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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계획서
김 규 욱 Ⅰ. 강의 목적
1. 현존 기독교 교육학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2. 성경신학적 관점을 도입하는 기독교 교육학이 왜 중요한가를 이해한다. 3.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배워가는 성경적인 원리를 확인한다.
Ⅱ.강의 개요
1. 기독교 교육학, 왜 중요한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1.1 기독교 교육학 정립의 중요성
1.2 현존 신학에서의 기독교 교육학의 문제점:
1.3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을 위해서 도입되는 관점: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
1.4 연구의 목적과 의의
2. 기독교 교육의 역사적 이해
2. 1.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육 2. 2. 중세시대의 기독교 교육 2. 3. 종교 개혁시대의 기독교 교육 2. 4. 고백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2. 5. 계몽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2. 6. 20세기 이후의 기독교 교육 2. 7.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교육
3. 기독교 교육학의 개관
3. 1. 기독교 교육의 주관자 3. 2. 기독교 교육의 도구적 주체 3. 3. 기독교 교육의 목적 3. 4. 기독교 교육의 소재 3. 5. 기독교 교육의 방법 3. 6. 기독교 교육의 과정 3. 7. 기독교 교육의 장소 3. 8 기독교 교육의 이상
4. 하나님의 교육 원리
4. 1. 영원한 로고스(작정)에 의해 가르치심 4. 2. 실수를 통해 절실하게 배우게 하심
4. 3.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함
4. 4. 단계적으로 성숙하게 하심
4. 5. 때리고 싸매심을 통해 깨닫게 하심
4. 6. 고난과 형통을 병행하여 배우게 하심
4. 7. 지체와 더불어 가르치심
4. 8 보이는 일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르치심
5 결론: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의 우월성
Ⅲ. 평가 방법
1. 출석
2. 리포트--마지막 시간까지 배운 핵심내용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깨달음, 강 의에 대한 소감에 대해 리포트 형식으로 제출할 것(A4 용지 1장 이상)
3. 시험--자기 스스로가 얼마나 하나님을 배웠는가? 스스로 평가할 것
Ⅵ. 강의 진행 방법
1. 설명식 강의 3. 질문 및 토론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 교안(1)
1강. 기독교 교육학, 왜 중요한가? 어떻게 접근 해야 하는가?
< 목 차 > 1. 기독교 교육학 정립의 중요성 2. 현존 신학에서의 기독교 교육학의 문제점: 3.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을 위해서 도입되는 관점: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 4. 연구의 목적과 의의
1강. 기독교 교육학, 왜 중요한가? 어떻게 접근 해야 하는가?
1. 기독교 교육학 정립의 중요성
하나님 계시와 교육의 불가분의 관련성
기독교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고 영원히 영광가운데 계신다. 빛이 있으면 그 빛이 주위를 밝히듯이 하나님은 그 영원한 영광을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드러내신 것이며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라고 한다. 그러한 계시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스스로 그 영광의 선포하심이 목적이다. 그런데 그런 영광의 선포 즉 계시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광을 인간에게 전달 혹은 가르치려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교육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상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하심과 위대한 속성을 택한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언약과 성취라고 하는 계시적인 방편을 사용하신 것이다. 이 점에서 계시와 교육은 불가분의 의미적인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이런 신학적인 맥락에서의 교육의 의미는 일반적인 인본주의적인 교육의 의미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개념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는 엄청난 신학적인 함축성을 지니게 된다.
교육의 인본주의적 성격
일반적으로 교육은 인간이 스스로 바람직한 삶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교육의 의미는 철두철미 하나님을 배제하고 이루어지는 인본주의 사상의 극치의 표현이며 실상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스스로 삶의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모든 종류의 철학은 교육에 의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때의 교육은 스스로 바람직한 인간 됨을 형성시킬 수 있고 그리고 타인의 인간 됨을 도와 줄 수 있다고 하는 인본적인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맥락을 지니게 된다. 기독교 교육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교육 능력을 전제하지 않는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되어있기에 하는 일 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스스로 가치롭고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가치기준 자체가 죄악의 뿌리로부터 나오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에게는 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그러하듯이 교육도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
기독교 교육학은 인간이 교육의 주관자가 될 수 없으며 교육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모든 사역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인생에게 교육하시려는 데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교육이라는 명제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사역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의 기독교 교육학을 정립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 신학의 정체성 정립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신학이 성경에 입각하여 정립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총체적인 세계를 통해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교육하시려는 의도가 올바르게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은 모든 세속주의 사상의 본질적인 오류와 음모를 밝혀 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진리와 비진리, 혹은 기독교 사상과 세속주의 사상의 분기점은 바로 인간을 교육자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교육자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모르는 인본주의 사상은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오르려는 허탄한 시도이며 그것의 극명한 표현은 바로 인간이 인간을 교육하려는 데서 나온다.
2. 현존 신학에서의 기독교 교육학의 문제점
인간이 교육의 주관자로 간주하는 오류
현존의 기독교 교육학은 그 정체성에 있어서 체계적인 왜곡과 혼란에 빠져 있다. 그것은 기독교 교육의 신학적 성격, 즉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영광 선포적인 사역이 드러나지 않고 인간이 교육의 주관자가 되어 인위적인 변화를 시도하거나 인간 안에 진정한 신앙 성장의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가정되는 그릇된 발상과 접근으로 가득차 있다. 오늘날 신학의 분야에서 이것처럼 그 본질이 왜곡되는 분야도 없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교육학이란 교회에서 인간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연구의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신학에 있어서 기독교 교육학은 실천 신학의 한 하위 영역으로 간주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 교육학 안에 일반 세속적인 원리들과 개념들이 너무도 많이 침투해 들어왔다. 이는 기독교 교육의 본질과 정체성의 혼란을 빚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세속적 교육학은 기독교 교육학과는 전혀 다른 전제에서 이론의 출발점을 찾는다. 단적으로 말해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성장시킬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인본주의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기독교적인 입장과는 정면에서 충돌한다.
세속교육학의 영향
현존 기독교 교육학의 이론에는 세속적인 교육학의 이론들이 비판적인 여과 없이 수용되는 결정적인 오류를 가진다. 언뜻 보아 인간성의 변화 과정을 취급하는 교육이라는 점에 있어서 세속의 일반 교육학과 기독교 교육학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인상적인 오해에 불과하다. 일반 교육학과 기독교 교육학은 그 목적에 있어서나 의미 그리고 방법적인 원칙에 있어서 전혀 다른 차원을 겨냥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반대의 길을 간다. 전자는 인간의 자기 성장과 영광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교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독교 교육학은 전적으로 교육은 하나님의 사역이시며 그 목적도 하나님의 자기 영광의 교육에 있다. 기독교 교육학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 상태에 있으므로 전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참된 인간의 형성을 이룰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 교육학과는 전적으로 다른 전제를 가진 기독교 교육학이 일반 교육학의 개념과 방법적 인 원리를 수용한다는 것은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이론의 침공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기독교 교육학은 기독교의 하나님 중심적인 논리를 근본에서 훼손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보수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 양자 모두에서 나타난다.
