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9편 강해

우리는 존귀한 자이다/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이 말씀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기가 귀한 존재라고 하는 것은 깨닫게 되면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을 당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하는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가난하게 살고, 늘 허덕이는 삶을 사는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존귀케 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읽은 말씀에 기록되어 있듯이 자기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짐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짐승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짐승은 하나님을 모르고 육의 본성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니깐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잡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마시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아가죠. 그래서 짐승이 아님에도 짐승처럼 살아갑니다.
여기 계시는 분 중에 그 누구도 짐승처럼 살아가기를 원하는 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베드로 후서 2장 12절을 보면 짐승은 잡혀 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후서 2장 1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

짐승은 잡혀 죽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성가에도 있듯이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느 정도 존귀한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면 잡혀 죽기 위하여 태어난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자기의 존귀케 됨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보다도 더 험악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전도서 3장 18절부터 읽겠습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육체의 죽음에 있어서는 짐승이나 인간이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죽은 후의 상태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위로 올라간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간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눅 12:20)
그런데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냥 끝나느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전도서 12장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은 짐승의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히 9:27) 그런데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행위는 물론 은밀한 일도 심판하십니다. 은밀한 일은 자기 자신만 아는 것,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행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런 심판을 받는다면 어떤 판결을 받을까요? 잘 했다고 칭찬 받을까요? 아니면 형벌을 받을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큼 존귀케 하셨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얼마큼 존귀케 하셨을까요 ?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일까요?

우선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잘 생긴 사람이 있고 못 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있고 어벙한 사람도 있습니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고, 또 유식한 사람도 있고 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가 있어 존경을 받고, 어떤 사람은 늘 천대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다 엄청난 존재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1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직장이나, 아무리 좋은 대학교라고 해도 경쟁률이 1억대 1인 경우는 없습니다. 만약 1억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난리가 날 겁니다.
그런데 어벙하고 못나 보여도 1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승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뿐만이 아니죠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진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상관없이, 사람은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만 사랑하십니다. 자기 목숨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 26절-28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려고 만들었습니다.
너무 엄청난 얘기죠?
창세기 1장 26절부터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복을 주셨지요? 하나님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말씀으로 온 세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세세토록 계시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복을 주시려고 인간을 만드신 겁니다.
그리고 1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세상에 출생하게 하신 겁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사람으로 영원히 살도록 만들었습니다.(창 2:17) 따라서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는 아주 존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무얼 받기 위하여 태어났다고요?
예, 맞습니다.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에요.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맞죠? 그런데 그것을 모르면 멸망하는 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는데 있어서만 존귀케 하셨느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시고, 복을 주셨으나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원수 된 사단을 사랑했습니다. 이일로 인해서 인간은 멸망의 구덩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귀한 존재이지만 범죄 함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저주받은 존재가 됐습니다. 곧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배반한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더욱더 사랑하셔서 그들을 그 죄에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셨어요.(빌 2:5-8)(히 2:14-18) 그리고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받쳐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라는 말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후회하고 하나님을 찾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을 사랑하고 있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죄인을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벧전 2;24)

주님은 왜 자기 목숨을 받쳤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인간은 아주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그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기 육체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받치는 일만 했느냐?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십니다.
베드로 전서 1장 5절 보겠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너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호\" 라는 단어는 파수꾼이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호한다는 것은 그냥 안전한 장소에다가 둔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안전한 곳에 둘뿐만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 해코지 못하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파수꾼은 낮이건 밤이건 잠 안자고 적군이 오나, 안 오나 살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루에 3 교대합니다. 8시간씩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3교대 같은 거 안해요. 혼자서 다하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하십니다.
시편 121편 3절부터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

파수꾼이 성을 지키고 있을 때 성안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합니까?
파수꾼과 함께 잠 안자고 성을 지킵니까? 아니죠, 성 안에 있는 사람은 마음 푹 놓고 코골며 잡니다.
마찬가지 하나님은 파수꾼으로서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지금 설교 듣는 시간에 졸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졸지 않으십니다….

그거 어떻게 믿어?!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계속해 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낮과 밤은 하루, 곧 24 시간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24 시간 동안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보셨으면 이런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이것을 모르고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엄청나게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를 엄청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얼마큼 부자인가 한번 볼까요...
고린도 후서 8장 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요한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부자가 됐다는 겁니다.
그럼 얼마큼 부자 됐느냐? 예수 그리스도 만큼 부자 된 거예요, 하나님만큼 부자 됐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부자일까요? 10초만 생각해 보세요.
……, 잘 모르겠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부자예요.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것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롬 8:16-17)

하나님의 후사란 하나님의 재산을 몽땅 상속받을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을 하나님의 재산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각종 보석으로 지어졌고, 도로는 정금(精金)으로 포장했습니다.(계 21:9-21)
생명수 강가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풍성한 과일을 맺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세세토록 왕 노릇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을 보면은 기죽고, 자기보다 권세 있는 사람을 보면 없는 꼬리지만 꼬리 내리고…,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먹을게 없다고 한탄하고, 마실 것이 없다고 원망하면서 살아야 되겠어요?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입니다.

