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의 통로가 되는 사람 본문 / 요한복음6:1-15
얼마 전에 제가 아는 어떤 분과 솔직한 마음들을 잠시 나눈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마음을 다 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분이 고마웠습니다. 그러면서 유안진의 ‘芝蘭之交를 꿈꾸며’라는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감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는 때로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 자주 만나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인생의 동행자, 이런 동역자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6장 5,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때 하나님 마음이 grieve, 슬프고, 아팠다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을 보면 주님은 피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대면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6장 15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지만 대면하기 싫은 신 것입니다. 혼자 산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님이 아브라함처럼, 노아처럼 당신의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만나고 싶어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대견스러워하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기적의 통로가 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변에 세상과 육적인 것을 흘러가며 조장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과 축복과 하나님의 기적을 흘러가게 하는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기적을 흘러가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는, 인간적인 계산을 내려놓고 기도할 때 기적을 허락하십니다.(5-7절)
주님의 말씀과 표적 등을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시간이 늦어가고 그들에게는 먹을 양식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무리들의 형편을 보시고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빌립은 아주 똑똑한 친구입니다. 순식간에 그 머리를 회전시켰습니다. 1인당 식사비용 곱하기 참석자 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떡으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일당입니다. 그래서 6개월 정도의 월급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루 임금을 6만원 정도로 생각하면 약 천이백만원이 필요하다고 보고를 한 것입니다. 즉, 계산해보니 ‘안됩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빌립의 일반 사회적 계산 방법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빌립적 사고방식은 기적을 일으키는 통로가 될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음의 방법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것이 신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자기 계산적인 사람은 그 선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상식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성전 밖에 나면서 앉은뱅이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명령을 합니다.
여러분 이 앉은뱅이가 이 때 ‘나는 오랫동안 앉은뱅이로 있었어. 그러므로 일어서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어. 의학적으로 맞지 않아’ 등등 자기 머리를 돌리면서 계산하였다면 그 날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통한 말씀이기에 그저 단순하게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신뢰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인들과 교회에 왜 능력과 기적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입니까? 많은 위원회 조직이 있습니다. 당회 등 많은 회의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전부 자기 경험과 머리에 근거한 것이 많습니다. 실제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며, 밤이 새도록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 와 성을 포위하였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회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역사 하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상하니라”(고전1:25)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고, 지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작은 것 중에 가장 작은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작은 것으로 역사한다고 하더라도 큰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내 계산과 계획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담을 수 있습니까?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생각대로, 이성으로 하면, 우리 계산한 자원으로 무엇을 하면 그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고, 상식적인 신앙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면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우리와 차원이 다르신 분이십니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다니지만 우리 판단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이성과 계산을 내려놓을 때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판단과 계산으로는 ‘늘 안된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바라보면 기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홍해를 앞에 두고 사람들과 회의를 한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결정을 하겠습니까? 안된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자고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앞두고 침묵하고 돌 것인지 여부를 의논을 한다면 무슨 결론을 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안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계산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그곳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얼마 전에 청년부에서 월 얼마 예산을 책정해주면 거기에 맞추어서 행사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거꾸로 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계획하라. 그러면 필요한 예산은 하나님이 주신다. 예산에 맞추어서 일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 또한 그 사명을 성취하도록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이런 믿음의 고백으로 왔습니다. 주님은 넉넉하게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산해놓고가 아니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안우성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의학박사입니다. 