식으로 읽혀질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플롯의 형태에 아주 민감한 설화신학은 우리를 이끌어 우리의 이야기에대한 이해가 아주 풍요롭게 꽉차 있는 긴장속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우리를 자극하여서 기독교교육가로서 내부적인 정경화 이야기나 공동체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인 형태의 이야기에서의 연결의 고리들을 발견하게 한다. 우리의 정경화 이야기가 우리가 권위로서 전통으로서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남아있는 한은 정경의 이야기들은 점차적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전통적인 권위의 급속한 쇠퇴는 대부분의 사고가 민감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 공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0여년전에 틸리히가 말해준 것이 있는데 인간들이 그들 자신의 법칙으로 살려고 추구하는 한은 또는 그들 자신의 이성적인 법칙이나 경험의 법칙으로 살려고 추구하는 한은 인간의 창조력은 그렇게 길게 번창하지 않는다. 틸리히가 말하길 차라리 창조적인 표현들은 인간의 법칙이 하나님의 법과 잘 조화될 때에 나타난다고 하며 그렇게 해서 그들자신의 영적인 깊이와함께 연합할 때 나타난다. 설화신학의 용어로 번역해보자면 창조적인 표현은 인생과 공동체 이야기가 정경화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어서 그들 자신의 영적인 심도와 함게 연합할 때에 잘 나타난다. 즉 기독교교육에서 있어서 창조적인 표현이 나타나는 것보다 어느 것이 기독교 교육과 더 연관이 되어 있겠는가?
(5)정경화 이야기를 현대교육의 맥락에서 이해하기
어떻게 설화적인 접근이 교육적인 맥락에서의 구속이란 주제를 이해를 증진시킬수 있는지 마이클 루트에 따르면 구속은 인간존재의 두 가지 양상을 새로이 시작하는데, 죄와 부패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구속과 자유로 인한 거기에서의 탈출,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사건들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설화의 충분한 조건을 추정해낸다. 존재의 두가지 형태와 둘 사이에서의 변천을 만들어 내는 사건이다. 구속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진행과정인데 사람은 한단계에서 또다른 존재의 단계로 변화해간다. 이 성경적인 설화는 이 문제와 해결, 긴장과 해결이라는 구조속에서 펼쳐져 나가는데, 인간의죄와 타락이라는 긴장관계는 연속적인 이후의 사건들로 계속 연결지어 진다. 이 사건은 영웅적인 인물,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 구속이 이와 같은 부차적인 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설화는 단순히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구조적이라고 루트가 말한다.
구속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진술될 수 있지만 구속이라는 것이 짧게 나타나기 보다는 길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의 정수를 우리가 정지된 사진에서 새의 비행하는 모습을 포착해내듯이 뽑아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경화 이야기의 핵심은 배워지거나 구조를 통해서 전수되는 원칙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믿는 자의 자신의 인생의 이야기속으로 조합되어야 하는 이야기이며, 또한오랜시간에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이제 기독교교육에 대한 설화신학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교육이 구속의 정경이야기를 인생의 이야기로 함께 조합해 나갈수 있는가? 루트에게 있어서 이러한 해답은 정경화 이야기를 증가된 형식속에서 다시 말하고 다시 살아나가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음이 형성되기 전에는 복음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해주는 것을 통해서 전수되었다. 그 형태는 특별한 이해의 해석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 이런 형태는 원래 이야기의 완전성을 보존해 왔다. 그런데 이야기들은 새로운 설화자나 작가의 인생의 내부의 이야기안에서 잘 맞도록 다시 확대되기도 하였다. 사실 ‘확대하다’라는 술어는 보다 크게 한다, 팽창시킨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복음서의 저자들의 각각은 원래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그 자신들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신자들이 특별한 공동체 속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보는 관점으로 원래의 이야기를 보존,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설화 해석의 과제는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한 단위의 이야기 안에 두 결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예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 이야기 안의 한 결과와 현재 기독교인의 삶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 안에 다른 결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예수의 이야기 속의 사건들과 우리 삶의 이야기 속의 사건들 가운데 상호 관계점들을 설명한다.
