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7:1-7절 강해

2004년은 찬양과 감사의 해/시47:1-

인도의 개척 선교사였던 스캇 목사가 하루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미개척 선교지를 향하여 가다가 원주민들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창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었습니다.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든 그는 늘 가지고 다니던 바이올린을 켜면서 원주민들의 언어로 마지막 찬송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스캇 목사님은 잠시 후면 다가 올 죽음을 기다리면서 눈을 감고 찬양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3절이 다 끝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눈을 떠보니 그를 겨누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가와서 찬양을 받으실 그 높으신 이름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여러 해 동안 그들 가운데서 거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고 합니다.

찬양은 기적을 만듭니다.
찬양이 있는 곳에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찬양의 역사입니다.
성경의 큰 역사는 찬양과 함께 엮어졌습니다.
모세는 광야 이스라엘 국가를 위해서 제사장들로 찬양을 담당케 했습니다.
다윗은 성막에서 288명의 레위사람으로 악기들을 동원해서 찬양을 담당케 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성전을 지은 후 레위사람 38,000명 중, 10%가 넘는 4,000명의 레위사람과 120명의 제사장들로 찬양을 하게하였습니다.
성경의 시편과 요한 계시록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할렐루야”라는 단어는 영상2 \\\'할랄\\\'(halal: 찬양하다)과 영상2-1 \\\'제호바\\\'(Yhvh): 여호와) 의 단축형인 \\\'야\\\'(Yah: 여호와)의 합성어 입니다.
그 뜻은 영상2-2“여호와를 찬양하라”라 입니다.
총체적으로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찬양의 도구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찬양할 때, 그 도구들은 100% 활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에게 찬양을 보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영상3 (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이 원초적인 계획은 주님이 피조물들로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축복의 질서였습니다.
그래서 찬양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의 장소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찬양으로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 열린 문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축복을 여는 문입니다.
찬양은 흥얼거리는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전능자를 향한 열린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노래는 잘 하지 못해도 찬양은 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노래는 잘해도 찬양을 못할 수 도 있습니다.
찬양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 입니다.
그래서 낮은자, 약한자, 작은자 만이 찬양을 드릴수 있습니다.
물은 시내 바닥에 자리한, 낮은 조약돌들과 함께 있을 때, 돌돌돌돌 노래가 나옵니다.
물이 조약돌觀壙?멀어 질수록 아름다운 찬양의 멜로디는 사라지게 됩니다.

전세계에 약 8000종의 새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존하는 새로서 가장 큰 것은 북 아프리카산 타조인데, 가장 큰 것은 키가 274에 달하며 체중은 150kg을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타조는 날 수 있는 새가 아닙니다.
날 수 있는 새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아프리카산 기러기인데, 몸무게가 18kg 정도이며, 캘리포니아 독수리 역시 10kg정도의 체중은 갖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새는 콩벌새로서 평균 몸의 길이는 5.7cm인데 절반은 부리와 꼬리의 길이라고 합니다.
체중은 1.6g입니다.

특이한 사실은 노래하는 새들은 모두 덩치가 작은 새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덩치가 작은 새들의 노래소리는 얼마나 아름답게 들리는 지 모릅니다.
독수리가 노래하는 것이라든지, 타조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칠면조의 노래를 들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참새가 짹짹, 종달새가 종달 종달, 버꾸기의 뻐꾹 뻐꾹, 까치의 까치 까치 노래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모든 동물중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인간과 새들 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같이 새들은 몸집이 작고 약할수록 고운 노래를 부릅니다.
독일 힐츠산맥은 카나리아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수십만 마리의 카나리아를 사육하는 조류공원이 있답니다.
카나리아의 합창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 냅니다.
그런데 공원의 주인은 새를 팔 때 합창을 리드하는 솔리스트는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나리아 합창단 속에는 노래를 주도하는 몇 마리의 솔리스트가 있습니다.
이 카나리아가 다른 새들을 자극해 아름다운 화음을 엮어내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도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주도하는 \\\'솔리스트 카나리아\\\'들이 있습니다.

