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8편 강해
하나님과 교통하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2)/시48:9-14
지구상에 전쟁사를 더듬어보면 1500년부터 400년 어간에 자그마치 3400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20세기 한 세기만 해도 1억 7천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고대 전쟁사를 보면 승전국은 환희에 넘칩니다. 승전가를 부르고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반면 패전국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굴욕과 감당하기 어려운 무자비한 학대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승전국의 왕이 패전국의 왕을 앞에 세워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대하고 멸시합니다. 어떤 경우는 눈을 뽑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혀를 잘라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나라의 모든 대신을 모두 세워놓고 옷을 벗기고 승전국의 장군이 패전국의 왕의 목을 밟고 분뇨를 먹이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하게 합니다. 온 백성들은 상하 신분을 논할 것 없이 노예로 끌어갑니다. 당시 사회에서 노예들을 이용해 건축, 건설 등의 일을 하였기 때문에 노예의 수는 국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사는 승전이 없는 한 그것은 부끄러움이요, 괴로움이요, 고통입니다.
시편 48편의 배경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패전국이 되어 노예로 끌려갔다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나서 자유인이 되어 고국에 돌아와 성전과 모든 성읍과 모든 망대를 돌아보고 너무 너무 감격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국에 돌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드린 고백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인도하시리로다\"는 말씀에서 \"인도한다\"는 말의 히브리 원문은 \"더 좋은 쪽으로 끌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아주 만족하게 하신다. 희락을 안겨주신다. 살맛이 나고 복되게 하신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더 좋은 인생길로 이끌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지만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잘된 것도 우연이 아니고 실패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 만사가 하나님께서 위에 계셔서 우리를 아시고, 보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이 뒤틀리고 잘못되고 엉망이고 실패하고 절망적인 바로 그 순간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에는 다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전쟁중에 사병의 복장을 하고 병사들 틈으로 도망갔습니다. 분명히 사병 옷을 입었지만 적군이 쏜 화살에 맞게 되고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우연히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합 왕은 우상숭배와 악독한 행위를 많이 했는데(왕상 16:30)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도 그 이유가 있으니 감사해야 할 것이고, 실패한 사람도 그 이유가 있으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여인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두 며느리가 있었는데 그 중 작은 며느리 룻은 아무 것도 없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나섭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홀로 되어 재산도 없고 희망도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며느리 룻은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서 죽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발견하고 시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양식을 마련해야 했는데 마침 추수 때가 되어 밀 수확을 하는 곳에 가서 뒤따라가며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곳은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습니다. 성경말씀에 \"우연히\" 그곳에 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룻 2:3). 그런데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친족 보아스는 장차 룻의 남편이 될 사람이었으며 룻은 장차 다윗의 조상의 계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 만사가 우연히 되는 것 같지만 바로 그 사건 속에서 내가 주님을 의지하고 있는 한, 내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심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길을 인도해주시고, 더 좋은 길로 윤택한 길로 이끌어주시며 우리 앞에 좋은 날이 열려지도록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우연히 성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지만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손길이 있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좋은 길, 더 복된 길, 더 나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하실 것인지 순간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야곱이 집을 나와서 벧엘에 이르렀을 때 먹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돌을 베게 삼고 하늘을 지붕 삼아 누워서 잠을 잘 때도 \"하나님 내 인생을 어떻게 하실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메마른 땅에 물댄 동산같이 마치 샘이 솟아나는 것 같이 너희의 앞길을 내가 인도하고 더 좋은 길로 이끌어 주리라\"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때 힘이 생기고 담대하고 평안했습니다.