2.1 보수신학의 문제점
하나님이 교육의 주관자로 인정, 그러나 구속사적 신학의 편협성
보수신학은 교육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고 교육의 궁극적인 토대가 성경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의 지엽성과 오류로 말미암아 정당한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에 실패하고 있다. 즉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독교 교육학의 의미와 목적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른바 구속사적 성경이해에 입각하고 있는 보수신학은 기독교 교육의 기본 원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있지 못한다. 성경을 인간의 구속을 위한 책으로 봄으로써 하나님의 포괄적인 섭리의 목적을 파악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즉 보수신학에서의 기독교 교육학은 교육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져야함을 주장하거나 이론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구속사적으로 환원 혹은 축소시킴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증거 하는 전포괄적인 하나님의 교육적인 경륜의 이해를 온당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구속은 전적인 하나님 주권에 의한 것이지만 구속 이후의 삶은 인간의 노력과 협력이 필요함을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본래의 교육적인 의도를 훼손시키고 말았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의 중심을 인간의 구속에다 둠으로써 성경이 증거 하고자 하는 정당한 신관의 정립에 실패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계시의 본래적인 의미 파악에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율법해석의 오류, 즉 신약의 성도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써, 교육적인 주관을 인간에게 맡기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언약대로 오심이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으로만 간주함으로써 그리스도 오심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위대한 속성의 계시를 통한 포괄적인 교육적인 의도를 간과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이는 성령론의 취약성에서 더욱 확증적으로 드러난다. 보수신학보수신학에서는 성령의 사역을 인간의 구속의 적용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파악한다. 그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포괄적인 진리 교육의 사역을 놓치고 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가 구약에서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증거 하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성도에게 가르치시는 교육의 사역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보수신학은 하나님의 섭리 과정에서의 죄에 발생과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지 못함으로써 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을 발견하지 못한다.
카톨릭신학과 교육의 오류를 반복
결국 보수신학은 하나님의 사역의 의미를 구속에 둠으로서 구속이후의 신앙 성장의 문제를 위해 인본주의적인 교육관을 도입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그 결과 교육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는 명제는 실질적인 이론의 전개에서는 공염불이 되고 말았으며 구체적인 이론의 전개는 인본주의적인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 교육을 목사 중심 혹은 교회당 중심의 교육에 환원, 혹은 협소화 시키고 말았다. 즉 기독교 교육은 전적으로 교회가 위임을 받은 사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사상을 함축한다. 보수신학은 하나님이 교육자이시라는 것을 지극히 피상적인 수준에서 언급하는 듯 하지만 실제 기독교 교육학의 이론 전개에서 실질적인 교육의 주관은 인간 목사 혹은 교사가 하는 것으로 본다. 이는 기독교 교육학의 철저한 왜곡이다. 이는 중세 교회가 범한 결정적인 오류가 아닌가!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증명한답시고 이론적인 수준에서만 가정해 놓고 모든 실질적인 교회의 주관권을 교회 성직자에다 두었다. 이로서 교황은 평신도를 교육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으로 보았고 그것이 교회를 지배할 수 있는 교묘한 제도적인 장치였고 사단의 간계였다.
보수신학의 거지 근성
보수신학은 신학의 빈곤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교육학은 학문성의 확립을 위하여 일반 교육학 혹은 사회과학적 접근과 개념을 수용하려고 기웃거린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가 엄청난 부자인줄을 모르고 엉뚱한 곳에 가서 걸식을 하는 아들과 같은 꼴이다. 요컨대 현존보수신학의 기독교 교육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신학을 강조하면 그것의 편협성과 비논리성으로 말미암아 학문성이 의심되고 일반 사회과학적 접근 혹은 교육학적 접근을 수용하면 기독교적 정체성이 상실된다. 그런데 성경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학문중의 학문이 아닌가? 학문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논리적인 일관성과 사실적 근거의 확보에 있다. 문제는 성경에 붙박혀 있는 구조적인 논리적 일관성과 사실적인 근거를 어떻게 확인 할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만약 성경의 구조적 논리를 확인 할 수 있다면 기독교 교육학은 일반 학문의 개념이나 방법론을 차용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학문성을 확보 할 수 있으며 그 논리와 근거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온당하게 배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이를 밝히고 증명하는데 있다.
2.2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
칸트의 충실한 신복-자기교육의 가능성을 믿는 오류
반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자기 계몽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칸트의 충실한 신복들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절대 권위를 부정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계시는 인간의 경험 혹은 종교적 경험으로 환원되어 이해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고서도 인간이 자기 경험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미숙에서 벗어나 성숙한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철두철미 희랍의 인본주의 철학에 굴종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로 이어지는 희랍의 전통철학은 인간의 교육의 가능성이 인간 자체 안에 있는 것으로 가정했고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피상적인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런 인본주의 사상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임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교육은 철저히 내재주의 즉 초월적인 계시를 부정하고서 이루어지는 인간 경험 중심이다.
인간의 결단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 신뢰
바르트에 오면 기독교 교육학은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부정 비판하면서 이루어진다. 바르트는 성경 계시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와는 달리 인간 교육의 근원으로서 성경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에 있어서 진정한 진리의 경험은 그 성경 계시를 인간이 실존적으로 응답할 때라고 봄으로서 성경의 계시보다 인간의 실존적인 결단을 우위에 놓았다. 즉 바르트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인간의 응답이라는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성경을 인정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결단 속에 종속시킴으로써 더욱 철저한 성겨 파괴작업의 선봉장이 되었다. 바르트의 후예들에게서 사신 신학이 나온 것을 보면 그 위험성을 간파할 수 있다. 바르트신학의 노선을 따르는 자들에게 있어서의 기독교 교육학은 언제나 인간적인 결단이 그 핵심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불트만은 바르트의 실존론적 결단을 극단화 시켰다. 그는 기독교 교육학을 실존적 결단과 그 결단에서 생성될 수 있는 자아의 형성을 중시함으로 성경 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교육이라는 근본 명제는 근원에서 사라져 버렸다.
