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5:1-5절 강해

메시야의 영광/시45:1-5



혹자는 표제에 나오는 \"소산님\"(shoshannim)이 육현(六絃)으로 된 악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의 원래적 의미는 혼례식에서 아마 다른 꽃들과 같이 뿌려진 백합이나 장미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를 \"샤론의 장미와 골짜기의 백합\"이라고 칭하시는 그리스도께 쉽사리 부합된다(아 2:1).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거룩한 사랑에 관한 \"사랑의 노래\"이다. 그것은 \"매우 사랑받는 자의 노래\"요, 신부의 동무들인 처녀들의 노래이며(14절) 그들이 부르도록 준비된 노래이다. 시온 산 위에서 어린 양을 시중하는 처녀 친구는 \"새 노래를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계 14:3, 4).

Ⅰ. 서문(1절)이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주제의 품위. 그것은 \"좋은 말\"이다. 그런데 시를 짓는 것과 같은 감동적인 예술이 늘 나쁜 소재에 대해 사용되는 것은 유감된 일이다. 이것은 \"왕에 대하여, \" 즉 왕되신 예수와 그의 왕국과 다스림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께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처럼 고귀한 주제가 없고 그토록 풍부하고 열매 많고 유익한 주제는 없고,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주제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일이 우리 담화의 소재로 더 많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관리의 탁월함. 이 노래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관하여 심령의 믿음이 입으로써 하는 고백이다.

(1) 그 소재는 그것이 받을 만한 가치대로 잘 소화되었다. \"내 마음이 그것을 짓고 있도다.\" 이 말은 아마 다윗에게 시편을 불러 주어 쓰게 한 예언의 영, 곧 예언자들 안에 있던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할 것이다(벧전 1:11). 그러나 이것은 그의 경건한 명상과 마음속의 애정에 적용할 만하니, 이는 그러한 것들의 풍부함으로부터 그의 입이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진지하게 또 확고한 생각과 거룩한 사랑의 불길로써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생각하여야 하며, 특히 우리가 그러한 것들에 관해 말하게 될 때에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신적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우리 자신을 뜨겁게 하고 감동시키는 마음으로 말해야 하며,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관한 일들을 결코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 되며, 그릇된 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말해야 할 것을 사전에 잘 저울질해 보아야 한다(전 5:2 참조).

(2) 그것은 잘 표현되었다. \"나는 내가 지은 것을 말하리라.\"

[1] 그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소재를 잘 이해하고, 또 그것에 감동을 받은 자로서 가능한 한 아주 명석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일을 말하겠다.\" 즉 그것은 기계적으로 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궁구한 일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위해 역사하신 것과 아울러 우리 영혼 안에서 역사하신 것도 타인들에게 산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66:16).

[2] 그는 가능한 한 즐겁고 자유로우며 유창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으나, 붓이 손에 의해 쓰여지듯 내 혀도 말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의 인도를 받는다.\" 우리는 선지자들을 성서의 \"필객\"이라고 칭하는데, 실상 그들은 붓에 불과하였다. 가장 교묘한 논객과 가장 달변인 웅변가의 혀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기록하는 데에 사용하는 붓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거스려 신랄한 기사가 씌어진 경우에 그 붓을 가지고 왈가왈부해야 하며, 우리에게 좋도록 기록하는 경우에는 왜 그 붓을 우상화하는 것은 옳겠는가?

다윗은 자기가 그리스도께 대하여 생각하였던 일을 말로 했을 뿐만 아니라 기록도 하였으니 이는 그것이 더 멀리까지 전파되고 더 오래도록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혀는 필객의 붓과 같아서 실언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좋은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혀가 \"필객\"의 붓과 같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Ⅱ. 이 문단에는 주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자로서 제시되고 있다.