부산 인제의대 병리학 교수를 역임하고 미국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이 대학병원에서 병리학과 내과전문의를 수료한 뒤 현재 LA 근교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면서, 트리시티 메디컬센터 내과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엘리트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최근 쓴 책이 있습니다. [안수로 병 고치는 내과 의사] 이분은 환자 한사람 한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의사입니다. 간절한 마음의 소원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에 의해 기적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된지 25년 만에 희한한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손을 얹고 기도했을 뿐인데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체험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성경에 기록돼 있는 일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찿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나” (마7:7-10)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육개월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7-18) 여러분은 기도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기도가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어느 5층짜리 건물 4층에 교회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미 5층에는 술집이 들어있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는 상관이 없었지만, 주일저녁예배와 수요예배, 금요 철야 때 4층 교회와 5층 술집에서 서로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라고 찬송을 하면 “이름도 몰라도 성도 몰라..”라고 간들어지게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라고 하면 “친구여 모습은 어디 갔나 그리운 친구여...” 장단에 맞추어서 노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끔은 세상적인 집사님은 가사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예배들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 어려움을 겪은 후에 목사님이 교회 앞에 선포를 하고 온 교회와 더불어 1달 작정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채 1달이 되기 전에 5층에서 불이나 술집은 까맣게 타고, 4층인 교회는 커튼1장도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술집이 망하기를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술집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여 목사님은 할 수없이 경찰서 조사계로 가시게 되었답니다. 경찰서 조사계장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술집사장님은 목사님께서 기도하셔서 술집에 불이 났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기도한것은 사실입니다만, 기도한다고 불이 났겠습니까?\" 그러자 조사를 진행하던 조사계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야기합니다. \"술집사장은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믿던데...정작 기도하신 목사님은 기도해서 불이 난리가 있냐고 하시니...\" 수사의 결론은 이렇게 났습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목사님이 기도했다고 해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음..\"
여러분, 우리의 작은 계산과 방법들을 내려놓고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기적들을 경험하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주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순종하는 자를 통해 기적은 일어납니다. (마14:16,8-9)
빌립의 계산적인 모습과 달리 목자의 마음을 가진 안드레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의 오늘의 행동에 대하여 의심하는 부분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 전체를 통해서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안드레에 대한 기록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삶,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했을 때 안드레는 지체하지 않고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수제자가 될 인물인 자기의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를 하였습니다. (요1:42) 요한복음 12장 20-22절에 보면 이방인인 헬라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세계복음화의 문을 여는 사역을 하게 되어집니다.
그의 주님을 향한 삶은 항상 긍정적이었습니다. 믿음의 순종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안드레의 모습은 믿음의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할 때 보리떡 5개와 작은 물고기 2마리를 가진 소년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온 것입니다. 문제들이 있을 때 주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님께로 온 것입니다. 이 적은 것이 수천명의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에서는 무의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다른 분이라는 주님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것입니다. 조용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을 때 하나님은 안드레를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사과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왕의 우상숭배의 명을 순종치 않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지기 직전에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단3:17) 이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살아계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성공한 이 시대의 사람들]이란 책에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국내 첫 4회 연속 직선 총장이 된 분이 있습니다. 숙대 이경숙 총장입니다. 숙대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을 때 총장으로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미국 유학 시절 선데이 크리스쳔으로 교제와 사교의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토레이 신부님을 통해 신앙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별 어려움 없이 지낸 분이라 하나님께 부르짖거나 ‘하나님 없이는 못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한 적이 없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총장이 된 후 고종황제가 준 학교 부지가 관리 소홀로 국유지로 변해 버렸고, 건물들은 불법 건물로 낙인 찍혀 벌금을 물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을 한다고 총장실을 점거하고 모두 총장만을 비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 1000억원이 필요하고 모금을 해야한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허황된 생각 비아냥거림을 당했습니다. 인간적인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때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를 하였습니다.