(6) 설화신학, 기독교교육, 그리고 하나님의 ‘타자’에 관한 신비성
기독교교육은 모든 세계속에서 우리의 삶을 위한 기독교 비젼과 관계되어야 하는 반면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타자”를 무시한다면 사회학이나 심리학과 다르게 가르쳐질수 없다. 세상에서 살아있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면서 세계를 초월하시는 신비스러운 하나님에 관해 어떤 깨달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설화신학은 하나님의 초월적“타자성”의 깨달음을 전달하도록 돕는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존재에 관한 깨달음은 인간의 개념으로는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기독교교육가들은 하나님의 타자성에 관한 깨달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좋은 소설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소설들은 종종 하나님의 신성한 차원을 남겨줄 수 있다.
(7) 구체적 교육방법으로서의 설화 사용
설화적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사람 및 사건과 연결짓게 해주고자 하는 자신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들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의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게 해주고자 하는 시도이다. 여기서 설화란 인간 소통의 중요한 양식이고, 문화의 담지자이며, 동시에 비평자이다. 이 방법이 중요한 교육의 방법이 되는 것은 다음의 몇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 상상이 교육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둘째, 설화는 상상의 중요한 출처가 된다는 점이다. 셋째, 설화는 인간의 의식과 사회비판의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넷째, 이야기는 직접 의사소통할 수 없는 진리를 전해줄 간접적 의사소통의 한 형식이다. 이런 이유로 설화를 통한 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설화신학은 종교의식의 다변화 되어있는 표면을 회복시키도록 기독교교육을 돕고 배고픈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양식을 만족시키도록 제공하는 신앙의 더 문헌적이고 시적인 표현들을 통하여 기독교교육을 돕는다. 설화신학의 역할을 중요시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제공할 수 있는 지도력과 교육과정을 개발해야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전통적인 기독교 메시지와 인생이야기들 사이에서 상호연결점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르침의 형태로써의 설화적 접근을 포함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맥락안에서 오늘날의 경험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설화적 접근은 기독교교육이 직면한 주요한 문제들의 어떤 면에 도움을 주며 응답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아마도 가장 중대한 문제는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린 기독교 공동체에 있다. 교육에 관한 프락시스 이해는 정경적이고 개인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의 상호작용을 지지하는 공동체의 삶속에서의 사회적 정황을 포함한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 공동체가 그것의 영적 자각을 잃어버렸다면 교육적인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없다는 중대한 진리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영적 깨달음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교육은 죽어가는 공동체에 관한 설화의 회중적 연구와 공동체의 개인 구성원들에 가까이에 있는 죽음의 과정의 충격을 가지고 시작될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특별히 더 문헌적 설화 접근의 태도를 줄수 있는 교육적 프로그램들을 이끌 수 있는 지식, 재능, 흥미를 가진 교사들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을 갖춘 교사는 기술적인 탐구를 가진 지도자로써 그들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 문헌적 훈련을 가졌다기보다는 순례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지고 영적인 순례을 위한 안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잭시무어는 교사를 “순례의 안내자”로써 우리에게 제시한다. 학습자를 위한 안내로써 교사의 기능은 의미를 향하여 순례하는 것이다. 교사가 그 방법에 관한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인 반면 순례를 이미 완성한 사람으로써 앞에 서있거나 손짓하기보다는 학습자와 함께 순례한다. 교사는 학습자와 함께 상호의 여행에서 참여하고 소위말하는 모델로써 행동한다. 토마스 그룸은 교사를 “학습자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플롯의 배열은 공통의 목적지를 향해 같은 길을 순례하기 위해 교사와 학습자로써 함께 하도록 우리를 부른다.

