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연구 [성경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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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분류표
2007/09/19 오전 11:20 | 구약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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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분류표



성경은 66권의 정경(canon)으로 구성된 일종의 전집이다. 이는 40명의 각기 다른 저자가 1,400년이라는 각기 다른 시대 상황에서 저술한 것이다. 구약 정경 39권은 A.D. 90년 얌니야 랍미 회의에서, 신약 정경 27권은 A.D. 397년 칼타고 공회에서 최종 정경으로 확정되어 결국 성경은 66권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이런 성경은 앞서 말한대로 그 주제가 전부 인간 구속의 진리이며 또 전부가 한 분 성령에 의해 영감되었다는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그 내용과 형식상 큰 다양성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성경에 포함된 정경 66권을 어떻게 분류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결국 성경 각 권의 바른 이해 및 성경 전체의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기준으로 성경을 분류할 수 있으나 다음은 현재 전세계에 걸쳐서 성경 분류의 기준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서 성경 각권의 문학적 특징에 의한 분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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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어떠한 책인가?
2007/09/14 오전 11:53 | 구약 연구

1. 성경은 어떠한 책인가?
1)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다.

인간은 지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 세계는 어떻게 생성 되었으며, 인간은 어떠한존재인지, 인간은 왜 이렇게 불행하며 죄가 많은지, 또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며 행복한 존재가 될수 있는지, 내세는 있는지, 어떠한 곳인지, 인류의 역사의종말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하나님은 계시는지, 어떠한 분이신지, 진정한 구주는누구 이신지 등등 삶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문제들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림설명 / 율법낭독:사진에서처럼 유대인 회당에서 회중들 앞에서 낭독하기 위해 귀중 한 두루마리가 보존된 성궤에서 율법을 꺼내 펼치면 신자들은 경건한 자세 호 그 율법을 우러러 본다.
그리하여 이성을 가지고 많은 사색을 해본다. 또 경험을 통하여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의 능력과 경험은 한계가 있고 미약한 것이어서 그러한 중대한 문제들을 알수가 없다.

성경은 이렇게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감추인 모든 비밀을 진리의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이다.
자연을 통해서나 양심을 통해서 또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조금은 알수가 있다.
이러한 것을 일반(보통)계시라고 한다.

성경은 이러한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그러므로 특별 계시라고 부른다.

성경을 통하여 즉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구약)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신약)를 통하여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구원의 도리, 인간이 알고 싶어하는 귀중한 진리가 바르고밝게 계시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신 구약 성경이다.


2)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롬10:17 에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신앙을 깊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연구하며 공부하고 성경의 학구적 연구를 힘써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고 신구약 성경은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계시의 책임을 밝히말씀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책이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탄생 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한 민족]에 관한기록이고,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라고 하는 [한 분]에 관한 기록이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무대를 설정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 성경은그 무대에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활동에 대한 이야기 들이다.


3) 구약 정경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은 유대 인들의 긴 역사 과정에서 기록되고 읽혀진 모든 책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것은 물론 아니다.

또 구약 시대의 모든 종교서들이 전부 현재의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것도 아니다.
많은 종교적인 책들 가운데서 특별한 권위가 있다고 인정되어 선택된 책들이다. 이렇게 선별된 책들을 정경 이라고 부른다.

기독교가 유대로부터 상속받은 것은 정경으로서의 이 구약 성경이다.
주님께서도구약 성경에 대하여 많이 언급 하셨고 사도들도 그러했다.

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많은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거룩한 권위가 있는경전이며 모든 종교적 교훈과 일반 생활의 규범이 되며 영원히 모든 교훈의 표준과원천이 되는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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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약성서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각 종교에서는 그 기본이 되는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서의 <경전>,또는 정전이라고 하는 분서가 있다. <정전>이라고 번역된 말은 현대 유럽 여러 말의 캐논 Canon-Kanon에 해당하며, 그 어원은 슈메르어에서 나온것이라고 하며, 앗시리아어,우가리트어, 헤브라이어,그리스어 및 라틴어를 거쳐 오늘의 유럽 제어에 이른 것이다. 그 본 뜻은 <갈대(풀)>을 의미하며,그것이 <곧 은 것>이라는 뜻,그리고 <자>,<규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즉 여러가지 <곧다>는 의미의 도구류의 명칭에서 바르고 그른 표준이 되는 모범적 규준적 문서를 가리키게 되고, 일반적으로는 규범, 표준, 모범 등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전>이라는 말은 그후 유럽 제어의 Apocrypha(외전) 및 Pseudepigrapha(위전)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구약성서는 신약성서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경전이 돼 있으며, 그것은 유대교의 경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약성서라는 명칭은 신약성서가 편찬된 뒤에 이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2세게말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는 <율법(토라)>,예언서(네비임)및 제 문서(케투빔)로 돼 있으며, 다음 3단계를 거쳐서 성립되었다.
첫째는 <율법>이며 모세의 <5서)라고 불리며, 그 경전으로서의 위치는 기원전 400년경까지에 확립되었다.
둘째는 여러 예언자들의 이름으로 된 <예언서들>이며, 기원전 250년경까지 확립되었다.
셋째는 율법이나 예언서가 출현한 배경을 기록한 <문서들>이다. 그 중에는 예외도 있기는 하나,이 문서들은 기원 90년경의 야무니아(텔.아비브의 남쪽 약 20킬로미터에 있는 도시)에서의 유대인의 종교회의에서 경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전체의 범위가 결정되었을 때에 경전으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기원 70년에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로마군에 의하여 파괴되고 조국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유대교에 마지막 희망을 건 <경전의 백성>이 되어, 유대인의 경전이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 받아야 했다. 따라서 경전의 완성과 공인은 유대교의 경전 이외의 문서의 권위도 인정하고 있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유대교의 확립과 자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성서에 들어 있는 문서들의 문학 유형은 역사, 율법, 예언,시가,서한 등 다양하지만,성서는 그 내용에 그 안에 일관돼 있는 공통된 사상의 일체성 때문에 하나의 책이돼 있다.

