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에 서있는가>

 

성경 : 창세기 26 - 31절

제목 :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단의 뜻을 따라 범죄 한 후에 하나님을 피해 숲에 숨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윤리와 도덕적인 죄를 다루는 것은 2차적인 요소요,

본질적인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들은 죄라는 말의 느낌을 쉽게 윤리적인, 도덕적인 면으로 일차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접근이 어렵습니다.

믿는 자들은 성경의 죄라고 하면 빨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임을

인식을 해야 합니다.


범죄 한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운 죄악의 형편으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내 정체성 ( Identity )을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말은 현재 나에게 묻고 계신다면 … 인간아 너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담을 그렇게 만든 것은 죄가 그를 숨게 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나를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종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피조물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종과 피조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위치입니다.


여러분이 서 있어야 할 위치는 교회요, 가정이요, 믿음의 자리입니다.

사람은 내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내가 언제 가장 아름다운가요? 가정을 위해 자리를 지킬 때 아름답습니다.

엉뚱한 자리에 가 있을 때 … 일이 터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인 가장은 언제 가장 멋있는가?

열심히 부양가족을 위해 일 할 때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목사는 설교자의 자리에서 …

신자는 예배자의 모습에서 하나님께 향한 존재의 목적이 성취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귀한 자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 imagd - Dei ] 창조된 하나님의 대리자 [agent]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말하나요?


1. 영이신 하나님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영을 담고 있는 장막입니다.

육은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받아 세월이 지나면 본래의 본질인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하나님께로 왔기에 영원한 존재입니다.

영은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범 죄 한 인간은 영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화평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 중재를 누가 했느냐?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받는 고난은 죄의 결과인 단절에서 오는 결핍입니다.

하나님의 무한 자원에서 공급이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의 평강과 행복은 세상가치의 만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평에서 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사랑을 닮았기에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동물은 본문으로 살지만 하나님을 인간을 사랑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땅을 주관하는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증표로 땅의 본질인 흙을 재료삼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 관리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주인 되려고 할 때…

파멸과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이 언약을 파기한 당사자입니다.

그 언약의 파기의 벌은 죽음인데 그 죽음마저도 하나님께서 대신 감당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모든 기초와 본질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사랑이 빠진 충고, 사랑이 빠진 헌신, 전도, 수고, 봉사, 열심,설교…

모두 허상에 불과합니다.


가슴이 뜨겁고, 감정적으로 애절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은 타인의 짐을 대신 지려는 마음입니다.


역지사지 [상대방입장에 서는 것]이며, 책임이며, 배려입니다.

인간이 약속을 파기했으나 하나님은 자신이 책임지시는 것 …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 이것이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그 방법이 십자가에 그 아들을 내어 주심입니다. 그래서 … 구원은 은혜입니다.

우리의 방법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 … 그래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 …은혜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그 애절한 구원의 말씀을 아멘하고 영접할 때 …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3. 공동체의 하나님 …


창 1: 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도…공동체의 사역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공동체적인 삶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서로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시 133편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게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영생의 기름은 공동체의 교회를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구원의 성도들은 그 지체가

되어 연합된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내가 온전치 못함같이 다른 상대방도 온전치 못함을 인정하고 서로 용납하며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골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나는 성숙한 사람이 안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약속을 부여 받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지

완전한 공동체를 이룬 자들이 아닙니다. 믿음과 현실의 괴리 속에 갈등하며 치유하며 주님을 의지하고 가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결   론 ////////


여러분 이것을 아십시오.


믿음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이 싸움은 계속 됩니다.

신앙의 싸움에 갈등하고 있다면

그 갈등 또한 믿음의 다른 모습입니다. 체념하고 상관없으면 갈등 자체가 없으니까요…

내 믿음의 현실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이끄심에 나를 맡기십시오.

믿음의 자리에 내가 서 있을 때… 주님의 때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잉태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새길 교우 여러분 내 믿음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