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교회를 드리는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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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 / 차성도 교수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롬 15:25-26)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시는지 수없이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다. 최근 들어 교회에 대한 사회의 지탄이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구석진 사람들에 대한 돌봄이 늘어나는 반면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교회들은 방치되고 있다. 사도행전 11장에 아가보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예언한 대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 크게 흉년이 들자 제자들이 유대의 형제들에게 부조보내기를 작정하고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유대의 형제들은 로마서 15장에서 보듯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이었으며, 이를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교회들이 기쁘게 연보에 참여하였다. 우리는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이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는가를 통해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에 대한 원리를 찾을 수 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1-5)에서 보면 첫째로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행 20:35) 둘째로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은 환난의 많은 시련 그리고 극한 가난에도 풍성히 해야 한다. 돈이 궁해서 드리지 못하는 교회/사람은 그로 인해 항상 가난에 처해있지만,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히 베푸는 교회/사람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한다.(잠 11:24-25) 셋째로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려야한다. 하나님은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닌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 9:7) 넷째로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을 특권으로 인식하고 요청이 있기 전이라도 특권에의 동참을 먼저 청해야한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할 마음이 있는 헌금만 받으신다.(고후 8:12) 다섯째로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우선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려야한다. 다윗 왕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 받은 것을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역상 29:14)라고 고백해야한다.

교회가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인정한다면 다른 교회의 아픔은 우리 교회의 아픔이고 다른 교회의 부족함이 우리 교회의 부족이어야 한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b)처럼 영적인 빚을 진 이방교회가 물질적으로 부족한 예루살렘 교회를 마땅히 섬겼다. 이와 같은 서로간의 아름다운 나눔을 통해 초대교회는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전 8:14-15)의 말씀을 성취하였다. 오늘날 모든 교회들이 초대교회를 본받자고 외치지만, 휘황찬란한 사치스러운 예배당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우아하게 예배드리는 부자교회들이 차디찬 마룻바닥에 꿇어 엎디거나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예배드리는 가난한 교회들의 아픔을 알고나 있는가?

교회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금의 성경적 원리보다는 자본주의적 경제 원리를 그대로 쫒고 있는 지금의 교회들에게 성경이 주는 해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I(고후 8:9)이다. 즉 교회들이 우리 주님처럼 자발적으로 가난해져야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이웃교회들이 주님의 몸임을 인식해야하며, 교회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필요에만 따르도록 자신은 극도로 제한하고, 이웃의 교회들에게는 풍성히 나누어야 한다. 이와 같이 다른 교회들의 부요함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가난해질 때, 이웃 교회들이 부요해질 뿐 아니라 우리 교회도 함께 부요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