구약성서의 배열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유대교의 경전과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구약성서의 내용은 대체로 같다.

카톨릭에서는 70인역에 들어 있는 외경도 정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장과 절은 처음에는 없었던 것을 사용상 편의를 위해서 12.3세기에 먼저 장이 매겨지고 16세기가 되어 절이 매겨져서 그후 이것이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3. 구약 성경의 내용 분해
히브리어 원문 구약 성경의 이름은 율법과 예언서와 성문서집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구약 성경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편집되고 구분되어 있다.

그림설명 / 율법보관상자:18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든 아름다운 것으로 유대인 회당에 보 관되어 율법을 넣어 두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유대미술관 소장.
1] 율법서(토라)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 예언서(느비임) 8권


전기 예언서 4권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를 한 권으로), 열왕기(상하를 한 권으로)2. 후기 예언서 4권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예언서(호세아 이하 12권을 합하여 한 권으로)3] 성문서집 (케투빔) 11권

시가 3권
시편, 잠언, 욥기

다섯 두루마리 5권
아가, 룻기, 전도, 애가, 에스더

역사 3권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합하여 한권), 역대기(상 하를 합하여 한권)

위와 같이 원문 성경으로는 합계가 24권의 책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39권으로 된 한글 성경은 헬라어 구약 번역(70인역=LXX)에 순서를 따른 것으로 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 하게 된다.

1. 율법서 --모세 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 역사서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열왕기, 역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3. 성문서
요나, 시편, 잠언, 전도, 아가
3. 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요나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권수와 순서는 좀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은 히브리 정경과 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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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각 책의 주제
구약 성경의 각 책의 내용들은 많고 또 깊어서 한 말로 그 책의 중심적인 사상이나주제를 규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쉽게 참고 되도록 개략적으로 본 각 책의 주제를열거해 본다.


그림설명 / 서기의 상:일반적으로 <미지의 서기상>혹은 <분명하지 않은 서기상>으로 대 부분의 서기상들이 그렇듯이 무릎 위에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펴넣고 오른손 에 붓을 들고 쓰고 있는 모습이다. 다갈색 피부. 검은 머리칼. 엄숙한 태도 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기하학적 구성 등 이집트 조각의 특성을 갖 추고 있으면서 보다 지적인 긴장에 찬 표정은 주목할 만하다. 제5왕조 BC 25-24세기.석회암에 채색.눈은 청동으로 만들어 박았다. 높이 51cm 삭카라 출토.
1. 창세기:히브리 민족의 창건
2. 출애굽기:히브리 민족과의 약속
3. 레위기:히브리 민족의 율법
4. 민수기:약속한 땅으로의 여로
5. 신명기:히브리 민족의 율법
6. 여호수아:가나안 정복
7. 사사기:가나안 에서의 처음 30년 생활
8. 룻기:메시야 가정으로서의 다윗가문 시작
9. 사무엘 상:왕국의 조직
10. 사무엘 하:다윗의 통치
11. 영왕기 상:왕국의 분열
12. 열왕기 하:분열된 왕국의 역사
13. 역대 상:다윗왕의 통치
14. 역대 하:남쪽 왕국의 역사
15. 에스라:포로 생활에서의 귀환
16. 느헤미야:예루살렘의 재건
17. 에스더:민족 전멸에서의 회생
18. 욥기:고난의 문제
19. 시편:이스라엘 민족의 찬미가
20. 잠언:솔로몬의 지혜
21. 전도서:이 세상 생활의 헛됨
22. 아가:결혼 생활의 영화
23. 이사야:메시야적 예언자
24. 예레미야: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한 취후의 노력
25. 애가:예루살렘의 황폐에 대한 장송가
26. 에스겔:내가 하나님인줄 알리라
27. 다니엘:바벨론 에서의 큰 예언자
28. 호세아:이스라엘의 배교
29. 요엘:성령 시대의 예고
30. 아모스:정의의 하나님
31. 오바댜:에돔의 파괴
32. 요나:니느웨에 대한 자비의 부르심
33. 미가:메시야 탄생지 베들레헴
34. 나훔:니느웨의 파괴
35. 하바국: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36. 스바냐:깨끗한 입술의 회복
37. 학개:성전 재건
38. 스가랴:성전 재건
39. 말라기: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주는 최후의 메시지


학자에 따라 각 책의 주제는 조금씩 다르게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예는 상당히 많은 공통성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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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구약성서는 무엇에 근거했는가?
구약성서 제문서, 신약성서 제 문서 및 외경 제 문서(구약성서 외경,위경)의 저작 연대는 별표와 같으며 신약, 구약을 불문하고 성서 각 문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구약성서 원본(Text)은 <헤브라이어 원전>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하게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90에서 말한 것처럼, 창세기,에즈라기,예레미야서,다니엘서의 일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또 원본은 번역에 견준 말이기 때문이다.
옛부터 본래 기록한 그대로의 원본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는 전해진 그대로의 원본이 어떤 것이었는정하는 작업이 계속되어 왔다.특히 유효한 근거는 남아있는 많은 사본들이다. 유대인은 없애버렸기 때문에 현존하는 구약성서의 사본은 대단히 적다. 1947년에 <사해사본>이 발견되기까지는 구약성서의 일부 저명한 기록은 파피루스 사본이었다. 이것은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헤브라이어로 기록되어 있으나 단편이 현존할 뿐이다.