1. 그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로서, 이것은 혼인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초인적인 탁월함은 왕되신 신랑의 아름다움으로 묘사되고 있다(2절). \"당신은 아름다우시며, 인생보다 더 아름답소이다.\" 그는 왕에 대하여 말하겠다고 제의하였으나(1절). 곧 자기의 말을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경탄과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은 그에게 가서 그와 같이 고백하기를 좋아한다. 우리도 이처럼 우리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이니, 곧 우리는 그의 아름다움과 우리에게 대한 그의 사랑을 보며, 그것을 즐거워한다고 아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아름다우시며 인생보다 더 아름답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나 모든 신자들의 눈에도 인생들보다 더 귀여우시며 사랑스러우시다. 하나님으로서, 중보자로서의 주 예수의 아름다움은 전반적인 인성의 아름다움을 훨씬 능가하며 인간의 자손들 중 가장 사랑스럽고도 빼어난 자들이 가진 천부의 미보다도 훨씬 우월하다. 그리스도 안에는 그 어떤 생물 곳에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것보다 우리의 사랑을 끌 수 있는 것이 더욱 많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는 다른 자보다 뛰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하계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은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끌어 내가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그 모든 아름다운 것이나 매력 있는 것들보다 얼마나 빼어나신 분이시며, 얼마나 더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신가를 이해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하늘의 큰 총애를 받는 분으로서, \"그는 인생보다 더 아름다우시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어떤 인생에게 해주시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행하셨으며,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모든 자비도 그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입과 손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1) 그는 은혜를 간직하시며, 그것은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시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시리이다.\" 그의 말씀에 의하여, 그의 약속과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에게 알려지며, 하나님의 선하신 사업이 시작되고 우리 안에서 영위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갖 은혜를 받았으며 중보자로서의 사업과 직분에 필요한 모든 천품(天稟)을 부여받으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충만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요 1:16). 은혜는 그 자신의 힘과 격려를 위해 그이 마음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입술 속으로도 쏟아져 들어갔으니, 이는 그가 총괄적으로는 그의 말씀에 의해서 개개 신자에게는 그의 입맞춤으로써 거룩함과 위안하심을 전달하시기 위함이다. 그의 입에 쏟아져 들어간 이 은혜로부터 모든 사람이 경탄해 마지 않는 은혜스런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눅 4:22). 은혜의 복음이 그 입술에 담기워져 있었다. 이는 은혜의 복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선포되기 시작하였고\"우리는 그에게서 그것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갈데아 판은 \"예언의 영이 그의 입술에 담기워 있다\"고 해독하고 있다.

(2) 그는 축복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가지고 계시다. \"당신께서는 인간의 자손들이 사용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신의 은총을 신탁받고 계신 위대한 보관자이시기에 하나님이 당신께 영영히 복을 주셨고 당신을 영원한 축복으로 삼으셨으며 그로써 땅 위의 만국이 당신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곳에는 그의 축복도 함께 해 주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엡 1:3).

3. 그의 모든 대적들에 대한 승리자로서, 신랑된 임금은 전쟁의 용사이다. 그런데 자기 혼인도 그를 전쟁으로부터 면하게 하는 구실이 되지 않는다(율법에 의해 허용이 되어 있는데도, 신 24:5). 오히려 그 결혼식이 그를 전쟁터로 오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칼의 힘에 의하여 그를 배필을 포로 상태에서 구출해 내어, 그녀를 손아귀에 넣고 그녀를 위해 이겨야 하며, 그리고 나서야 그녀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여기서 대하여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그의 전쟁 준비(3절).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 그 말씀의 약속에 의하여, 또 그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은혜로써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기꺼이 복종하게 되며 그의 충성된 신하가 된다. 그리스도께 끝까지 대항하는 자들은 그 말씀의 경고에 의하여, 또 그 위협대로 시행되는 심판에 의하여 때가 이르면 망하고 파멸당할 것이다.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개종하였으나 유대 민족은 복음에 대한 저들의 화해할 수 없는 적의로 인하여 그 예고대로 멸망을 받았고 이교 신앙도 철폐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허리에 찬 검은 \"그의 입에서 나온다\"고 일컬어지는(계 19:15)것과 동일한 칼이다.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도록 보내졌을 때 우리 구속주께서는 자기 칼을 허리에 차셨던 것이다.

(2) 이 거룩한 전쟁에 대한 그의 원정. 그는 위대한 왕이 화려하고도 장려한 위풍을 충분히 갖추고 출정하듯 \"그의 영화와 위엄\"을, 즉 그의 칼과 영화와 위엄을 갖추고 나아간다. 그리스도는 그의 복음 안에서 초월적으로 위대하고도 탁월하게 나타나시며 명예와 위험 천부께서 그에게 입히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풍채나 복음 양자에서 볼 때, 외부적 영광과 위엄은 갖지 않으셨고, 인간들을 매혹시키거나(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므로)위압시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계시지 않으셨다. \"그는 종의 형체를 가지셨던\"(빌 2:7) 것이다. 그는 온전히 영적 영광과 영적 위엄을 지녔다.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에는 너무나 많은 은혜와 그에 따른 영광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에는 매우 큰 공포가 있고 따라서 큰 위엄이 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다 합산하여 \"구속주께서는 복음의 병거를 타고 영화와 위엄으로 나아가신다\"고 말할 수 있다. \"왕은 위엄 있게 타고 승전하소서(4절). 왕은 승전하시고, 타소서\"이 말씀은 그가 \"여호와의 선한 즐거움\"을 따라 형통할 것이며 그가 자기 수난의 보상으로 \"강한 자와 그 뺏은 것을 나누리라\"는 그의 천부의 약속을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형통하라\"고 말씀하시는 자들은 번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사 52:10-12).