반대로 믿음이 떨어지거나 변질되면 삶이 허전해집니다. 이전에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게 되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씨름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힘을 잃고 세상을 사는 보람이 없고 살맛이 없습니다. 믿음이 떨어지거나 병들었거나 여러 죄악에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안되지만 하나님은 넉넉히 되게 하신다\"는 신앙으로 영적으로 사탄을 대적하면서 장부다운 믿음으로 참으며 견디며 나아가면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19∼20)는 말씀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고 막힌 길을 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절망적이고 낙심되고 희망이 없을 것 같은 바로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이든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다 힘들고 어렵기 마련입니다. 사건이 우연히 부딪힌 것 같으나 우연이 아니기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는 말씀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죽어서 가는 천국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천국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일간지에 소개된 명동에서 일식 돈까스 식당을 운영하는 윤종근 회장의 간증입니다. 그는 6·25때에 매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에 60리 이상을 뛰면서 껌팔이 담배팔이 장사를 했습니다. 배고픈 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다 보니 돈에 대한 집착이 있었고 돈 버는 일에 이력이 났습니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돈을 잘 벌었습니다. 나중에는 명동의 모 패션의 경영책임자로 일했는데 4군데에 지점을 낼 정도로 사업이 번창하고 돈을 잘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당뇨병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들은 대학에 다닐 무렵이었는데 하루는 누군가에게서 전화로 그의 자동차 번호 조회를 해왔습니다. 그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명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의식이 없습니다. 자신의 종교는 불교이지만 자녀들은 교회에 나가는 것은 허락을 해오던 터라 아들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가시면서 \"회장님, 아들이 듣지 못하는 것 같지만 성경을 계속 읽어주십시오. 그럼 하나님께서 영으로 다 듣게 하실 것입니다\"하고 부탁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병원에서는 아들에 대해 손을 뗐습니다. 어느 정도 의식이라도 돌아오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그는 밤마다 사랑하는 아들을 간호했는데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다가 보니 그가 은혜를 받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할 뜻이 계셨던 것입니다. 기도라고 해야 격식도 없이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아내는 당뇨병에 걸려 누워 있고, 자식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저 몇 마디하고 \"아멘\"했는데 아무 말없이 누워있던 아들이 86일 만에 \"아멘\"을 따라하더라는 것입니다. 포기한 생명으로 생각하고 손을 뗀 병원과 의료진이 놀랐습니다.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이게 하고 앉고 일어서는 운동, 걷는 운동, 수영과 언어교육 등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자 마침내 그 아들은 회복을 하고 복학을 하여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윤종근 회장은 아들을 두고 \"하나님, 이 아들을 살려주시면 제가 교회 열심히 나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20년 동안 벌어들인 이익금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대로 쓰겠습니다\"며 청산장학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신앙이 순수성을 지속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섭섭해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어린아이 같아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도 처음에는 매우 순수했습니다. 자신의 조상 때에 지었던 죄를 자신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우상 숭배를 했던 성전을 깨끗이 치우고 하나님 앞에 잘하기 위해 절기를 잘 지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18만 5천명의 대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게 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14년 정도 지나자 그도 순수성을 잃었습니다. 죽을 병이 걸려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와 영광을 극에 달하게 하시고 그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시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나라가 가장 부강하고 평안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처음에 믿었던 그 순간처럼 죽기까지 변함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령님께서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속하는 방법을 날마다 가르쳐주십니다. 특별히 주일에 이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요즘 신앙이 순수하지 못하구나. 사랑하는 자녀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실 때 \"예. 제가 오직 주님만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으로 품어주시고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때에는 성령님께서 \"왜 지치고 힘들고 낙심하고 있느냐? 생명의 떡을 먹어라. 진리의 생명수를 마셔라. 네가 할 일이 많이 있느니라\"고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너 왜 아직까지 그렇게 있느냐? 드릴 것은 드려라. 끊을 것은 끊어라. 버릴 것은 빨리 버려라\"고 하시면서 순수성을 지속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할 때에 \"아멘\"하고 따라가면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에 돌아와서 감사하고 감격하여 찬양이 나왔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더 좋은 길, 만족스러운 길로 인도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령을 자세히 조사하고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부품이 보통 1만 2천개 정도이고, 부품이 많은 차는 2만개 정도라고 합니다. 차의 엔진의 부품 중에 무엇 하나가 잘못되면 그 차는 가지 못합니다. 빨리 정비를 하거나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권면합니다. 이 말은 순간 순간 성령님께서 우리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조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소서\"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주실 때에 \"아멘\"하고 순수하게 순종하고 따라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앞길과 장래에 더 좋은 길, 더 윤택한 길, 환희가 넘치는 길, 영광이 넘치는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