19세기에 발견된 다른 헤브라이어의 사본은 훨씬 후대의 것이다. 유대교의 전통에 의하면, 회당에서 사용되는 율법의 사본은 헤브라이어로 된 것이라갸 한다. 또한 그것은 정통파 유대인에 의하여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동물의 가죽(레위기 11장 3절)에 손으로 쓴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회당용 두루마리의 경우는 모음 기호를 달지 않고, 말과 말, 구절과 구절 사이를 떼지 않고, 계속해 쓰도록 돼 있다.

헤브라이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그리고 헤브라이어 알파벳에는 모든 기호가 없고, 한 단어의 표기는 기본적으로는 3자음을 묶어서 한다. 그러므로 기록한 단어는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헤브라이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언어이면서 동시에 일상어로서는 죽은 말이 돼 있었떤 오랜 시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다른 독법이 생겼다. 그래서 전승에 근거해서 바른 독법을 정하여 헤브라이어의 각 자음 기호의 위나 아래에 점이나 선 등의 기호를 달아서 모음을 나타내는 방법이 고안되어 오늘과 같은 본문이 확정되었다. 이것이 마조르(masore<전통>라고 불리는 것이며,이것은 2세기경부터 고정되기 시작하여 6-8세기 사이에 확입되었다고 한다.즉, 우리는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구약성서 사본으로 인정되어 있는 1009년에 된 레닌 그라드 도서관 소장 레닌그라드 사본을 포함해서 중세의 구약성서 제 사본에 보존된 구약성서 원본을 오늘날<마조르 원본>이라고 부르고 있으나,이것은 중세의 구약성서 필사본 전달에 직접 종사한 유대교의 성서학자(발레,마조렛)에 의하여 불려진 것이다.

헤브라이어 성서를 필사하는 일은 상당한 숙련과 정확성이 필요하며,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여러 사본은 많은 성서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에 본 뜻을 알 수 없게 된 말이나 필사하면서 생기는 오필이나 사본의 파손 등 원인으로 본 뜻을 알 수 없게 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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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배열
헤브라이어 원전(24서) 한글번역(39서)
1.율법(5서)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1.역사서 (17서) 창세기,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신명기(이상 모
세5경)여호수아기,판관기,룻기
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역대
기상하.에즈라,느헤미야,에스델
2.예언서(8서)전기예언서 2.성문학(5서)
여호수아,판관기,사무엘기,열왕기 욥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
(후기예언서)이사야,예레미야,에제키엘. 3.예언서(17서)
소예언서(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 이사야서,예레미야서,애가
바디아서,요나서,미가서,나훔서,하박국서 에제키엘서,다니엘서,(이상4
스바니아서,하께서,즈가리야서,말라기서). 대예언서),호세아서,요엘서,아
3.제문서(11서) 모스서,오바디야서,요나서,미
(진실)시편,욥기,잠언, 가서,나흠서,하박국서,스바니
(두루마리)아가,룻기,애가,전도서, 야서,하깨서,즈가리야서,말라
에스델서. 라기서(이상 12소예언서)
다니엘서,에즈라서,느헤미야서,역대기

4.구약성서 제 문서 일람표

헤브라이 문서명 사료의 종류,저작연대,저작지
원전구분 (연대는 모두 BC,단독 수자는 세기)

율법 1.창세기 야훼이스트(J)사료...BC 10-9 유다
2.출애굽기 에로히스트(E)사료...BC9-8 이스라엘
3.레위기 신명기적(D)사료...BC 7-5 유다
4.민수기 제사적(P)사료....BC6-5바빌로니아,유다

예 전기 1.여호수아기 사료는<율법>과 대개 같으나 보수가 많다.
예언 최초의 편집은 BC 6세기 중기
자 2.판관기 J.E.D를 포함하나 P는 없다.
BC 10이전의 사료도 일부있다.
주요 부분은 BC 7.6에 개정
언 3.사무엘상.하 전기사료...BC 10,후기사료...BC 7말-6.
BC4-3에 보수.
4.열왕기상.하 이스라엘왕 및 유다왕의 연대기 등을 사료로 하고
BC 600년 전후에 편집.

자 대 1.이사야 제1이사야(1-39장)...BC 8 후반...유다.제2이사야
예 (40-55장).제3이사야(56-66장)...BC 6-4...
언 바빌로니아.유다
자 2.예레미야 BC후반-6후반...유다.가필..BC 5-3
3.에제키엘 BC 6-5,가필....BC 3

소 1.호세아 BC8후반....이스라엘
예 2.요엘 BC 4
언 3.아모스 BC 8중기....이스라엘
자 4.오바디아 BC 5-4
^ 5.요나 BC 4-3
12 6.미가 BC 8후반...유다,가필....BC 6
예 7.나훔 BC 7말기...유다.BC300년경 편집
언 8.하박국 BC 7말기...유다,일부는 BC 6-5
자 9.스바니아 BC 7말기...유다,후대의 가필 포함
10.하깨 BC 6후반
11.즈가리야 1-8장...BC6후반,9-14장...BC 3
12.말라기 BC 5

