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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현장) 콜롬비아 칼리의 부흥 (Revival of Cali, Columbia) 글/조지 오티스 주니어 번역/정택수
오랫동안 콜롬비아는 연간 700-1000톤의 코카인을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세계 최대의 코카인 수출국으로 악명이 높았다. 코카인 무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칼리는 역사상 최대의 돈 많고 잘 조직된 범죄 집단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뇌물과 협박으로 개인과 기관을 상관하지 않고 포악한 힘을 휘둘렀다.
코뮤니다드 크리스티아나 드 페의 공동목사로 재직 중?랜디와 마시 맥밀란 부부는 칼리에서 20년 넘게 사역했다. 10년 정도는 악명 높은 칼리의 마약업자들 때문에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마시는 전 콜롬비아의 외교관이신 아버지로부터 집을 물려 받았다. 1980년대 마약으로 번 검은 돈이 칼리로 물밀듯 들어오면서 코카인 사업 거물급들이 마시가 살던 부유층 동네로 이사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넓은 농장 부지를 구입하기도 했다. 지하에 터널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혹시 있을 공격에도 대비하였다. 감시 카메라는 설치하여 주변 지역을 항상 감시했다. 감시견과 경비도 계속 주위를 순찰했다.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랜디 목사의 말이다. 한 달에 5억 달러 어지의 코카인을 수출했으니 공격이나 배반을 늘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쥐고 있는 게 너무 많았다. 코카인 농장은 소도시 같았다. 그 안에 활주로며 헬리콥터 착륙장, 실내 볼링장, 미니 축구장 등 없는 게 없었다. 상점과 레스토랑에 나이트클럽까지 있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번쩍거리는 블랙 메르세데스 승용차가 줄지어 나왔다. 일단 이 차들이 복잡한 시내 도로에 들어서면 모근 차들이 길가로 길을 내주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자기 목숨을 위해서 다들 어쩔 수가 없었다. 길을 막았다가 즉시 총에 맞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에도 15명이 그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저 차들과 한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게 낫다.” 랜디 목사가 말했다.
랜디 목사는 과거에 느꼈던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무기를 들이밀면서 서류를 보여 달라고 협박했다. 서류 내용을 휴대용 컴퓨터로 입력하는 듯했다. 감사하게도 필름 몇 개밖에 잃어버린 게 없다. 그들의 눈에서 죽음을 보았다. 그들을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 그 삶을 즐긴다.
칼리 목회자 모임의 로즈벨트 뮤리엘 회장도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정말 끔찍했다. 그들의 차와 맞닥뜨렸을 때 무사히 지나치면 진짜 행운이다. 사람이 죽는 걸 목격한 것도 다섯 번이나 된다.”
기자들이 특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차량 폭파 등 여러 사건을 가감 없이 보도하여 마피아의 표적이 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 스스로 결단해야 했다. 텔레비전 뉴스 앵커 아드리아나 비바스에 따르면 콜롬비아와 칼리에서 마피아가 하는 일을 비난하는 보도를 내보냈다가 많은 기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검은 돈에 매수 되어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검은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1990년대 칼리시는 세계를 통 털어 가장 부패한 도시였다. 마약상은 은행, 기업, 정치, 사법 등 국내 주요 기관들을 마음대로 움직였다. 칼리의 교회 역시 혼란스러웠다. 사역자의 숫자도 적을뿐더러 사역자들끼리 별로 교류가 없었다. 목회자 연합 사무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서류들만 쌓여 있었다. 다들 자기 사역에만 신경 쓰느라 연합의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1978년에 처음 칼리시로 온 목사이자 복음전도자 훌리오와 루스 루이발 부부는 칼리시에 가득한 어둠에 당혹감을 느꼈다. 교회의 연합이라고는 없었다. 훌리오 목사는 이미 쇠약할 대로 쇠약한 목회자 모임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금식하며 기도하던 훌리오 목사는 주님께 이런 음성을 들었다. “네게는 불쾌하게 생각할 권리가 없다. 그들을 용서하라” 그래서 목회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오해를 풀고 관계를 바로 잡았다. 도시 전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언제까지 분리된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다.
랜디와 마시 맥밀란 목사 부부가 루이발 부부와 함께 중보기도를 시작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방법을 알려 주셨다. 몇 달 동안 교회 안에서 기도와 연합과 거룩함에 대한 갈망이 생기도록 집중해서 기도했다. 이 세가지가 하나님의 임재를 교회 안에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교회, 특히 목회자들 가운데 영적 갈급함을 새롭게 하시도록 기도했다.
