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종말사상과 새창조의 조건

바울의 종말사상과 새창조의 조건
 | 바울신학이란?

바울의 종말사상과 새창조의 조건
-고린도후서 5:1-10을 중심으로-

김 도 현

Ⅰ. 서 론

고린도후서 5:1-10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본문에서 나오는 용어나 표현들이 특수성 때문에 주로 바울의 종말론 자체에 관한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래서 왜 바울은 고전15장에서 부활의 신앙을 강조하다가 고후5장에서는 영혼이 몸을 벗는 것(5:3) 같은 헬라적 사고를 말하고 있는가? 바울의 사고의 전환의 배경은 무엇인가? 바울은 몸의 부활을 원하는가 아니면 중간상태를 원하는가? 등의 문제가 본문연구의 주제가 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본문에서 자신의 종말론이나 부활의 문제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고 보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적고, 문맥상의 연속성에도 본문을 독립시켜야 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지 받기 어렵다. 그래서 몇몇 연구는 본문을 종말의 주제에서 탈피해 문맥적 상황하에서 바울의 현실에 관해 연구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으나 이 또한 본문에 면면히 흐르는 종말적 분위기를 배제한 절름발이 연구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글은 고린도교회속의 바울의 위치와 문맥적 흐름 속에서 바울이 본문을 통한 종말적 상황을 말함으로써 의도한 바를 추적하고자 한다.

Ⅱ. 전체 구조

고린도후서의 전체구조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린도후서의 단일성문제가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간 많은 연구를 통해 고린도후서가 2편 혹은 그 이상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왔다는 연구가 있어왔고 만약 고린도후서가 단일편지가 아니라 여러 편지의 조합이라면 전체구조 또한 그 배경 하에서 논하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린도후서의 집필순서나 그 구성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가설이 있고 아직도 공통된 견해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많은 주장 중에 그래도 높은 지지를 받는 큰 가설은 고린도후서가 단일편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몇 편의 편지로 구성되었느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많은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고후1-9장과 10-13장은 명백히 다른 편지라는 것은 어느정도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머피-오코너(J. Murphy-O\'Connor)는 1-9장과 10-13장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심리상태로 볼 때 이 둘의 분리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즉, 1-9장에서 나타나는 화해의 축하 분위기는 10-13에서 나타나는 격양되고 질타하는 분위기와 상반된다는 것이다. 또한 1-9장 사이의 많은 단절과 삽입등으로 1-9장 사이도 여러부분의 편지로 나누는 연구가 있어왔다. 이러한 견해 중 보른캄(G.Bormkamm)의 분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 2장 14절- 7장 4절(6:14-7:1은 제외): 사도적 변명의 시
B. 10장 1절- 13장 3절: 눈물의 편지
C. 1장1절- 2장13절 + 7장 5-16절: 화해의 편지
D. 8장1-24절: 헌금 모금을 위한 디도의 파견 때의 추천의 편지
E. 9장 1-15절: 헌금을 위한 아가야 교회들에 보낸 희랍편지

그러나 고린도후서가 여러개의 편지로 조합되었다는 이와같은 일련의 주장들 자체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단지 인사말(1:1-2)와 끝인사(13:11-13)가 하나로 구성되었다는 근거는 차치하더라도 1-9와 10-13을 나누는 데 가장 많은 근거가 되는 가설, 즉 10-13장이 2:4절에 나오는 \"눈물의 편지\"인가라는 가설도 10-13의 분위기가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섰다는\"(2:4) 침통한 분위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화가 난 상태에서 야단치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각편지의 숫자도 학자마다 다르다는 것은 고린도후서에서 조합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편지를 발굴하는 작업 자체에 대한 신빙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더군다나 몇몇의 편지가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편집되었으며 특히 보른캄의 분류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편지가 쪼개져서 배치되어 있다는 것(1:1-2:13 + 7:5-16)은 그럼 대체 왜 편집자는 이처럼 무질서하게 편집했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더 이상 진전을 볼 수 없다. 결국, 고린도후서의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할 수 있으며, 단지 이 글에서는 단편들의 분류면에서 보른캄의 분류를 일부분 수용하면서 주제적인 측면으로 전체구조를 제시하고자 한다.