3.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을 위해서 도입되는 관점으로서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 그 특징과 성격
언약 성취사적 성경신학만이 올바른 기독교 학문(교육학)의 정립을 가능케함-줄기와 가지
기독교 교육학의 성경적 정립을 위해서 현존 신학의 논리와는 근본적으로 차별화 되는 관점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 글은 최근 박용기 목사에 의해서 주창되고 개진되고 있는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이하에서 성경신학은 이를 의미한다)의 관점에서 기독교 교육의 근거와 목적 그리고 실제적 내용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하에서는 왜 이 관점이 기독교 교육의 성경적 정립을 위한 정당한 틀이 될 수 있는지를 밝히기로 한다.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은 기존의 보수신학과 자유주의신학에서 말하는 성경신학과는 본질적으로 그 의미와 성격에 있어서 차별화 된다.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은 성경을 단지 인간이 기록한 역사적 문서로 간주하고 신학의 논리를 인간의 종교적 경험에서 구하는 자유주의신학을 근본에서 비판한다. 즉 기독교가 인간의 종교 체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에 근거한 종교임을 주장한다.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은 보수신학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해석의 관점을 달리한다. 즉 전통적 성경 해석의 틀인 구속사적 관점의 지엽성과 인간 중심성을 비판하고 성경 전체는 언약 성취의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함을 주장한다. 언약 성취의 관점이란 현존 신학의 언약 개념과는 근본에서 구별된다. 현존 신학의 언약의 개념은 이른바 ‘구속적 언약’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목적) ‘하나님이 언약을 체결하신다’ (수단)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글이 취하는 성경신학은 그런 인간 중심적 언약이해의 관점을 혁파하고 ‘하나님 계시 중심적인 언약 성취의 논리’를 정립하였다. 역사적 차원의 언약 성취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기초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를 역사적 종교로만 간주하는 자유주의신학의 헛된 분석을 근본에서 비판하고 기독교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근거하는 종교임을 강조한다.
4. 연구의 목적과 의의
기독교 교육학의 학문적 의의--매개학문
성경신학의 정립을 통한 올바른 신관의 확증이 하위 각론적인 신학의 영역에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열매 중의 하나는 바로 기독교 교육학의 새로운 정립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현존의 기독교 교육학은 신학의 정당한 지원을 받지 못한 연유로 말미암아 그것이 지녀야할 학문적 체계성과 의미상의 심오함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 교육의 방법론적 지침이나 원리 정도를 제공해주는 천박한 응용학문이 되고 있다. 아니면 온갖 세속의 일반적인 학문적 개념의 무비판적 수용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교육학이 마땅히 지닐 수 있는 하나님 중심적인 기독교적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을 가져왔다. 그러나 성경신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 교육학은 그와 같은 방법론적 차원의 응용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더더욱 세속학문의 개념을 차용함으로 학문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빈곤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서 계시의 빛에 비추어 모든 만사 만물을 포섭하여 하나님을 배우게 하는 가장 고상하고 심오한 학문이 될 수 있고 마땅히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기독교 교육학의 학문적 위상과 의미는 독특하고 중차대하다. 그것은 성경신학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구현한다. 즉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존재증명과 속성의 드러냄을 통해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것, 즉 기독교 교육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성취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기독교 교육학은 성경신학의 이념을 구체화하는 가장 중요한 학문이다. 성경신학이 궁극학문이라면 기독교 교육학은 그 궁극학문과 총체적인 삶과 세계를 매개하는 매개학문이다. 이때 물론 그 매개의 의미는 하나님을 배워 가는데 있다.
교육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
이런 성경신학의 관점에 의하면 보수신학과 자유주의신학 양자가 안고 있는 기독교 교육학의 문제점을 모두 지양하고 극복한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 교육의 본질과 의미를 ‘ 인간의 현상적인 변화 과정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작정대로 언약 성취해 가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으로 보아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섭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하심과 속성을 택한 성도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보아야 인간의 자율적인 성장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모든 인본주의적인 교육과 확연한 구별이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은 세상의 어떤 교육원리와도 구별되는 독자적인 진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기독교 교육학은 ‘인간이 어떻게 교육해야 바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라는 인간 중심적인 차원의 질문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인본적인 기독교 교육학자들은 인간이 마치 인간을 교육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온갖 인위적인 방법론을 동원하려고 허탄한 시도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의 참된 질문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하나님은 성도에게 어떤 섭리를 통해 거룩한 자기영광을 어떻게 가르쳐주시는가? 이다. 기독교 교육학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사건과 성령의 사역에 의해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에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시다. 이 점에서 기독교 교육학은 세속적 교육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지닌다.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의 우월성
이상의 대안적인 관점에 의해 이루어지는 본 연구는 현존의 기독교 교육학과는 근본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성경적인 논리의 정립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즉 본 연구는 최근 현존 신학의 패러다임과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이라고 하는 관점에 비추어 기독교 교육학의 구조적인 모습을 개관하고 그것의 성경신학적인 정당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 작업의 과정에서 현존 신학의 기독교 교육학 논의가 지니는 인본주의적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그와는 달리 하나님 영광 선포를 목적으로 삼는 기독교 교육학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성경신학적인 입장에서의 기독교 교육학의 관점에 의하면 기독교 교육학의 이론적인 연구는 이제 완전히 근본적인 틀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방법적인 테크닉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인본주의적인 교육의 차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겨냥한다. 이는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와 합치되는 근본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영광의 선포가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 가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모두 교육이라는 의미로 수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기독교 교육학은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존의 신학의 범주에서 실천 신학의 하위 영역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신학의 근본목적을 함축한다. 즉 하나님이 성경 계시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학의 기본 이념이고 취지이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을 계시하시되 언약과 성취의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시고 그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드러내어 보이신다. 성경신학적인 신관과 세계관에 의해서 정립될 기독교 교육학은 현존 신학의 틀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은 성경신학의 하위 신학들(역사신학, 실천신학, 기독교 윤리학, 기독교 정치학, 기독교 역사학, 기독교 사회학, 기독교 물리학, 등등)에 대한 근본 목적과 방향성을 부여한다. 즉 어떤 영역의 연구도 그것이 하나님을 배워 가는데 있어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연구의 목적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기독교 교육학의 정립은 일반 학문의 비판적인 승화와 수렴의 역할을 정당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학문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세계와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분석적인 연구의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것들도 하나님의 일반 섭리 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특별계시의 조망이 없이는 그것들의 연구 결과는 인본적인 인간의 자기 영광을 위하여 쓰여진다. 즉 그런 연구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과 신성의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신학적인 기독교 교육학은 그런 모든 연구 결과들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승화시켜 하나님을 배워 가는 보조적인 자료로 수렴해 갈 수 있을 것이다.
2강 기독교 교육의 역사적 이해
1.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육 2. 중세시대의 기독교 교육 3. 종교 개혁시대의 기독교 교육 4. 고백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5. 계몽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6. 20세기 이후의 기독교 교육 7.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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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모든 학문에 있어서의 역사적 이해의 필요성
모든 학문에 있어서의 역사적 이해 는 학문의 정립을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새로운 학 문의 정립을 목표로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 2000년 기독교 교육의 역사는 전면적으로 재검토 될 필요가 있다. 초대 교회와 종교개 혁 시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반 세속 교육관이 오히려 지배해온 시대라고 볼 수 있 다.
# 오늘날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형성하는 두 사상은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동양사상) 이다. 2000년 기독교 교육 역사는 이 두 사상의 만남과 충돌, 비판 등이 만들 어낸 역사라고 볼 수 있다.
