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리더쉽

21세기 리더십

21세기 리더십
 
제주대학교 경영학과 고부언 교수님
 
 
1. 아문센과 스콧
 
1911년 두 탐험대가 처음으로 남극을 정복하겠다며 길을 떠났다.
하나는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이끄는 팀.
또 하나는 영국의 로버트 F 스콧경이 이끄는 팀이었다.
하지만 양측은 너무나 상반된 운명을 맞게 된다.
아문센은 에스키모들의 경험담과 여행 노하우를 철저히 분석하여 장비와 루트를 준비했다.
에스키모 개가 끄는 썰매로 사람과 장비를 운반하는 것이 최상임을 파악한 그는 탐험대원도 개 썰매 몰이 전문가들과 숙달된 스키어들을 주로 뽑았다.
하루에 6시간, 15~20마일씩 움직이는데 체력 한계를 고려하여 휴식을 주었다.
남극점까지 이르는 루트 곳곳에는 베이스 캠프를 세우고 물품을 가득 채워 탐험대가 지고 가는 짐을 최소로 줄였다.
이렇게 아주 치밀하게 사전 준비한 까닭에 아문센의 탐험대는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영국 해군장교 출신인 스콧은 상세한 사전 답사를 하지 않았고, 개 썰매가 아닌 모터엔진으로 끄는 썰매와 망아지들에게 의지했다.
길 떠난 지 닷새만에 모터엔진은 얼어붙었고, 망아지들도 동상에 걸려 죽었다.
할 수 없이 대원들이 각자 200파운드가 넘는 짐을 지고 가야 했는데, 복장과 장비를 제대로 안 챙겨 모두 동상에 걸리는 바람에 하루 한 시간도 걷지 못했다.
중근 보급 캠프엔 충분한 물자가 없었고, 그나마 표시도 잘 안되었다.
그런 식으로 10주 동안 800마일을 걸어서 남극점에 도달했건만, 이미 아문센 일행이 한 달 전에 꽂아놓은 노르웨이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돌아오는 두 달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대원들은 하나씩 죽어갔고, 베이스 캠프로부터 150마일 되는 지점에 이르러 대장 스콧도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우리의 죽음은 역경을 이겨내는 영국인의 의지와 힘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입증할 것이다”였다.
멋진 말이긴 했지만, 스콧은 체계적인 준비 부족으로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지도자였다.
우리 지도자들은 너무 허풍이 세다.
‘세계화’ ‘국제 허브 도시화’ 등 책임도 못질 엄청난 단어와 목표를 턱턱 남발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보나 자세를 보나 자기 약속을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철저하게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는 자기가 이끌고 있는 사람들마저 파멸시킨다.
1999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기업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제 스타나 신화적인 존재보다 철저하게 실무적인 CEO들이 주름잡는 시대가 왔다”고 밝혔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 전(前) 회장은 “당신이 그 부서의 리더라면 자신이 그 자격이 있음을 매일 현장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는 인격으로 신뢰를 얻고, 실력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특히 스콧처럼 준비 부족으로 자신과 부하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큰소리치는 자가 아니라 준비된 리더가 장악한다.
 
 
2. 윈스턴 처칠의 리더쉽 (벼랑 끝에서 만난 처칠)
 
처칠은 당대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세계 최고의 정치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사후에 인정을 받는 여러 위인들과는 달리 처칠은 생전에 최고의 영예와 존경을 받았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는 아무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위대한 역사 그 자체’로 대우 받았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보냈다. 처칠의 인생에서 예순여섯 살까지의 정말 힘겨웠던 시점을 생각해 보면 그 이후의 삶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해피엔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가 받았던 존경과 누렸던 영예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지켜온 기본 원칙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영광이 더욱 더 빛이 나는 것이다. 처칠의 성공비결 뒤에 숨어 있던 원칙은 어떤 것일까? 윈스턴 처칠의 이니셜을 따서 WC원칙이라 명명한 15가지 비결을 알아보자.
 