A. 인사말과 안부(1:1-2:13)
B. 고린도교인을 향한 사도직 변호(2:14-9:15)
a. 사도직에 대한 변증(2:14-5:21)
b. 사도로서의 권고(6:1-9:15)
C. 대적자를 향한 사도직 변호(10:1-13:10)
a. 대적자에 대한 비난을 통한 사도직 변호(10:1-18)
b. 자랑을 통한 사도직 변호(11:1-13:10)
D. 끝인사(13:11-13)

위와같은 분류는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관점 하에서 분류한 것이다. 물론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이 문제시 되어왔지만 고린도후서의 목적이 대부분을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글이라는 것은 학자들간의 별 이의가 없어왔다. 그동안 바울의 대적자에 관련하여 바울의 사도직 변론은 10-13장에 집중되어 왔지만 2:14절 이후부터 상당수 또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로 볼 수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변호의 대상의 차이인데 B단락에서의 사도직 변호는 그 대상이 10-13장에 나오는 대적자에 의해 바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고린도교인들을 상대로 설득과 변명의 어조로 변호하는 반면 C단락에서는 그 대상이 직접적인 대적자를 상대로 꾸짖음과 비난의 어조로 변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Ⅲ. 고린도교회와 바울의 갈등배경

이 글의 본문(5:1-10)은 전체구조에서 고린도교인을 향한 사도직 변호중 a. 사도직에 대한 변증(2:14-5:21) 에 속해있다. 사도직에 대한 변증이라는 말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교인 사이에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것을 바울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면 고린도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불신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
고린도교인이 가지는 바울의 사도직 불신은 10-13장에 등장하고 있는 대적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대적자들의 비방에 의해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대적자들의 바울에 대한 비방과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는 바울의 부정적인 측면, 그리고 바울의 이에 대한 항변에 대해 정양모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바울은 마주 대하면 하찮지만 멀리 떨어져 쓴 편지들을 살펴보면 기고만장하다 (10:1;10:10), 바울로는 언변도, 건강도 좋지 않다. 대적자들은 어느 교회 또는 어느 실력자의 추천서를 지니고 왔다(3:1). 바울과는 달리 대적자는 언변도(10:10; 11:6), 건강도(10:10) 좋았다. 대적자들은 자신을 내세우고(10:12-18; 11:18-23;5:12) 거물급 사도들로(11:5;12:11), 참 사도들로(11:13)로 행세했다. 대적자들은 교우들에게 헌금과 환대를 요구하고(11:20) 하느님의 말씀을 팔아먹었다(2:17). 대적자들은 바울이 선포하지 않은,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선포하였다(11:4). 대적자들은 기적을 자랑하면서 바울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고 비방하였다(12:12).
큄멜(W.G.Kummel)도 정양모와 비슷한 바울과 대적자/고린도교인 간의 갈등에 대해 정리하고 있으나 둘다 간과하고 있는 갈등의 정황이 있는 데 바로 바울이 선교활동중에 겪는 고난과 핍박이 대적자들과 고린도교인들 사이에 \'징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많은 고난을 당하여 핍박받는 것은 바울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라고 설명했고 고린도교인들도 그러한 설명에 흔들리고 있는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6:9절에서 바울의 말은 이러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paideuo,menoi)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6:9)

바울의 대적자들은 추천서를 받아 온 사람으로(3:1) 언변가이며(11:6) 건강하고(10:10), 교인들 위에 군림한 자들(11:20)이며, 복음을 전하고 돈을 받은자들(12:6)이었다. 이 대적자들은 바울과는 상황속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 바울은 매우 열악하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고난과 핍박을 받는 반면 이 대적자들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적자들은 바울의 현재적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징계라고 비방하였고 바울은 이러한 비방에 대한 변호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바울의 대적자들은 완전히 고난과 핍박과는 상관없는 자였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의 고난에 대한 다양한 부분에서 공격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다시말해 대적자들의 고난은 과거의 고난이었고 현재의 편안한 생활은 그 고난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바울에게는 고난이 계속된다는 점을 들어 대적자들이 공격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더 나아가 핍박의 성격도 대적자와 바울의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대적자에게 현재적 고난에 대해 충분히 공격당할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11:12절에서 바울은 사도의 표 된 것은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참음을 사도의 표로서 바울의 고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위와같은 배경을 지지해주는 구절이다. 또한 바울의 고난에 대한 강조가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가능하긴 하지만(1:6) 단지 고린도교인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자신의 고난을 말하고 자 바울이 의도했다면 굳이 자신의 고난을 소개할 때 자신의 고난을 변명하는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4:11;11:23;6:4) 설득력이 부족하다. 바울은 대적자와의 대결양상에서 자신이 당하는 선교적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징계라고 생각되어진 것에 대해 매우 위기감을 가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바울의 고난과 핍박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1:8), 만일 이 고난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자로서 받는 고난이라는 대적자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하면 고린도교회 안에서의 자신의 사도적 입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Ⅳ. 전후문맥과 본문구조



