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마19:16~30
제목: 부자 청년의 오해 1
본문을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주님께 찾아와 질문을 합니다.
같은 내용의 복음서를 통해보면 마19장과 막10장에서는 부자청년으로 기록되었고
눅18장에서는 관원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청년은 부자이며, 높은 지위의 관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부러울 것이 없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지 얻을수 있을것으로 생각해
영생에 관한 문제도 그런생각으로 주님께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청년의 질문속의 의도를 주님은 간파하신 것이지요,,,
아마도 이부자 청년과 오늘날 현대인의 의식과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인간은 같은 수준과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부자 청년의 질문을 통해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혹시 잘못 오해하지는 않았나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1. 이 청년은 주님을 선한 선생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는가? 이것으로 출발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을 지날 때,,,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먼저 이질문을 하기전에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에는 제우스신전이 있어 많은 사람이
제물을 드리며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 지금 그광경속에 제자들을 향해 질문하시는것입니다.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
예... 어떤이는 엘리야,,, 어떤이는 세례요한, 혹은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신학에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첫째는 기독론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는가?
이질문에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오,,,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 20:28]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도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막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말하며,,, 마가복음의 마지막 결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라고 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좋은데 기독교 싫다....
이말은 예수의 가르침은 좋은데 기독교신자는 싫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이나, 교양이 있다고 자처하는자들이 그렇습니다.
요즘전도하면, 사람귀에 듣기 좋은 말로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혹은, 지옥을 말하면,,,
싫어합니다. 그래서 전도문구도 바뀌었습니다.
예수믿고 행복하세요,,,
예,,,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 예수를 믿던, 안믿던 그런 행복은 필요없으니..나는
안 믿어도 본전이네요,,,
이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고 실존주의 철학이 낳은 병폐입니다.
나에게 현재 실제적인 이득이 없으면,,, 천국이든, 영생이든, 관심이 없습니다.
버스를 타고가다가 운전기사와 손님이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자가 있지요,,,
“ 기사 양반 빨리 갑시다“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러분의 문제이기도합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예수를 믿으므로 영영죽을 지옥의 형벌에서 나를 구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처참한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살리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은밀한 죄 때문에 절규한 적이 있습니까? 2
내영혼의 구원의 문제로 암흑의 터널 속에서 주님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하시려 가르치시는 도덕과 윤리의 선생님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LORD,,, 주님이 되시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2. 내가 무엇을 하여야....라고 질문합니다.
우리 민족은 유교와 불교문화의 영향도 그렇거니와 어릴때부터 접해온 동화속의 내용도
권선징악의 교훈을 많이 읽고 가정교육에서도 그렇게 듣고 성장하므로 우리의 의식속에
잠재해 있어 그것이 우리 기독교신앙에도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 뿌리박혀 있습니다.
어떤사람이 늘 심판을 두려워하여 고민하며 신앙생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 마음에는 저울이 하나 있는데,,, 어느날은 선한 일을 하고나면,,, 내마음의 저울은
천국으로 기우러져 있고, 어느날은 거짓과 탐욕으로 살은 날은 여지없이 지옥으로 저울이 기우러져 있어
늘 이저울의 싸움속에서 괴로워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적이 없나요,,,
이형제는 오랜세월 심판의 두려움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더니 이런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 그 저울의 자리에 나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올려 놓게,,, 그러면 항상 저울은 천국을 향해 있을걸세...
예,,, 천국을 향할뿐아니라 아마도 저울이 뒤집어 졌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명백히 2가지 싸움입니다.
나를 주장하느냐 ! 예수그리스도를 주장하느냐...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할 아담이 하나님의 무한자원을 거부하고 자신이 힘으로 살려고 할때..
죽음의 결핍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할때,,, 돼지보다 못한 죽음의 결핍을 맛보는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무슨 선한 것이 발생되지 않습니다. 죄성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수행의 종교가 아닙니다.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생명은 나에게서 발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육체적 생명을 받듯 하나님께 우리는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요3장에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
“ 거듭난다 ... 헬라어 원어로 보면 아노덴 이라고 하는데
이중적 의미의 말입니다.
즉, 하늘로부터 라는 말과 두 번 태어난다 라는 말의 두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선한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안에 무슨 거룩한 것이 없습니다. 연합으로 거룩해 지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묶여
거룩해 지는것입니다.
화요일마다 목회자 전도모임에서 전도하는데,,,
어느날 점잖은 선생님 한분에게 생강차를 건네며,,전도 하였습니다. 강목사님께서
예수를 믿으세요,,선생님,,, 하니깐.. 나는 불자입니다..
아 그래요,,, 잠시 생각하다가 ... 불가에서도 성철스님같은 큰스님도 자신이 죽을 때는
그의 제자에게 이런 회한에 섞인 고백을 하며 죽으셨다지요,,,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그말을 그렇게 해석하면 안되지요,,, 하더라구요,,, 그래서 옆에 서있던 제가
선생님 그러면 우리게 왜곡되이 알고 있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알려주세요
했더니,,, 나는 해석하지 못하고 ,, 아무튼 ,,,하며 머뭇거리다가,,, 갔습니다.
여러분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평범합니다. 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천국에 갔더니 그곳에 감리교, 천주교, 장로교,,,신자들이 있더라... 3
또 지옥을 보여 주시는데 그곳에도 감리교, 천주교, 장로교, 신자들이 있더라...
“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갈수 있느니라...
병행구절이지만, 이말씀의 초점은 아버지의 뜻에 있습니다.
행하는 것이 있어도 내뜻대로 행하면 불법입니다.
불법은 말씀대로 하지 않은 것이 불법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의가 무엇이냐,,, 창세전에 예비하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성경적 불법이란 ,,,, 죄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윤리적, 도덕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에 가장 악한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은자가 가장 악한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자가 죄인입니다.
교회에서도 누가 문제입니까?
자기주장하는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습니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하는 자세가 믿음입니다.
건강한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자에게라야 필요하느니라,,,
26절에---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수 있느니라...
인간의 할 일은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인간의 문명과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것같으나
반면에 죽음의 악영향도 확대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을 스스로 개혁하고, 혁명을 하여 바꿔보려고 하지만 자리바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할수 없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선한일, 참선, 득도, ,,,이모든 종교,철학, 사람의 뜻으로난 ,,모든 것에 결론을 주님은 말씀합니다.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수 있느니라...
끝으로 3. 부자 청년는 우선순위의 오해였습니다.
현실적 문제의 선택입니다.
22절 --- 근심하며 가니라...
여러분 주일을 지킨다는 의미중에 중요한 한가지는 내 생계의 수단인 직장의 일을 하루 중단하고
교회에 와서 주님께 예배드리는 고백입니다.
나의 생명을 안위하는 것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선택이 생계의 중단입니다.
아담적 실존으로 6일은 땀흘려 일해야 먹고 살며, 생명을 유지 하지만, 내생명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날이 주일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이적을 체험한 자들에게 주님은 요6장 : 내몸은 참된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라“
하니깐,,, 군중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우리에게 어찌 그의 살과 피를 먹게 하겠느냐,,,하면서 이말은 어렵도다...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앞에 주님은 묻습니다, 너의 고백이 무엇이냐,,,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
27절,,,,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9절,,,,
영생을 상속받으리라...
여러분의 삶속에 우선순위,,, 죽고자하면,,,사는 진리... 역설의 진리입니다.
결론 ///// 부자요, 관원인 청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자신의 죄악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나는 할수 없다는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삶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 주님이 계신가?
또한 모든 선택의 순간에 우선순위가 나인가? 주님인가? 물질인가? 자문하여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