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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령을 소멸치 말라!
본 문 : 욜2:28-32, 살전5:16-22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이 표어 아래 살아온 한 해의 삶을 돌아다보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다양한 반응들이 예상됩니다. 내리는 이슬처럼 느껴지는 감사의 사연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갈급해하며 살아온 삶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모든 역사에 성령님의 역사는 필수적입니다. 창조(창1:2)와 구속(마1:18), 거듭남(요3:5)과 성화의 전 과정(고전12:3; 갈5:16)을 거쳐 영화에 이름(계22:17)까지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성령의 역사하심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차이는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일시적으로만 임하셨다가 어떤 일이 끝나면 곧 떠나셨다는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성도에게 한번 임하시면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요14:16). 영원히 함께 하시는 신약의 성령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신약본문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의 참 뜻이 무엇임을 묻게 됩니다. ‘소멸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벤뉘테’는 ‘억누르다’, ‘질식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불붙은 심지를 끌 때나(마12:20), 불의 세력을 멸할 때(히11:34) 이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제3위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질식된다든지 소멸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감히 성령님의 뜻에 저항하거나, 그의 인도하심을 거부함으로써 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보혜사(保惠師)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당연히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갈5:16), 감히 거역하는 불순종을 범할 때, 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는 우(愚)를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물론 불행입니다.
우리가 감히 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소멸이 있기 전의 상태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근심하시는 상태입니다. 모든 근심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롬15:30). 거짓말이나 탐욕, 혈기나 도적질, 합당치 못한 말, 그리고 부도덕한 일 등,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현저하게 어긋나는 태도를 계속적으로 취할 때 근심하십니다(엡4:25-31). 기독교인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요(고전6:19), 기독교인의 마음 또한 영적교제의 현장입니다(계3:20). 마음의 어지럽힘과 몸의 남용(濫用)과 오용(誤用)은 성령의 근심이 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이런 불행들을 빗겨갈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의 실현이 가능케 됩니다(롬12:1-2; 갈5:16-21). 우리의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따라 행할 때에만,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하십니다(갈5:22,23).
성령님의 활동을 왕성케 해 드리는 길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꺼이 따르는 일입니다. 1)성령의 소욕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버리는 일입니다(갈5:16-21). 2)이런 소극적인 자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즐겨 순종하는 삶의 강화입니다(엡5:15-18). 3)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그에 따른 순종입니다(삼상15:22,23).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소홀함이 모든 범죄의 원조(元祖)이며, 실낙원의 비극원인입니다. 오늘의 구약본문(욜2:28-32)과 신약본문(살전5:16-22) 모두 어려운 때를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길잡이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도우심 없이 한 순간도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그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목마른 사슴처럼(시42:1-3) 사모하며 한 걸음씩 순간순간 신뢰하며 따르십시다. 그 길만이 살길입니다(행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