WC 1 원칙_자신을 사랑하라
사실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 되기에는 결점이 너무 많았다. 학벌도, 지역적 기반도, 믿고 따르는 지지 세력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었다. 특히 장관 시절의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언론이나 국민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전혀 위촉되지 않았고, 자신을 미워하거나 비하하지 않았다. 만일 주위 사람들의 맘 때문에 자신의 신념이 흔들렸다면, 그는 아마도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전역 후에는 연금으로 조용히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을 삼았을지도 모른다. 처칠이 뒤늦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능력과 운명을 믿었기에 자기 행복이나 성공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두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은 여론을 따르지만, 영웅은 여론을 만든다. 이 모두가 자신에 대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WC 2 원칙_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늘날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길어졌지만, 경제활동이 가능한 나이는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젊음을 찬미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직장인들은 30대 후반만 되어도 벌써 심적 부담을 갖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크겠지만, 사람들이 너무 조급하게 성공하려는 의지를 발산한 탓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실제로 아주 이른 성공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무려 66년을 인내하며 기다렸던 처칠을 생각해 보라. 처칠은 결코, “난 이미 늦었어”라는 말로 포기를 정당화하지 않았다. 어저면 가장 늦은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성장을 멈추기로 작정하는 순간부터 늙는 것이다. 그가 일흔여섯의 나이에 다시 수상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사람들은 그의 나이를 들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결국 당선되었다. 이제는 늦었다고 모두가 포기하는 나이에 새롭게 도전하고 노력하여 성공을 이룬 처칠의 인생은 더 나은 삶을 찾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최고의 모델이다.
 
WC 3 원칙_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처칠은 일찍부터 수상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에게 다른 무모한 야심가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수상으로 갖춰야 할 모든 소양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야인으로 있는 동안에도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얻는 등 항상 유럽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영국 정부의 관료들이나 교수들과 교분을 유지하면서 국내의 정세를 분석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운명적인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세, 꿈을 이루기 위한 줄기찬 노력에 운명의 여신은 미소를 보내는 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대한 꿈을 품는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며 꿈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처칠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의지력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실패가 거듭되어도, 한 번 품은 꿈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WC 4 원칙_운명과 싸워라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불행했던 그의 어린 시절은 어른이 된 뒤 그를 지극히 가정적이고 자상한 가장으로 만들었고, 성적이 썩 좋지 않았던 그의 학창 시절은 훗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진지한 자세의 바탕이 되었다. 세 번의 청혼실패 뒤 결혼한 클레멘타인과 처칠은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폭풍우와 같던 처칠의 일생에 든든한 기둥이 되었고, 마침내는 영웅 처칠을 만들어냈다. 물론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지만 바로 그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처칠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또한 어떠한 정치적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였지만, 바로 그 독립적인 입장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학연이나 지연에 구속되지 않고 공정한 전시내각을 구성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운명에 순응하여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역사는 처칠을 통해 운명에 맞서 단호하고 싸울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자기 운명의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WC 5 원칙_저 높은 곳에 목표를 설정하라
처칠은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고 구설수에 올랐을 때에도 항상 문제를 정면돌파했으며 결코 회피하거나 술수를 쓰지 않았다. 인생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은 다다넬스 패전에 대해서조차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패전의 책임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키치너에게 있다고 말했다. 작전계획을 세운 사람은 처칠이지만 키치너가 계획과는 달리 육군을 파견하지 않았기에 오직 해군의 전력으로만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칠은 키치너의 행동을 전혀 문제 삼지 않은 채,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고 깨끗하게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작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작은 시련에 좌절하지 않는다. 처칠의 60년에 걸친 공직 생활 중, 돈 문제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추문에 휩싸인 적이 없었던 것은 그가 높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WC 6 원칙_희망의 편에 서라
똑같은 병사와 함선을 가지고 이순신 장군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균은 참패를 당했다. 그러한 리더쉽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뛰어난 리더는 국민이든 병사이든 간에 조직에 속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경멸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긍지를 심어주며 공로를 인정한다. 즉, 평범한 지도자는 오직 자신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려고 애쓰지만 뛰어난 지도자는 평범한 사람들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고 성공의 열매를 함께 나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처칠은 주위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찬양할 때마다 자기가 영국 국민들을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위대한 능력을 일깨워 준 것에 불과하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원대한 꿈을 품고 있다면 현재의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행복의 열쇠다. 절망하고 있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오래전에 품었던 큰 꿈을 간직하며 살도록 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WC 7 원칙_바른 길로 가라
그가 다른 정치인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다는 점이다. 처칠은 어렸을 때부터 구속 받는 것을 싫어했고, 교조적인 조직에 적응하지 못했다. 평생 종교적이지 않았고, 또 일정한 정치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 구속을 받거나 예속되는 것을 싫어했던 만큼, 그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했다. 그는 전체주의적인 나치즘을 증오했고 나치 독일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항복 이외에는 어떠한 평화협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전쟁에서 진다면 처칠이 독일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거라는 나치의 선전을 믿고, 끝까지 연합군에게 저항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의 진심을 의심했던 사람들도 마침내 평생에 걸친 그의 노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남들이 당장 알아주지 않아도 항상 크고 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했던 처칠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려면 항상 바른길로 가라.”
 