3. 설화신학의 기독교교육적 수용 - J. Fowler와 T. Groome을 중심으로

설화신학은 기독교교육의 Source로 사용되거나 Resource로써 사용되어지지는 않는다. 설화신학과 기독교교육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상호관계하고 있으며 각자가 특정한 영역을 인정하면서 각 분야의 통합을 이루어내고 있는 듯다. 여기에서는 설화신학의 공헌점을 받아들인 파울러와 그룸의 이론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J. Fowler의 “신앙발달론”
파울러는 미국의 남부 출신으로서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감리교 계통의 신학대학인 드루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하바드 대학교 신학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감리교에서 안수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Interpreter\'s Housr\'라는 출판사에서 한동안 근무하다 하바드 대학교와 보스턴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신앙이론을 발표하였다. 현재는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란타에 있는 애모리대학교의 캔들러신학대학원의 실천신학분야(종교심리학, 종교교육, 인간성장발달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그곳에 있는 신앙발달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활발한 학문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Stage of Faith\' 와 ’Becoming Adult, Becoming Christian\',‘Faith Development and Pastoral Care\', \'Weaving The New Creation\'등이 있다.
파울러는 신앙에 대한 연구를 조직신학적으로 밝히기 보다는 기독교교육학자로서 신앙에 대해서 새롭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신앙을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모든 사람은 다 종교인이라고 하는 교육의 대상을 인간 모두에게 확장시킨 것과 또 신앙의 목적은 믿고( Believing), 의지하고(Trusting), 행하는 것(Doing)인데 바로 기독교교육의 과제는 신앙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서 살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신앙발달단계를 7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 단계마다의 특성에 맞게 가르쳐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은 그의 주요 저서인 ‘Stage of Faith\'에 잘 설명되어있다.
이 책에서 파울러는 Stanley Hauerwas의 “Character, Narrative and Growth in the Town\"의 내용을 인용하여 신앙의 구조 발달이론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신앙의 구조 발달이론이 개인적인 앎과 행함의 이론이 되어야만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개별화된 이론이나 또는 일반화에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것에 의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이미지들이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며, 또한 우리의 이전의 결단들과 행동들로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이론은 우리는 사회적 공동체안에서 형성된다는 것,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들은 우리가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공유된 이미지들과 요소들에 의하여 심원하게 형성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설화신학의 요소중 하나인 인생이야기 : 정체성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설화신학적인 수용은 \'Weaving The New Creation\'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파울러는 이 책에서 실천신학으로서 기독교교육의 학문적 내용을 담고 있다. 파울러는 새로운 기독교교육 패러다임의 교육신학적 구조를 하나님의 프락시스와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 또는 참여로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명’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공교회’로 구성했다. 즉 그는 기독교교육의 과제가 우리 시대의 희망찬 프락시스를 보고 이에 응답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울러는 하나님의 프락시스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전기와 설화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으며 설화신학자 샐리 맥패그와의 대화를 통해 발전하고 팽창하는 우주의 과정내의 하나님의 참여를 묘사함에 있어서 비유적 변형을 위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설화신학은 기독교교육에서 하나님의 프락시스를 이해하기 좋은 방법으로 사용된 듯하다.
(2) 나눔의 프락시스로서의 기독교 종교교육
토마스 그룸은 카톨릭 교육 신학자이다. 그룸은 「기독교적 종교 교육」이라는 책 서문에서 관심없는 학생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기독교 교육자들이 직면한 가장 힘든 작업중의 하나는 과거로 부터 전달된 신앙 내용들을 사람들의 현재의 삶으로 연결해 주는 일이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학습자에게 관심을 일으키고 그 관심과 연결해서 기독교 신앙을 전수 할 뿐아니라 현재의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사회화 이론 자체가 지니는 제한성에 대한 노출로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교육방법이 요구 되었다. 적극적인 대화의 관계속에서 변증법적인 해석학을 교육이론에 도입한 사람이 그룸이다. 그의 이론은 대화적 견지에서 현재를 과거와 연결할 뿐아니라 미래에로의 보다 적극적인 개방을 위한 방법으로 비평적 성찰을 하게 된다. 그의 변증법적 인식론은 하나님의 이야기와 비젼에 의하여 인간을 접근시키고 인간의 이야기들과 비젼의 변증법적인 대화를 통해서 의식의 변형을 시도하는 교육자다. 그는 그의 주 저서 「기독교 종교 교육을 통하여 기독교 교육적이론의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교육 신학적 주제인 나눔의 프락시스를 설득력있게 전개하고 있다.
