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계시록 3:7-13
제목: 내 인생의 문아 열려라!
오랜 역사속에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길이 닫혀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한 분이시기에 죄지은 우리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었습니다.
빗장이 굳게 닫힌 문과 같이 극히 제약된 방법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 주셨습니다.
성막의 지성소를 통해 그것도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대표하여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성막에 구별된곳 지성소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인간을 이미 용서하셨고 그래서 때가 차면 그문을 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예시로 구약의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비밀을 보여주시고
암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용서하시되 없던일로 하자하고 다구원하신것이 아니고 ,,,,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약속을 인간이 불순종하여 깨진 언약을
다시 회복 시키는 길은 순종의 문제로 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죄의 문제는 없어졌습니다.
법적인 문제는 해결 됬습니다.
막힌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그사실을 인정하고 예수그리스도을 영접하고 성경의 방법대로 순종하고, 믿으면 그 효력은 발생되어집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방법입니다.
온우주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구원의 열쇠를 누구에게 주셨는가?
언약의 실행자이시고 중보자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분, 열면 닫을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모든 생사화복,
천국과 지옥, 역사의 집행자이신,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모든 문을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열어 놓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도 열어 놓으셨습니다.
축복의 문도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원의 문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문은 열린문입니다.
올 2007년은 그동안 닫혀던 내인생의 문이 열린문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예배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예배에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원은 예배를 통해 공급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문은 예배의 문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요4장 은 예배의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여인과의 대화중에 우리 조상은 이산에서 예배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조상이 가르치는 인간이 말하는 장소적 개념의 예배가 아닙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고,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장소가 어디든,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두사람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릴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같은 상황과 같은 죄를 지었더라도 그사람의 미래가 달라질수 있는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 베드로와 가룟유다.... 사울과 다윗
회개하느냐..... 후회하느냐,,,, 의 갈림길입니다.
언제 회복하시느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배드리는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용서를 구하는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에는 내죄를 대신할 제물을 가지고 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 어떻게 나오느냐... 오늘날의 제물은 무엇이냐....[질문]
헌금입니까?.... 선행입니까? ...... 100번 잘못했다고 절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산중에 머리까고 들어가 10년을 도닦아야 용서가 됩니까?
돈으로 용서가 된다면,,, 가난한자는 어떻게 합니까?
100번 절해야 한다면,, 디스크 환자는 어떻게 합니까?
산중에 들어가야 하면 가족들과 병자는 어떻게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셔서 누구든지 그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2. 기도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예배가 생명을 부여받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였다면,,,,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호흡의 자리입니다.
생명으로 어머니뱃속에서 태어나 한 생명체가 되었다면,,,, 그사람은 호흡해야합니다.
숨쉬며,,,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계속,,, 먹고 자라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 ,,, 기도하는것을 보면 압니다.
어떻든,, 기도가 살아야 합니다... 신앙은 기도로 판가름납니다... 기도가 살아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새해첫주일날 간혹히 바라는 것은 기도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공급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란 미사여구를 써서 아름답고,, 조리에 맞게 줄줄 외우듯, 기도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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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눅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이 세리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진정 자신의 본모습을 본자는 ,,,가슴을 치게 됩니다. 애통하게 됩니다.
무엇을 위했던 삶이었는가? 지나온 내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파렴치 했는지,,감히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를 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기도를 하나님은 받으셨나요?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신앙의 갈림길은 기도에서 옵니다.
인생은 그 누구나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울퉁불퉁한 길입니다.
산넘으면, 또 산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 다니면,,, 모든 질병이 낳고, 형통하며, 돈도 잘벌고,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에서 오는 그릇된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은 울퉁불퉁합니다. 환경이 변화되는 것보다, 그환경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생은 엉겅퀴와 가시밭길입니다. 때로는, 평온의 꽃길이기도합니다.
지난, 주에 tv에서 온가족이 콘테이너차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슈퍼를 운영하다가 가장이 암에 걸리고, 어머니는 척추장애가 왔습니다.
인생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기도하느냐! 절망하느냐!
“ 옛말에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는 말이있듯이,,, 사람의 도움도 힘이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못할일이 없습니다... 그 소망이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3. 전도의 문이 열여야 합니다.
목회도 사업의 눈으로 보면 않되고, 영혼의 눈으로 보아야 하듯이 여러분의 본업은 무엇입니까? 미국에 백화점왕인 워너 메이커는 사업에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알고있는, 유명 상표를 “메이커” 라고 하는 말이 이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사업도 크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체신부장관도 엮임했습니다. 이런 메이커씨에게 기자가 묻습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 4000명이나 되는 주일학교교장직을 할수 있습니까? 그러자,, 메이커씨는 정색을 하며,,, 나는 이미 45년전에 “ 너희는 먼저 그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라는 말씀을 확고히 믿고 있습니다. 주일학교가 내본업이고, 다른일은 내 부업입니다.
전도의 문은 내영혼을 살리는 문입니다. 하나님과 하늘의 천사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은 한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올해는 새길교회 전도의문이 열리길 축원합니다.
4. 물질의 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풍성하길 주님은 원하십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사는 것이 또한 신앙의 참모습도 아닙니다. 간혹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가난의 통로를 지나시기 하시기도 하지만 가난이 목적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물질관은 소유개념이 아니고, 관리개념인 청지기의 삶입니다. 물질은 주인의 목적에 사용되어 집니다. 그 관리능력을 보시고, 물질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직 어린아이에게 칼을 쓰는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같은 칼이라도 음식을 만드는데 쓰면 꼭 필요한 도구이지만, 악한일에 쓰면 살인의 도구가 됩니다. 물질을 잘쓰면 좋은일을 많이 하지만 잘못쓰면,, 사람을 망치게 합니다. 사람을 추악하게 합니다.
내가 물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관리능력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물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하나님,,, 물질의 복을 주세요,,, 하지말고 하나님 내 믿음의 분량을 넓혀 주시고,,, 바른 물질의 가치관을 세워 주소서,,, 그해답은,,, 지금 나에게 있는 작은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며,, 쓰느냐?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등불을 주시고,,, 등불에 감사하면,,,햇빛을 주신다“ 라고 위대한 설교가 스폴죤을 말하였습니다.
결론//// 모쪼록 여러분 2007년도에는 예배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물질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이문이 열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실신한 종들이 되어 많은 사람을 살리며,,,구원하는 일에 쓰임받는 복된사람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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