WC 8 원칙_정직이 최선의 전략이다
처칠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항상 정직하게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는 수상이 되자마자 “내가 여러분에게 줄 것이라고는 피와 땀과 눈물과 노고뿐”이라고 말해서 당시의 상황이 최악임을 알렸고 “지금 영국과 다른 나라들은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고 밝혀 영국 국민들에게 앞으로는 더 큰 희생과 고통이 찾아오리란 사실을 정직하게 일깨워 주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했을 때에도, 싱가포르가 함락되었을 때도 그 어두운 패배의 소식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위기의 시간에도 변함없이 당당한 자세와 강인한 의지를 보여 줌으로써 항상 주위사람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그는 아무리 나쁜 소식이 있어도 결코 동요하거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늘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런 긍정적인 힘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주변에 퍼지는 것이다. 처칠에게는 바로 그런 강력한 힘이 있었다.
 
WC 9 원칙_원칙에 충실하라
전쟁이 시작되자 공경에 처한 영국에게 나치는 끊임없이 평화협상을 지의했다. 국내에서도 나치와의 협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처칠 내각에서 외교부 장관을 맡은 핼리팩스 경까지도 그런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처칠은 그 모든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오직 “무조건 항복”만을 강경하게 요구했다. 처칠에게 나치는 도저히 남겨놓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범죄 집단이었기 때문에 존속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히틀러에게 양보를 거듭한 체임벌린 수상은 평화애호가 이자 유능한 협상가로 칭송을 받았다. 반면에 융통성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처칠에게는 “전쟁미치광이” 혹은 “파시스트”라는 비난이 퍼부어 졌다. 그러나 역사는 고집쟁이 처칠이 옳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혹은 체임벌린처럼 치욕스러운 이름을 남겼을 뿐이다. 원칙은 왜 중요한가? 원칙은 우리 사회에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비슷한 두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권위를 잃게 된다. 비록 선거에서 지더라도, 여론의 매를 맞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것을 처칠은 말하고 있다.
 
WC 10 원칙_유연하게 대처하라
처칠은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면 그가 어떤 파벌에 속해 있든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든지 개의치 않고 서슴없이 일을 맡겼다. 반면에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장군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가차 없이 해임했기 때문에 처칠 휘하의 장군들은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유일한 목표를 두고 그것을 이뤄가는 데 있어 기본 원칙에는 철저하되, 그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처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해 나갔다. 처칠은 가장 큰 목표, 즉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설사 자기와 의견이 다르거나 자기와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과도 손을 잡았기 때문에 오늘날 경영학에서는 말하는 ‘목표지향성 관리’를 일찍이 실천한 지도자였다. 만들어 놓은 이미지와 실제의 모습의 전혀 다른 수많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주위의 사람들의 그 인간미에 스스로 탄복하게 만드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WC 11 원칙_현장에 있으라
처칠은 아프리카나 유럽 전장에 불쑥 나타나 전황을 살피곤 했다. 수상이 전장에 나타나면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는 효과도 있었지만, 현지사정을 파악해야 런던에서 적절한 작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칠은 전투가 치열한 최전방에서 요란한 총소리를 들으며 막사 식당에서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현대 경영학에서도 CEO가 가급적 업무현장을 자주 돌아다니는 것이 회사의 능률도 높이고 사원의 사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돌아다니며 경영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자가 귀한 때였으므로 정부가 전선에 잇는 전체 병참을 개선하기는 어려웠지만 병사들은 세심한 수상의 배려에 감사하고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노년의 수상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주 최전선에 나타나 병사들과 대화하는 것은 처칠이 택한 자기희생의 방식이었다. 병사들은 처칠을 보고 처칠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꼈다. 늘 젋은 감각을 유지하고, 현장에 정통했던 처칠의 예는 속도가 곧 경쟁력인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일 것이다.
 
