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노라

날짜 : 2008.10.26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하나님을 믿노라.
본문 : 행 27:20-26

  종교는 유일신 종교가 있습니다. 또한 다신론 종교가 있습니다. 믿고, 의지할 대상은 한 분 뿐이라고 믿고 한 분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유일 신앙입니다. 유일신 종교입니다.

다신교란 섬기는 대상에 제한이 없습니다. 자연도 숭배의 대상이고, 사람도 경배의 대상입니다. 사람이 깎아 만들고 부어 만든 것도 신앙으로 숭배합니다. 그 무엇이든 신으로 섬기는 것이 다신교이며 다신론 신앙입니다.

강한 신앙, 강한 민족, 강한 집단을 형성 하려면 유일신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일신 신앙으로 해도 그 신앙의 대상인 신이 살아 계시는가, 생명을 줄 수 있는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응답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들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유일한 존재이며, 살아서 응답하며 우리를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신이 누구입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신앙을 가장 분명하게 고백하고 권면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 두 번째 왕 다윗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 주는 나의 구원 나의 소망, 나의 생명, 나의 피난처 나의 산성,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목자”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믿음을 일생을 살았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본문 23절에서 그는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25절에서는 “나는 네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철저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바울은 철저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는 순수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기독교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신앙입니다. 바울은 위기와 환난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신앙을 지켰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 서들을 들여다보면 그의 신앙이 철철 넘쳐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1. 사람은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입니다.

사도 바울의 꿈은 로마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로마는 세계의 관문으로 교통, 정치, 교육, 예술,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스페인에 가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은 그 당시 지구 끝이라고 여겼습니다. 드디어 로마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버지 덕에 그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이 황제에게 상소하며 황제가 직접 재판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 제도를 최대한 활용한 것입니다. 행27:1절에 율리오란 백부장이 다른 죄수 몇 사람과 바울의 호송 책임을 맡고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타고 로마로 떠났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었습니다. 지중해 역시 겨울 바다는 폭풍이 불고 바람이 차서 추었습니다.

미항이라는 곳에 닻을 내리고 풍세를 살피며 며칠 쉬고 있을 때 바울은 “이곳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과동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떠나면 풍랑을 만나게 될 것이고 배와 짐은 물론이고 생명에도 지장이 있으며 많은 타격을 받고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고 하였습니다. 선장과 선주의 말은 “걱정 없다. 죄수로 끌려가는 주제에 말이 많다. 우리가 한두 번 지중해를 향해 하는 줄 아느냐?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로마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최종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백부장 율리오 이였습니다. 그가 오랜 향해 경험을 가진 선장이나 선주의 말보다는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미항을 떠나 항해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4절을 보면 떠 난지 얼마 못되어서 유라굴로 라는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그들이 바울의 말을 들었더라면 풍랑을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가 파선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죽을 고비도 겪는 고생도 없었을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 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누구나 선택을 합니다.

누구나 바로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누구의 말을 듣고 선택하느냐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결정되고 삶의 내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선진 국가가 되었고 잘 사는 나라들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개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를 높이며 사느냐 누구를 사랑하며 사느냐 누구를 믿고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 선택은 외적조건이 절대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27:13에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이 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겨울을 나자고 했던 미항은 큰 항구가 아니어서 편의 시설이나 유흥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긴 겨울을 나기엔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남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의 로마를 향해 항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남풍 뒤에 숨어있는 태풍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조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던 것입니다. 외적 조건은 절대 조건이 아닙니다. 외적 조건만 따지다 보면 실패를 경험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순하게 불어오는 남풍 뒤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처럼 화려한 조건 눈에 보이는 조건만 따라 가다보면 유라굴로라는 태풍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두 가지 상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이었습니다.

하나는 로마 황제의 동상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세계를 제패한 절대 권력자입니다. 그 동상 앞에 절하고 그를 숭배하면 출세 길이 열리고 치부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33세에 죽었습니다. 그를 믿거나 바라보면 체포되었고 추방당하고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로마는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는 전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나를 지배하였습니다.

남풍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방울방울 피 흘린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래야 구원받고 영생을 받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버릴 것은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15절 이하를 보면 그 당시 상황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배는 바람에 밀리고 연장은 내버리고 기구와 짐도 다 버렸습니다. 사람과 배만 남게 되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절대 절망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어제 밤 내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살리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내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게 말씀하신 그 대로 되리라고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선장도 선주도 선원도 기관장도 갑판장도 백부장도 힘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인간은 유일합니다. 지진도 화산폭발도 산불도 홍수도 가뭄도 막지 못합니다. 질병도 실패도 고통도 막지 못합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를 살리리라. 내가 너를 치유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내 경험, 내 기술, 내 고집, 내 경륜을 버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다시 사신 주님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날 그 배에 탔던 276명의 생명을 다 살려 주셨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은 외부 조건이 절대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버릴 것은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 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