1.시편 주로 BC 4이후,그보다 오랜것이 있으나 BC 7이전
의 것은 적다,마지막 편찬은 BC 100년경
2.욥기 BC 7말-6(더 소급하는 설도 있다).일부는 BC 4,
완성은 BC 200년경
3.잠언 주로 BC4-3,오래된 것도 BC 600년 이전 것은 없다.
다 4(1)룻기 BC 400년경(왕국시대 말라기라는 설도 있다)
섯 5(2)아가서 BC3(최근 솔로몬 시대라는 설도 있다)
두 6(3)전도서 BC3중기-2중기
루 7(4)애가 BC6,일부는 BC 4-3
마 8(5)에스델기 BC3-2
리 9 다니엘서 BC2
10 에즈라 BC 5-3의 사료로<역대기>저자가 편집
느헤미야 BC 5-3의 사료로<역대기> 저자가 편집
11역대기상.하 BC 4-3

비고 1.<율법>중의 시가의 편수는 BC 12이전및 BC 12-11로 소급된다고
한다.
2.J및 E사료 등으로 사용된 원사료에는 BC 12-11로 소급되는 것도
있다.
3.BC 7에는 J와 E가 혼합된 설화가 이루어졌다.
4.BC 중기에 <율법>과 <전기 예언자>가 신명기 저자에 의하여
개정되었다.
5.<율법>이 최종적으로 결집된 것은 BC 400년경으로 본다.
6.<전기예언자>는 BC3에 가필되었다.
7.<예언자>전체는 BC 200년경에 완성되었다.
8.고대 유대교에서는 제 서를 24종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소예언자>
를 일괄해서 1종으로 보고,<에즈라>와 <느헤미야>를 1종으로 보았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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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외경 일람표

구분 서명(각종파가 다르다) 각문서의 용어 성립연대와 지방
1 에즈라제1서(울가타에서 H(G설도 있다) BC2,팔레스타인
는 제3서)
2 에즈라제2서(울가타에서 H(또는 A) AD 1말기.팔레스타인
는 제4,5서)
3 토비트(토비아)서 A? BC 2전후,팔레스타인
(바빌론설,이집트설)
4 유딧서 H.또는 A BC 2전후,팔레스타인
5 에스델의 추가기사 G(일부는 H 또는 BC 2말-1전반 팔레스타인
A에서 번역?)
6 솔로몬의지혜(지혜서) G BC 2후반-AD1전반,알렉
산드리아
7 예수.벤.실라의 지혜 H BC 2전반,팔레스타인
(집회서)
8 바룩서 H,일부는 G BC 1-AD 1,팔레스타인
9 예레미야의 편지 H설,A설,G설 포로시대 이후,불명
10 다니엘의 추가기사 H 또는 A 불명(BC2전반?).
아자리아의 기도 불명
세아이의 노래
11 다니엘의 추가기사 H(G설도 있다) 불명(BC 1전반?)
(스산나) 불명
12 다니엘의 추가기사 H(?) 불명(팔레스타인?)
(벨롸 용)
13 므낫세의 기도 H설과 G설 BC 2-AD 2.불명
14 마카베오 제1서 H BC 1전반,팔레스타인
15 마카베오 제2서 G(H설,A설) BC1경,알렉산드리아(?)

1 마카베오 제3서 G BC 1경,알렉산드리아
2 마카베오 제4서 (BC 2후반)-AD 1
(알렉산드리아,안티옥설)
3 아리스타아스의 편지 G BC100년경,알렉산드리아
4.요벨서 H또는 A BC100년경,팔레스타인
5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
이사야의 순교...H(또는 A)....BC 1초기
이사야의 순교 ... G.........AD100년경 불명
이사야의 승천
6 솔로몬의 시편 H 또는 A BC 1팔레스타인
7 시비르(시비라)의 신탁집 BC2-AD3,최종 편집은
AD6,여러지방
8 에녹 제1서(이디오피아 H 또는 A BC2-1,팔레스타인
어역이 현존)
9 에녹 제2서(슬라브 G,일부는 H BC1전반,팔레스타인
어역이 현존) 또는 이집트
10 모세의 승천 H(또는 A) BC1,팔레스타인
11 바룩바룩(시리아 H(또는 A) AD 1말-2초기,
어역이 현존) 팔레스타인
12 바룩바룩(그리스 H(또는 A) AD2,팔레스타인
어역이 현존)
13 12족장의 유언 H(또는 A) BC2-1,팔레스타인,
(후에 그리스도교에
의한 개정도 있다)

비고 H.....헤브라이어, G.....그리스어, A....아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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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강해(21)
2007/09/10 오전 11:28 | 구약 연구

이사야 강해(21)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22:1~25)



들어가는 말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이 시작된 13장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이방 민족들에 대한 경고가 선포되어 왔었다. 그리고 잠시 후 23장에서는 드디어 이 대단원의 막이 내리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이 막을 내리기 바로 전인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마치 또 하나의 이방 나라처럼 취급하여 경고를 하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루살렘을 여기서 “환상 골짜기”로 부르는 것은 냉소적인 표현(sarcasm)이다(1절). 즉, 이곳에 묘사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특징은 “이상이 지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을 미워하는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을 듣고 흥분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가오는 자신들의 멸망을 보지 못한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의 그 어떤 요새나 군대보다도 믿을 만 하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즉, 이스라엘은 가치관에 있어서 세상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 더 잘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들의 종말 역시 열방의 종말과 다를 바 없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여기에 예루살렘에 관한 예언이 제시되어 있다.