기독교 종교 교육의 본질 즉 기독교 종교교육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통합되는 그래서 시간 속에 실존하게 하면서도 순례적이고도 정치적인 역사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종교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미 시작되고 또 동시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metanoia를 기독교종교교육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 일과 회개를 통한 회심의 경험은 역사 속에서 신념으로서의 믿는 일, 신뢰로서의 신앙, 행함으로서의 신앙으로 이어져야 하며, 기독교공동체는 바로 이 신앙의 이야기와 비젼을 과감히 나누는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종교교육의 “장”(context)은 어디인가? 기독교종교교육이 일어나는 자리를 사회화로 보는 그룸은 한마디로 사회화에서는 기독교 공동체와 사회․문화적 분위기 혹은 공동체와 멤버들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가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인간의 신앙과 자유를 증진할 수 있는 근거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방법은-그룸은 이것을 나눔의 프락시스라고 부른다- 로더는 변화하는 순간을 엠마오 도상의 대화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그룸도 엠마오 사건에서 나눔의 프락시스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두 젊은이 사이의 대화에서 찾는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만나시고, 대화에 들어가심으로 사람들을 교육하셨으며, 사람들로 자기의 얘기와 비젼을 이야기하도록 초청했으며, 동시에 구원의 큰 story와 vision을 기억하게 하심으로 가르치셨다. 나눔의 프락시스란 기독교종교교육의 본질, 목적, 자리에 응답하는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교육의 story(예수의 사건)와 vision(다시 오심의 약속)안에서 사람들이 자기들의 story와 vision을 발견하고 또 그것의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일이 나눔의 프락시스라고 명명한다.
나눔의 프락시스는 다섯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난다. 첫째는 “현재적 행동”이다. 세계 속의 우리의ㅡ 모든 참여와 관련을 의미하며, 이는 신체적․감정적․지적․영적 생활 모두를 포함한다.- 삶의 현재를 포괄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비판적 성찰”이며 이는 현재를 평가하는 비판적 이성, 과거를 드러내는 비판적 기억이며 동시에 현재에서 미래를 비젼화하는 창조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나눔의 프락시스의 세번째는 “대화”이며 이는 기독교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필수적 요소가 된다. 대화는 story와 vision안에서 개개인의 stories 와 visions들을 함께 나누는 행위이다. 네번째는 “스토리”이다. the story는 성서와 전통을 의미하며 이는 총체적인 신앙의 전통을 뜻한다. 여기에는 삶의 스타일․기록된 성경․경건․상징․의식․성례전․공동체 등을 포함한다. 역사와 공동체를 통하여 이룩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얘기이다.
기독교인들이 역사를 통해서 순례를 행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삶 속에서 행동해 오셨다. 순례자들은 하나님의 행동의 초대에 응답하고자 시도해 왔었다. 이런 순례자들과의 계약관계에서 특별한 역할들,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 삶의 양식들, 기록된 성경들, 해석들, 경견한 관습들, 성례전들, 상징들, 예전들, 축일들, 공동체적 구조들, 성구들, “거룩한 ”장소들 등이 나타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야기의 영역이다, 기독교의 이야기라는 용어는 우리의 신앙전승이 지니는 이러한 모든 표현들을 위한 은유로 의도된다, 이 이야기라는 용어는 우리의 신앙 전승이 지니는 이러한 신앙전통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기독교의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삶을 이끌어내며 그리고 그것을 다시 접근하기 쉬운 것으로 만듦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들을 경험하게 된다
다섯번째는 “비젼”이다. 비젼은 하나님의 나라와 창조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젼을 의미한다. story 와 vision 은 한 하나님 나라의 두 가지 면이다.