또 이것은 영혼들이 그에게로 전향하며, 그에 대적하여 반기를 드는 모든 흑암의 권세가 파멸을 당하는 가운데 그가 융성하도록 기도하는 그의 친구들의 선한 소원을 의미한다. \"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나이다. 계속하여 번영하소서.\"

(3) 그가 종사하고 있는 일의 영화스러운 명분-\"진리와 온유와 공의로 인하여,\" 어떤 의미로 이런 것들은 인간 세상에서 타락되어 상실된 것들이며, 그리스도는 이를 회복하고 구조하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1] 복음 그 자체는 \"진리와 온유와 공의\"이다. 복음은 진리와 공의의 권세로 지휘한다. 기독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들을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온유함과 온순함에 의해 더욱 촉구된다(고전 4:12, 13; 딤후 2:25)

[2] 그리스도는 복음안에서 그의 \"진리와 온유와 공의\"로써 나타나시는데, 이들은 그의 영광과 위엄이며 그는 이들로 인해 융성할 것이다. 인간들은 그가 진실하기 때문에 믿고 의지하게 되며, 그가 온유하기에 그에게서 배우게 되고(마 11:26, 그리스도의 은유하심은 큰 힘에 있다. 고후 10:1), 그가 의로우사 공평으로 통치를 하시기에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게 된다.

[3] 복음은 그것이 인간을 설복하는 한 저들의 심령에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확립시키며, 저들의 잘못은 진리의 빛에 의하여 교정하고 저들의 정열은 온유의 힘으로 제어하며 저들의 마음과 삶은 공의의 율법으로 다스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 중에 자기 나라를 세우심으로써, 타락한 세상에서 그 영화스러운 것들을 복원시켜 주시며, 실수와 악의와 불법으로 말미암아 쫓겨나던 공평하고도 의로운 지배자들의 정당한 이유를 자기 아래에서 주장해 주시려고 오셨던 것이다.

(4) 그의 토벌의 성공, \"왕의 오른 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주는 주의 복음과 협력하여 그것으로 승리하게 만드는 신적 능력의 놀라우심을 체험하실 것이며, 그 결과는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1] 영혼들을 그에게로 개종시키고 환원시키기 위해서 두려운 일들이 행해지게 된다. 마음은 찔림을 받고 양심은 깜짝 놀라게 되어야 하며, 여호와의 공포가 그의 위안을 위해 먼저 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른 손에 의해 행해진다. 위로자(성령)는 계속 머물러 계실 것이다(요 16:8).

[2] 지옥 문과 그 지지자들을 정복하시기 위해서, 또 유대교와 이방 종교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두려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대이로 인해 \"사람들이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눅 21:26) 위대한 자들과 장군들은 \"산과 바위가 자기들에게 떨어져\"달라고 호소할 것이다(계 6:15).

2. 다음 구절은 이 두려운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5절). \"살이 날카로와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는다.\"

첫째, 타고 날 때부터 원수된 자들은 이처럼 부상을 입는데 이는 그들을 진압하여 화해를 얻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확신은 활의 살과 같아서 그들이 집착하는 마음에게 날카로와 사람들이 그의 법과 통치에 복종하여 그리스도 아래에 끊어 엎드리도록 만든다. 이 돌 위에 그렇게 떨어지는 자는 깨어질 것이다(마 21:44).

둘째, 자기들의 반목질시를 고집하는 자들은 이처럼 상처를 입을 것이니, 이는 저희로 파멸을 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두려움의 화살은 날카로와 저희 심장을 관통할 것이며, 그들은 이로써 그의 아래 거꾸러져 그의 발등상이 될 것이다(110:1). 하나님이 자기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끌려나가 그의 앞에서 살해당할 것이며(눅 19:27). 그의 금홀에 복종하고자 하지 않는 자들은 그의 철장으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