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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예수를 잘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곁에 드러나는 것들로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 출석은 잘하고 헌금을 많이 합니다. 열심히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며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그런 조건들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신앙의 진위나 경종을 따지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원래 형이상학적인 것이어서 눈으로 본다든지 손으로 만진다든지 코로 냄새를 맡는 다든지 손으로 만진다든지 코로 냄새를 맡는 다든지 그 무게를 저울에 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행위보다 마음이 먼저입니다. 신앙표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내 아들은 효자다.” 라고 소문내고 칭찬해야지 아들이 “나는 효자다.”라고 자기가 자찬하고 소문내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효도의 기본자세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아들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하거나 마음이 편치 못하면 그것은 불효가 됩니다. 신앙의 기본자세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내가 기쁘고 즐거운 것은 신앙의 결과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영적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롬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영적예배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창조주 구속주로 인정할 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선교, 교육, 봉사, 친교들 교회의 네 기능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선교보다 교육보다 봉사보다 친교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건축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필요합니다. 교육관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예배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선교를 잘해도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교육 프로그램이 좋고 잘 가르친다고 해도 예배를 멀리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봉사하기 위해 예배를 빠지고 친교 때문에 예배를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유럽교회는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부터 시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교회도 예배를 소홀히 하는 교회마다 쇠퇴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배를 산제사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 드렸던 제사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 산제물이라야 합니다.
둘째 : 흠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 : 대신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죽은 것은 드리지 못합니다. 흠 있는 제물을 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제주 자신이 직접 드리거나 제사장이 드려야 합니다. 제사를 맡은 제사장은 놀러가고 심부름꾼이 제사를 대신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예배도 내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는 놀러가고 다른 사람이 대신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아버지 회갑 잔칫날 친구들과 어울려 등신을 가면서 자기 아내 편에 돈만 몇 십 만원 들려 보낸다면 불효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로 한 날에 본인은 놀러 가면서 헌금만 챙겨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예배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봉사한다는 이유로 예배를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내 위원의 경우도 예배를 제대로 드리려면 한 시간은 예배드리고 한 시간은 안내 위원이나 차량 안내 위원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180 여 명 모이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는 장로님이 한 분이 계셨습니다. 30여 년 전에 유학으로 도미한 후 계속 머물러 사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예배가 시작되어 설교가 시작된 후에도 계속 안내를 하지 귀해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분은 성도들이 은혜 받게 하기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봉사보다 안내보다 가르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설교하는 분이 그 분에게 말하기를 장로님 앉아서 예배를 드리세요. 그리고 말씀을 들으세요. 이 교회에서 가장 먼저 은혜를 받아야 될 분은 장로님이십니다. 장로님이 은혜를 받아야 교인들이 본을 받고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예배는 정성과 진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지방 도시에 있는 모 교회 장로님은 전국 지점망을 가진 큰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입니다. 그 분은 일평생 동안 외국 출장을 빼고는 단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다른 교회에서 드린 일이 없습니다.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른 도시에 갔더라도 비행기나 야간열차로라도 반드시 토요일이면 본 교회로 돌아갑니다. 그 분의 지론은 어떻게 시무장로가 다른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분은 12년 전에 30여 억 원 드려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천당 하였습니다. 요즘 같은 불황에도 불황을 모른 채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영적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바르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레미야 9:24을 보면 “나 여호와는 인내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미가 6:8에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과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믿은 사람들과 바로 사는 사람들은 많지 못합니다. 자신도 믿는다고 허언하고 남들도 잘 믿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데 그 끝을 보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IMF 때문에 더 잘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폭등한 금리덕택에 불로소득이 불어나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잔을 서로 치켜들고 “건배”를 외칩니다. 서양 사람들은 “브라보”라고 외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사 정권 이래 “위하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던 것이 여당 성향의 사람들은 “ 위하여” 라고 외쳤습니다. 야당 성향의 사람들은 “위하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여도 야도 아니라면서 “위하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고급 술집에서는 잔들 들고 “이대로” 라고 소리친다고 합니다. IMF 이대로, 고금리 이대로 흥청망청 이대로 그런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 생활태도는 바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기뻐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2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 언행일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 겉과 속이 일치하는 것이 바른 삶이며 믿음입니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몸부림치는 노력과 접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신의 이중 구조를 정신분열증이라고 합니다. 정신 분열증 환자는 자신의 감정이나 삶을 통제 조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과 해동의 앞뒤가 맞지 않고 통일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분열증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달라서 비난받고 지란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실과 정직으로 무장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 바르게 사는 것은 너그러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가혹하리. 만큼 명확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야 합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내가 적게 갖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베푸는 삶 나는 아끼고 절약하더라도 남을 위해 후하게 베푸는 생활태도를 지니는 것이 너그러운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펑펑 쓰면서도 남에게는 인색하고 가혹하다면 그것이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셋째로 : 바르게 사는 것은 칭찬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가 선택한 일곱 집사의 자격가운데 칭찬 듣는 사람들 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습니다.
칭찬받는 다는 말은 입증한다는 말에서 유래 하였습니다. 그의 신앙과 삶이 공적으로 입증되는 것을 칭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자화자찬으로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낮추지만 남들이 나를 높이고 평가하는 것은 진짜 칭찬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사원들로부터 칭찬 듣고 인정받고 존경받은 사장이 훌륭한 사장입니다. 국민들로부터 인격적 존경과 사랑을 받은 지도자가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칭찬 듣는 성도입니다.
넷째 : 바르게 사는 것은 바르게 걸어가야 합니다. 술 취한 사람은 이 성이 마비되기 때문에 말도 행동도 걸음걸이도 흔들립니다. 술 취한 사람치고 제대로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이 말짱한 사람은 비틀거리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틀거리는 인생을 살면서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고 옳지 못한 일을 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일을 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영적 예배드리고 바르게 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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