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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1-18, 하나님의 어린 양
아주 추운 겨울날. 한 농부가 부엌 창문을 계속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놀랍게도 창 밖에서는 자그마한 참새들이 벌벌 떨면서 온기에 이끌리어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부질없이 머리로 유리창문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옷을 껴입고 아직 발자국 하나 없는 눈을 헤치면서 농장의 헛간 문을 열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불을 켜고 지푸라기를 펼쳐놓고 그 위에 과자부스러기를 뿌려놓았습니다.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 따뜻한 헛간으로 인도하려는 농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참새들은 그저 두려운 마음으로 어둠 속으로 숨어들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습니다. 참새들 뒤로 가서 헛간 쪽으로 몰아보기도 했고, 문을 열어놓고 숨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부질없이 창문만 머리로 칠 뿐이었습니다
농부는 집안으로 들어와 곧 죽게 될 참새들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만일 내가 잠시 동안만 참새가 될수 있다면 그들의 하나가 될수 있다면 그러면 그들이 나를 보고 놀라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따뜻하고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줄 수있을 텐데..” 그러면서 성육신의 의미가 가슴을 움켜쥐며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참새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일에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주권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한 사람의 몸으로 축약시키셨다는 사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믿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스윈들)
요한은 주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해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성부 하나님의 모습, 즉 영원하시면 인격적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임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적어도 36번이상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라는 단어가 요한복음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생명의 중심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제일 첫 절인 창세기 1:1을 참고해야만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실존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고 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말씀하셨다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요한은 쉴새 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면서 요한은 창조에 관한 설명으로 소개를시작합니다. ‘세상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은 다 예수님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분이 없이는 아무것도 지어진 것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물질적인 창조 능력의 근원이시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영적인 재창조를 가능케 하는 능력의 근원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다” 요한은 복음서 기록을 시작하자마자 이 가르침을 곧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logos, 로고스) 이라는 표현은 헬라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표현이었습니다. 로고스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나타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기보다는 궁극적인 이성 또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 정로로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요한은 창조의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궁극적인 이성의 주체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입니다
4-5절. 생명과 빛이 설명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의 계시는 생명의 계시였고, 예수그리스도는 창조주로서 육체적인 생명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빛을 이 땅에 보내셨으나, 사람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으며 또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6절. 이 절에는 증인이 나옵니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누구인가 보다는 그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생과 그의 삶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지만,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왜 왔으며, 누가 그를 보냈는가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10-11절. 세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람들의 타락과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가 하나님께서 당신이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접근하시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말았으며, 그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2-13절. 3장16절이 나오기 앞서 복음서의 심장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옳은 길은 복음을 믿는 것, 구원의 주님을 영접하고 그 결과 새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으니, 육체를 입으시고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로 찾아오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을 포함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나,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15절. 이 절의 표현은 “언제 성육신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것을 주전 4년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인 시간으로는 세례 요한의 뒤를 따라오셨습니다.
17절. 모세는 의의 기준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약속했던 그 선지자(1:250가 오셔서 은헤와 진리에 근거한 의의 기준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사도 요한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절은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 분명한 획을 그으며,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다루시는 경륜에 대한 새로운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8절. 성육신에 관한 결정적인 구절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독점적인 설명임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모세도 하나님을 보지 않았던가(출 33장)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경험은 신학자들이 현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잠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사건을 모세는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신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부분을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요한은 모든 것을 다 밝혀 애매한 것이 없도록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시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주석해 주고 해석해 주며, 설명해 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느끼는 대로 느끼시고 우리에게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시려고 또한 사람들의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셨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모두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제 요한복음은 성육신이 십자가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위의 어둠은 깨닫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생명과 빛이 우리를 통해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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