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뗙을 찾으라

 
 
 
등록자 문서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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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8. 07. 19
제목 080713 생명의 떡을 찾으라
파일명 080713생명의 떡을 찾으라.hwp

생명의 떡을 찾으라

(요한복음 6:26-35)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하는 촛불 시위를 보면서 옛날 제가 어렸을 때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생각났습 니다. 저희 마을에 여덟 살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한 평생의 남의 집의 머슴을 살았던 진봉학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쇠경을 다 받으면 아마 우리 동네의 땅을 다 샀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동안 한 푼의 돈도 모으지 못해 죽을 때까지 남의 집 머슴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머슴은 일 년에 쌀 몇 가마 받고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다녀오는 종 과 별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이 진봉학씨가 평생 머슴을 살다보니 동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조차 도 봉핵이 봉핵이 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고기가 무척 귀했습니다. 일 년에 몇 번 큰일이 있 을 때 돼지를 잡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이면 으레 동네 사람들이 기르던 개를 잡아 보신탕을 먹는 것이 고기를 구경하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흰 쌀밥 에 고깃국을 실컷 먹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지지리도 가난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동네 의 커다란 똥개가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먹고 죽은 일이 생겼습니다. 요즘 같으면 볼 것도 없이 버렸을 텐데 그때만 해도 고기가 귀한 때라 동네 아저씨들이 내장은 다 떼어내고 고기만을 발라 끓여먹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선뜻 먹는 사람이 없이 망설이다가 어떤 사람이 “그러지 말고 우리 봉핵이를 불러다가 먹 여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고기를 실컷 먹어보지 못한 봉핵이를 불러 고기를 먹게 했습니다. 이 게 웬일인가 신이 나서 고기를 먹는 봉핵이를 동네 어른들은 숨죽이고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일이 없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 봉핵이에게 그만 먹게 하고 술 한 잔과 개고기를 신나게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 린 나이에도 저는 그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하고 머슴을 사는 사람이 지만 죽는지 안 죽는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대상으로 먹게 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그 후로 앞으 로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이제껏 한 번도 개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제가 충 격을 받아 고기를 잘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고 죽은 개까 지 목숨을 걸고 먹었는데 몇 억분의 일의 광우병의 확률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두 달 넘 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입니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고 죽은 개고기를 맛 있게 먹던 우리의 영원한 머슴 봉학씨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지금의 이 모습을 보고 “배가 불러서 그러 다. 다 나한테 가져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며 혼자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물질만능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는 점점 뒤 로 밀려나고 자기 표현과 삶의 질을 강조하는 후기 물질주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 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하는 물질의 욕구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욕구로 사람들의 생각이 이 동하는 중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배부르게 먹을까가 사람들의 관심사였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질좋은 것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관심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웰빙이라는 말 삶의 질이란 말 은 세상의 변화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언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올 미래는 이 점이 분명한 사회 가 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다시 말해 다가올 미래는 물질적 욕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추 구하며 사는 사람이 생존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미래형 인간은 삶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살아남는 세상이 될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 욕구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미래에 적합하지 않 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관심이 온통 물량주의 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숫자적으로 생각합니다. 계산적으로 생각합니다. 돈에 대해서도 내가 가진 돈이 얼마인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돈을 가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합니다. 돈의 숫자에만 매달려서 사는 사람 들입니다. 집도 얼마만한 크기인가 얼마인가 가격은 얼마인가 하는 숫자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권력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가 숫자적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회도 몇 명이 모 이는가, 헌금은 얼마인가 숫자적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생각해서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절 대적인 숫자의 많음을 가치로 생각하고 사는 물량주의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 그 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사람은 내가 가진 것 내가 하는 것의 의미에 관심을 두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의미로서 평가하고 가치추구를 최고의 관심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돈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하는 숫자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될 때 의미가 있는가 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집 도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 집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삶, 직업도 연봉이 얼마인 가 하는 숫자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국가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떤 가 치가 있는가 하는 데에 의미를 가진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직업은 물질적 가치 이상의 것입니다. 직업 을 통해 내 인생의 즐거움과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에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인생을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 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으로 세상을 살아갈까에 계속 매달려 있습니다. 사실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돈을 열심히 벌지만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 목적을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도구, 수단 에 불과합니다. 목적을 이루고 의미와 가치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 들이 수단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수단을 통해서 의미와 가치와 행복을 찾지 못하고 평생 동안 돈의 숫자에만 매달려 인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은 숫자가 중 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의미를 만들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근 본적인 문제입니다.

숫자에만 얽매여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의미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 니다. 백만원이 있으면 천만원이 천만원이 있으면 일억이 일억이 있으면 백억이 있어야 행복할 것 같습 니다. 숫자로 연결된 돈은 우리를 항상 갈급하게 합니다.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돈에 의 미가 주어지고 가치가 생길 때 그 돈이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의미가 없는 그 어떤 것도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대학을 졸업해서 어떤 직장에서 얼마의 돈을 버는가가 중 요한 것이 아닙니다. 숫자와 관련지어 생각할 때 자식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에 어떤 의 미가 있는가 생각할 때 자식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벳세다의 광야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 천 명을 먹이신 우리가 잘 아는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을 본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2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물질주의적 관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삶에 기쁨과 행복이 넘쳐야 합 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이 불행하고 힘든 것은 왜 일까요? 옛날 벳세다 광야에서 군중들이 먹고 배부 른 것이 있다고 얻을 것이 있다고 따라 다닌 것처럼 물질주의적 관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27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35절에서도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 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은 보이지 않은 가치와 보이지 않는 의미입니다. 보이는 물질 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이며 영원한 삶입니다. 예수 님께서 주시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인생이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는 것이 괴로운 사람이 있 습니까? 여러분이 계속 숫자에 매달리는 삶을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살 때만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숫자에 매달려 사는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 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숫자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 내 삶 을 전적으로 헌신할 때 가치를 찾아 우리의 삶을 헌신할 때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숫자로 행복이 주 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이 주어집니다. 80, 90년 사는 숫자가 중 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의미있게 사는 삶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이 주어집니 다. 인간관계도 숫자적으로 계산적으로 하지 말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만남의 의미를 찾을 때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숫자적으로 계산적 으로 하면 우리의 삶은 상처받고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는 숫자에 매이지 않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 마다의 삶에서 이러한 높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의미를 창조 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추구하고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 한 생명의 떡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행복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