기도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목회자 모임에서 연합기도회를 제안했다. 체육관을 빌려서 하룻밤 동안 회개하며 기도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마약업자와 보이지 않는 어두움의 영들에 대항하여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도록 간구할 작정이었다.
목회자들은 기껏해야 수천 명 정도 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만 와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도 안 모인다’ ‘목회자들이 협조하지 않을 거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만 신뢰하며 나아갔다.
마침내 집회가 열린 1995년 5월 어느 날, 부정적인 말을 하던 사람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수천 명이 모일 거라 예상했는데 2만 5천명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칼리시 기독교인의 거의 절반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칼리시장이 무대에 나와서 “칼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시!”라고 선포했다. 이 말을 듣자 새로운 힘이 생기는 듯했다. 모인 사람들은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열심히 기도했다. 칼리는 이제 밤새도록 기도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집회가 있고 48시간 후 <엘 파이스>라는 일간지에서 “살인 제로”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실었다. 거의 처음으로 24시간 동안 단 한 건의 살인도 일어나지 않았다. 높은 살인율로 악명 높은 국가에서 꽤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집회 후 4개월 동안 부패 척결을 위한 노력이 지속 되었다. 그 일환으로 마약상과 연루된 경찰 900명이 해고 되었다.
랜디 맥밀란 목사는 이럴게 말한다. “칼리시의 변화를 보면서 어둠의 세력이 크나큰 패배를 입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6월이 되면서 이런 기대가 한층 커졌다. 천사의 군대가 마약 거물들을 체포하는 꿈을 꾸었다는 중보자들이 여럿 있었다. 교회의 연합에 대한 성령의 예언적 징표라고 해석했다. 중보자 17명의 기도를 하늘에서 듣고 응답하신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넘어뜨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약상들의 최후가 머지않았다.
중보자들이 환상을 본지 6주 만에 콜롬비아 정부는 마약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콜롬비아 곳곳에 군대가 배치되었다. 마약계 거물로 알려진 7명을 체포하기 위해 6천 5백 명의 정예부대가 칼리시에 도착했다. 헬리콥터가 칼리시를 돌고 공항은 폐쇄되었으며 도시 입구마다 경찰이 길을 가로 막았다. 어디든 가려면 신분증명이 필요했다.
마약업자들이 영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은 연방수사대가 조르주 로드리게즈를 ‘칼리의 무당’이라고 알려진 말린 발레스테로스의 점집에서 체포함으로 사실로 밝혀졌다. 중보기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지 3개월 만에 콜롬비아 당국은 7명의 핵심 지도자들을 모두 붙잡았다.
자기 힘의 본거지가 공격을 당하자 원수는 칼리의 중보자들을 향해 반격을 준비했다. 최우선 공격 목표는 훌리오 시저 루이발 목사였다. 그의 신실한 금식과 믿음은 사단의 계획을 조금씩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5년 12월 13일에 루이발 목사는 자신의 딸 사라, 운전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목회자 모임에 급히 가느라 차를 길가에 대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려 달라고 하셨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사라는 이렇게 회상했다.
교회 밖에서는 괴한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숨기고 있던 권총을 꺼내 사정거리 안에서 루이발 목사의 머리로 두 발을 쐈다.
루이발 목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로즈벨트 회장의 말이다. “훌리오 목사는 우리가 죽였다.” 놀라서 이렇게 대답했다. “뭐라고요? 어떻게 목사를 죽일 수 있습니까?” 나는 상처를 조금 입었을 거라 생각하면서 뛰쳐나갔다. 그러나 현장에 가보니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언제나 활발했던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갓난아이처럼 누워 있었다. 붉은 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편 116장 15절이 떠올랐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한 사람과 하나님을 향해 비통한 마음을 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목사인 훌리오는 도시를 향한 자신의 비전이 성취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는 성령께서 갖고 계신 구원의 목적에 굴복하기로 했다. 귀한 목회자가 암살당하는 끔찍한 상황에서 여우언하고 놀라운 일을 가져오시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바닥에 누워있는 훌리오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주님, 주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지만 제 영혼은 평안합니다.”
훌리오 루이발 목사는 칼리시의 교회의 연합을 위해 금식한 지 엿새가 되는 날 목숨을 잃었다. 교회의 연합이 시작되고 있었으나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루이발 목사는 연합이 쉽게 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금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훌리오 목사의 장례식에 금식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뇌하면서 1500명이 루이발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몇 달 동안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목회자들도 참석했다. 추도사는 이렇게 끝났다. “형제 여러분, 오늘부터 하나가 되어 걸어갑시다. 훌리오의 피가 우리를 하나로 묶는 성령의 끈이 되게 합시다.”