바로 이 다섯 가지의 나눔의 프락시스는 또 다시 교육적 프락시스에서 다섯 가지의 움직임을 통하여 실천된다. 현재적 행동은 “주제를 위한 활동을 적도록 초청하며” 비판적 성찰은 그들이 하는 일은 왜 하는지를 성찰하도록 초청하며, 교육자는 story와 vision을 소개하며, 참여자들은 story를 자기의 stories와의 변증법적 관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물으며 동시에 vision을 향하여 자신의 vision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응답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흐름을 통하여 이어진다. 그룸에게 있어서 현재는 기독교 공동체의 이야기와 비젼에 의해 비판 되어지는 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비판하고 또한 이루어져야 할 비젼을 현재적인 빛에서 비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있는 것, 현재의 경험되는 과정, 새로운 미래를 향한 움직임은 역사적인 교육의 실행 과정을 통해 볼때 명백해진다. 곧 과거, 현재, 미래의 상관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현재의 해석학을 행한다는 것은 우리 현재안에 있는 과거 및 미래 모두를 위하여 현재를 바라보고 또한 현재로부터 바라보는 것을 요구한다. 그룸은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를 비평적으로 바라 볼찌라도 우리는 우리 앞의 신앙 이야기와 그 신앙 이야기로 부터 나오는 비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적 상황하에서 현재에서 하나님을 파악하고 해석하려고 할 때, 인간의 과거의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기억 되어져야 하며, 미래의 비젼은 해석의 척도로서 의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젼은 현재에 대한 비판적인 존재로 서 있는 반면에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창조하는 것이고 우리의 현재에 의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서의 이야기와 참여자들의 이야기들 사이에 변증법적 해석의 단계는 개인의 이야기들의 빛에서 이야기를 평가하고 과거의 이야기들의 빛에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비판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위해 기독교 공동체의 이야기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들의 삶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를 수용하도록 한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들은 공동체의 이야기에 응답하므로써 보다 큰 이야기의 전체적인 차원과 공명하게 되고 참여자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대화를 통하여 윤리적 결단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룸은 우리가 예배와 희생제사 속에서 야웨 앞에 우리 자신을 드릴때 우리 자신 및 하나님의 양자 모두에게 하나님의 구원 행위들이 상기되게 해야한다 라고하며,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개입을 회상하고 기억하는 것이며, 이런 구원의 사건의 이야기 경험은 우리 시대의 구원의 경험으로 이뤄질 것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행위)하심에 우리 인간의 응답을 표현하게 함으로 항상 아야기가 현재화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하나님은 그의 삶속에서 역사하시고 역사를 통해 기독교인은 순례의 길을 산다. 하나님의 행동과 초대에 응답해온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경우 여러가지 의례 속에서 삶의 스타일을 부각 시키는데 이러한 신앙 전승의 표현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아야기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와같은 이야기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속적인 사건을 경험하도록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신앙적 그리스도와 역사적 그리스도를 결코 분리 시키지 말아야하며,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고 역사적 현존 안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Ⅳ. 결론
70년대가 시작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접근법으로 등장한 설화신학은 우리가 살펴본대로 여러 가지 기독교교육에 통찰을 준다. 설화는 삶에 진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과 행동에 힘을 발휘하며 인간의 상상과 행위에 대한 설화의 능력은 기억할 수 있고, 움직이는 방법으로, 우리 자신과 사회와 우리의 세상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들의 능력이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의 구성위에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서로서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설화를 통해 삶의 이야기, 정경이야기,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가 하나가 되며 그 속에서 우리의 비젼을 발견하고 모방이 아닌 행동하는 방법과 응용하는 방법을 알게되며 하나님의 초월성을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기독교교육에서는 설화를 통해 영의 양식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교사의 역할 또한 강조하고 있다.
21세기를 바라보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설화신학은 기독교교육에서 도움이 되는 방향 등을 시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