4 16 18 19 20 어거스틴 루터 칼빈 칸트 자유주의 말씀운동
1.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육
1) 초대 교회 시대
# 예수님
1. 하늘의 진리를 쉽게 가르치심--눈높이 교육
2. 실수의 경험을 통해 가르치심--체험교육
3. 삶의 방식을 통해 가르치심----도제교육
4. 제자가 다시 제자를 가르치도록--진리계승의 교육
마태 28장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 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 니라 (마28: 19-20)
# 바울의 교육 활동
1.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가르침--행전
행 11: 26 안디옥 -- 행 18장 고린도에 이르러 일년 육개월을 유 하 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행 19: 8-10 에베소-두란노
2. 전천후 교육--회당, 옥중, 거리, 가정
3. 삶과 교회의 문제와 어려움을 오히려 신앙 교육의 기회로 삼음 바울 서신서
4. 본의 보여 가르침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본을 보여 가르침
5. 지도자 교육에 충실--딤--빌레몬
6. 교육에 의한 진리 계승에 전력투구
(교육에 의한 진리계승의 과정)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솔로몬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님과 12제자
--바울과 디모데, 디도
2) 초기 교부시대
(1) 교리 문답 학교
로마의 이교 문화에 대하여 교회의 교리를 수호할 필요성
(2) 성당 학교--최초의 신학교
로마 제국내에 도시에서 교회가 성장함으로써 감독 제도가 형성되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성당학교가 설립----성직자 양성을 위한 특별 교육
--이 학교로 인하여 사제 계급이 형성---이들 귀족 계층들은 대중과의 괴리 감, 장차 교권주의와 형식주의 혹은 의식주의로 전락
대표적 신학자 -어거스틴--------예정론과 은혜의 강조
그러나 잘못된 자유의지론과 성례를 강조하는 그릇된 교회관
중세 교회는 이성의 건전함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요소와 무속 적인 의식주의의 결합
따라서 교육의 방식이
1. 귀족주의적(엘리트적) 신학교육 2. 의식주의로 대중을 무지몽매하게 만듬
이것이 중세 교회의 타락의 근거가 되었음
2. 중세시대의 기독교 교육
1)교회 내 신학 교육------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근거한 신학과 윤리학이 지배
아퀴나스 신학 대전의 구조 1. 신론 2. 도덕 신학---도덕 종교 3. 성례 신학---의식 종교
(설명) 목표--천국에서의 영원한 기쁨 이냐 지옥의 영원한 형벌이냐?
수단 1. 도덕적 자유의지--공적을 세울수 있다고 봄---율법주의적 요소- 십계명을 도덕법으로 간주
2. 성례전---마술적 작용에 의해 은총을 매개--마술적 요소
둘다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과는 거리가 멀게 됨
3. 맹종적인 믿음----교회가 믿는 것은 믿는다.
반면, 개신교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 혹은 교리에 대한 지식 을 가져야한다.---그래서 교육이 강조됨
2) 대성당학교의 출현
성직자 양성 교육
교회의 종교의식 수행
라틴어 해독을 원하는 소수의 귀족층 성도를 위한 교리교육
3) 성례의 강조---교육의 약화
중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기보다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 되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성례를 강조----말씀 선포와 교육의 중요성이 약화
교인들은 성례의 의미를 전혀 모름------우민정책
사도신경, 주기도문의 암송, 참회의 고백만을 기독교 교육의 내용으로 삼았을 뿐
4) 중세 대학------인문 교육으로 가득참
신학은 이미 성경적인 원리로부터 벗어남
5) 중세의 붕괴의 조짐
르네상스----성경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회복---인간성의 재발견 철두철미한 인본주의 교육
하나님과 천국 보다는 인간과 그 세계에 관심을 두는 인문주의
과학 혁명은 ---창조주보다도 창조된 세계에 더 관심
보편적인 교육에 헌신하지 않음--- 고전적인 언어 사용( 반면 종교개혁 자는 각 나라의 말-자국어를 사용)
3. 종교 개혁시대의 기독교 교육
1)배경과 준비 1. 중세 교회의 부패와 타락 2. 인쇄술 발달 3. 르네상스 (문학과 언어의 연구-성경언어의 연구--에라스무스)
2) 루터-----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 사장이되게 하는 것
1. 독일어 성경 번역---대중교육을 가능하게 함
2. 국가가 의무교육을 실시할 것
3. 가정교육의 중요성---아이들을 위하여 교리문답 작성
3) 칼빈-----기독교 강요--제네바 아카데미
1. 성경의 절대 권위 강조---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기초로서의 성경을 강조
2. 인문주의 교육의 강조---과학은 성경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
3. 전 삶의 영역에서의 하나님 배움의 중요성
루터와 칼빈의 장단점
루터------신학적 사고의 기원에 있어서는 인문주의의 빚을 지지 않음 성경적 철저성을 추구
단점-----포괄적인 학문의 구축에로 나아가지 못함
칼빈----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 중심성 강조,--포괄적인 학문의 구성
에 대한 안목을 가짐--제네바 아카데미--존 낙스
오류 ---인문주의에 빚을 짐---율법이해와 인간론에서 빗나감
4. 17세기 고백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교리 확정의 시대----교리주의의 독소가 생겨남
교리 교육의 문제점----대소요리 문답
일정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근본적인 기독교 진리의 전승에 실패
5. 계몽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17세기 과학 혁명에 의한 과학적 세계관---이신론적 신관
18세기 계몽주의(칸트)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미성숙의 상태를 극복하는 것
미성숙이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지도가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구사할 수 없는 것 이성의 자유로운 구사, 이성의 자율성---계몽주의의 본질
자율적인 인간에게 은총은 부정되고 기도는 --품위있는 행동이 못 됨, 치욕적인 것
합리적인 종교(이신론)----신은 세계를 창조한 다음----세계에 너무 간섭하지 않는 초월적인 신에 대한 신앙뿐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에서 도덕적인 인간이 세운 것과 일치한다.
결국 ----- 하나님 없는 자기교육의 이상을 말하게 됨
18-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계몽주의의 절대적인 영향아래 신의 언급은 있지만 그것은 절대주권자가 아니라---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보증자 정도로 치부
1. 칸트의 인식론
2. 역사주의적 사고방식
3. 도덕주의적 기독교
-----철부철미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교육은 사라지고 칸트의 도덕 철학이
교육의 내용이 되어 가르침--------서구 교회의 종말을 고함
6. 20세기 이후의 기독교 교육
칼 바르트(키에르케고르의 절대적인 영향)
--계시의 절대성과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동시에 강조하는 오류
보수신학의 퇴조----교리교육의 한계
오순절 신학의 만연--------진지한 기독교 교육이 사라짐
7.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교육
반정초주의-----------상대주의--------종교다원주의
로티---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찾을 수 없다.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절대적 진리 --------부단히 가르침으로 더욱 깊은 진리의 깨달음을 얻어 가게 하심
기독교 교육학 3강
Ⅲ. 기독교 교육학의 구조적 개관 1. 기독교 교육의 주관자 2. 기독교 교육의 도구적 주체
기독교 교육학 (4)
3. 기독교 교육의 목적 세속 교육----인간의 자기 완성 성경신학---하나님을 깨닫게 하심---못깨닫게도 하심 행전--- 이사야 29: 9-12 선지자를 어둡게 하심 32: 보게됨
4. 기독교 교육의 소재
5.기독교 교육의 방법
이사야 28장 26절 하나님이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심
소회향, 대회향
이사야 29: 9-12
선지자를 어둡게 하심
32: 보게됨
6. 기독교 교육의 과정
하나님앞에서 숨기지 못함 이사야 29: 15-16
화있을 진저 자기의 도모를 숨기려하는 자여
7. # 기독교 교육학의 장---하나님이 모든 장소를 통해 교육하심 교회와 사회, 가정,
로고스 신학연구원 기독교 교육학 (5강)
Ⅴ. 하나님 교육의 원리적 특징들
1. 영원한 로고스(작정)을 상대적인 개념 혹은 범주인 시간과 공간과 형의 방식을
통해 가르치심
시간---------- 언약과 성취는 역사적인 시간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
공간----------- 이스라엘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영원하신 하나님의 을 전달
형상---------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구약의 육체적인 방식의 성전, 인물, 사건등은
----영적인 진리의 그림자.