본문(5:1-10)에 대한 해석을 위해 그 전후문맥을 살피는 것은 본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의 위험을 감소시켜주는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5:1은 \'왜냐하면\'( ga.r)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전문맥과의 관계를 살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본문(5:1-10)의 전후문맥을 살펴보기 위해 a단락을 다시 구조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a. 사도직에 대한 변증(2:14-5:21)
ㄱ. 새언약의 일꾼으로 사도직 변증(2:14-3:18)
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사도직 변증(4:1-4:18)
ㄷ. 고난과 종말의 영광을 통한 사도직 변증(5:1-10)
ㄹ. 화목케하는 직책을 통한 사도직 변증(5:11-21)

바울은 2:14절부터 계속적으로 자신의 사도직 변증의 글을 쓰고 있다. 특히 본문의 전문맥인 4:1-18절을 통해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저주로 온 징계라는 대적자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시작한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속에 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망하지 않는다는 말(4:7-9)을 통해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이 관여된 고난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을 일치시킴으로써(4:10-11) 대적자들의 비방을 일축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써 바울은 4:16절의 선언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4:16)

바울은 비록 자신이 고난을 받아 겉모습은 매우 후패해 보일지라도 자신은 낙심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자신이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속은 날로 새롭게 창조된다고 독자들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대적자들이 비난하는 자신의 현재적 선교지에서의 핍박과 고난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고린도교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아울러 자신이 진정한 참 사도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재해석은 17절을 통해 강화된다. 바울은 17절에서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는 주체는 바로 \'환난\'이라고 말한다. 즉, 환난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는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현재 보이는(4:18) 이 고난의 의미를 바울은 하나님의 저주라는 대적자의 해석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이루는 필수조건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본문은 이처럼 자신의 선교지에서의 고난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바울의 변증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바울이 4:18절이후 종말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다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부연하자면, 바울은 자신이 현재 매일 새롭게 된다는 주장의 근거가 바로 자신의 현재적 고난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영원한 영광이 예비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4:16-18) 자신의 주장을 더 강화하려면 매일 새롭게 되는 근거가 되는 영원한 영광을 좀더 강조해야만 했고 영원한 영광은 바로 종말의 상황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ㄷ. 고난과 종말의 영광을 통한 사도직 변증(5:1-10)
i. 종말의 영광을 위한 조건인 고난(5:1-5)
ii. 종말의 영광을 위한 고난의 어려움 (5:6-8)
iii. 고난을 통한 종말의 영광획득 (5:9-10)

위의 구조는 5:1-10에서 묘사되는 종말적 상황이 바로 4:16-18과 연관되어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위협으로 작용하는 대적자들의 고난에 대한 비난을 재해석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로서 분석된 것이다. 즉, 바울은 5:1-10을 통하여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을 징계가 아닌 종말의 영광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재해석하고, 이로 인해 자신은 낙심하지 않고 매일 매일 새로워진다는 자신의 선언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를 위해 고난이 종말의 영광을 위한 조건임을 주장하고, 영광을 얻기위한 고난의 어려움을 토로한 후, 결국 자신이 겪는 고난을 통해 자신은 종말에 영광을 획득할 것이라는 순서로 진행한다. 이에 대한 논증은 주석에서 자세히 다루어질 것이다.


