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장 4절>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지난날의 때마다 일마다 돌보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은 먹고 사는 땅의 것들에만 집착하여 믿음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육신이 약하여 넘어졌던 부끄러운 시간 시간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비록 가난하여도, 연약하여도 하나님의 뜻 안에 살기 원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소망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기 원합니다.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했노라고 간증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흩어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 적을 둔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나가 있습니다. 객지에 …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 고통을 견디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어느 곳에 있든지 예배하는 사람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주간에 큰 시험을 치루어야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저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단지 시험 때문에 염려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 들고 섰습니다. 능력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저는 좀 평안치 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몸이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수험생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담대한 마음으로, 평안한 마음으로 … 준비한 것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를 얻기 바랍니다.
사실 우??삶은 매일 매일이 시험입니다. 매일매일 통과해야 할 문이 있고, 넘어야 할 언덕이 있고, 건너야 할 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승리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 …
올해 우리는‘강하고 담대하라’는 주제로 시작했습니다. 힘든 세상살이지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삼상 17:45) 골리앗 앞에 나갔던 다윗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살자」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도 어려운 일 많았습니다. 한숨도 쉬었고, 눈물도 흘리고, 기막힌 일 앞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 그런 순간들도 우리는 홀로 있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무명 시인이 쓴 ‘모래위의 발자국’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간 때이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홀로 두지 않으시고 늘 동행해 주시는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용기 잃지 말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범사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저는 매년 8월이면 다음해, 그 다음해까지 들어 있는 수첩을 준비해 사용합니다. 멀리 계획하며 기도하며 준비합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내년만 생각하면 …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대가 됩니다. 우리교회는‘비전과 열정’이라는 주제로 새해를 맞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가슴 뜨거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새해를 은혜의 복된 해로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내년을 계획하는 교육부도 열정을 가지고 비전을 이룰 계획을 세웠습니다. 찬양대도 모든 찬양에 열정이 담긴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힘 있고, 힘차고, 숨이 벅찰만한 곡을 택하세요. 내년 모든 찬양곡을 지금부터 준비하여 보고 하세요. 여러분도 범사에 비전과 열정의 삶을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이제부터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에 기본인 예배, 기도, 구원 받은 기쁨 … 등 부르심 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에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입고 간 옷을 벗기고 군복을 입힙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하는 훈련이 제식훈련입니다. ‘제식훈련’은 군인의 기본정신 함양과 절도 있는 단체 생활을 위하여 행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제일먼저‘차렷, 열중 쉬어, 뒤로 돌아, 앞으로 가, 제자리에 서 …’훈련을 합니다. 성인이 되어 군대에 간 청년이 뒤로 돌 줄 모르고 앞으로 갈 줄 몰라서 이런 훈련을 합니까? 군인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기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본이 제대로 갖춰질 때 백 명이 한 명 같이, 천 명이 한 명 같이 … 신속하고 절도 있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제식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딤후 2:3)라고 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그리스도의 병사로 부름 받은 우리도 일반 병사들이 훈련받아야 하는 것 같은 기본이 있습니다. (예수의 병사) 성도의 기본은 예배와 기도,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신앙생활 시작한 지 몇 년인데 예배드릴 줄 / 기도할 줄 / 말씀 볼 줄 모르겠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다운 삶을 살기 위해 … 비전과 열정을 품기 위해 … 성도로서의 기본을 갖추었는지 늘 자신을 확인해보고 재훈련해야 합니다.
기본이 되는‘예배’
그리스도의 병사, 성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예(禮: 예절, 경의를 표하다) 배 (拜: 절하다, 감사하다, 사의를 표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예배는 예를 갖추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임재’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가 경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臨在: 임할 임 / 있을 재)
그러므로 예배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거나 부활을 기억하여 하는 행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하라 하셨고, 예배하는 자를 만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 찬양 가운데 찬양받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하심이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받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 기도 중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집중하여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몰입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배에 대한 착각 …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예배에 대한 착각 중에 하나는 ‘예배당에 발을 들여놓으면 예배를 드렸다’ 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나마 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조차도 시간을 지키지 않고 5~10분 정도 늦게 옵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축도가 끝나자마자 - 빨리 차를 빼기 위해 … - 사람들이 번잡하게 몰려나가기 전에 … - 약속이 있어서 … - 배가 고파서 … 빠르게 빠져 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 전에만 교회에 들어가면 예배에 늦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축도를 받았기 때문에 또는 헌금했기 때문에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드린 것이 됩니다.