2 예정론의 교육적 의의----- 숙명론과의 차이점
앞절의 논의에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자기 보호 장치인 이방 종교의 숙명론은 기독교 예정론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와 설교가들은 기독교 예정을 숙명론과 동일시하여 숙명론이 가진 위험성을 예정론에 귀속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절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기독교 예정론과 이방 종교적 숙명론을 첨예하게 대비시키고 그 차이를 밝혀 보고자 한다.
예정론--하나님 중심적---하나님의 영광 선포---과정에서 하나님을 부단히 배워감 (자기 발견)
숙명론---인간 중심적---인간의 자기 보호 장치--과정에서 자기 변명의 논리 제공
첫째, 기독교 예정론은 예정의 주체이신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반면, 숙명론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을 차단시키는 냉혹한 법칙 내지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셔서 그의 계획과 뜻 또한 영원하다. 따라서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는 인간의 타락과 구원, 그리고 우주의 운행 뿐 만 아니라 미세한 사물의 존재까지를 포함하는 전 포괄적 역사 진행까지 그의 뜻대로 이며 창세 전 그의 작정과 예정대로이다. 그것은 불변하며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영원부터 계획되었으며 역사 과정에서 어김없이 진행된다. 결국 인간구원과 멸망에 관한 예정론이란 영원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속성의 논리적 귀결로서 너무도 자명한 성경적 진리이다.
그런데 숙명론이란 주관자를 인정치 않는 인간 철학의 가상적 논리이며 그 정당성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혹은 근거 자체에 대한 물음을 원천 봉쇄하는 허구적인 이론일 뿐이다. 그것은 주관자를 원천에서 부정하는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논리일 따름이다.
둘째, 기독교 예정론은 역사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사건과 그 사건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제반 섭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는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는 반면에 숙명론은 어떤 사건의 발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허무주의적 성격을 띤다.
예정론을 믿는 성도는 구원이 이미 창세 전에 계획되었고 그 구원이 나에게 적용되기까지의 나의 삶의 모든 주변 상황이 총체적으로 그리고 합목적적으로 경영되어 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도는 출생부터 시작해서 예수를 믿고 나중에 천국에 가기까지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이루어가는 영광의 선포임을 확증한다. 뿐 만 아니라 택한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전폭 의지하는 신앙인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적 섭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의미 있는 섭리적 사건을 깨닫는 성도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의 어떠한 역경과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변의 상황을 감사와 평강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이기적인 나태와 방종에서 깨어나 보다 값있고 진지한 역사적 삶을 형성해 갈 수 있는 신앙적 힘을 얻게 된다.
이런 성격을 지니는 기독교 예정론은 인간의 타락과 죄까지도 하나님의 깊은 경륜 안에 있으며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낮추어 스스로를 자랑치 못하게 함이며, 더 나아가 신앙적인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하게 되는 교육적 의도가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정론을 믿는 성도는 되어져 가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배워갈 뿐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교육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즉 이루어져 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거나 핑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자신을 정직하게 발견하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기도의 삶, 즉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 만을 날이 갈수록 의지하게 되는 신앙의 성숙을 맛보게 된다. 요컨대 기독교 예정론은 인간의 죄와 허물을 합리화시키거나 은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정직하게 인정하게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예정의 본질이란 사랑이 배제된 이방 종교의 냉혹한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은혜의 예정을 신실 되게 지키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예정의 본질을 깨달으면 결코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지 않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허물의 인정이란 용서와 사랑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불변하신 사랑 앞에서의 자기 인정은 진정한 신앙 성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숙명론은 인간의 불행과 죽음의 문제를 대처하는 소극적인 심리적 안전장치로써 위로를 주는 듯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나에게 발생되는 사건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의 길을 차단시킴으로써 삶의 과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하여 결국 역사의식을 박탈함으로 나태와 방종을 가져오게 하는 허무주의적 경향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세상 만사가 인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그리고 그 이유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비인격적 법칙일 따름이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불가항력적인 불행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도피 장치 혹은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합리화의 논리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런 비인격적 합리화의 논리 속에는 인간의 죄와 허물에 대한 자기 성찰,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기도가 자리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숙명론의 논리에 의해서는 참된 인간의 성숙을 보장할 수 없다.
셋째, 기독교 예정론은 예정의 분명한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과 그 결과로 말미암은 성도의 찬미가 있는 반면에 숙명론은 주관자와 과정적 의미가 없기에 그 목적 또한 부재 한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성도를 구원시키기로 예정한신 것은 오직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되어진 것이며, 결국은 그의 영광을 성도에게 드러냄으로 은혜의 영광을 성도로 하여금 찬미케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구원은 자신의 선행과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거저 주시는 바 은혜의 선물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은혜의 복음이며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 예정의 목적이시다.