Ⅴ. 본문사역



5:1 Oi;damen ga.r o[ti eva.n h` evpi,geioj h`mw/n oivki,a tou/ skh,nouj kataluqh/|( oivkodomh.n evk qeou/ e;comen( oivki,an avceiropoi,hton aivw,nion evn toi/j ouvranoi/j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땅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의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늘들 안에 있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영원한 집을 가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3 kai. ga.r evn tou,tw| stena,zomen to. oivkhth,rion h`mw/n to. evx ouvranou/ evpendu,sasqai evpipoqou/ntej( ei; ge. kai evndusa,menoi ouv gumnoi. eu`reqhso,meqa
그리고 우리는 이 안에서 하늘의 우리 거처 입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덧입었다면 벗은자로 발견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4 kai. ga.r oi` o;ntej evn tw/| skh,nei stena,zomen barou,menoi( evfV w-| ouv qe,lomen evkdu,sasqai avllV evpendu,sasqai( i[na katapoqh/| to. qnhto.n u`po. th/j zwh/j
그리고 장막속에 있는 우리들은 짐을 지고 신음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벗기를 원하지 않고 덧입기를 원함이며, 죽을 것이 생명으로 삼키워지기 위해서 입니다

5 o` de. katergasa,menoj h`ma/j eivj auvto. tou/to qeo,j( o` dou.j h`mi/n to.n avrrabw/na tou/ pneu,matoj
그리고 하나님이 이 모든일에 우리를 행하게 하고, 우리에게 성령의 보증을 주었습니다.

6 Qarrou/ntej ou=n pa,ntote kai. eivdo,tej o[ti evndhmou/ntej evn tw/| sw,mati evkdhmou/men avpo. tou/ kuri,ou\\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있고, 우리는 몸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7 dia. pi,stewj ga.r peripatou/men( ouv dia. ei;douj\\
진실로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걷고있습니다.

8 qarrou/men de. kai. euvdokou/men ma/llon evkdhmh/sai evk tou/ sw,matoj kai. evndhmh/sai pro.j to.n ku,rion
우리는 자신있고, 몸밖으로 떠나 주님 곁에서 머무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9 dio. kai. filotimou,meqa( ei;te evndhmou/ntej ei;te evkdhmou/ntej( euva,restoi auvtw/| ei=nai
그러므로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그에게 완전히 일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0 tou.j ga.r pa,ntaj h`ma/j fanerwqh/nai dei/ e;mprosqen tou/ bh,matoj tou/ Cristou/( i[na komi,shtai e[kastoj ta. dia. tou/ sw,matoj pro.j a] e;praxen( ei;te avgaqo.n ei;te fau/lon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명백히 들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몸을 통하여 유익한 것을 행했는지 가치없는 것을 행했는지에 따라 받기 위함입니다.


Ⅵ. 본문주석



i. 종말의 영광을 위한 조건인 고난(5:1-5)

1) 종말의 영광 - 하늘의 집(5:1)
1. h` evpi,geioj h`mw/n oivki,a tou/ skh,nouj / oivki,an evn toi/j ouvranoi/j (땅의 장막집/하늘의 집)

