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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1-11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의 한 외진 동네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셨습니다. 결혼 당사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 사건은 참으로 신기하고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게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놀라게 할만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 어떤 현상들이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구약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그 영광이 천둥 번개와 함께 나타나거나 아니면 하늘의 태양과 달이 그 광채를 잃고 어두워지거나 아니면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현상들입니다.
“주의 날(day of Lord)”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 그러할 것이라고 예언자들이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무대 바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예수님이 잔칫집 하인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신 것이 전부입니다. 조용히 말씀하시사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이 본문은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비밀을 우리에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굉장히 풍부한 상징을 담고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처음으로 드러난 곳이 어디입니까
- 유명인사나 권력있는 자의 자녀의 결혼식이 더욱 아닙니다
- 돈 많은 사람, 재벌 자녀의 호화스러운 결혼식장도 아닙니다
- 그저 보통 사람의 시골 결혼식이었습니다
- 소박한 동네 결혼식 피로연에서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영광을 처음 드러내신 곳이 결혼식이었고 그 영광을 나타내신 이유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는 믿음을 재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원자라는 믿음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이 예수님을 모든 것의 시작(창조)와 연결시키면서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사야의 말씀에 따라 (사 9:1) 빛이 갈릴리에 처음으로 비쳤다는 사실에 모든 복음서들이 동의합니다. 마태는 이 사실을 이사야 9장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다(마 4:15)” 누가는 이 사실을 이사야 61장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가난한자, 갇힌 자, 눈먼 자, 억압받는 자들에게 선포됨으로써 그들에게 빛이 비추었다(눅 4;18-19)”
마태나 누가가 그렇게 기록한 것은 모두 예수님의 설교(선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에 따르면 예수님의 영광은 결혼을 축복하는 기적을 통해 처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의 요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다시말해서 상실된 선한창조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안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창조의 선함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잔치에서 포도주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만 넘치도록 다시 공급될 것입니다.
이제 본문입니다.
본문의 핵심 구절은 1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와 제자들의 믿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절. “사흘째 되던 날”은 언제부터 사흘이란 뜻인가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신 후 사흘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으나 정확한 날짜 계산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타나신 때로부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가나에서 표적을 행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 잔치에 초대되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동행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당시에는 아주 심각한 사회적인 망신이었습니다.
자그마한 마을 가나는 나다나엘의 고향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 신랑과 신부는 물론 그 가족까지 알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4절.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마리아가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자 예수님이 대답하신 것입니다. 마리아가 공적인 자리에서 아마 처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던 것일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있어서는 하늘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기적적인 표적을 나타낼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4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어린 양께서냉혹하리만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정에 따라 죽음을 향해 움직여 가심을 묘사해 줍니다.
“때”는 헬라어의 “호라”로서 시간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은 4번이상 어떤 일을 지연시키시도 하시며 또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 용어는 두개의 중요한 개념을 전달해 줍니다. 즉 목적과 일정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분명히 알고 계셨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우신 시간 계획에 전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일정은 변경시킬 수 없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후 3년 반 뒤에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례의 순간부터 부활의 영광까지 좌로나 우로나 전혀 치우침 없이 똑바로 길을 걸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계획의 시간적인 전개를 이해할 수 없음을 가르쳐주시려고 누차 시도하셨습니다. 결국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시고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절후에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1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
5절.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의 믿음은 분명했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 하인들이 순종만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이라고 필요하다면 하실수 있음을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거절 같아 보이는 답변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예수님의 거절 뒤에 숨겨져 있는 더 나은 답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고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신랑신부도 아니고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자신들이 연회장에 가져다 주는 것이 물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엌과 잔치의 상석 사이 어디에선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믿음과 순종의 위대성을 입증해 보여 줍니다. 불안과 염려가 있었겠지만 하인들은 마리아의 말을 끝까지 순종했던 것입니다
9절. 연회장이 포도주의 맛을 보고는 아마도 그 앞에서 떨고 있는 하인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며 잔치에 나온 포도주 중에 가장 훌륭한 포도주라고 극찬하고 있는 것을 요한은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11절. 이런 첫번째 표적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적인 표적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으며, 제자들이 그르 믿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 이전에도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음이 더욱 분명해 지고 공고해지며 안정적임 믿음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어디라도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중에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이라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요한은 11절에서 표적(세메이온)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때에는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항아리들 속에 들어 있던 물을 사용해서 실행해 오던 손을 씻는 예식은 이제 새로운 것에 의해 대치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셔서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시며 새롭고도 더 높은 법, 즉 은혜의 법으로 대치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실 당신의 피를 통해 완전한, 영적인 그리고 영원한 예식을 통해 지금까지의 결례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당시에는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포도주 잔을 드시고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 제자들 중 누구라도 옛 언약의 물을 변화된 새 언약의 포도주로 만드셨던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을지 궁금해 집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순종하시는 모습의 아름다운 그림이기도 합니다. 결례를위한 물이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정결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결케 하는 피를 영원히 만족하게 해주는 포도주로 쏟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얼마나 놀라운 표적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궁극적이고 완벽한 제사로서 당신의 피를 쏟아 부어주셨기에 더 이상 동물의 제사나 결례 예식을 위한 물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씻음 받은 우리는 완벽한 용서와 죄 씻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잔치에 온 사람들의 목을 적셔주는 정도의 기적이 아니라, 아주 중대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분명한 상징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정결케 하는 물을 영원한 구원의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스스로의 포도주를 갖지 못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당신의 피를 선물로 제시하십니다
가나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예수님은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통하여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사건 후에 후속적으로 다른 징조들이 뒤따르게 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징조를 보았다는 것은, 나중에 예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무르익어 드러나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들이 본 첫번째 예수님의 영광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요한의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은 단순히 기적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적은 징조이자 사인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위대한 사건, 영광스러운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시기 위해 보내심 받은 모든 일이 서서히 완성을 향해 가고 있을 바로 그때에,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위대한 기적을 본 그때에, 그들은 사실 더 장엄하고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일” 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온전히 용서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는 이들이 그 잔을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 포도주 잔 안에 그분의 옆구리로부터 쏟아져 흘러나온 피와 물이 가득차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차 그분은 “어린 양”의 결혼 잔치에 초청받은 모든 사람릐 포도주 잔을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가나에서 열린 잔치에서 벌어진 단순하고 조용한 사건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 준 첫 번째 징조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그분을 믿습니다.
요한이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로 그 분을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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