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적 인가?


-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적인가?

 충정교회  강의; 옥 성석 목사

 2008-09-14 오후 8:46:00  9

 

 

생수의 강 / 9월 7일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적인가?

(행2:1~4절)

■ 사도행전 2장 1절 ~ 4절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2,000년 교회역사를 되돌아보면 시대마다 중요한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독론, 교부시대에는 신론(삼위일체), 종교개혁시대에는 구원론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주된 관심사는 \'성령(聖靈)\' 입니다(행2:17).

성령에 관한 논쟁의 핵심은 \'오순절성령강림이 그 때 한 번으로 끝났는가? 아니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 중지되었는가? 아니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가?\' 하는 논쟁으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의 사람들을 \'은사중지자\', 뒤의 사람들을 \'은사지속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물론 중도적 입장도 많습니다. 2,000년 교회역사에서 19세기까지는 \'은사중지론\'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성경에 일어났던 일들, 이른바 은사들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는 \'은사지속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상고해야 합니다(행17:11).

이 오순절사건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가 시작되고, 나아가 기독교가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속된 교파와 개인의 취향을 넘어 무엇보다 ‘성경’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행2:1-4)의 오순절성령강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유월절부터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던 자들에게 임했던 것으로, 그 때, 그 장소, 그 사람들만 경험했던 사건이란 점에서는 분명히 단회적입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이 나타난 현상(행2:2-3),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임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는데, 이런 현상은 성경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성령강림은 분명히 단회적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성령강림\' 논란의 핵심은 오순절사건의 그 내용, 즉 결과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순절사건의 징표가 \'방언(方言)\'이라고 주장합니다(행2:4). 그래서 방언을 하는 사람만이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하지만 오순절성령강림의 징표가 소위 학습을 통해 체득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방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행2장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었기 때문입니다(행2:6, 8).

나아가 오순절성령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방언을 했다기보다는 예수의 \'제자들\'(행2:6-7)만 방언을 했다고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 옳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제자들을 지칭하는 별명이었습니다(행1;11, 막14:70). 때문에 방언이 오순절사건의 핵심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순절사건의 핵심은 \'성령충만(聖靈充滿)\'입니다. 그곳에 있던 자들은 예외 없이 성령충만함을 입었습니다(2:4). 그들 중에 방언과 병 고침, 한 번 설교하니 3,000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저들은 이미 예수를 믿고 있던 자들, 나아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개하고(행2:38), 말씀을 듣고(행1:15) 전심으로 기도할 때(행1:14), 오순절성령강림의 역사가 그 모인 무리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사건의 핵심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그렇다면, 오순절성령강림 사건의 흔적을 이후에는 전혀 찾을 수 없단 말인가?\' 이 질문에 사도행전은 증거합니다. 행4장은 모인 곳이 진동하고 모인 무리가 다 성령충만했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또 하나의 성령충만 사건을 보여줍니다(행4:31).

행6장에서 교회를 섬길 직분자 선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성령충만이었습니다(행6:3, 5). 그리고 성령충만한 사람을 제삼자가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행6:8, 10, 7:55). 행8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하니 성령충만함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던 시몬이란 자가 이를 목격했습니다(행8:17, 8:18).

행10장에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대하여 그 발아래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습니다(행10:25, 44, 45, 48). 약 30년 후, 행19장에서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찾아가 성령을 받았는지 묻습니다(행19:2).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말씀을 전하고 안수를 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행19:6-7).

오순절성령강림 사건이 오순절에, 그 다락방에서, 베드로를 위시한 그 사람들에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분명히 단회적입니다. 하지만 오순절성령강림의 그 내용과 결과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같은 사건들이 다른 지방에서도, 시차를 두고 일어났고, 성령충만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다양했습니다.

저들이 성령충만을 받으니,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저들에게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만일 이 오순절사건이 단회적이라면, 그 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교회의 역사는 이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행1:8절의 말씀은 그 때 오순절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말씀이기에 오늘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20)\"는 주님의 명령도 그 현장에서 말씀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명령이므로 오늘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만일 성경에 나타난 은사가 중지되었다면, 우리는 기도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 갇혀있는 예수를 믿고, 장차 천국에 갈 것만 기대하며, 이 땅에서는 아무런 소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의 은사도 중지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 하나님, 그 분은 \'영원한 현재\'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순절사건 자체는 분명 단회적이지만, 그 핵심인 \'성령충만\'은 분명 그 후, 초대교회에 이어졌고, 2,000년 교회역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연속적인 사건의 첫 출발점임에 틀림없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오순절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가 오순절의 주역이 되기를 원하십니다(욜2:28-30). 내 힘으로 할 수 없지만 \'오직 신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슥4:6). 성령충만함을 입으면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옥성석 목사(충정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