바울은 땅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의 영원한 집을 가진다는 확신을 피력하고 있는데 여기서 바울이 의도하는 땅의 장막집과 하늘의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위더링톤(B.Witherington III)은 땅의 장막집은 \'현재의 육체\'이며 하늘의 집은 \'부활의 몸\'이라고 말하며 이는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말한 몸의부활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즉, 이 본문은 바울의 종말시의 부활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며 죽음에 임박한 바울은 자신이 죽으면 새로운 부활의 몸과 합쳐질 것을 소망한다는 것이다. 바레트(C.K.Barrett)도 이 구절을 바울의 파루시아 기대로 상정하고 집을 이 땅의 몸과 파루시아 때의 부활의 몸으로 상정한다. 퍼니쉬(V.P.Funish)는 헬라적 종교와 철학적 문헌에서 장막(tent)이 영원한 영혼과 구별되는 일시적인 육체적 몸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집을 몸에 대한 비유로 해석한다.
물론 땅의 장막집이 현재의 육체라는 이러한 해석에는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집을 몸이라는 것으로만 한정 짓기에는 다소 그 근거가 부족하다. 바울이 고린도서신에서 oivki,a(집) 라는 단어를 여기서만 쓰기 때문에 집의 의미를 다른곳에서 찾기가 어렵다. 다시말해 한번도 바울이 \'집\'이라는 단어의 일차적 해석을 도외시한채, 바울에 의해 한번도 몸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언어로 사용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유추하는 것은 그 근거한 빈약하다. 또한 이 6절과 8절에서 \"몸(sw,mati)\" 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고 있는 데 굳이 1절에서 \'집\'으로 몸을 나타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울이 자신의 종말과 부활사상을 말하기 위한 본문이라기 보다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신의 고난에 대한 변증의 문맥임을 감안한다면 이 곳에서의 집의 개념은 \'쉼의 장소\'에 대한 비유적 해석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의 상황을 \'갇혀있고 자지못하고(6:5), 가난하며 아무것도 없으며(6:10), 춥고 헐 벗었다(11:27)\'고 묘사하고 있다. 바울은 여러번의 여행속에서 강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을 겪으며 자지 못하고 춥고 헐 벗었고(11:13) 그러한 상황속에서 바울이 진정 바라는 것은 \'쉼의 장소\'로서의 집이었을 것이다. 영원히 쉴 수 있는 곳 바로 \'하늘의 집\' 이야말로 바울이 종말시에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땅의 집과 하늘의 집에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집자체의 일차적 의미를 통해 자신이 겪는 고난을 상징하는 땅의 집과 보상으로서의 하늘의 집을 말함과 동시에 이차적인 몸의 비유를 통해서는 종말의 상황적 배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 eva.n … kataluqh/| (만약…무너진다면)
집이 몸이라고 해석되어 질 때 \'무너진다\'는 것은 육체적 죽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정양모는 \'무너진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지상 장막집이 허물어지면\"(1절)은 우리의 현세적 삶이 죽음 또는 종말로써 끝남을 의미한다.\"

탤버트(C.H.Talbert)도 1절은 그리스도인의 죽는다면 그들은 부활의 몸을 가질 것이라고 해석한다.
정양모와 탤버트처럼 집이 \'무너진다는 것\'이 \'육체적 죽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집\'을 \'몸\'으로 해석할 때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중의미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에서 \'무너진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 외에 다른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말해, 본문에서 땅의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바울의 \'쉼의 장소인 집\'이 파괴된다는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여행에서 겪은 수많은 고난가운데 자신이 쉴 수 있는 이 땅의 집은 파괴되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말해, \'만약 땅의 집이 무너지면\' 은 \'만약 이 땅에서 쉴 곳없이 고난을 받는다면\'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바울이 5:1에서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좀 더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즉, 바울이 가정법을 써서 나타내고자 하는 \'땅의 집이 파괴되지 않는\'상황은 자신의 대적자들이 고난없이 편히 살고 있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 진정한 종말시의 영광은 \'영원히 쉴 수 있는 장소\'인 하늘의 집을 얻는 것이고, 이러한 종말의 영광은 자신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바울은 현재 고난을 받고 있는 자신은 영원한 쉼의 집을 얻을 수 있지만 고난받지 �고 현재 편히 있는 대적자들은 그 영원한 쉼의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고난을 영광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2) 종말의 영광을 위한 조건
2-3절과 4절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는 데 중심적인 내용은 신음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은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1. gumnoi. (벗은 자)
바울이 벗은 자로 발견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바레트(C.K.Barrett)는 헬라적 철학과 종교의 전통에서 \'벗는\'다의 의미가 육체를 떠난 영혼을 지칭할 때 많이 쓰는 것을 통해 이를 해석한다. 즉, 바울이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은 죽음과 파루시아 때의 죽은 몸의 부활 중간에 있을 영혼의 중간상태(interim period)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슈미탈스(W.Shmithals)와 불트만(R.Bultmann)은 바울의 대적자인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바울이 과연 영지주의의 영혼의 몸의 이탈 사상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한 논의 또한 분분하며, 바울이 영혼이 몸을 떠난 상태에 대한 불안을 나타냈다면 바로 8절에서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을 말하면서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말한다는 것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엘리스(E.E.Ellis)는 바울이 헬라적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유대적 전통속에 있는 자라는 것을 중심으로 이 \'벗은 자\'의 개념을 구약의 전통속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엘리스는 다음과 같이 벗은 자의 개념을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빛 아래서 사람들의 죄된 상태가 들어나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엘리스는 이 본문이 헬라적 인간학에서부터 볼 것이 아니라 \'히브리적 종말론\'에 두고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그 이유로 고대 근동에서 노예나 전쟁포로가 남루한 옷을 걸치고 법의 심판을 받은 것에 미루어 장차 올 심판을 표상한다고 말한다. 엘리스가 심판의 빛 안에서 인간의 부끄러움의 상태로 해석하는 것은 10절에서 \"심판대 앞에 드러나\"라는 구절과 상응함으로 본문상의 지원을 받는 적절한 해석이다. 그러나 엘리스는 구체적인 수치의 상황과 부끄러움의 상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음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바울은 \'벗은 자\'로 발견되기 위하여 \'입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2절) \'입은 것\'은 \'하늘의 처소임을 말하고 있다. 하늘의 처소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늘의 \'쉼의 장소\' 즉, 이 땅의 장막이 무너지는 고난을 겪은 후에 받는 \'하늘의 보상\'으로 해석된다면 엘리스가 주장한 심판의 수치의 상황은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즉, 바울이 말하는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마지막 심판의 상황에서 하늘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끄러움의 상황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3절에서 \"발견되다\"(eu`reqhso,meqa)는 단어가 재림때 폭로되는 것을 말하는 전문술어라는 점은 이와같은 주장을 강화시켜준다.