이때에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께 총장직을 내어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숙대 총장이 되셔서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로 만들어 주세요. 저는 앞으로 하나님의 심부름을 충실히 이해하는 청지기 역할을 담당할 게요. 보잘 것 없는 저를 하나님께 재물로 드립니다”
이경숙 총장님이 삶을 하나님께 맡겨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능성을 신뢰할 때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였습니다. 학교 부지가 공원용지에서 해제가 되어지고, 넘치는 기부금과 일반대학이지만 교문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시니라”(수1:9)을 새겨놓은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문들을 초청하기 위해 힐튼호텔에 2006명분을 준비하고 기도를 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1600백만원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리를 만들어드렸습니다. 그런데 2005명이 온 것입니다. 62억원의 학교를 위해 작정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이분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2006명을 채우는 마지막 한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저 기쁘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진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도하여 주세요” 강남희 집사님의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집사님,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를 하고, 설교를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하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 2시 경에 건강한 아들을 주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저는 강남희 집사님이 처음 우리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고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모습이다라고 생각들때가 많았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불신의 주변 가까운 친지 중에서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 그 때 이분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혹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아이가 없는 것이라도 저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비슷한 또래의 분도 알고 있습니다. 교회도 다닙니다. 그러나 예배보다 유명한 한약방이 더 중요했습니다. 나쁜 것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계획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도 임신을 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도하며 기다린 강집사 만이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가능성에 대하여 우리의 이성으로 경험으로 막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두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하실 수 있느니라”
지금은 부족하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면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서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남편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놓으십시다. 하나님이 역사하면 귀한 일꾼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두실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역전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치료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말씀운동의 흐름에서 자랐습니다. 전통적인 장로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러기에 신유은사 이런 부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심겨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치유와 능력에 대하여 열어놓기로 하였습니다. 때론 기도하면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때론 침묵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계속하여 기대하기로 하였습니다. 과거에 대해서도 주님께 맡겨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피묻은 손으로 우리의 안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면 얼마든지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 이런 순종을 통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셋째는, 자아가 말씀 앞에 굴복하는 자를 통해 기적은 일어납니다. (14-15절)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의 무리를 먹이는 기적을 보이자 사람들이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18장 15절에 나온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백성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먹였던 것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처럼 제2의 출애굽, 제 2의 유월절 구원을 예수님이 이루실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단지 정치적 메시야, 물질주의적 구원관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정치적 자유나 물질의 공급이 참된 행복과 영생과 구원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을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사람들이 종이 아닌, 예수님이 사람들의 종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주님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구세주이시며 또한 주인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주님도 우리의 탐욕의 도구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기적은 주님과의 만남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참된 기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자아와 욕심이 죽어질 때 주님이 주인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정한 기적은 일어나게 됩니다.
2006년 6월 26일 국민일보에서 권오승 공정거래 위원장의 간증을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잘 다녔지만, 서울 법대에 들어가면서 학생운동과 사회과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교회에는 아내 때문에 나가지만 찬송의 기쁨도, 설교의 은혜도 없었습니다. 가고 싶지 않지만 안 가면 불안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교회에 선심 쓰듯 나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설교는 허무맹랑하게 들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설 때면 설교 비평가가 되어서 설교 내용을 난도질을 했습니다.
“아까 목사가 말한 그 내용은 목사가 사회과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역사의식도 없고 설득력도 없어 한마디로 오늘 설교는 지나치게 과장됐고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얘기들 뿐이라”라고 독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없는 것을 모르고 무턱대고 남 탓, 교회 탓만 하면서 20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 중에 “신앙은 내 힘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터치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e듣고 귀에 거슬려서 예배가 마친 뒤에 목사님을 쫓아가 “목사님, 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셔야죠. 그냥 설교를 끝내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 아닙니까?”따졌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 그런 질문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터치를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는 주님께 굴복하시는 일만 남으셨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굴복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굴복이란 주님의 말씀에 대한 굴복과 순종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기 부인입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이날 이후로 권오승이란 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희대 교수로 재직 중에 모교인 서울대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기고 깊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경쟁자도 많고 쉽지도 않을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언제 한번 자신의 개인의 문제로 남에게 부탁해본 적이 없었던 자아가 강했던 사람이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 앞에서 철저하게 죽어 가는 순간 하나님이 이 분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루는 자기를 포기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내 아들아 지금까지 내가 저를 지켜 준데 다 은혜가 아니더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무런 은혜가 없다니...” 형언하기 힘든 목소리 뒤로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펑펑 울게 되어집니다. 이분의 삶이 180도 변하게 됩니다. 서울법대 교수직로 얻게 됩니다. 수많은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직분과 일들을 하게됩니다. 공정거래 위원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맡기신 달라트와 자신의 에너지 100%를 이 세상에서 소모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분의 소원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과 모든 삶의 영역에 주님이 진정한 왕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왕이십니까?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 앞에 여러분의 삶의 태도와 생각과 자아가 굴복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겉은 종교적인 모습으로 있지만 우리 안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는 알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말씀 앞에 굴복되어지면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십니다. 그곳에 기적이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는 한 환우를 심방 갔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어 드렸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성도님! 이제 성도님이 죽으셔야만 합니다. 그 모든 자아가 죽고 이제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의 치유는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 앞에 굴복되어지면 삶의 회복들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