반면에 숙명론은 주관자가 없기에 숙명의 과정적 의미도 궁극적 목적도 없다. 숙명론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한 인간이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그 목적도 허구적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나 본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
넷째, 기독교 예정론은 인간의 타락과 죄까지도 하나님의 깊은 경륜 안에 있으며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랑치 못하게 함이며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하게 되는 교육적 의도가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정론을 믿는 성도는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거나 핑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자신을 정직하게 발견하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기도의 삶, 즉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만을 날이 갈수록 의지하게 되는 신앙의 성숙을 맛보게 된다. 요컨대 기독교 예정론은 인간의 죄와 허물을 합리화시키거나 은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정직하게 인정하게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예정의 본질이란 사랑이 배제된 이방 종교의 냉혹한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은혜의 예정을 신실 되게 지키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예정의 본질을 깨달으면 결코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지 않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허물의 인정이란 용서와 사랑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불변하신 사랑 앞에서의 자기 인정은 진정한 신앙 성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 종교의 숙명론은 이와 같은 인간의 성숙을 함축하는 기독교 예정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세상 만사가 인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그리고 그 이유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비인격적 법칙일 따름이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불가항력적인 불행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도피 장치 혹은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합리화의 논리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런 비인격적 합리화의 논리 속에는 인간의 죄와 허물에 대한 자기 성찰,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기도가 자리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숙명론의 논리에 의해서는 참된 인간의 성숙을 보장할 수 없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에서 기독교 예정론은 발생론적 기원이나 그 성격에 있어서 허무주의적이며 인간의 자기 합리화의 논리인 숙명론과 본질적인 차이를 갖고 있는 성경적 진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결코 기독교 예정론은 숙명론과 동일시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숙명론이 가진 위험성 - 즉 역사의식의 박탈로 인한 나태와 방종 - 을 기독교 예정론에 귀속시키는 오류는 반드시 타개되어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기독교 예정론이 성도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는 데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 1) 주관자의 유무
예정론----섭리를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구체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하심
2) 과정적인 의미의 유무----교육적인 의미의 유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작정과 예정을 따라 되는 일---의미있음
모든 과정 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배우게 됨--이를 통해 자기의 죄악성을 발견하게 됨---이것이 신앙적인 성장의 과정
그러나, 모든 것이 알지 못하는 숙명의 장난---------과정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 났는지를 묻지 말라
## 숙명론적 발상 예) 하나님이 하게 하셨다---더이상 묻지말라. 나의 죄성, 문제, 미 숙, 혹은 자기중심적인 생각는 없다.
끝없는 자기 변명과 합리화가 발생하고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함
## 예정론적 발상 예) 하나님이 하게 하셨다--왜 그렇게 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깨닫게 하시고 나의 죄악된 판단과 어 리석음을 노출시키는 과정--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깨 닫게 됨
----여기서 신앙의 부단한 성장--끝없는 진리 추구의 역동성, 생명성이 함축되어 있음
“ 내가 다 얻었다 함도 아니요, 다 이루었다 함도 하니라
3) 결과적인 목적의 유무
1. 시행 착오(실수)를 통해 절실하게 배우게 하심
범죄와 용서의 방법
예) 아담,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인구조사, 밧세바
베드로,
바울
탕자 비유
2.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함
( 열매를 맺게 하시는 과정을 중시하시는 하나님----이는 일 보다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게하시는 신앙 성숙이 목적)
1. 애굽---------광야-----------가나안
열흘이면 가는 길을 40년을 걸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나안 자체가 목적이 아님---모든 과정이 하나님을 배워 경외하는과정으로서 긍정 적인 의미를 지님
2. 교회 설립---------------------승리
설립
양육
무장
진리-----생활----------체제
투쟁
유대주의-----세속주의---적 그리스도
긴 긴 연단과 인내의 과정을 거치게 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게심과 우ㅐ대하심을 배우게 됨
3. 단계적으로 성숙하게 하심
신약의 흐름 따라서 자기믿음의 분량대로 살아가는 지혜
서로가 가르치고 배우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살아 가게됨
4. 때리고 싸매심을 통해 깨닫게 하심
율법을 통해 가르치심----도덕 규범이냐? 아니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가르 치려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죽고 사심을 통해
5. 고난과 형통을 병행하여 배우게 하심
6.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심으로 가르치심
7. 교회적인 방식-- 즉,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치심
지체와의 관계가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위로의 방식으로 다가옴
빌-- 성도를 인하여 감사
8. 보이는 일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르치심 9. 시공간과 형상적인 삶의 과정을 거쳐 영원하신 하나님을 배우게 하심
6. 예상 목차
Ⅰ. 서 장 1. 기독교 교육학: 문제점과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 2. 성경신학과 기독교 교육학
2.1 성경신학과 기독교 교육학의 관계 2.2 기독교 교육학의 성격과 목적
3.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의 학문적 위치
Ⅱ. 기독교 교육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비판적 검토 1.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육 2. 중세시대의 기독교 교육 3. 종교 개혁시대의 기독교 교육 4. 고백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5. 계몽주의 시대의 기독교 교육 6. 20세기 이후의 기독교 교육 7.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교육
Ⅲ. 기독교 교육학의 구조적 개관 1. 기독교 교육의 주관자 2. 기독교 교육의 도구 3. 기독교 교육의 목적 4. 기독교 교육의 방법 5. 기독교 교육의 과정 6. 기독교 교육의 이상
Ⅳ. 영원하신 하나님과 계시, 그리고 교육
1. 이 주제의 중요성
2. 영원하신 하나님과 계시
3. 계시와 교육
Ⅴ. 하나님 교육의 원리적 특징들
1. 영원한 로고스(작정)을 통해 가르치심
시간, 공간, 형상
2 예정론의 교육적 의의
숙명론의 차이점
1. 시행 착오(실수)를 통해 절실하게 하심
2.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함
3. 단계적으로 성숙하게 하심
신약의 흐름
4. 때리고 싸매심을 통해 깨닫게 하심
율법을 통해 가르치심----도덕 규범이냐? 아니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가르 치려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죽고 사심을 통해
5. 고난과 형통을 병행하여 배우게 하심
Ⅵ.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의 독자성과 우월성
1.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의 독자성
1.1 성경의 고유한 논리와 틀의 사용 1.2 모든 삶을 통한 하나님 배움의 논리 1.3 기독교 교육학의 근거로 영원성을 도입
2.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의 우월성
2.1 논리적 우월성 2.2 목적상의 우월성 2.3 실제적 우월성
Ⅵ. 결 론
1.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은 오직 성경의 논리와 근거에 의해 정립된다. 2.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은 성경계시의 하나님 교육적 의미를 확인한다. 3. 성경신학적 기독교 교육학은 하나님과 세계(총체적 삶)를 매개하는 매개학문이다.
7. 관련 연구 소주제
1. 성령과 교육--성경신학적 성령론에 비추어본 교육의 문제
오늘날 성령론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보수신학은 구원 중심적인 성령론 ,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주관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성령의 사역을 지엽적인 문제에 국한 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반면에 인간 구원 중심적인 성령론의 한계와 냉냉함에 반발하는 오순절 주의자들은 성령을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진리와 별개로 성도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도구로 간주한다. 즉 오순절 주의 신학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해 주어지는 확신 대신에 인위적이고 비일상적인 체험을 신앙의 확증으로 간주하는 탈선의 길을 걸어갔고 그것을 위해 성령론을 운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은 어떻게 정립될 수 있는가? 그대의 성령론은 기독교 교육과 어떤 의미연관성을 가지는가?
