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자행된 박해들[1]

네덜란드에서 자행된 박해들 (1)

   

    복음의 빛이 네덜란드에서 성공적으로 비추이자, 교황은 황제를 자극하여 프로테스탄트들에 대한 박해를 개시하게 했다. 이 때 수천 명이나 되는 이들이 미신에 사로잡힌 악의와 짐승 같은 편협함에 희생되었으며,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다음과 같았다.


    경건한 프로테스탄트 과부 웬델리누타(Wendelinuta)는 그녀의 신앙 때문에 체포되었는데, 그때 몇몇 수도승들은 애써 그녀를 설득하여 신앙을 철회토록 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를 이길 방도를 찾지 못하던 차에, 그녀와 친분이 있는 한 로마카톨릭 부인이 그녀가 갇혀 있는 지하 감옥에 들여보내 주면 좀 고생스럽더라도 있는 힘껏 노력하여 그 죄수가 개혁 신앙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하 감옥으로 들여보내진 그녀는 자신이 떠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웬델리누타, 만약 우리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거든, 최소한 당신의 가슴 속에서 남몰래 고백하는 것들을 지켜서라도 생명을 연장하려고 노력해 봐요.” 이에 그 과부는 이렇게 대꾸했다. “부인, 당신은 자신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모르시는군요.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신앙 철회를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그녀의 재산이 몰수당하고 그녀 자신은 화형을 선고받았다. 형장에서 한 수도승이 그녀에게 십자가를 들이밀며 하나님께 입 맞추고 그분을 경배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그녀는 다음처럼 대답했다. “내가 경배드리는 분은 하늘에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지, 그 따위 나무 쪼가리로 만들어진 신이 아니다.” 그녀는 그후 처형되었다. 하나 이전에 언급했던 그 로마카톨릭 부인의 부탁으로 그녀에게 호의가 베풀어졌는데, 그녀는 불이 나뭇단에 놓이기 전에 먼저 목졸려 죽임을 당해 불에 타는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프로테스탄트 목사가 콜렌(Colen)에서 불태워졌고, 니콜라스(Nicholas)라는 이름의 안트워프(Antwerp)의 상인은 부대 속에 넣어져 그것의 주둥이가 봉해진 채 강에 던져졌다. 학문을 갈고 닦던 피스토리우스(Pistorius)라는 학생은 광대 복장을 하고서 네덜란드인 마을의 시장으로 끌려가 불길에 넘겨졌다.
    참수형에 처하라는 선고가 16명의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떨어진 후, 한 프로테스탄트 목사에게 형 집행에 참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 신사는 자신의 임무를 그야말로 적절하게 수행하여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그들의 구세주 안에 있는 자비로 그들을 위로했다. 그 16명이 참수되기가 무섭게 집정관이 형 집행인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직 한 차례 더 남아 있다. 너는 그 목사의 목을 잘라야 한다. 그처럼 빼어난 훈계가 그의 입에 담겨 있고 그토록 칭찬할 만한 본보기들이 그의 눈앞에 있는데, 이보다 죽기 좋은 시기가 또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비록 수많은 로마카톨릭 교도들이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하는 불필요한 잔인함에 혀를 차며 직접 비난의 목소리를 높혔지만, 그는 명령에 따라 참수당하고 말았다.


    살즈부르크의 목사인 조지 셔터(George Scherter)는 그의 양무리에게 복음의 지식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감옥에 넘겨졌다. 그는 감금되어 있는 동안 믿음의 고백을 글로 썼는데, 얼마 안있어 이 일 때문에 처음엔 참수하고 그 다음엔 불태워 재로 만들라는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형장으로 가는 길에 구경꾼들에게 다음같이 말했다.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죽는다는 것을 당신들이 알 수 있도록 한 가지 표적을 보여 주리이다.” 이것은 실제로 아주 보기 드문 방법으로 증명되었는데, 아닌게아니라 그의 머리가 잘려 떨어진 후 잠깐 동안 배를 땅바닥에 대고 있던 몸통이 갑자기 등을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눕더니 오른발을 왼발 위로 엇걸고 오른팔도 왼팔 위로 엇걸어 이런 식으로 불길에 넘겨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루비아나(Louviana)에서는 퍼시널(Percinal)이라는 학식있는 남자가 감옥에서 살해당했고, 저스투스 인스파그(Justus Insparg)는 루터의 설교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참수당했다.
    브루셀즈(Brussels)의 칼장수 질레스 틸레만(Giles Tilleman)은 인정이 가득하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이유로 다른 이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수도승들은 그가 신앙을 부인토록 설득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번은 우연히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왜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난 단지 간수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오. 만일 내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더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내가 없어진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을 거요.” 화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순교를 통해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렸다. 형장에 상당히 많은 양의 나뭇단이 준비된 것을 알아차린 그는 그것들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있어도 충분히 날 태워 없앨 것이오.” 형 집행인은 불이 붙여지기 전에 그를 목졸라 죽일 것을 제안했으나, 그는 자신은 불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그에 동의하려 하지 않았고, 또 실제로도 불길 가운데서 너무도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그가 그 뜨거운 불길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1543년과 1544년에 플랑드르(Flanders) 전역에 걸쳐 매우 난폭하고 잔인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추방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수형, 익사, 감금, 화형, 고문대로 죽거나, 생매장당해 죽임을 당했다.
    열성파 프로테스탄트 존 드 보스케인(John de Boscane)은 그의 믿음 때문에 안트워프 시에서 체포되었다. 재판석에 선 그가 자신은 개혁 신앙을 소유한 자라는 고백을 확고부동하게 관철해 나갔기 때문에 그에게 즉결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집정관은 그를 공개적으로 사형시키기를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가 심히 아낌없는 마음씨로 평판이 자자했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과 타의 모범이 되는 경건함으로 거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적이고 은밀한 형 집행이 결정되었고, 그를 감옥에서 익사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형 집행인은 명령에 따라 그를 커다란 욕조 속에 집어넣었지만, 보스케인이 격렬히 몸부림치며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바람에 그를 단검으로 찌르고 또 찔러 죽이고 말았다.
    또 다른 프로테스탄트 존 드 뷔손즈(John de Buisons)는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은밀히 체포되어 안트워프에서 남몰래 처형되었다. 그 도시에는 수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있었는데, 그 죄수가 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걸 안 집정관은 폭동이 두려워 그를 감옥에서 참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