소년시절 자주 찾았던, 동네 야산의 아름다움중 뻬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면,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합창소리는 작은 새들의 노래의 하모니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동산의 즐거움을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만끽 했었습니다.
그 시절, 노오란 색깔의 꾀꼬리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아름다운 찬양의 소리는 큰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찬양은 기뻐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 세익스피어는 \\\"마음이 즐거우면 하루 종일 갈 수 있지만 마음이 슬프면 한 걸음도 못 가 피곤해 진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피곤하고, 슬픈자가 어떻게 노래가 나오며, 더욱이 찬양이 나오겠습니까?
나폴레옹은 인간이 열망하는 모든 명예와 권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건만 센트 헬레나에서 \\\"나는 일생동안 행복한 날이 엿새도 없었노라\\\"고 고백 했습니다.
헬렌캘러는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지만,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워라!”라는 감탄의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기뻐하는 사람들이 찬양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시대가 복잡해 지면서, 점차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의 첨단을 가고 있는 미국인구 100명중 2명 이상이 수면제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런데 찬송이나 노래가 편안한 수면제 역할을 한다는 통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수면제 대신 찬양을 부르면 우리의 신경을 너그럽게 해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근심을 덜어주며, 불안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라 일을 보면서 근심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늘 시편의 노래를 했습니다.
저도 기타가 늘 옆에 있습니다.
잘 못 타지만,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면 기타를 튕기면서, 찬양을 하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경험 합니다.

본문에는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면 건강해 진답니다.
오장육부의 신경이 손에 집중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바닥을 자극하면, 신경이 원활히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하나님이 일거 다득하게 하는 사건인지 모릅니다.
마음이 기쁘니까, 감사도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 감사하는 것 못 보았습니다.
감사를 자주 하는 사람도, 순간적으로 마음이 언짢아 지니까 감사가 쑥 들어가는 것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라도 찬양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찬양과 감사는 일직선 상에 같이 있습니다.
괴테는 영상4 \\\"가장 쓸모 없는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감사는 훌륭한 교양의 열매이다. 천한 사람에게서는 그것을 찾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찬양은 입술의 찬양의 시작이요, 찬양의 최고봉으로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그 찬양의 최고봉입니다.

청년시절에 경험했던, 아름다운 찬양이 추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3월 1일 휴일을 맞아, 성가대원들을 이끌고, 계룡산으로 등산을 간 적이 있습니다.
눈 덮여 있는 산을 미끄러지면서, 등산을 하는 기분이 아주 상큼 했었습니다.
눈 산 등산의 기분을 한 껏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또 다시 폭설을 만났습니다.
삽시간에 고속도로는 눈이 쌓여 빙판이 되었습니다.
폭설을 경험한 우리들은 창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눈 꽃들을 보면서, 찬양을 힘껏 부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여기저기에 쓰러진 차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기에 버려두고 간 차량도 여기 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들은 찬양을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차가 들썩 거릴 정도로 신이나서 찬양을 했습니다.
버스 운전사도 아무말 없이 찬양을 들으면서, 좋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 없이 그 폭설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찬양이 두려움을 물리쳐 주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찬양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1882년 독일의 기선 스프리 호가 대서양에서 폭풍우을 만나 암초에 좌초되어 배 밑에 큰 구멍이 뚫렸습니다.
그 배에는 700명이나 되는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승객들은 모두 겁에 질려 갈팡질팡하였고, 배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승객 가운데 19세기의 대부흥 전도자 무디가 있었습니다.
무디는 자제심을 잃고 전전긍긍하는 승객들을 모아놓고 기도회를 가지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 함께 찬양을 불렀습니다.