2. 교회와 교육
왜 교회는 교육 지향적이어야 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한국 교회의 일반적 경향은 복음의 내용을 상실해 가는 의식주의화로 치닫고 있다. 그 이유는 결국 성경에 대한 해석의 미숙과 복음 진리에 대한 교육의 부재로 귀착된다. 의식주의화란 가르침과 배움을 통한 깨달음을 배제한 채 형식적인 의식에 참여케 하는 행태를 뜻한다. 이는 기독교의 사멸을 의미한다. 바울이 권면한 대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지 아니하면(딤후 3:14) 기독교는 맹목화되고 무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맹목적인 무속화는 기독교의 영적 생명력의 박탈을 의미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예외 없이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지 아니하는 의식주의화된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그들의 주된 개혁 작업은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러한 교육에의 강조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은 어디에서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쳤고(행 5:42), 바울의 행적을 살펴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는 한 장소에서 몇 년씩 성경을 가르쳤고(행 9:10),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의 도를 가르쳤다고 했다(행 28:23), 바울의 복음증거의 방식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전천후 작업이었다. 옥중에서도 셋방에서도 거침이 없는 활동이었다. 이와 대비되는 오늘날의 예배당 분위기는 어떠한가? 우리에게 습관화된 예배의 의식은 너무도 형식주의적이며 신당에서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이방종교적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의식주의적 교회관을 탈피하는 교육지향적인 교회는 어떤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때의 교회는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3. 종교 개혁자들의 교육사상, 그 기여와 극복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예외 없이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지 아니하는 의식주의화된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그들의 주된 개혁 작업은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즉 종교 개혁자들은 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루터--“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루터만큼 교육에 관한 저술을 한 개혁자가 없다는 것은 흥미롭다. 루터의 전 사역은 하나의 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루터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개혁하는 이 모든 우선적인 개혁작업은 하나의 교육이었다.” ( 황성철 1995, 110에서 재인용)
칼빈--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변증학이나 경직된 교리적인 교의신학 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 들로 하여금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하나님을 배워가도록 배려하고 있는 교육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다. 칼빈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신학 작업과 교육은 상호불가분의 관계였다. 칼빈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그가 죽기 5년전에 만들었던 제네바 아카데미이다. 그는 그 학교를 통해서 교회가 학교의 이미지로 간주했다.
칼빈의 제자 베자는 “ (제네바 대학에서 수학하는 것을)단지 지식만을 위한 것은 아니며, 또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김나지움(gymnasia)에 익숙해 있었던 것처럼 일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은 더욱 더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부하며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교사로서의 직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다.(140 )
칼빈이 생각하고 있는 근본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섬김을 목적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한가지는 고대인들의 사상과 자연과학으로 대표되는 역사와 자연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읽는 신구약 성경을 떠나서 그 자체로서는 전적으로(이 지식에 이르기에는) 적합하지가 못하다. 이러한 지식을 지속적으로 (만물의)창조자시며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분(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적용시키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144)
그러나 이런 종교개혁자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교육관은 충분히 체계적이지 못하다. 단지 교회에서의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성경신학적인 기독교 교육학은 종교개혁자들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발전적으로 게승하여 하나님의 계시사상에 담겨있는 교육사상을 체계적으로 검토한다.
4. 기독교 교육과 기독교 윤리의 관계
인간 행위의 의미를 규범에 근거한 도덕적 실천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계시에 비추어 하나님을 배우는 교육적인 차원으로 간주할 것인가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여기에 기독교 윤리와 기독교 교육의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성도의 일상적인 생활의 영역에서의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는 매우 심각하고 중요하다. 가정 사회, 직장, 문화 등의 생활 영역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기독교 교육은 인간의 변화과정을 중시하고 그 능력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리고 옛사람의 변화 없이는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아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성도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인해 변화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서 점차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과 기독교 윤리는 밀접한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다.
5 기독교 교육학의 관점에서 본 목회-- 교육목회의 당위성과 그 특징
성도가 모이는 교회당은 엄밀히 말해서 이방종교에서처럼 신에게 제사하는 신당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는 교육적 개념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의 교육은 설교뿐만 아니라 성도간의 교제와 교회회의를 포함한 모든 교회 생활의 국면에서 이루어져 간다고 보아야 한다. 성도간의 교제는 서로의 성숙을 지향하는, 즉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풍토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며, 또한 서로에게 유익한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골로새서는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교제를 언급한다(골 3:16). 교회에서의 회의도 실상은 교육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의 회의는 단순히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술적 절차 행위가 아니다. 성숙한 교회는 일 그 자체의 성취보다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배워가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회의는 구체적 일의 결정을 위한 것이며 다시 그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배워감을 위한 것이라는 일련의 목적적인 계열이 성립된다. 이러한 의미 연관 속에서 볼 때 교회 회의는 일 자체의 합리적 처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성숙한 신앙적 회의는 일의 도모와 처리를 위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되 상대방의 의견에 경청함으로써 무엇이 더욱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성찰해 가는 과정이 중요시되며, 이를 통해 보다 성숙된 신앙적 판단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요컨대 교회의 회의도 교육적인 의미 연관 속에서 파악될 때라야 그것의 진정한 신앙적 의미와 목적이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 교회 됨은 설교와 교제 그리고 교회 회의가 모두 서로의 성숙을 돕는 교육적 지향성을 가지고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교회는 모든 임무 수행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는 교육화 작업이 이루어질 때 가장 건전성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6. 기독교 교육과 교회 행정--교회 행정에 있어서의 교육의 중요성
7. 기독교 교육과 설교학
8. 하나님 교육의 원리적 특징들
1. 시행 착오를 통해 절실하게 하심 2.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함 3. 단계적으로 성숙하게 하심 4. 때리고 싸매심을 통해 깨닫게 하심 5. 고난과 형통을 병행하여 배우게 하심
9. 기독교 문화관과 기독교 교육의 관련성
10. 기독교 교육학과 일반 학문과의 관련성
11. 영원과 계시, 그리고 교육
12. 은혜와 죄, 그리고 교육
아이디어
기독교 교육의 새로운 대안 모색 -- 교육적 관점에서 본 성경관과 세계관의 틀에 비추어-- 1. 문제 제기
2. 새로운 대안 모색의 방법적 원리
2.1 교육의 관점에서 본 성경관
2.1.1성경,계시,교육의 의미적 동일성
성경에 대한 정당하고 온당한 이해야 말로 기독교 교육의 이론적 모색과 실천을 위한 근본적인 전제라고 할수 있다. 그동안 기독교 교육에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임이므로 모든 기독교 교육의 원리와
2) 기독교 교육의 근본 틀로서의 세계관
3. 파편적 성경 교육에서 체계적 성경 교육으로
4. 의식주의화된 교회에서 교육지향적 교회로
5. 예배당 중심 신앙 교육에서 전 삶의 영역의 신앙 교육으로
6. 전문 목회자 중심교육에서 전 성도의 교육적 활성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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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교사 세미나
성경이 증거하는 교육의 원리
2000, 1, 23 김규욱 1부 발표
1. 누가
하나님께서 교사( 죄인)를 사용하셔서
2. 무엇을 가지고
성경을 주교재로 하고, 세상(삶의 경험)을 보조교재로
3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정을 담아, 멀리 보면서, 단계적으로 눈높이를 맞추어
4, 어디에서
교회를 주요거점으로 하고, 세상 어디서든지
4. 왜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느끼면서, 그를 영원히 배우고 경외하기 위해서
2부 질의 및 응답
다 같이 --------------------------------------------------------------------
제1강 교회학교의 역사
1. 교회학교의 배경사 1. 헬라(Hella), 로마(Roma)시대 2. 유대인 포로후 시대
2. 중세시대 교회학교 1. 중세시대 전기 1) 학교설립 2) 학교종류
2. 중세시대 후기 1) 기술학교 2) 대학설립 3. 개혁시대 교회학교 1. 종교개혁 직전 1) 문예부흥 2) 신학교육 2. 종교개혁 시대 1) Luther 2) Calvin 3) 교회교육 4) 발전과정 5) 발전결과
제2강 교회학교 개관 1. 교회학교의 중요성 1. 눈 높이 교회교육 2. 효과적인 전도방법 3. 교회의 바른성장 2. 교회학교의 성격 1. 종교교육 기관 1) 일반학교 2) 교회학교 2. 교회 핵심기구 제3강 교회학교 교육 1. 교육의 원리 1. 교육의 내용 1) 근본적 내용 2) 지엽적 내용 2. 교육의 교재 1) 본 교재 2) 부 교재 3. 교육의 주체 1) 예과생 2) 본과생 4. 교육의 주관 1) 주임교수 2) 조교
2. 교육의 목표 1. 존재론적 목표 1)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함 2)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함 2. 결과론적 목표 1) 옛 사람의 구습을 버리게 함 2) 영적 예배의 삶을 살게 함
3. 교육의 방법 1. 구약시대 교육방법 1) 족장시대 2) 왕정시대 3) 포로후기 2. 신약시대 교육방법 1) 예수시대 2) 사도시대 3) 교회시대 --------------------------------------------------------------------------
◎기독교 교육에 대한 그릇된 개념 ▷그릇된 개념-신학교교육(전문인 교육)이나 주일학교교육(어린이 교육)으로 축소 및 환 원 ▷올바른 개념- 성경과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 가장 고상하고 품위 있는 활동
결론
1. 기독교 교육이란 무엇인가?