2. stena,zomen (신음의 의미)
바울은 신음하며 고통중에 있다는 것을 2,4절에서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바울이 자신이 신음중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마틴(R.Martin)은 신음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고통중에 있다고 보지 않고 이는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즉, 바울은 육체적인 몸을 벗고 중간상태를 거치지 않고 하늘의 몸을 덧입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틴의 이러한 견해는 왜 바울이 소망하는 것을 신음한다고 단어로 표현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이에 대한 본문의 근거도 없을뿐더러, 4절에서 그가 신음하는 것이 \"짐을 지고\" 있다는 것과 함께 나온다는 것을 볼 때 부적절하다. 또한 바울이 신음하는 것은 중간상태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신음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5절 이하에서 나오는 바울의 담대한 모습(\"우리는 자신 있습니다\" 6,8절)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 들일 수 없게 만든다.
바울이 짐을 지고 신음한다는 것은 4장 후반부부터 나오는 바울의 고난에 대한 정황속에서 해석되어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바울은 이미 4:8-11에서 자신의 고난의 상황을 토로하고 있으며 자신이 환난받고 있음을 4:17에서 말하고 있다. 즉, 본문에서 바울이 짐을 지고 신음하는 것은 자신이 받는 핍박의 짐을 지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 현재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문맥적으로 적절하다.
그렇다면 바울이 신음하고 있음을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4:17절은 바울이 신음하고 있는 상황과 그 이유에 대한 본문의 해석을 위한 문맥적 전이해를 가져다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4:17)

바울은 이 구절에서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환난\'이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환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광을 \"이루게 한다\"(katerga,zetai)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 당한 \'환난\'이 라는 것은 자신이 당한 환난이 없다면 영광 또한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걸(A.F.Segal)도 4:17절에서 나오는 영광은 고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처럼 자신의 환난이 영광의 조건이 된다는 바울의 생각은 본문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울은 하늘의 처소를 덧입기 위해서는 신음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2,4절). 2,4절에서 바울이 하늘의 처소를 덧입기를 소망하는 것은 신음하고 있음이 전제될 때야만 가능한 것으로 설정하고, 신음과 하늘의 처소를 연결시키고 있다. 결국 바울이 신음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반복하고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이 이 땅에서 선교적 고통을 당하는 자만이 종말에 영광스러운 하늘의 처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선교적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징계\'라고 비방하는 대적자들을 종말의 영광스러운 보상인 하늘의 처소를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로 격하시키고 자신은 종말시에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자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5절을 통하여 이를 더 강화하고 있다. \"이 일을 행하게 하시는\" 다시말해 고난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바라는 바울의 현 상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고린도 교회에서 중요한 성령은 이를 위한 보증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바울은 5:1-5절을 통해 자신이 당한 선교적 고난은 \'징계\'가 아니라 모두가 열망하는 종말시에 \'영광을 받는 조건\'임을 나타냄으로써, 사도직에 대해 불리한 사항으로 여겨진 자신의 선교적 고난을 사도직의 다툼에서 유리한 사항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보증이라는 말은 현재에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바울의 고난받는 정황이 대적자들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다시말해 바울에게는 자신의 고난에 대한 보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고난을 변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고린도교회가 중요시하는 성령을 통해 이를 가시화 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ii. 종말의 영광을 위한 고난의 어려움 (5:6-8)