22장 전체에 대한 소개
본문 주해에 있어서 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문제점은 이 선포가 미래를 설명하고 있는 예언인가, 아니면 과거를 회상하면서 정리를 해 놓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본 oracle의 한 부분(예, 1~4절)을 예언으로, 나머지를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3~7절에서 사용되는 완료형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좌우된다. 만약에 단순한 과거 시제를 표기하고 있다면 이 예언의 상당 부분이 과거에 대한 회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예언적 완료형(prophetic perfect)로 해석 된다면 이사야가 전하는 이 예언은 미래에 관한 것이지만 여기에 언급된 일이 일어날 것이 너무나도 확실하기 때문에 여기서 지금 예언적 완료형이 사용된다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본 디스코스 전체에 흐르는 공통점은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들을 비난한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은 안전을 추구하다가 자신을 좀먹는 도시로 표현이 되고 있고, 셉나는 자신의 세속적인 영광만을 추구하는 속물로 묘사가 되고 있으며, 엘리아김은 사람들이 안전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자이지만, 사람들의 그에 대한 의존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멸망을 가지고 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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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의 메시지 (요약)
2007/08/28 오전 11:09 | 구약 연구

요나서의 메시지 (요약)

1. 역사적 배경
요나서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기적을 신화나 전설로 유추 해석한다면 요나서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기적들이 메시지다운 구실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즉, 기적은 하나님의 능하신 사역의 역사에 속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으며, 요나서는 예언적 역사 서술의 문학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보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나서는 선지자인 저자 자신이 그 해석을 제시하고 그 내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해석된\'(interpreted) 역사인 것이다.
요나서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중엽으로 보여지며, 이 사건의 주연인 요나는 아모스 선지자와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한 초기 시대의 인물로 추정이 된다. 이 무렵 앗수르는 쇠퇴를 거듭하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 번영은 왕하 14:26-27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여 주어진 상급이 아니라 혹독한 훈련에 대한 은혜로운 위로의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야웨의 선지자들인 아모스와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집요한 영적 간음과 이에 수반되는 부도덕 때문에 새로운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훈련의 일환이었던 시리아의 번영은 이제 앗수르에게 참패하고 하맛과의 지친 싸움으로 사경 길에 놓이게 되었다. 요나의 예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다시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고,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심판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지속적인 완고성 때문에 다시 한번 낮아져야 했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올라온 한 이방 나라였다. 그 당시 이러한 번영의 역사와 그 당대 선지자들의 심판 선포의 결과는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반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주권 적으로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이 백성의 역사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열국 중에 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열국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그러나 선민인 이스라엘은 선민이라는 특권뿐만 아니라 봉사를 위해서도 구별되었으며 만방에 대한 야웨의 증인으로 선택된 도구라는 근본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소경이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은 영적 소경이었으며 도덕적으로 사악함에 빠져 있었고 이러한 병폐는 돌 비에 쓰여진 율법으로나 그 당시의 선지자와 제사장이나 왕들도 전혀 치유 불가능이어서 이스라엘은 계속 죄악 속으로 빠져 들어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더욱 타락된 이방인들을 징계의 도구로 자주 사용하시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종교적 배교와 도덕적 부패의 상태에서 완고하게 버팀으로서 자신이 자랑하던 특권을 상실했으며, 열국 중의 한 나라처럼 되어서 만국의 주님 야웨의 특별한 은총을 바랄 권리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은총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 놓여 있을 때 야웨께서는 자신의 선지자 요나를 머나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셔서 그 나라의 모든 악독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신 것이다.

2. 저자와 그의 메시지
요나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언제 기록했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요나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든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네러티브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메시지가 그 서술의 특별한 내용과 구조를 통해 전달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 이 책은 야웨의 지대한 관심이 이방 민족들에게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축복이 열방들에게 확대되는 것은 구원사의 종말론적 목표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역사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목적을 성취하시는 일에 비록 이스라엘이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안에서 자신의 구원 사역을 수행하신다는 것이다. 또 요나의 복지에 대한 수부들의 관심은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요나의 냉담한 태도와 의미심장한 대조를 이루면서 요나가 겪은 이 사건들은 죄를 짊어진 완고한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의 원인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다시 일으킴 받아서 순종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만방에 성취시켜야 하는 것이다.


3. 요나의 역할과 그의 사명
요나서의 네러티브는 요나의 사역을 서술한 것도, 수부들이나 니느웨인들의 행동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야웨의 행동에 대한 네러티브인 것이다. 그러므로 야웨가 특별 출연이 아닌 주연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요나의 사명 가운데서 야웨께서 이스라엘에도 역시 말씀하셨음을 알리려고 했음이 틀림없다고 가정되어야 할 것과 아울러 이 선택된 민족의 왜곡되고 편협한 정신을 한 몸에 구현한 요나는 하나님에 의해 부득이 자신의 뜻과는 달리 니느웨에 하나님의 긍휼을 전하는 사명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요나의 역할은 세 가지로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첫째는 인간의 대표로 생각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선지자적 사역을 맡은 사람들의 대표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요나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요나서의 저자가 인간 요나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단지 한 선지자의 불 충성이라는 주제보다는 \'세계\'라고 하는 광대한 무대 위에서 더 큰 주제를 설정하고 있음을 시사해 주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세계 열방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무엇인가 말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또한 선상 경험에 대한 네러티브는 하나님의 심판의 위협에 직면한 이방세계의 많은 나라들(수부들에 의해 상징)과 그들 가운데 위치한 이스라엘(요나에 의해 상징)을 통해 당시의 세계 상황을 묘사함이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요나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일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며, 요나와 함께 책망 받을 만했다는 점, 바로 이것이 저자의 의도한 바였다는 사실이다.