\"임금이 어느 날 왕자에게 궁 밖에 나가서 세상을 좀 살펴보고 오라고 했다. 세상에서 어떻게 지내는가에 따라 국사를 맡기겠다고 했다. 왕자는 자기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허술한 옷에다가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세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왕자는 허술한 옷을 입었다고, 개나리 봇짐이 작다고 해서, 분을 내거나 열등감을 가지지 않았다. 왕궁에 가면 왕자를 위한 옷이 많이 있기에 옷을 봐도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또 왕자는 화려한 음식에도 군침이 돌지 않았다. 왕궁에선 호령만 하면 질릴 정도로 많은 음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유한 자는, 아니 진짜 부자는 좀 못 입거나, 못 먹어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에 열등감이 있는 자는, 아니 진짜 가난한 자는 조금만 못 입어도, 조금만 못 먹어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왕자는 왕궁에서 나왔다고 해서 자신이 왕자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왕자가 허름한 옷을 입고 시장 길을 걸어가는데 포도 대장이 나타났다고 엎드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포도대장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땅에 엎드리기는 하지만 속으로 재미있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이것이 왕자 의식을 가진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왕자 의식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다. 왕자는 위기를 당하거나 위태로울 때면 하인에게 아버지를 불러 달라고 한다. 내가 위태로울 때 나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불러야 진짜 왕자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을 관찰하신 후 언젠가 천국 국사를 맡기실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하늘의 왕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배를 쑥 내밀고 자부심을 갖고 살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왜 의기소침해서 살아갑니까? 왜 열등감을 느껴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 왜 배가 아파요? 그리고 왜 허세를 부려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아주 가난해서 비지죽밖에 못 먹는 사람이 있었어요. 근데 이 사람이 자존심은 있어서 비지죽을 먹고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면서 친구 집에 놀러 갔어요. 놀러 가서 하는 말이 \"어휴…, 돼지갈비를 좀 뜯었더니 잇새에 고기가 꼈네.....\"
그리고 끄윽! 하고 트림을 했어요. 그 서슬에 비지가 튀어 나왔어요. 그러니깐 친구가 물어 봤어요. \"아니 이 사람아! 갈비 뜯었다고 하더니 웬 비지가 튀어나오나\"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음, 아마 비지 먹고 자란 돼지였나 봐.......\"

이 사람이 왜 허세를 부려야 했을까요? 가난하니깐, 그리고 가난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으니까…,
부자라면 비지 먹고, 돼지 갈비 뜯었다고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지 먹었다고 하지 ......,
우리도 자기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요, 하나님께서 존귀케한 자인 것을 깨닫게 되면 열등감을 느끼거나, 허세를 부리지 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존귀케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비지를 먹었으면 비지 먹었다고 하고, 콩나물국 먹었으면 콩나물국 먹었다고 하면 됩니다. 그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왕자가 허름한 옷 입고, 시장 바닥에 앉아 꿀꿀이죽 사 먹었다고 해서 왕자가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못 먹고, 잘 못 입었다고 해서, 돈이 없어 가난하다고 해서, 왕자의 신분이 거지로 바뀌지 안습니다.
한번 왕자는 영원한 왕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자예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삽시다.

존귀케 됨을 깨닫는 자는 왕자로써 살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처럼 살아갑니다.
어디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나!! 어디 예쁜 옷 없나? 밤낮 그것만 찾아다니는 거예요.
저도 전에는 짐승처럼 살았어요. 맛있는데 있다면 거리가 멀어도 상관 안하고 가서 먹었어요. 그게 사람 껍데기 쓰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거죠.
여러분은 먹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에요?. 예쁜 옷을 입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에요?
여러분은 출세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짐승입니다.
미안할 것도 없어요. 사실이니깐. 내가 왜 미안해해요? 사실인데........

이제 자기를 살펴봅시다. 나는 짐승처럼 사는가, 아니면 왕자처럼 사는가?

왕자처럼 사는 것은 소망을 하늘에 두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자라면 당연히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왕자가 세상 물정을 살피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기는 경치 좋으니까, 땅을 조금 사고, 어떤 곳이 신도시로 개발된다고 부동산에 투자할까요? 그러고 다닐까요?
그렇게 하는 왕자는 하나도 없을 거예요. 정상적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말 하늘나라의 왕자라고 하면 소망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빌 3:17-21)(골 3:1-4)

그리고 존귀케 된 것을 깨달은 자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하나님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순종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 받는 칭찬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한 만큼 기업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얻어 누리게 하려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존귀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1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죄인인 나를 위해서 귀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나는 비록 졸고, 잠자고, 세상을 향해서 줄달음 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보호하십니다.
이런 은혜를 입었다면 당연히 주의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