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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신앙
(마태복음 11:17-19)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시위가 벌써 두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대통령이 두 번이나 국민들 에게 사과를 했고 국민의 마음을 다 알았으니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부탁하지만 정부가 하는 믿고 지켜봐 달라고 호소하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할 것입니 다. 지금 우리 사회에 소통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대통령도 국민에게 사과하기를 국민들과 소통 하는 일에 소홀했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국민들이 대통령과 소통이 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촛불 시위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통령의 임기 5년 내내 촛불시위가 계 속될 것 같습니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은 나는 비지니스 프랜드리(business friendly)라고 해서 노동자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고 정부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복지보다는 성장이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섭 섭하게 했고 이들의 마음문을 닫게 해서 소통의 길을 차단했습니다. 북한에게도 먼저 머리를 숙이고 도 와달라고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고 해서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고 자존심을 상하 게 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굶어죽는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남한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 도 섭섭하게 했습니다. 소통이 끊어졌습니다. 대통령과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느 끼고 있는 감정입니다.
소통이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말로 필이 꽂히는 것입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이란 말처럼 논리가 아니라 이론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찌르르 하고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생각에 대통령과 이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다니엘 핑크의 미래에 살아남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조건 중 하나인 다른 사람들 과의 어울림 조화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오늘 서두에 제가 말씀드린 소통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라야 다가오는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소통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에 나타난 꺼지지 않는 촛불시위는 소통의 문제입니다. 국민은 미래를 향해서 나가고 있는데 정치를 하 는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소통이라는 미래적 명제에 대해서 준비한 대통령이라면 이러한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만이라도 소통이라는 이 미래적 명제를 알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치인도 가슴이 열어 소통할 줄 알아야 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 도 회사원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내는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좌내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역할을 하고 우 뇌는 비언어적 비선행적 비논리적 본능적인 역할로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보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 습니다. 다니엘 핑크는 지금까지는 좌뇌 중심의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였지만 앞으로는 우뇌 중심의 사 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좌뇌가 발달한 지식전 문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지적인 능력이 있는 의사, 변호사, 판사나 검사, 회계사가 주도 적인 역할을 하는 사회였다면 앞으로는 보다 종합적이고 감성적인 우뇌가 발달한 사람이 주도하는 세상 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하이 컨셉 영성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세계는 머리가 좋은 지식적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느낌으로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 고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의과대는 최고의 성적을 가 진 지식적으로 뛰어난 좌뇌가 발달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의사는 대표적 좌뇌형 인간입니다. 그 러나 미국의 의학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고도의 분석적 방법으로 몸을 진단하여 병을 찾아 수술하 고 분석하고 투약하고 그것만으로 효과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최근에 시작된 치료가 소위 이야기 치료 (narrative therapy)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 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치료가 대단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의과대학에서 최근에 이 과목을 개설하고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의사와 환자가 가슴을 열어놓 고 이야기하고 의사와 환자가 공감을 이룰 때 환자들의 병이 치료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린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할 때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배를 쓸어주면서 “엄마 손이 약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면 정말 배가 아픈 것이 깨끗이 낫곤 했습니다. 미 국의 최첨단 치료방법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하던 치료법과 같은 것으로 이제야 미국 사람들이 이것 을 깨달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통은 가슴과 가슴이 마음과 마음이 느낌과 느낌이 통하는 것입니다. 미 래의 세계는 이런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 이끌어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 소통에 대해서 성경만큼 강조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는 거듭거듭 소통에 대하여 말하 고 있습니다. 성경은 소통의 책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책이 소통입 니다. 성경의 핵심적 가르침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소통하는 사람이 하나님 의 나라를 차지하고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소통의 용어입니다. 사랑은 논리적 이성적인 좌뇌적인 것이 아니라 우뇌적 인 감성적인 종합적인 느낌의 언어입니다.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가슴의 언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 경은 이미 미래의 세계를 오래전부터 예언했습니다. 우뇌 중심의 미래적 인간이란 말은 다니엘 핑크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이미 있는 우리가 늘 들어오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소통이 안 되는 이 세상에 통탄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 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하 나님과 소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분석과 이론이 아니라 느낌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이웃을 분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 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배고픔을 아픔을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필이 통하고 가슴이 맞닿는 것입니 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복음은 소통의 복음, 기독교의 신앙은 소통의 신앙입니다. 소통을 잘하는 사 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고 예수를 잘 믿으면 소통이 잘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읽은 구약 출애굽기 22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어떻게 소통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 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 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가난한 자들과 아픔을 소통하는 하나님이십니 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을 서럽게 하지 말고 외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게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서로 소통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사도 신경 중에 성도가 서로 교통함을 믿사오며 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함께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의 공 동체가 된 사람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축복의 기도를 할 때 ‘성령의 교통하심과 소통하심이 여러분 가운데 늘 함께 하길 바란다.’고 기도합니다. 하늘과의 교통 성도들과 의 소통이 우리들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신학교를 세우고 구약, 신약을 가르치 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함께 사셨습니다. 소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 라고 하셨습니다. 죄인과 소통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소통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 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픈 것이 자신의 몸이 아 픈 것처럼 느끼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삶이 나의 삶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과 곤고함의 나의 아픔과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이웃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통하는 신앙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늘과 소통하는 신앙, 하나님의 가슴,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느낌이 우리의 가슴으로 느껴지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웃과 소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위의 가난한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 나의 아픔이 되어 느 낄 수 있는 것이 가난한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가슴으로 느끼고 필이 꽂히는 삶을 살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미래의 세계에 주인이 될 수 있는 삶입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백성들과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백성들의 아픔을 같이 느 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도 이 소통하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이웃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신앙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로는 하늘의 하나님과 소통 하고 땅에서는 이웃들과 소통하는 삶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