4. 하나님의 목적
3-1. 니느웨 성을 향한 긍휼하심의 표현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을 죄 값으로 멸망시키려 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먼저 그 성읍에 경고의 말을 전함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3-2. 완고한 자기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는가?
위의 3-1에서 언급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나서의 네러티브는 이스라엘인들을 주된 독자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요나서 저자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듯하다.
이스라엘이 인식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은 그의 은혜를 모든 열방에게 드러낼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불성실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전적 배교로 인해 선민인 그들이 불가피한 종국적 멸망과 더불어 이방인의 소망마저 상실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고치시려고 열방이 반드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5. 표적의 의미
요나의 표적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대표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그들이 반드시 죽어야 할 것을 선포하는 다시없는 표현일 것이다. 또한 그의 부활은 그 세대에게 예수님께서 실로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가 진리임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표적일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실제적인 죽음을 봐야만 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는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표적과 그들 자신의 새로운 생명의 참되고 유일한 소망을 보아야 한다.

6. 요나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우리는 이 예언서에서 말씀선포의 중심적인 내용들을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주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은 영감 시키시는 성령님께서 그 선지자를 감동시켜 기록하게 하실 때의 그 특별한 의도를 파악하고 세심하고도 건전하게 해석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원사의 특정한 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래의 의도와 목적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 그 특정한 때의 이후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말씀으로서 의미를 계속 지니고 있다는 \'점진성\'과 \'연속성\'을 부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요나서라는 예언의 말씀이 구원역사가 전개됨에 따라서 여전히 이스라엘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또한 주지해야 한다. 구원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시기 이후인 지금도 계속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성육신, 생애, 죽으심, 부활, 승천 가운데 과거의 모든 구원역사를 절정에 이르게 하시고 동시에 성취하셨으며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 구원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역사상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에게 구약 예언의 말씀들을 새롭게 듣게 될 근본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역사의 중심인 이상, 우리는 반드시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에 비추어서 구약의 예언서들을 해석해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에 대한 신약의 증거에 비추어서 구약의 말씀을 새롭게 들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말씀 선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요나서의 어떤 요소를 선포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온 세상에 미친다는 것과 둘째, 구원역사에 있어서 개인적인 축복이나 특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멸망 받을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과 셋째, 요나로 대표된 이스라엘이 비록 불성실하여 구원사역을 감당치 못했지만, 요나의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만방에 구원을 가깝게 하셨다는 사실과 넷째,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일지라도 자신들의 옛 죄성에 대해서는 죽고 새로운 순종에로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및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옛사람에 대해 죽어야 하며 또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분의 부활능력으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 만민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명을 담당하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예언서로부터 선포되는 메시지는 오직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구원은 야웨께로서 말미암나이다\"라고 외치는 고백과 찬양에 진심으로 화답할 때 비로소 그 메시지에 충실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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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서에 비추어진 지도자상
2007/08/28 오전 11:08 | 구약 연구

느헤미야서에 비추어진 지도자상

서론
리더쉽은 역사가 말하듯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리더쉽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따라서 단체, 사회, 나라의 성패가 좌우되게 마련이다. 리더쉽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평가한다면 그 명암이 갈라질 것이다. 히틀러는 리더쉽 측면에서 볼 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처칠 수상 역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리더쉽이 미친 영향은 명백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잘못 사용된 리더쉽이 세계를 얼마나 파멸로 몰아넣는지 역사는 증언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리더쉽은 그만큼 중요하다. 오늘날 리더쉽의 부재로 단체, 사회, 교회,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된다. 리더쉽의 부재로 각 분야마다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이 리더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리더쉽은 한순간 형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훈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리더쉽이다. 리더쉽을 평생 배움을 통해 발전시켜 나아가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리더쉽이란 우리말로 \'지도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더쉽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조직체의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격려해서 조직체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활동이다. 둘째, 사람들을 움직여서 조직체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일이익을 다하도록 하는 영향력이다. 셋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향을 미쳐서 조직체의 목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 조직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응집력 있게 협력하도록 하는 시멘트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쉽이란 조직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 제반활동이라 설명할 수 있겠다. 이처럼 리더쉽은 지도자에게 있어 생명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지도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참된 지도자는 어떠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는지 연구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특히 140년동안 성전재건을 하지 못한 어두운 시대에 시작하고 있는 느헤미야서를 통해 한 사람의 지도자를 발견케 된다. 그를 통해 우린 이 시대에 참된 지도자상을 그리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리더십의 원칙을 설명해주는 교과서와 같다. 지금까지 기록된 책 가운데서 지도력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느헤미야서에서 가르쳐주는 리더십의 원칙들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의 목회현장에 적용해보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이방 왕의 술을 따라주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선택했는가\'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가 어떤 지도자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왜 느헤미야가 지도자로 선택되었는가?
①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1:2)
느헤미야는 성공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왕의 곁에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삶에 있어서 최고점에 도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마 그는 급여도 많이 받았을 것이고, 상당한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위태하게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아마도 바벨론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의 문제는 멀리 떨어진 곳의 남의 일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았던 관심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민족에 대한 소식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가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그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 오늘 우리는 너무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진정한 문제를 느끼고 살아가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대부분의 관심사는 개인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성공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 자신의 문제에 대한 관심에만 몰입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이 \'나\', \'우리 가족\', \'우리 교회\'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 즉 하나님은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에 우리의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느헤미야에게서 배워야 할 귀중한 교훈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이 파괴된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관심을 느헤미야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택하신 것이다.