※모든 삶의 영역의 교육화 작업 ① 인간의 삶과 역사와 우주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소재로써 인간 성숙에 부정적 의미가 전혀 없다.
② 전문가에 의해 특수한 장소, 특정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교육적 체험을 할 수 있다.
2. 기독교 교육에 대한 예리한 안목과 진지한 실천만이 삶의 보람이요, 행복이며, 의미이다.
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단번에 쉽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성숙시키지 않으신다.
② 하나님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공속에 있는 신앙인으로 하여금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숙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서로의 성숙을 위해 도우는 보람을 느끼게 하며 언제나 새로운 차원과 수준으로 향상을 기대하게 하는 진정한 삶의 비젼을 갖게 하신다.
1. 기독교의 특성과 교육
1.1 계시적 종교--절대적 특성 1.1.1 계시의 교육적 의미 --- 성경 계시는 타락한 (눈멀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어 가르쳐 주려는 것 그러므로 계시와 교육은 개념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기독교와 교육은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지님
1.1.2 계시와 성령의 관계 성경 계시의 근본적 교육자는 보혜사 성령이심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성경이 깨달아짐 근거) 사도행전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의 열매는 성령의 전적인 사역, 인간은 귀한 도구로 사용되 어짐.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성령의 주권아래 있음
1.2 인격적 종교 -- 과정적 특성 1.2.1 하나님의 언약사적 계시섭리와 신앙인격의 성숙 기나긴 언약 성취의 역사 진행은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언약 백성의 신앙인격을 성숙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1.2.2 신앙 인격과 교육의 관계 신앙 인격의 성장은 진리의 배움과 더불어 삶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은 본질적으로 평생 교육일 수 밖에 없다. 예) 광야 생활 40
2. 역사적 이해
초대 중세-기독교의 의식화 종교개혁-성경의 중시 교리적 고착화 자유주의 단편적교리의 진리에 의한 양육이 없는 교육의 강조 교육적 생동감 태동 발견 교회의 정치는 교회타락의 계시진리의 재발견과 상실 인본주의 환난가운데서도 원천 교육적 교회관 교육 순수한진리증거
(두레) 왜 교회는 교육지향적이어야 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2절에서 한국 교회의 일반적 경향이 복음의 내용을 상실해 가는 의식주의화로 치닫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이유는 결국 성경에 대한 해석의 미숙과 복음 진리에 대한 교육의 부재로 귀착된다. 의식주의화란 앞의 논의에서 확인한 대로 가르침과 배움을 통한 깨달음을 배제한 채 형식적인 의식에 참여케 하는 행태를 뜻한다. 이는 기독교의 사멸을 의미한다. 바울이 권면한 대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지 아니하면(딤후 3:14) 기독교는 맹목화되고 무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맹목적인 무속화는 기독교의 영적 생명력의 박탈을 의미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예외없이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지 아니하는 의식주의화된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그들의 주된 개혁 작업은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러한 교육에의 강조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은 어디에서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쳤고(행 5:42), 바울의 행적을 살펴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는 한 장소에서 몇 년씩 성경을 가르쳤고(행 9:10),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의 도를 가르쳤다고 했다(행 28:23), 바울의 복음증거의 방식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전천후 작없이었다. 옥중에서도 셋방에서도 거침이 없는 활동이었다. 이와 대비되는 오늘날의 예배당 분위기는 어떠한가? 우리에게 습관화된 예배의 의식은 너무도 형식주의적이며 신당에서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이방종교적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357-358)
이상의 논의에서 성도가 모이는 교회당은 엄밀히 말해서 이방종교에서처럼 신에게 제사하는 신당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는 교육적 개념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의 교육은 설교뿐만 아니라 성도간의 교제와 교회회의를 포함한 모든 교회 생활의 국면에서 이루어져 간다고 보아야 한다. 성도간의 교제는 서로의 성숙을 지향하는, 즉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풍토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며, 또한 서로에게 유익한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골로새서는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교제를 언급한다(골 3:16). 교회에서의 회의도 실상은 교육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의 회의는 단순히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술적 절차 행위가 아니다. 성숙한 교회는 일 그 자체의 성취보다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배워가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회의는 구체적 일의 결정을 위한 것이며 다시 그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배워감을 위한 것이라는 일련의 목적적인 계열이 성립된다. 이러한 의미 연관속에서 볼 때 교회 회의는 일 자체의 합리적 처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성숙한 신앙적 회의는 일의 도모와 처리를 위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되 상대방의 의견에 경청함으로써 무엇이 더욱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성찰해 가는 과정이 중요시되며, 이를 통해 보다 성숙된 신앙적 판단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요컨대 교회의 회의도 교육적인 의미 연관속에서 파악될 때라야 그것의 진정한 신앙적 의미와 목적이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 교회됨은 설교와 교제 그리고 교회 회의가 모두 서로의 성숙을 돕는 교육적 지향성을 가지고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교회는 모든 임무 수행을 통해 교육화 작업이 이루어질 때 가장 건전성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