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부르 짖으라

날짜 : 2008.10.05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내게 부르짖으라.
본문 : 렘33:1-3

렙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게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한 부분입니다. 그 당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구속 중이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 말씀의 요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언어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경배언어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그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일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절을 보면“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창1:1에는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성경이 시작되는 책입니다. 창1:1은 창세기의 시작입니다. 성경의 시작이 “하나님이 일하셨다” 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일하시는 하나님 얼마나 맛이 있습니까?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비교한다면 기독교적인 동적인 종교인데 비해 불교는 정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전하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한 마디로 움직이고 일하신 것입니다.

석가는 고행과 수도로 거의 일생을 보냈습니다. 요5:11에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가 후서 3:10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일을 만들고 일을 하시고 일을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창조입니다.

미국 뉴욕에 가면 100년 넘게 짓는 교회가 있습니다. 많은 돈과 인력이 동원 되지만 아직도 준공이 안 된 채로 공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독일 쾰론에 있는 대 성당은 600년 만에 완공하였습니다. 1250년에 시작하여 600년 후에야 완공한 성당은 세계 최강 기간의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 삼라만상과 천지 만물을 엿새 만에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공사를 전문분야별로 나누어 하청이나 도급을 준일도 없습니다. 전문가들을 동원한 일도 없었습니다. 있으라는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둘째 : 하나님이 하신 일은 섭리입니다.

하늘에는 수를 셀 수 없는 별들이 떠있고 땅위에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등 9개의 행성이 돌고 있습니다. 행성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목성입니다. 목성은 태양으로부터 약7억 8천 km 떨어져 있는 별입니다. 12년마다 태양을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우주 창조 이후 지금까지 9개의 행성들이 우주공간에서 충돌한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 길처럼 노란색이나 하얀색으로 차도를 그려 놓은 것도 아닙니다. 무한대한 공간에서 궤도를 따라 도는데 충돌도 추돌도 없습니다. 그것은 지으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셋째 : 하나님이 하신일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큰 사역은 바로 구원하시는 사역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의 영웅이나 장군들은 싸워 이기고 점령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합니다. 적으로 포로 된 사람을 구원하려면 그 성을 점령하고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죽게 하시므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자신이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인간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과 다른 구원 방법인 것입니다.

넷째 : 하나님이 하신 일은 심판입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민족사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 이야기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범죄 → 심판 → 회개 → 구원이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짓다가 매를 맞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잘못 했다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보고 용서하고 구원하십니다. 이러한 범죄 → 회개 → 구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남, 북 왕조가 망하는 날까지 반복되었습니다.

용서와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심판은 공의에 근거합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면 벌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을 내어 주시고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대신 매를 맞고, 찢기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내가 받을 심판을 스스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칼보버그 목사님은 자신이 쓴 찬송가 40장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구속하셨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2.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3절을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하셨습니다. 불교에도 기도가 있고 회교에도 기도가 있습니다. 무당종교도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기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실존하고 현존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시라는 것입니다.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3절은 우리에게 기도의 태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소리를 내어 상대편이 듣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힘을 다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정통, 서양식당에서 서양 음식을 먹으려면 소위 테이블 매너라는 것이 있습니다. 식당입구에서 안내를 기다려야 합니다.

윗사람이나 여자를 상석에 앉도록 해야 한다. 소금 통은 구멍이 1개, 후추 통은 구멍이 3개 이상이고 포크와 나이프는 바깥쪽부터 차례로 사용한다. 손을 올려 높고 턱을 괴거나 하는 일은 절대 안 된다. 식탁위에 소지품을 올려놓지 않는다. 쩝쩝거리거나 큰 소리로 떠들면 안 된다는 것 등입니다.

교회는 고급 사교 클럽도 아니고 양식당도 아닙니다. 교회는 감격이 있고, 감동이 있고 말씀이 있고, 아멘이 있고, 노래가 있는 곳입니다.

3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뜻을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말음을 헤아리는 것도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함 소리를 들으십니다. 나의 손놀림과 아우성을 보고 들으십니다.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르짖어 기도 하십시다. 믿고 기도 하십시다. 풍성한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