② 느헤미야는 신실한 사람이었다.(1:11)
왕의 술을 따라주는 관원의 위치는 왕이 그를 신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왕은 자신의 생명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이는 왕이 느헤미야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인 것이다.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그만큼 신실했던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신실하게 섬기는 자세로 감당하는 사람이야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시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고 있느냐를 보시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대형목회만이 성공적인 목회라 여기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성도가 모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권에는 목회자들이 남아도는데 도서지역, 농어촌 산간 지역에는 목회자들이 부족하다니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기는 법인데 이를 모르는 것일까? 하여튼 느헤미야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그를 택한 것이다.

③ 느헤미야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1:11, 2:5)
느헤미야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왕에게 스스로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하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민족의 어려운 일을 향해 \"내가 가겠습니다! 나는 건축업자가 아니지만 가서 성벽을 쌓겠습니다\"라고 자원하고 있는 것이다. 왕에게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하는 자였던 그가 그 일을 감당할만한 기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그를 선택하셨음을 본다. 기술은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심장을 가진 자였으며, 신실했고, 나아가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일에 뛰어들 열정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보다는 신실함을, 그리고 모든 것을 잃는다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열정을 더 보신다. 우리는 한결같이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나는 특정한 은사나 재능이나 지식등이 없다\"라고 말하며 주저 앉으려하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식지 않는 열정이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리더십에 의해 올라가고 내려간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도자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열정이 중요한 것이다. 믿음의 열정은 하나님을 움직이게 만든다. 따라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의 열정인 것이다.

2. 느헤미야는 어떤 지도자였는가?
(1) 기도하는 지도자였다.
러더십의 첫 단계는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헤미야 1장에 나와 있는 기도는 그가 4개월 동안 한 기도의 모형이다. 그가 4개월 동안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면 그의 기도는 이렇게 발전했을 것이다. \"하나님,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셔야 합니다. 제발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마도 이렇게 서너 주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느헤미야야, 너 자신이 위선자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네가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왜 네가 그 일에 뛰어들지 않느냐?\" 넉 달을 기도하는 동안에 느헤미야의 마음에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느헤미야는 이 음성에 \"하나님 저를 사용하기를 원하시면 제가 성공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도의 4가지 요소를 정리해 보자.

① 확신의 기도이다.(1:5-6a)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확신하는 기도이다. \"주 하늘의 하나님,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 주를 사랑하는 이들과 세운 언약,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과 세운 언약을 지키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보여준다. 의로운 하나님이시고 위대한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느헤미야는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은 내게로부터 들으시고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빨리 받게 하는 비결이다.

② 내가 무엇을 했고 누구인가를 고백하는 기도이다.(1:6b-7)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를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합니다. 저와 저의 집 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주께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라고 기도하는 느헤미야는 \"우리\"라는 말을 통해 자신 역시 죄의 주범임을 동일시하고 있다. 죄를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죄로 인정하고 시인하는 데에서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범죄했습니다. 저는 잘못 행했고 불완전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있는 것이다. 그의 고백은 매우 구체적임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나아가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다.(1:8-9)
우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일방적인 우리의 요구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기도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약속을, 즉 말씀을 상기시켜드리는 기도이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주의 종 모세를 시키시어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신 그 말씀을 이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나는 당신이 누구이신 지를 압니다. 내가 누구인가도 압니다. 당신이 무슨 약속을 하셨는지도 압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습니다.\"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가 문제를 해결한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은 약속을 내 것으로 외치는 것이다. 성경 상에 나타난 수많은 약속들을 내 것으로 삼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④ 헌신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헌신없는 기도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기도하고 나서 가만히 누워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기도는 분명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임과 동시에 나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중노동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느헤미야의 기도는 \"주님 종의 간구를 들어주십시오.…이제 주의 종이 하는 모든 일을 하여 형통하게 하여 주시고 왕에게 자비를 입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헌신의 기도로 끝나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제가 기도의 응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제 자신을 헌신합니다. 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옵소서.\"

진실로 느헤미야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그 세상에 대한 해답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출발점은 그가 아침에 읽은 조간 신문의 뉴스였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조국 예루살렘의 형편을 소식으로 듣고 훼파된 예루살렘의 참상을 보고 기도를 시작한다.(1:2-4) 그는 닫힌 귀가 아닌 열린 귀의 소유자였고, 닫힌 눈이 아닌 열린 눈의 소유자였다. 역사의 현장을 떠난 곳에 기도는 설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곧 역사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상황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책임의 자리에서 서게 한다. 여기서부터 기도는 출발한다. 기도의 사람은 우리가 처해 있는 그 현실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눈물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지각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책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도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가르쳐준 기도의 4단계를 사용해 실제로 기도해 보라. 먼저 우리의 마음을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고, 정말로 기도하고 싶은 분야를 정한다. 정해졌으면 첫째,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맞추라. 둘째,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라. 그리고 용서를 구하라. 그리고 나서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주장하라.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달라고 할 수 없다면 다른 일을 시작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헌신의 기도를 하라. \"하나님, 제가 문제 해결의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위하여 어떤 방향으로라도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것이다.