1. Qarrou/ntej … eivdo,tej (자신있습니다…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6절의 두 분사구문을 통해 두가지의 상반된 감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자신있다는 것이고, 하나는 현재 자신은 그리스도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마틴(R.Martin)은 이 두가지 상반된 감정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바울이 그리스도와 떨어져 있다고 하는 것은 단지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퍼니쉬(V.P.Funish)도 바울이 몸안에 사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와 떨어져 있다는 심리상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축소시키는 해석은 8절에서 자신이 있다는 것과 연결된 부정적 접속사인 de.와 \" \'더 좋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인해 지지받기 어렵다. 더욱이 9절에서 \"거하든지 떠나든지\"라는 두 상태를 모두 긍정하는 것을 볼 때 바울은 현재 자신의 상태가 그리스도와는 떨어져 있는 불완전한 상태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고난받는 상황에 대해 자신이 있지만 \'몸\'안에서 고난 당하는 지금의 삶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종말의 시기를 더 소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바울은 현실의 고난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지만(Qarrou/ntej) 그보다 더 큰 소망인 종말의 시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1-5절을 통해 자신의 현재적 고난의 중요성을 부각하다가 갑자기 현재보다는 미래의 일을 소망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바울이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심각성과 고난의 어려움의 상황을 더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의 상황에 대해 종말의 영광을 생각할 때 자신이 있지만 그보다는 더 종말의 상황이 오기를 기대한다는 인간적인 심리적 나약함을 보임으로써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dia. ei;douj\\(보이는 것을 통해서)
7절에서 바울의 고난의 상황이 계속 묘사된다. 7절에서 바울은 보이는 것(형체)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자신이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즉, 바울은 자신은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지 현실의 세계에서의 보상을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울은 현실에서는 수없이 매를 맞으며 집없이 춥고 헐벗는 생활11:23-27)을 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바라볼 것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고린도교인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미 4:18에서 \"자신이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4:17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는 바울이 18절에서 바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종말시의 영광이지 현실에서 환난을 피할 수 있는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결국 보이는 것을 통해서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은 자신은 현재 아무런 고난에 대한 \'보상\'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 evkdhmh/sai evk tou/ sw,matoj (몸밖을 떠나 거하는 것)
8절은 바울이 자신의 고난이 어렵다는 것을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통해 말하고 있다. \"몸밖을 떠난 거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차라리 이 고난의 현실을 떠나고 싶은 심정을 토로함으로 자신의 현재상태는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바울이 현재 자신이 받는 고난이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고난이 종말의 영광을 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에(1-5절) 종말의 영광을 더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 떠나고 싶다는 표현까지 쓰면서(8절) 고난을 강조하기 때문에 바울이 자신의 고난적 현실에 대한 회의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바로 9절에서 현실에서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교정함으로 이러한 위험성은 제거시킨다.

iii. 고난을 통한 종말의 영광획득 (5:9-10)