예배에 있어 또 다른 착각은‘예배는 보는 것’ 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설교하는 목사가 아닙니다.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도 아니고 찬양대도 아닙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드리는 우리들 모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 각자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려야 하는 예배의 주인공들이 구경꾼처럼 예배를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각자가 … 최선을 다한 주인공, 예배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면 누가 만족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예배를 통해 우리가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흔히 하는 말이 ‘오늘 예배는 별로였어’라고 합니다. 자기 마음에, 자기 기분에 맞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지,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 중에 깨달은 것이 있고 감동이 있어서 ‘오늘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받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가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고 불평하고 교회를 찾지 않으려하니까 교회들이 변화를 시도합니다. 현란한 조명과 무대 장치를 하고 … 여러 가지 전자 악기들과 고가의 음향장비를 갖춰놓고 … 심지어 어떤 교회는 이벤트와 쇼 같은 행사로 예배를 바꿉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까? 그렇다면 아프리카에 모일 곳이 없어 햇볕을 피해 나무 밑에 모여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나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
물론 시대에 따라 예배의 형식과 방법은 변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와 현재 우리의 예배 형식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변화된 것들이 누구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고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저는 예배가 재미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예배가 재미있어야 합니까? 예배가 무슨 개그프로입니까? 설교가 웃자고 하고, 웃자고 듣는 것입니까? 설교하는 목사가 개그맨처럼 웃겨야 합니까?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절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할머니, 할아버지께 절하러 가는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절하는 것이 재미없다고 안갑니까? 절을 재미로 합니까? 부모님께 문안인사 드리는 것을 재미로 합니까?
어른들이 ‘공부해라. 건강해라. 밥 잘 먹어라.’하는 말씀들이 매번 똑같다고, 재미없는 말만 한다고 인사드리기 싫다고 합니까? 명절에 두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걸려 고향에 가는 것이 재미있어서 갑니까? 예배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감동으로, 감사함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에,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예배를 단순히 구경한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예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찬양 중에/말씀 중에/기도 중에 … 함께 하시는(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 같은 갈급한 심정으로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강단을 통해, 목회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하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연극을 하는 배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실력과 재능을 쏟아 붓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쏟아 부음이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몰입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 있어야 몰입함이 있어야 예배에 성공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예배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것에 인색합니다. 예배 시간조차 아까워합니다. 예배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길어지면 시계를 들여다보고 안색이 변하고 두리번거립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공부나 하라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일부 집사, 권사 … 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주일 예배 드리는 시간 때문에 성적이 안 오르고 시험에 떨어질 정도라면 공부보다 다른 길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위해 대가를 치루는 것은 거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정성을 드려 예배를 위해 최고의 노력을 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주일을 지키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십니까? 평상시에는 어떻게 살고 토요일에는 어떤 준비를 하십니까?
더 나은 제사를 …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 ”(히 11:4) 고 했습니다. 더 나은 것이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칭찬을 받았을까요?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3절에, “ …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 … ”(창 4:3) 다고 했고 이어 4절에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 … ”(창 4:4) 다고 했습니다.
가인도 아벨도 자신이 일해서 얻은 것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4장 4~5절에 “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 ”(창 4:4~5) 고 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자신이 일하여 얻은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둘의 제물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신이 땅에서 거둔 소산 중에 구별 없이 드렸지만 아벨은 구별된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것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단지 아벨과 비교해서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의 예배가 실패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서의 삶과 행동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후 가인의 행동을 보면 가인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4장 5절에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물과 예배를 받지 않으시면 죄송해하고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잘 할 방법을 찾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분을 내며 안색이 변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에 보면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20) 했습니다. 여러분! 분을 내고, 성질을 부리고, 안색이 변하고, 욕하고, 폭력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 예수 믿은 지 오래되었든 아니든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시는 책망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 6~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 (창 4:6~7)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떳떳하지 못한 행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 …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가인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에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도 / 순종할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들에서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창 4:8)
죽인다는 것이 꼭 숨을 끊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인격을 죽이고, 자존심을 죽이고, 명예를 죽입니다. 자신이 가진 입으로, 힘으로, 도구로 다른 사람을 치는 것이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하셨는데도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삶 전체를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벨과 비교해서 가인의 제물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인의 삶 전체를 보니 가인이 드리는 예물을 아예 받기 싫으셨던 것입니다.
산 제물로 … 항상 …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했습니다. ‘산 제물’,‘산 제사’라는 말은 ‘삶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가 특정한 날, 특정한 장소에서 드려지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산 제사는 매 순간순간마다 때마다 일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예배는 삶 속에서/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를 회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삶 속에서 드리는 산 제사에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34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34:1) 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입니다. 일주일에 내내 삶의 현장에서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는/하나님을 만나는 삶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일터에서/삶 속에서/언제 어디서나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시 113:3)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사무실 책상 앞에서, 교회에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 ”(시 62:5) 며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 무슨 일을 하든지 …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이 하고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듯 할 때 예배자로 더 나은 예배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배시간에 예물 드리는 가인의 제사 같은 예물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예배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비전과 열정을 가졌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그것이 값있는 것이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회복하자고 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 예배, 더 나은 예배,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칭찬 받는 예배, 승리하는 예배자가 되자고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예배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예배자로 살기 원합니다. 더 나은 예배자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을 붙들어 세워 주셔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승리자, 예배의 성공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8년 11월 9일 주일낮예배 설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