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참 성도라 할 수 있을까요?
성도라면 누구나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액수가 많거나 적은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소득이 있는 사람이면 그 소득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란 무엇이며,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첫째 :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레 27:30에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을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밝히 말씀하고 있는 것 같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의 십분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구별된 성물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우리 것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에게서 이 사실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덕 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어떤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범죄 행위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십일조를 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아가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생활이 아주 어려워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어떤 성도가 있었습니다. 막상 십일조를 하려고 하니 그러지 않아도 빠듯한 형편에 당장 빛 진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포기하곤 하였습니다. 그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십일조를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괴로움을 가지고 사느니 차라리 굶은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그는 그때부터 십일조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생활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여유가 생겨서 저축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가하고 십일조하기전과 십일조한 후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수입은 전보다 특별히 늘어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환질고가 사라져 과외의 지출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지출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이 성도는 더욱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그의 가정은 큰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형편과 처지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드려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드리는데도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떼여먹는 자는 결국 여러 가지 생활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결코 복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모든 것들을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그 실과를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하고 타락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인간과의 구별됨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그 주원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인간은 전혀 문제가 없는 온전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주권을 일깨워주며 인간의 순종여부를 시험하는 시금석의 역할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류는 사망과 저주 아래 갇히게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성도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분개하면서 아담과 하와를 탓합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에덴동산에서 왜 이렇게 실수를 하였느냐고 합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것처럼 십일조 역시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행위입니다. 모든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그 주신 것 중 십분의 일만을 하나님의 것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보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범하므로 에덴동산을 상실한 아담과 하와의 어리석음을 탓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현재의 나 자신도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의 각종실과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큼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취하지 못하도록 하셨던 사실을 마음에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을 다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중 십분의 일 만큼은 온전히 구별하여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침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물질만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과 삶 전체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하루 24시간 중 십분의 일인 그 2시간 30분 정도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찬양하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 새벽시간을 드리십시다. 이렇게 할 때에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12:1에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온전히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 십일조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이 사실을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일 처음 십일조 할 때에 망설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자는 십일조의 액수가 많기 때문에 주저합니다. 적게 가진자는 십일조를 떼어내지 않아도 모자라는 형편이라서 주저하고 갈등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출석을 잘하던 사람조차도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 나서 시험에 들어서 신앙을 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십일조 문제로 고심한다거나 시험에 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일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말3:10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쉽거나 부족해서 우리의 삶이 좀 더 어려워지기를 원해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고심을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성도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온전히 드림으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진실 됨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의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