1. ei;te evndhmou/ntej …euva,restoi auvtw/| ei=nai(거하든지…그에게 완전히 일치하게 되기를)
8절에서 현실의 고난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9절에서 다시 고난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교정된다. 몸에 거할 때 그리스도와 일치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4:10절에서의 \'예수 죽인 몸을 짊어짐\'의 빛안에서 해석될 수 있다. 바울이 몸에 거할 때, 즉 현실에 있을 때 그리스도와 일치되기 원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6-8절에서 고난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울은 다시 자신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고난을 예수의 고난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의 고난과 자신의 고난을 일치시키는 것은 몸에 거할 때의 상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몸에 거할 때 예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다시말해 예수와 고난에 같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런자는 명백히 들어날 것이라는 경고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2. fanerwqh/nai (명맥히 들어날 것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자신이 현재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의 이유를 \'왜냐하면\'으로 연결시켜 10절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종말의 심판때에 명맥히 들어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트만(R.Bultmann)은 fanerwqh/nai가 바울의 문서 안에서 심판의 개념(로마서3:24-26)과 특히 대적자와의 논쟁에서 종말적 개념으로 쓰이는 단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문서중에서 숨은 일들까지 포함해서 행적에 따라 심판받는다는 사상을 여러곳에서 말하였다(고전3:12-15;고전4:3-5;고후11:15;롬2:6-8;2:16;14:12). 특히 고후11: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대적자들의 행실이 결국 들어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아니라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바울은 종말의 심판대 앞에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인해 판단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그 기준으로 \'몸을 통하여 행한것\'(ta. dia. tou/ sw,matoj )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몸을 통하여 행한것\'은 현재의 행실이 바로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의 현재의 행실은 바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다(4:10).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대적자들의 잘못된 해석(6:4)은 결국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판때에 정당한 판별을 받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현재적 고난이 가치있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몸을 통하여 행한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다른 바울의 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즉, 은혜를 강조하던 바울이(롬5:1) 몸을 통하여 행한 것을 강조하는 이 구절은 바울이 자신의 고난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해야만 하는 정황속에서 이해될 때 적절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3. ei;te avgaqo.n ei;te fau/lon (좋은 것인지, 가치없는 것인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명백히 들어나는 것의 종류로 바울은 좋은 것과 가치없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현재적 고난은 결국 종말의 심판대 앞에서는 좋은 것으로 판명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며 대적자들의 삶, 즉, 바울과는 다르게 고난 없이 높은 위치에서 편히 지내는 대적자의 현재적 삶은 가치없는 것으로 판명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단지 대적자의 심판의 종류를 가치없는 삶 정도로 처리하는 것은 대적자의 위치와 대적자들에 의해 바울의 고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으로 보인다. 비록 바울이 대적자에 대해 독설을 말하긴 하지만(11:413,14) 이미 대적자들은 고린도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자들이며(11:4),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여겨진 자(11:23)였음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
만약 바울이 심판의 종류를 \'좋은 것\'과 \'가치없는 것\'의 수준이 아니라 \'구원\'과 \'파멸\'정도로 과격하게 설정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여겨지고 있는 바울의 현 대적자들과 바울은 전면적인 대립의 모습을 가져올 것이고, 오히려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사도직 변론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외면당할 위험을 몰고 왔을 것이다. 바울은 대적자를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종말의 때에 좋은 행실에 대한 영광을 받느냐 못받느냐의 문제안에서 우월의 문제를 논함으로써 고린도교회의 또 다른 파당의 위험성을 배제하면서 자신의 사도직의 우월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결국, 바울은 종말의 심판배경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의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이 현재의 선교적 고난은 종말의 심판때 좋은 것으로 그리스도 앞에서 드러나 영광을 받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고난에 대한 고린도교인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둘째, 대적자들의 편안한 현재적 삶은 가치없는 것으로 판단받아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것을 암시함으로 대적자들보다 우월한 사도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으며. 셋째, 본문을 통한 사도직 변증을 발판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가진 자\"라는 보다 높은 사도직 변증(5:11-21)을 발전시키려 한 것이다.


Ⅶ. 결 론

바울이 고린도교회와의 관계속에 직면하고 있는 문제중에 하나는 바울이 선교지에서 당하는 수많은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징계\'의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대적자들에 의해서 야기된 바울의 고난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고린도교인을 현혹시키고 이로인해 바울의 사도직의 권위도 흔들리는 상황을 바울은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바울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5:1-10절을 통해 바울은 먼저 자신의 고난을 예수의 고난과 일치시킴으로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가 아님을 상정하고, 종말의 배경속에서 고난이 종말시의 영광을 획득하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고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에게 있어서 본문의 종말적 배경은 자신의 종말론 자체를 말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이처럼 자신의 고난에 대한 비방을 교정하고, 사도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좋은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새로운 창조는 종말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즉, 바울은 종말이 온후에 새롭게 변화될 자신의 모습을 희망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사건을 오늘날로 앞당겨 힘들고 어려운 현실의 삶속에서도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누리는 자였다. 이러한 바울의 종말과 새창조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는 대적자의 비방과 고린도교인들의 오해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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