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10:20을 보면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거지는 그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비록 가난한 거지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때문에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지상의 행, 불행과 영원세계의 행, 불행은 동일하지 않다는 교훈입니다.
부자의 지상 생활을 살펴보면은?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고 하였습니다. 자색옷은 겉옷이고, 고운 베옷은 속옷입니다. 자색옷은 그 당시 희귀한 조개의 피로 염색하거나 아라비아산 염료로 염색한 것입니다. 베옷은 애굽산 세마포로 귀족들이 입는 속옷이었습니다. 값이 비싸고 고급 의상이여서 서민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날마다 주흥에 빠져 세월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술이 있는 곳에 반드시 방종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부자는 잘 산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의 삶을 추스르지 못 한 채 술 마시고 죄짓고 즐기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술은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돌발행동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부자는 주흥을 즐기며 술독에 빠져 삶을 허비하느라 인생의 본질 문제인 영혼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영혼 구원에 관해서 생각해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잘 논다는 것이 인생의 가치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들은 돈을 주고 음식을 먹습니다. 길림속의 짐승들은 돈을 내지 않고 고기를 먹고 채소를 먹고 과일을 먹고 삽니다. 우리는 돈을 주고 밍크코트를 사 입지만 밍크는 어미배에서 나올 때부터 통째로 밍크코트를 입고 나옵니다. 우리는 돈을 주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등산하고 낚시를 갑니다. 짐승이나 새들은 돈을 내지 않고 하늘을 날고 산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 부자는 우리 보통 눈으로 보면 부럽고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본문 20-21절을 보면 “헌데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나사로가 가난하고 병들었습니다. 돌보는 사람도 없었던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22-23절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로는 천사가 받들어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자는 음부로 들어가 고통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은 지상의 해복이 영원한 행복이 아닙니다. 지상의 불행이 영원한 불행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라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누구라도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갑니다.
이 진리는 2천년동안 기독교가 전파한 복음의 핵심이며 바탕입니다.
마25:41에 보면 지옥을“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계21:8에는 지옥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그 곳에 들어갑니까?
마귀와 그 추종자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흉악범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 하는 자들 거짓선지자들이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에 부자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자였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것들을 하나님이 주신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부자라는 이유로 날이면 날마다 먹고 마시고 노는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영혼의 구원이나 하나님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옥 간 것입니다. 육체도, 돈도, 시간도, 건강도, 재능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은 형제 구원은 때가 있다는 교훈입니다.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습니다. 거기엔 위계질서도 없고, 시도 때도 없습니다. 나사로는 천국에 갔고,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 불에 들어간 부자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물 한 방울만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혀를 적셔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26절을 보면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깃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4절을 보면“내가 이 불 꽃 가운데서 고민 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뜨거운 불꽃에서 고통 하는 부자의 마지막 간청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27-28절에 내 아버지 집에 형제 다섯이 있으니 나사로를 보내어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은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불꽃 가운데 고민하나이다.” “이 고통받은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는 애원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옥에 왔더라도 내 형제들은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그의 갈망이었습니다.
31절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거절당한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도 형제 구원도 거절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결혼도 때가 있고, 공부도 때가 있고, 성공도 때가 있고, 돈 버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도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 입니까?
구호 6:2에서 사도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은혜 받고 구원 받아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은혜도 구원도 지나가 버립니다.
전도도 때가 있습니다.
첫째 : 내가 죽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전도도 못하게 됩니다.
둘째 : 그 사람 죽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부자처럼 살아 있는 동안 예수만 믿고, 전도 안하다가 전도할 그 사람이 죽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 주님이 오시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이 시작되면 전도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넷째 : 지금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 대상을 정하세요. 그 이름을 내 마음 정해주십시다. 그를 위해 기도를 시작하십시다.
어렵다, 안 된다, 못한다. 힘들다는 붕정적인 것을 물리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