(2) 섬기는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마땅히 누릴 것도 포기하고 백성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 5:14-16) 여기서 느헤미야는 당시 부패한 지도자들의 대표적인 3대 타락상, 즉 뇌물과 독재와 부동산 투기에 전혀 깨끗하다고 담대하게 고백한다. 그의 이런 고백은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월급도 포기했다는 데에서 진실임을 알 수 있다. 느헤미야처럼 자기 의무까지도 반납할 수는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지도자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고통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고 기쁨을 주는 자리인 것이다. 느헤미야가 사역의 최전선에서 다스리며 감독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 3장에서는 그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감독관을 임명하고 모든 사람이 그들의 권위 아래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3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주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믿음으로 행한 위대한 일꾼들의 목록인 것이다. 느헤미야는 공로를 받을 자에게 그들의 공로를 인정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앞세우지 아니한 섬기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3)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음 철저하게 비밀조사를 하고 있음을 본다. 무조건 일을 진행해 나간 것이 아니라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임하였다. 느헤미야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리더쉽 스타일을 다양하게 복합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3장과 5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서로 의견과 배경이 다른 종족들을 잘 다루어 성벽 재건에 협력하게 하는 장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용기있게 싸우는 지도자였다. 그는 간신들의 음모와 원수들의 공격과 백성들의 원망의 문제를 용기있게 행동과 기도로 풀어 나갔다.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대적들의 비난에 단호하게 대처하였고, 대적들이 쳐들어 오려하자 일꾼들로 하여금 무기와 연장을 함께 들게 하였다. 이처럼 그는 문제가 다가올 때 그 문제앞에서 절망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지도자였다.

(4) 동기부여를 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제임스 번스는 바람직한 새 시대의 지도자상으로 감독형의 지도자를 천거한다. 이 감독형의 지도자는 피지도자의 필요를 공급하여 그를 감동시켜 따라오게 함으로 피지도자와 지도자를 궁극적으로 함께 유익하게 지도자형이다. 그가 먼저 앞세울 관심은 자신의 필요이기보다 피지도자의 필요이어야 하고, 피지도자의 필요가 지도자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그 당시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패배의 역사로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느헤미야의 최고 최대 관심은 지도자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보금자리인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순수하고 투명한 목적일진대 하나님이 그 일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 민족과 동료의식을 가지고 함께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였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움직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했다. 이로인해 마침내 백성들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2:18)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사람들이 일을 할 때에 그들이 관심있는 곳에서 일하게 했다. 성을 쌓는데 자기 집 근처에서 하도록 했다.(3장) 이러한 조치는 사역의 동기를 부여하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달성하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잘하는 분야를 개발하도록 돕는다. 바로 느헤미야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줄 아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5)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제비를 뽑아서 일을 할당하지 않았다. 거대한 조직체를 만들지도 않았다. 복잡한 도표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의 조직은 아주 간단했다. 느헤미야 3장을 살펴보면 그는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그룹으로 조직을 했다. 제사장, 여리고의 사람들, 하스나아의 아들들, 드고아의 사람들. 이런 그룹들은 이미 서로 관련이 되어있는 자연적인 그룹이었다. 가장 강한 조직은 가장 간단한 조직이다. 조직을 할 때는 구체적으로 일을 할당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모인 군중들에게 연설을 한 후에 모두가 흥분하여 일을 하고자 했을 때, “당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하시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과업을 구체적인 일로 세분하고 특정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일을 맡겼다. 그는 큰 목적을 작은 일로 세분했다. 이것이 큰 문제를 작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리고 확실한 작업 명세서를 개발했다. 마지막으로 직책과 사람을 조화시켰다. 잘못된 사람이 일을 맡으면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주먹구구식으로 일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일하는 지도자였다. 사람들을 직종별로 나누어 모든 사람이 사역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으며(느3장), 일꾼선정에 있어서 대리 혹은 대표를 위임 선발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느7장) 특히 3장에 보면 \"그 다음은\"이라는 말이 절마다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누가 어느 관할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목록표로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는 일하기 전에 생각하며 계획하는 지도자이다. 그리고 \'기도 없이 계획\'하는 지도자 스타일이나 \'계획없이 기도\'하는 지도자 스타일 역시 바람직한 지도자상이 아니다.

(6) 자기희생을 통해 최선을 다한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희생정신이 투철한 지도자였다. 자신의 동포의 참담한 소식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바사 왕실의 안락한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수일 동안 기도하다가 왕에게 간청하여 황폐화 된 예루살렘 총독으로 자청하여 나섰다.(1,2장)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폐화된 곳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화려한 자리에서 지시만 한 것이 아니고 직접 나귀를 타고 밤중에 성벽재건을 위한 조사에 나서는 모습속에서 참된 지도자상을 엿볼 수 있다. 희생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그 성실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참된 지도자는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보여주는 성실성에 의해 돋보이게 되고 존경을 받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고 게으르게 누워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4:9)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그는 기도하면서 언제 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므로 방비하는 일에 최선을 기울였다. 나아가 그는 기도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치하고 있음을 본다.(4:6) 우리는 기도했기 때문에 덜 일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했기 때문에 기도의 힘으로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
지도력은 타고난 것도 아니며 유전된 것도 아니다. 리더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점은 태도에 달려 있다. 즉 우리 자신의 의지, 태도, 개혁에 따라 태어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리더쉽에는 두려운 책임감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는 리더쉽이 악용되고 오용되었을 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경고와 교훈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지도자의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자기통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결단으로, 계속되는 훈련된 삶을 통해,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로, 역경에 대한 감사를 통해, 비전에 대한 일관된 마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다스림으로 얻을 수 있다. 지도력은 신장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해도 정체되어 버린 지도력은 미래가 없다. 끈기 있게 성취해 나가는 지도력이 아니면 성장의 결과를 보장 못한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필요한 능력을 얻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듯 적극적인 훈련이 지도자에게 필요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는 분명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이다. 그가 보여준 리더쉽의 원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