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3편 강해

고난의 종 예수그리스도/시53:1-12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의 몸을 빌어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의 짧은 33년의 삶은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종국에는 범죄자 중 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십자가에 처형 당했지만 3일만에 부활하사 인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너무나 놀랍고 기이하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13절로부터 15절은 이 놀라운 사실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이사야53장은 예수님의 일생에 관해서 주님 오시기 600년내지 700년 전에 밝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알아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를 계시받은 이사야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가막혀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라며 외쳤습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만큼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2절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 보니 예수님이 자라나는 것은 연한 순 같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이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의지할 것 없는 핏덩어리 어린 아기로 여린 순같이 태어나는 것을 감탄해서 말한 것입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는 것은 예수님이 큰 부잣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권세 있는 자의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요 제사장이나 지식인의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요 멸시받고 천대받는 나사렛의 가난한 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 났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 3절은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며 예수님의 짧은 생애를 전반적으로 개요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유대인의 종교단체에서 완전히 이단으로 버림을 당했으며 로마 정치권에서는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실로 배고픔도 경험하고 추위도 경험하고 고통도 경험했습니다. 질고를 아셨습니다. 병든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치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같이 멸시를 당했습니다. 권세 있는 자나 부자나 지식인같은 상류층으로부터는 완전히 얼굴을 가리움받은 자 같아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느 곳에 가나 버림받은 사람, 가난한 사람, 세리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인물이나 존귀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우리사회에서 보면 신문 인터뷰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TV에 그 모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를 보고 흠모하여 따라 다니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인정을 받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어떻게 그 손으로 저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지으시고 그 손으로 깊은 바다를 파내시며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그분이 이와같은 삶을 살았을까?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겠는가? 누구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서 이것을 믿게 하겠는가?\' 라며 탄식했습니다.

ꡒ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손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ꡓ


2.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

이사야 53장 4절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다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지신 예수님, 우리의 마음의 병, 육체의 병, 주님께서는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육체의 건강은 우리 삶의 기본입니다. 사람이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입니다.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입니다 건강 없이는 우리의 존재는 없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건강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이 땅에 행인과 나그네로 기쁨의 날은 짧고 슬픔의 날은 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언제나 슬픔의 쓴 연못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없애주기 위해서 우리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매를 맞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한다면 왜 저렇게 소외되고 버림받고 헐벗고 굶주리는 고난의 종, 슬픔의 종이 되었을까? 이제는 하나님께 매 맞으며 버림받고 고난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슬픔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의미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탄식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은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힘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서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혀 그것을 알지 못하나 그리스도가 와서 이 땅에 사심은 그 깊은 대속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손으로 지은 허물, 행위로 지은 허물 때문입니다. 모든 우리의 허물을 그 손발로 찔림으로 다 짊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얻어맞아서 상처를 입고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상실했습니다. 우리 죄악 때문입니다.

시편 22편 1절로 2절은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화목을 얻고 평화를 얻게 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서른 아홉 차례의 매를 맞고 등이 찢어지고 살이 떨어져 나가고 줄기 줄기 피를 흘렸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양들은 자기가 좋은 풀밭을 찾아서 마음대로 흩어져 갑니다.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머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켰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말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심으로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모습

이사야 53장 7절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E대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위해 오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할 수만 있으면 이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많은 중상모략에도 입을 다무셨습니다. 이미 죽기로 작정하신 분입니다. 그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 양과 같이 결코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위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그 모습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8절은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단과 사설을 주장해서 처형하는 줄 알았고 로마 정권에 저항해서 처형하는 줄 알았지 그가 우리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편 22편 6절에서 8절에도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마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어서 자기를 불 가운데서 구원하러 오시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무지가 사람을 죽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위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이 가지지 않은 위대한 지식,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는 지식이요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보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었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서 53장 9절은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의 무덤은 악인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에 그것도 한 부자가 파 놓은 묘실에 들어간다고 예수님 오시기전 600년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7절로 60절은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인들과 같은 공동묘지에 갔지만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가 죽으며 들어가려고 파 놓은 무덤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4. 하나님의 꿈과 소원을 성취하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10절로 11절은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낳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예수 그리스도가 상함을 받고 우리의 질고를 당케하시는 것입니다. 병이 나아도 좋고, 안나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병을 낳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상처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들이 병고침을 받고 건강하기를 소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영혼이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 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죄를 위한 속죄제물, 속건제물이 되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바치게 되면 그 후손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데 예수님이 생명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소원입니다. 이 아버지의 뜻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죄악을 담당하고 우리 질병을 담당하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이 소원의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고 수고한 결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인이 용서 받고 구원받고 귀신이 쫓겨나고 병고침 받고 저주에서 해방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만 성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 속에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들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입니다. 이 소원을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할 때 \'나는 아버지의 소원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2절은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1절에도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주전 600년 내지 700년 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과 부활과 승리를 일목요연하게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언이 2000년전 이미 역사적으로 다 이루어진 사실을 밝히보고 감격과 감사를 느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태어남과 삶,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아버지의 소원을 이룬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과 소원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고난당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에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깊이 감사하고 우리를 구원하고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생을 던져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큰 고난을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 마귀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탈취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값주고 사셨으니 용서와 의를 우리를 탈취해야 되고 천국과 성령충만을 탈취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안과 건강을 탈취해야 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탈취해야 하고 부활과 영생과 믿음으로 빼앗아야 하는 것입니다.…╋

[경배 찬양]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첨부파일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