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총체적인 박해[2]

독일에서의 총체적인 박해 (2)

바이블파워     

    제국의 병력이 틸리 백작의 지휘하에 색소니에서 자행한 잔악무도한 행위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을 반 목졸라 죽여 놓고 다시 살리고, 또 반 목졸라 죽여 놓고 다시 살리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기, 날카로운 바퀴들을 손가락과 발가락 위에 굴리기, 바이스(vise)로 엄지 손가락을 꽉 죄기, 불결하기 짝없는 것들을 목구멍 아래로 억지로 집어 넣기, 그런데 이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숨막혀 죽었다. 머리 둘레에 밧줄을 있는 힘껏 잡아 매어 눈, 코, 귀, 입에서 피를 분출시키기, 불붙은 성냥들을 손가락, 발가락, 귀, 팔, 다리 그리고 심지어 혀에까지 단단히 고정시키기, 입에다 화약을 집어넣고 그것에 불을 붙여 머리를 산산조각으로 날려 버리기, 화약이 든 자루를 신체의 모든 부위에 묶어서 그것으로 몸통을 폭파시키기, 살이 많은 부위에 밧줄을 꿰어 앞뒤로 쓱쓱 잡아당기기, 송곳바늘과 나이프로 살갗에 상처 내기, 철사를 코, 귀, 입술 등에 찔러 넣기, 프로테스탄트들을 거꾸로 매달아 머리가 불 위로 오게 하여 그들을 뜨거운 연기로 바싹 말려 죽이기, 팔이 빠질 때까지 그것으로 매달아 두기, 갈비뼈를 갈고리로 꿰어 매달아 두기, 배가 터질 때까지 물 먹이기, 수많은 이들을 뜨거운 화덕에 굽기, 양발에 역기를 고정시킨 후 그 중 몇 개를 도르래로 끌어올리기, 목매달기, 질식시키기, 불에 굽기, 칼로 찌르기, 기름에 튀기기, 사지 찢기, 강간하기, 배를 쭉 잡아찢어 열기, 뼈 부러뜨리기, 살을 줄로 갈아 덕지덕지 떨어뜨리기, 야생마들로 잡아 당기게 하여 찢어 죽이기, 물에 빠뜨려 죽이기, 목졸라 죽이기, 불태우기, 석쇠로 굽기, 십자가에 못박기, 가두어 두기, 독극물 먹이기, 혀, 코, 귀 등을 잘라 내기, 사지를 톱으로 썰어 내기, 난도질하여 토막내기 그리고 발뒤꿈치를 잡아당겨 거리 이곳 저곳을 질질 끌고 다니기.
    극악무도한 잔인한 행위들은 틸리 백작, 즉 자기 혼자만 그것들을 저지른 게 아니고 심지어 병사들에게까지 명령을 내려 그것들을 실행토록 한 그 틸리 백작의 기억에 영원한 오점이 될 것이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거기엔 가장 무시무시한 만행과 잔인한 약탈이 뒤를 이었다. 그가 진군하는 곳에 으레 굶주림과 큰 화재가 따라다녔던 것은 그가 가져갈 수 없는 모든 식량을 파괴시키고 마을들을 떠나기 전에 그것들을 전부 불태웠기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그의 정복이 남겨 놓은 것은 하나같이 살인, 가난 그리고 황량함뿐이었다.
    그들은 고령의 경건한 목사를 발가벗겨 탁자 위에 똑바로 묶어 놓고서 커다랗고 사나운 고양이를 그의 배 위에 매어 놓았다. 그후 그들은 그 고양이를 쿡쿡 찌르고 못살게 굴었는데, 이에 견디다 못해 성이 오를 대로 오른 그 짐승은 그의 배를 사정없이 할퀴고 찢어 열어 창자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또 다른 목사와 그의 가족이 이 짐승만도 못한 괴물들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와 딸을 강간했고, 아직 젖도 떼지 않은 그의 아들을 예리한 창날 위로 내던졌다. 그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장서를 가지고 나와 그의 주위에 쌓아 놓고 불을 붙였으며, 그는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 타 들어갔다.
    헤세-카셀(Hesse-Cassel)에서는 몇몇 병사들이 주로 미친 여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병원으로 쳐들어갔는데, 그들은 그 가엾은 비참한 여인네들을 모두 발가벗겨 길거리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해 놓고서 그들을 재미있게 구경하다 모두 죽여 버렸다.
    포메라니아(Pomerania)에서는 어느 작은 마을에 들어간 몇몇 황제의 병사들이 젊은 여인들과 열 살 이상의 소녀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그들은 그 뒤 그들의 부모들을 둥그렇게 세워 놓고서 그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강간하는 동안 시편을 노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안 그러면 일이 다 끝난 후에 아이들을 잘라 토막내 버리겠다고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그후 그들은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모든 기혼 여성을 붙잡아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아이들을 이미 불붙여 놓은 큰 불로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바셀(Basel)에 거주하는 일단의 상인들이 스트라스부르크(Strassburg)의 큰 시장에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들을 만난 백작 틸리의 병사들이 그들을 둘러싸려고 했다. 그러나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내팽개치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붙잡힌 10명은 목숨을 살려 달라며 손발이 다 닳도록 싹싹 빌었지만, 병사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살해했다. “네 놈들은 이단인 주제에 돈도 안 갖고 다니니 이제 그만 죽어 주셔야겠어.”
    같은 병사들이 2명의 백작부인을 만났는데, 그들은 다른 젊은 부인들과 그들 중 어떤 이의 딸과 함께 랜도 마차(landau, 포장이 앞뒤에서 처지는, 좌석이 마주 있는 4륜 마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병사들은 그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었으나, 그들에게 꼴사납기 짝없는 추잡한 행위를 저질렀다. 그들은 그 여인들을 완전히 발가벗겨서는 마부에게 계속해서 몰고 가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 수단을 강구하여 중재에 나서자, 드디어 독일에 평화가 다시 찾아들어 프로테스탄트들은 여러 해 동안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분란이 팔츠(the Palatinate, 독일 라인 강의 서안 지역)에서 고개를 들었고,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야기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성령 성당(the Church of the Holy Ghost)은 프로테스탄트들과 로마카톨릭 교도들에 의해 수년간 다음의 방법으로 공평하게 공유되어 왔었다. 즉 프로테스탄트들은 성당의 본당 회중석에서 신성한 예배를 드리고, 로마카톨릭 신도들은 성가대석에서 미사를 거행했던 것이다. 이것이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온 관습인 건 분명하지만, 팔츠의 선거후는 마침내 그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이델베르크는 그의 거주지이고 성령 성당은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도시에 있는 대성당이니, 신성한 예배는 그가 속해 있는 로마카톨릭의 의식들에 따라서만 드려져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후 그는 프로테스탄트들이 그 성당에 출입하는 걸 금지시켰고, 교황주의자들이 그 모든 것을 점유토록 만들었다.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프로테스탄트 권세가들에게 호소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이에 심히 격분한 선거후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를 발매 금지시켰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권세가들은 선거후가 이런 식으로 웨스트팔리아(Westphalia) 협정의 한 조항을 어겼기 때문에 그에게 사죄를 요구하기로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레이트 브리튼, 프러시아(Prussia), 네덜란드(Holland) 등의 궁정에서는 선거후에게 대사들을 보내어 그가 처리한 일들이 불법이란 것을 주장했고, 또 만일 그가 팔츠의 프로테스탄트들에 대한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도 그들의 로마카톨릭 백성들을 가혹하기 짝없이 다루겠다고 위협했다. 프로테스탄트 권세가들과 선거후의 권세가들 사이에 격렬한 언쟁이 수없이 오갔으며, 이 일들은 다음의 사건으로 인해 그 횟수가 부쩍 늘게 되었다. 즉 네덜란드 대사의 4륜 마차가 헤세 공이 보낸 외교관의 집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성체가 어느 병든 사람에게 날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부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성체 행렬을 따르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그를 마부석에서 끌어내려 억지로 무릎을 꿇렸다. 프로테스탄트 대사들은 한 국가 대사의 종에게 가해진 이와 같은 폭력을 두고 심히 격분했으며, 이러한 불화를 훨씬 더 악화시키려는 듯, 프로테스탄트들은 그 대사들에게 3개의 추가적인 불만 섞인 항목들을 제출했다.