대단한 성과였다. 목회자 200여명이 이 연합에 동의하였다. 이들은 칼리시를 위한 중보기도에 반드시 필요한 중추가 되었다. 루이발 목사의 죽음을 보면서 목회자들은 각자의 계획을 내려놓고 도시를 향한 더 큰 비전에 동참하였다.
영적 담대함을 얻은 칼리시 교회지도자들은 90일 동안 철야집회를 열었다. 이 영광스러운 집회에 대한 열정으로 집회 장소도 5만 5천명을 수용하는 축구 경기장으로 계획했다.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예배자가 몰려들었다.
1996년에 하나님은 여러 교회들이 함께 참여하여 영적 지도를 갖성하게 하셨다. 도시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칼리시 22개 행정 구역에서 정치 사회 영적 부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패널을 완성하는 것처럼 칼리시를 붙잡고 있는 여러 힘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특정분야를 놓고 기도하다 보니 적들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는 모습도 목격하게 되었다.
영적 지도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도시 전역을 돌며 기도했다. 차량 250대에 나워 탄 사람들은 도시 주변을 돌며 기도했다. 차량 일부는 정부 기관이나 마피아의 저택 주변을 돌았다. 1월에 탈옥한 마피아 두목 호세 론도노의 본부 주의를 돌면서 기도한 팀도 있었는데 그들이 기도한 다음 날 호세 논도노가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성령과 연합한 칼리의 그리스도인들은 도시를 효과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사역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주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오는 것과 똑 같다. 거룩한 심령, 올바른 관계, 뜨거운 중보기도, 이 세 가지다. 루스 루이발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도시를 바꾸기 시작하셨다. 백성들이 마침내 기도로 연합했기 때문이다.”
칼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서 지식층과 부유층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 복음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전 시장인 구스타보 하라밀로의 말이다. “상류층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기는 쉽다. 그들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사업가 라울 그라잘레스는 복음에 종교뿐만 아니라 실용적 차원도 있다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의 발에 굴복했다.
1998년 4월에 칼리를 방문했을 때 하나님을 영접한지 얼마 안 된 저명한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법계 및 방송계에서뿐만 아니라 훌륭한 연설자로도 명성이 높은 마리오 지네트를 들 수 있다. 그는 프리메이슨과 뉴에이지에서 진리를 찾다가 결국은 그리스도를 영접햇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5분 만에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남미에서 가장 악명 높은 거물들을 정의의 심판대로 올린 대단한 법률가가 몸을 들썩이며 소리 내어 울었다. “40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내 소망은 한 가지밖에 없다. 자아를 완전히 굴복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수의 계획에 완전히 굴복하고 싶다. 그 분을 진정으로 섬기고 싶다.”
교회의 폭발적 성장은 칼리를 향해 문이 열렸다는 가시적인 증거로 볼 수 있었다. 목회자들에게 특별한 전략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계획을 세울 시간조차 없다. 그들을 끌어올리는 데도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스도인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998년 초에 방문한 사랑과 진리의 크리스찬 센터의 경우 출석교인수가 3만 5천명에 육박한다. 특이할 만한 점은 초신자들이 그렇게 급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대형할인점 코스트코의 창고였던 곳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교회는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주일 예배를 7부까지 드려야 하는 실정이다. 넓은 예배당이 가득히 차는 광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겼다. “비결이 대체 무엇입니까?” 교회 사역자들은 주저 없이 강대상 뒤에 있는 24시간 기도실을 가리켰다. “비결은 바로 저기다.”
칼리의 다른 교회들도 이렇게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다. 교단이나 지역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도시 전체에 그리스도를 향한 열기가 대단했다. 칼리를 방문하는 동안 차를 운전해 주었던 카를로스 레이노소(가명) 역시 과거에 마약 밀매업자였다. “어디를 가나 하나님을 향한 배고픔이 있다. 버스나 거리나 카페 등 어디서든 알 수 있다. 모두가 그리스도에 대해 열려 있다.” 거리의 복음전도자들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한다고 했다.
