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꾼 [행1;1-5]

 

행1:1-5 하나님 나라의 일꾼 

 

 

 

1. 1절/ 데오빌로여 ...

 

   - 누가복음 : 데오빌로 각하 (눅1:3).  사도행전에선 데오빌로여로 호칭!   한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한 누가선생의 노력이 어떠했나를 짐작케해준다.  한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장편의 서신을 써서 그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얻게 하고자 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삶에 전도가 얼마나 생활화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누가복음의 글을 읽었던 데오빌로는 결국 누가선생을 개인적으로 만나 더 복음에 대하여 들었을 것이고 둘의 관계는 이제 친구의 사이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는 그냥 친구처럼 데오빌로여! 라고 부르고 있다. 

 

   - 내 주위의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은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어떻게?  누가선생이 이 한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두 편의 긴 글을 쓴 것 같이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지극 정성을 쏟아보자.  내 가족 식구부터, 내 친구, 직장동료들을 주께로 인도할 마음을 갖자. 그들을 내 가슴속에 태신자로 잉태하는 것부터 하자. 그리고 누가선생처럼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편지를 쓸 수 도 있고, 그에게 선물을 사줄 수 도 있고,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대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소개하고 교회로 인도할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정성을 다한 사랑의 표현 앞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고 친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3절/ 해 받으신 후에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주님께서 왜 해를 받으셨나? 왜 십자가의 극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 골고다를 가셨나?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다면 그 누구도 결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진한 고통의 장소를 향해 걸어가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자신의 육체에 짊어 지시고 저주의 나무에 매달리셨다.  그리고 그 험한 해를 받으셨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에서 표현된 우리를 향한 사랑이 오늘 우리들의 심령위에 한없이 부어지기를 축원한다.  

 

   - 주님은 끝까지 인내하셨고 결국 죽으셨다.  로마병사의 창이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물과 피가 다 쏟아졌다.  주님은 비참하게 고통받고 무기력하게 죽으실 때 우리에겐 우리들의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이다.  그 십자가는 사실 내가 지어야 했고 내가 매달려야 마땅했다. 그리고 지옥에 가야 마땅했으나 주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이 그 고통과 지옥에 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친히 자신이 우리의 자리에 서신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 그후 3일 후에 주님께서 부활하셨다.  그리고 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을 다시 규합하며 그들의 부르심을 재 확증하는 작업을 하셨다. 의기소침하며 고향으로 돌아가던 자들을 만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부끄러운 행위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당당하게 주님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 그 40일 동안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셨던 말씀의 주제가 무엇이었나?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다.  지금 이 지구상에 인간들이 세워놓은 것들이 아무리 영광스럽고 위대해도 그 실체는 반역자에 불과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전쟁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가정도 반역자의 가정이며, 불법자들의 가정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국가, 기업, 그 어떤 곳도 불법임을 드러내 주셨다. 그들의 행복도 허구에 불과하고 그들의 웃음소리도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기 전에는 그들의 어떤 것도 불법이요 악한 것에 불과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아버지의 통치권이 박탈당하는 이 땅을 그만 보고 계실 수 가 없었다.  제자들을 불러모아 너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울 주역들임을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더럽혀지고 빼앗겨진 땅을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용사들이다.  이 영적전쟁에 참여할 군사로서의 정체성을 한시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래야 세상과 타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전쟁에 참전 중인 군사는 늘 자신을 경계하고 적의 침투, 간첩의 침투를 분별해야 한다.  방심하면 죽는 것이다.  전쟁은 타협이 없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지면 나도 죽고 내 가족 내 민족 모두 망하는 것이다.  이 영적전투 역시 동일하다.  내가 강해야 내 가족이 산다.  내가 강해야 더 많은 길잃고 헤매고 있는 내 형제, 자매들을 구원할 수 있다.  적 진영 한 복판까지 침투하여 사단의 세력에 완전히 결박되어 있는 자들까지 구해올 수 있는 것이다.


3. 4-5절/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영적 군사로 부르셨다.  모집한 자가 군사를 책임져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사의 기본 훈련을 시켜주고, 실탄주고, 먹을 것 공급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사령관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군사로 모집된 사도들을 무장시켜 전쟁터로 보낼 준비를 하고 계셨다.  우리는 절대로 이 하늘의 능력으로 무장되지 않은 채 예루살렘을 떠나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선 안된다.  백전백퇴일 뿐이다.  사역은 하는 것 같고 지구상에 열매는 늘어나는 것 같으나 실제 천국의 시민권자의 숫자는 하나도 변동이 없다.  그래서 하늘의 영적 무기로 무장되어야 한다. 

 

   - 반드시 예루살렘을 떠나선 안된다.  예루살렘은 주군되신 예수님이 처형당한 살벌한 곳이고 제자들이 당연히 가장 먼저 피하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선 안됐다.  주님은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이 발흥되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예루살렘에 붙어 있어야 했다. 

 

   - 힘들어도 매일 새벽 교회로 모여야 한다. 그리고 합심하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하다.  요한의 물세례, 즉 말씀훈련, 예배훈련, 모임훈련... 이 모두 좋은 것이나 하나님의 군사들에겐 “성령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기다리자.  몇 날이 못되어 하늘 문이 열릴 것이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받을 때 까지 기다리자.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