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등기부에는 주교들과 토마스 모어 경이 안트워프에 거주하는 이들을 코앞에 데려다 놓고서 틴데일에 관한 모든 것, 즉 그가 어디서 누구와 주인 노릇을 하고, 어느 근방에 그 집이 위치해 있으며, 그의 신장은 얼마이고, 그가 어떤 옷을 입고 다니고, 그가 자주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샅샅이 파헤치며 조사한 흔적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부지런히 숙지한 후 그들의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윌리엄 틴데일은 안트워프 시에 있었으며, 영국 상인들을 숙박시키던 영국인 토마스 포인츠(Thomas Pointz)의 집에서 근 1년을 꼬박 숙식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헨리 필립스(Henry Philips)라는 이름의 사내가 찾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풀(Poole)의 단골손님이었고, 마치 왕년에 종을 거느리고 다니던 신사였던 듯싶은 예쁘장하게 잘 생긴 친구였으나 그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즉 그가 무슨 목적으로 그곳으로 보내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틴데일 경은 수차례에 걸쳐 상인들과 만찬을 들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는 이렇게 해서 이 헨리 필립스와 안면을 익히게 되었다. 그 결과 틴데일 경은 짧은 시일 내에 이 사내에게 커다란 신뢰를 두게 되어 자신의 숙소인 토마스 포인츠의 집으로 그를 데려와 한두 번 정도 만찬을 들기도 했다. 그러다 그와의 우정이 심히 깊어지자 아예 그는 앞서 말한 포인츠의 집에 그가 머무를 수 있도록 알선해 주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책들과 남모르는 연구물들까지 보여 주며 호의를 베풀었다. 당시에 틴데일은 이 자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리라곤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에게 큰 신뢰를 두지 않았던 포인츠는 틴데일 경에게 이 필립스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었다. 틴데일 경은 그는 정직한 사람이고 학식이 상당하며 같이 있으면 무척 편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그에게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포인츠는 그가 다른 친구의 소개로 그와 알게 되었으려니 하며 이 일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 도시에서 사나흘 머물던 예의 필립스는 어느 날 포인츠에게 도시를 한 바퀴 휘 돌며 그곳의 상품들을 구경시켜 달라는 부탁했다. 그들은 시 외각을 함께 걷는 동안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게 중엔 왕과 관련된 일들도 몇 가지 튀어나오긴 했지만, 이 말 때문에 포인츠가 아직까지 무슨 낌새를 차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자, 포인츠는 그가 예의 포인츠에게 돈을 주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하며 맘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필립스가 재력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필립스 자신도 포인츠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는데, 전에도 보면 그는 포인츠에게 갖가지 것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가 거명한 것들은 “내겐 돈이 충분히 있으니까”(그가 말했다) 최고의 것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필립스는 안트워프에서 24마일 떨어진 브뤼셀(Brussls)의 궁정에 가서, 거기서 황제의 대리인인 행정장관을 기타 장교들과 함께 안트워프로 데려왔다.
3,4일이 채 지나지 않아, 포인츠는 안트워프에서 18마일 떨어진 바로이스(Barrois)라는 도시로 갔는데, 그는 거기에 머물면서 짧으면 한 달, 길면 6주간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없는 사이 헨리 필립스가 안트워프의 포인츠의 집으로 돌아왔고, 그는 집 안으로 들어와 그의 아내와 이야기하며 틴데일 경이 안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후 그는 다시 밖으로 나가 브뤼셀에세 데려온 장교들을 길거리와 문 주변에 배치시켰다. 그는 정오쯤 다시 돌아와 틴데일 경에게 가서 40실링(shilling)을 빌려 줄 것을 부탁했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다, “메칠린(Mechlin)에서 여기로 오던 길에 그만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틴데일 경은 그에게 40실링을 꾸어 주었다. 잔꾀 많고 음흉한 세상에 살기엔 단순하고 어리숙한 틴데일인지라, 주머니에 들어 있는 40실링 쯤이야 그에게서 받아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필립스가 말했다. “틴데일 경! 당신은 오늘 여기서 내 손님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아니오,” 틴데일 경이 말했다, “난 오늘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당신도 나와 함께 가셔서 내 손님이 되어 주시구려. 거기서 당신을 따듯하게 맞아 줄 거요.”
그리하여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틴데일 경은 필립스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포인츠의 집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출입구는 길고 협소해서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갈 수가 없었다. 틴데일 경은 필립스를 앞서 가게 하려 했으나, 필립스는 결코 그러려고 하지 않았고, 대신에 무슨 대단한 친절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틴데일 경을 자기 앞에 세워 걷게 했다. 따라서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틴데일 경이 앞서 가고 예쁘장하게 잘 생긴 키 큰 필립스가 뒤를 따랐는데, 그는 이미 문의 양편 두 의자 위에 누가 현관으로 들어오는지 볼 수 있도록 장교들을 배치해 놓은 터였다. 필립스는 손가락으로 틴데일 경의 머리 위를 가리키며 그가 바로 그들이 붙잡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장교들이 보게 했다. 후에 그 장교들이 포인츠에게 한 말이지만, 그들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을 때 그의 순진함을 보고서 연민을 느꼈다고 한다. 그들은 그를 황제의 대리인에게 데려갔고, 그는 거기서 정찬을 들었다. 그후 그 행정장관은 포인츠의 집에 가서 틴데일이 가지고 있던 책과 기타 소유물들을 모두 없앴으며, 틴데일은 안트워프에서 18마일 떨어진 빌보드(Vilvorde) 성으로 보내졌다.
수감 중이던 틴데일 경은 변호인과 대행자를 제의받았으나 스스로 답변하겠다며 그들 모두를 거절했다. 그가 자신을 고소한 이들에게 했던 설교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는지라, 그곳 성에서 그를 잘 알고 지낸 이들은 그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누구를 두고 그렇게 말하겠냐며 그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결국 많고 많은 논의가 있었어도 그를 사형에 처할 만한 구실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회의에서 공표된 황제의 법령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A.D. 1536년에 빌보드 시의 처형장으로 끌려온 그는 화형대에 묶인 채 교수형 집행인에게 목졸려 죽임을 당한 후 불에 태워졌다. 그가 화형대에서 목에 핏발이 서도록 뜨겁게 부르짖은 절규는 바로 이것이었다. “주여! 영국 국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그의 힘 있는 교리와 진솔한 삶이 주는 영향력이 실로 대단했기에, 그는 그가 수감돼 있는 동안(1년 반)에 담당 간수와 그의 딸 그리고 그의 여러 집안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가 번역한 신약성경에 관해 말하자면, 그의 대적들이 당치도 않은 소리로 그것의 흠을 들춰 내며 이단 교리들로 가득 찼다고 짐짓 꾸며대는지라, 그는 존 프리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다. “난 우리가 우리 주 예수 앞에 나타나게 될 그 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다음의 사실을 기록해 두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나는 내 양심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 중 한 음절도 바꾸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것, 즉 그것이 명예나 쾌락, 부,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것들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다 해도 그러한 일은 결단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 <폭스의 순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