    1. 성 크리스핀의 미사(the Masses of St. Crispin)에 기부하기를 거절하는 모든 프로테스탄트 구두제조인들을 군사적으로 처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2.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카톨릭의 성일(聖日)들에 일하는 게 금지되어 어기면 매우 과중한 벌금을 물게 되었는데, 이것은 한창 일손이 바쁜 추수 때라고 예외가 아니기에 커다란 불편을 야기시켰고 공공 사업에도 상당한 손실을 가져왔다.
    3. 몇몇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이 그들의 교회를 빼앗겼는데, 이는 그것들이 원래 로마카톨릭 신도들에 의해 기초가 놓여 세워진 것이라는 구실하에 이루어졌다.


    마침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프로테스탄트 대사들은 선거후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군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그가 그들의 항의에 대해 보여 준 불공정한 처사를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는 이 위협에 정신이 버쩍 들었는데, 이는 자신을 위협하는 국가들을 대항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령 성당의 본당 회중석을 프로테스탄트들에게 회복시키기로 동의했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문제를 원상으로 되돌리고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이 빼앗겼던 그들의 교회를 그들의 소유로 해주었는가 하면,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카톨릭 성일들에 일할 수 있게 하고, 그 어떤 사람도 성체가 지나갈 때 무릎 꿇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프로테스탄트 백성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이 간섭할 권리가 없는 다른 상황을 이용했다. 다시 말해 하이델베르크를 완전히 저버리고 모든 재판소를 로마카톨릭 교도들만이 거주하고 있는 맨하임(Mannheim)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곳에 새 관저를 지어 자신의 거처로 삼았으며, 맨하임은 하이델베르크의 로마카톨릭 교도들이 밀려들면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한편 하이델베르크의 프로테스탄트들은 가난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너무도 궁핍해지는 바람에 그들의 고국을 떠나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여왕 앤(Queen Anne)이 다스리던 영국은 자신에게 들어온 이 수많은 난민들을 애정 어리게 받아주었으며, 그들은 공적, 사적으로 쏟아지는 기부로 말미암아 참으로 인정 넘치는 도움을 받았다.
    1732년 3,000명 이상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살즈부르크(Salzburg) 대주교 관할구에서 쫓겨나 웨스트팔리아 조약에 위배되는 일을 당했다. 무언가를 챙겨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한겨울의 혹한 속에 몸에 걸칠 충분한 옷도, 식량도 없이 저 멀리로 길을 떠났다. 이들에게 시정책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나라들이 그들의 대의명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프로테스탄트 국가들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은 양심에 상처를 입지 않고 그들의 신앙을 자유로이 만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로마카톨릭의 미신이 죄어 오는 속박과 교황이 휘두르는 폭정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 <폭스의 순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