WC 12 원칙_사소한 일에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처칠은 정적들에 의해 터무니없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괴팍했던 아버지와 바람둥이 어머니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런 쓸데없는 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치적인 패배, 경제적인 어려움, 신체적 불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처칠에게 그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시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오면, 모든 비난과 트집을 일거에 잠재우고 실패와 패배를 딛고 일어나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마술처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으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거나 극복할 필요도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처칠은 자기가 가진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무기력하게 현실에서 도피하지도 않았지만, 현실의 사소한 어려움이 그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도 없었다. 쓸데없는 것들에 의해서 자기 인생이 좌우되기에는 한번뿐인 인생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다.
 
WC 13 원칙_유머를 가져라
처칠은 유머감각을 타고 났던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던 처칠의 부모가 남을 즐겁게 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으니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을 리도 없다. 학창시절에도 처칠은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반 친구들을 웃기고 주목을 받는 학생이 아니라 늘 조용히 구석에서 혼자 지내는 외톨이였다. 그처럼 처칠의 뛰어난 유머는 타고 났거나, 남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칠의 유머와 연설은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반복한 연습의 결과로 이뤄진 것이다. 그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웃음의 힘을 믿었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웃음을 피어나게 하는 유머의 능력을 믿었다. 그의 낙관론과 유머는 주위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들 사이에 퍼져서, 전쟁의 비극을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 유머와 웃음이 자기의 삶은 물론 남의 삶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최초의 지도자가 바로 처칠이다.
 
WC 14 원칙_과거는 묻어 버려라
처칠의 장점은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반대당이 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만약 찬성만 한다면 반대당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항상 치열하게 살아가는 투사였기 때문에, 상대방도 그처럼 전력을 다해 투쟁할 것을 기대했다. 따라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이 아무리 격렬하게 그를 비난해도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품거나 언짢은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가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살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강한 자의식에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모욕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가 증오감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언젠가는 상대방도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설령 지금 당장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뒤를 보고 걷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우리의 두 눈이 얼굴에 있는 이유에는 뒤가 아니라 앞을 보라는 뜻이 숨어 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오직 앞만 보고 산다.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것이 처칠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이다.
 
WC 15 원칙_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라
처칠은 물론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단점들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또 어떤 단점을 고치려고 애를 썼지만, 평생 간직한 것도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단점만을 탓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나 약점들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처칠과 같은 영웅들도 평생 고치지 못했던 문제이다. 극복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그 단점을 전환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처칠은 가장 모범적인 예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우리가 처칠을 실패자로 보지 않는 이유로 처칠의 위대함이 그가 가진 많은 단점을 모두 덮어버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처칠이 평생 자기의 단점들을 짊어지고 산 것처럼 우리도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단점이 있을지라도 그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놓고, 큰 장점들을 살린다면 처칠 같은 위대한 인물의 전례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 한참을 뒤척여도 쉽사리 잠들지 못한 적이 있는가? 무언가 무거운 것이 가슴을 억누르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나뿐 일만 벌어져서 좌절한 적이 있는가? 애쓰다가 지쳐서 이 힘든 삶의 끈을 이제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처칠과 같은 사람이다.
 
오늘날 혼탁한 세상에서 처칠의 성공이 유독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과는 달리 처칠은 집안이나 친척, 처가, 학벌 같은 외적인 조력 없이, 주위에서 밀어주거나 도와주려는 사람도 없이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노력해서 성공을 이뤘기 때문이다. 또 그 어려운 과정에도 결코 자존심을 굽히거나 개인적인 욕심에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칠은 가혹한 인생길에서 쓰러지면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고 또 쓰러지면 다시 혼자서 일어나는 지독한 의지력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갔다. 날로 삶에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이 늘어가는 때, 처칠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40년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역사의 유산은 더욱 크게만 느껴진다. 삶의 무게가 유달리 나를 짓누를 때마다 떠오르는 그의 말이 있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