인구 190만의 칼리시에는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확실한 보호자가 되셨다. 1996년 11월에 칼리 경찰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산 티콜리스 지역에서 한 차량에 설치된 174 킬로그램 폭탄을 제거했다. 이 사건은 5만 5천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세 번째 철야 집회로 모인지 24시간 뒤에 일어났다. 유력 일간지 <엘 파이스>는 이런 헤드라인을 보냈다. “폭발을 막아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칼리의 기도 용사들은 이 사건에 크게 고무 되었으나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칼리시는 해마다 연말에 열흘 동안 소싸움이나 성대한 파티 등을 하는 페리아 축제를 여는데 이런 무질서한 축제 기간 동안 노방전도와 특별 예배를 열기로 교회 지도자들이 계획을 세웠다.
시 당국에 계획을 설명하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다. 시 당국자는 사이클 경기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광고비 보안 음향까지 무료로 지원해 주었다.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시 당국자는 시장과 도시와 시민들을 위해 교회에서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노방전도와 집회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을 얻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만한 사건은 마지막 예배 가운데 일어났다. 한 사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령이 칼리시를 다스리고 비처럼 내려오셨다. 모인 회중이 찬양하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2월에 내리는 비는 매우 드물었다. 몇 분 만에 열대성 폭우가 도시에 퍼부었다. 24시간 동안 사정없이 내린 탓에 거의 처음으로 페리아 축제가 취소되었다.
1998년 4월 9일 저녁에는 칼리시 운동 경기장에서 열린 철야 집회에 참석했다. 방송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눈으로 봐도 굉장한 규모의 행사였다. 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지역 언론들은 칼리시에 있었던 놀라운 변화들을 주요 뉴스거리로 다루었다. 심지어 저녁 뉴스 진행자들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시청자들에게 믿음에 상관없이 철야 집회에 반드시 참석하라고 종용할 정도였다.
집회 시간 90분 전에 도착했는데 장소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취재차 경기장을 걸어가는데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스탠드에는 5만명의 예배자들이 성령의 불을 받을 준비를 하며 서 있었다. 미처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한 1만 5천명 정도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실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사람들끼리 찬양하며 경기장 주변을 여러 시간 돌았다. 다양한 교회에서 모인 워십팀이 15미터 간격으로 육상 트랙에 자리 잡았다.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음악에 맞추어 몸으로 찬양했다. 칼리시와 시민들 모두가 큰 부담을 덜었기 때문에 장로교 침례교 오순절 등 교단이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자유의 기쁨을 누렸다.
사람들의 열기를 보면서 그들의 기쁨에는 무언가 다른 기쁨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거나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온 유일한 목적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지난 36개월 동안 칼리시에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을 앞으로도 계속 보내달라고 간구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이 경기장에서 당신은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보고타의 콜린 크로포드 목사가 말했다. 몇 년 전만해도 복음전도자들이 이렇게 모이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죽음을 수출하는 곳으로 악명 높았던 이 도시가 이제는 도시가 바뀐 사례로 꼽힌다. 이렇게 희망을 수출하는 곳으로 변했다.
경기장 높은 곳에 위치한 프레스 부스에 있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그는 캐주얼로 입은 사람을 가키며 속삭였다. “저 사람이 콜롬비아에서 유명한 스포츠 캐스터이다. 중요한 축구 경기는 모두 저 사람이 중계한다.” 라파엘 가메즈라는 이 캐스터 역시 최근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이런 광경을 전에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울면서 대답했다. “전혀 없다. 처음이다.”
새벽 2시 30분경 나와 촬영기사는 공항으로 가기 위해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떠나는 발걸음을 선뜻 내딛기 어려웠다. 문 밖에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그들은 우리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생각을 뻔히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가느냐? 하나님의 임재를 어째서 떠나느냐?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올라타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사람들이 영어로 외치고 있었다. “예수를 높입니다. 예수를 높입니다.” 경기장에서 외치는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꿈인가 생기인가 싶었다. 불과 36개월 전만 해도 폭력과 부패의 온상으로 불리던 지역이 아니었던가? 목회자 연합 사무실에는 먼지만 뽀얗게 싸인 서류들이 가득했었다.
1998년 말에 칼리시장과 시의회에서 목회자 연합모임을 찾아와서 가정을 강화하는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운동을 진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부담도 덜어주었다. 그래서 깨진 가정을 위한 세미나나 집회를 위해서라면 축구 경기장이나 체육관도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합의했다. (조지 오티스 주니어 씀 / 번역 장택수)
* 본 글은 호주에서 발행되는 Renewal Journal에 실린 것으로 국내 유일의 성령사역지 [뉴와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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