찬양(혼자)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 어린 양 믿습니다 죄 속함 받고서 이 몸과 맘 드려 간절히 빌 때에 들으소서
영상5 다함께 내 생명 꿈같이 이 세상 떠날 때 부르시고 사랑을 베푸사 평안케 하시며 영생을 누리게 하옵소서

마침내 구조선이 도착해 그들은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때, 그 찬송이 성도들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님 보좌로 연결하는 황금의 사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찬양은 반드시 감사로 연결이 되게 됩니다.
감사를 가져오는 그 찬양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여기 이 자리입니다.
찬양의 장소와 소재들은 바로 이곳입니다.
사람들도, 자연도, 물질도, 관계도, 모든 것들이 찬양의 소재들입니다.
자연을 찬양의 소재로 삼는 사람들은 결코, 찬양하는 입술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더러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속에는 무궁한 찬양의 소재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찬양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고 거기에 동감하는 데서부터 출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신선하게 살아나는 나무 잎사귀, 꽃잎, 잔디, 그리고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 이름 모를 작은 벌레들의 움직임,
새들이 둥우리를 틀고 알을 낳고 그 위에 어미 새가 수십일 씩 앉아 있는 모습,
비가 오고 햇빛이 비치는 모든 자연의 신비한 모습을 세심히 관찰해 볼 때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에 대해 감히 무엇이라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감격 그 자체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격이 노래로 기도로 찬양으로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진정한 찬양을 드리는 신비의 경지를 맛 보게 되는 것입니다.

친밀하게 지내는 정형외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의사지만 인간의 신체를 보면, 안건우ㅏ 몸이 저절로 생겨났다고는 볼 수 없는 정교함과 신비함을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그 분이 의심스러워 졌습니다.
신체의 신비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필요충분 조건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전에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지요?
그런데 왜 계속 하지 않나요?
기적을 행하면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올텐데요.\\\"
그를 바라보며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기적을 행하시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그걸 바라볼 여유가 없더군요.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그들의 길 위에 심어놓은 꽃 한송이, 그들에게 뿌려주는 비 한방울 조차 눈치채지 못하더군요.
그게 기적인데 말이지요.\\\"

하나님의 신비는 이 우주속에 충만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눈이라고 열려서, 주위를 본다면, 얼마든지 찬양의 요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바쁘고, 눈이 가리워서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돌스토이가 어느날 산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목과 새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노래하는 새와 싱싱한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톨스토이는 온몸에 힘이 솟고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아주 평화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연속에서 자연을 움직이시면서, 숨어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자연과 내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찬양하기에 충분한 요소들로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넓은 바다, 높고 깊은 산, 푸른 하늘과 빛나는 구름 속에서 이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본다면 찬양이 절로 우러날 것입니다.
굽이치는 파도소리와 우뚝 솟은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를 들으며 자연만물이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한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에 깊이 개입하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상6 (시편 18: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 얼마나 강하고, 자신만만한 발견입니까?

저렇게 큰 푸른 도화지를 본적이 있으십니까?
미국 도화지는 한국 도화지보다도 얼마나 더 큰지 몰라요.
그렇게 큰 도화지에 순전히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는데도 그렇게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본적이 있으십니까?

푸르른 대지, 혹은 황폐한 곳이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그렇게 조화를 간직하고 있는지, 지구는 하나님의 창조의 극치인 것입니다.
누가 이러한 우주가 저절로 탄생했다고 했습니까?
어떻게 저절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이렇게 정교할 수가 있을까요?
저절로 생겨났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요소들로만 가득차 있는 것이 우리의 공간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견은 겸손함과 온유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어붙은 마음의 창을 통하여서는 이러한 것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찬양도 마음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그러한 마음을 갖을 수가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영상만비췸7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오직 예수님만이 그러한 마음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과 온유 그 자체이십니다.
그 분은 자기를 낯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마음만이 찬양과 감사의 조건을 갖춘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채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고 힘써 보아도 결과는 늘 실패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만물을 새롭게 보는 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만이 그 찬양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내 중심에 자리를 정하실 때 만이 진정한 찬양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감사가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분 모시고, 찬양과 감사의 나들이를 떠나시는 금년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