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을 받으라

날짜 : 2008.07.19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성령 충만을 받으라.
본문 : 엡 5:15~21

운동선수에게는 운동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에게는 예술의 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말하면 예수를 별나게 믿는 사람이나 질이 낮은 사람들이 주고받은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준 높은 지성인이나 문화인은 성령을 받거나 이야기 하는 것이 격에 맞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성령을 충만히 받은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에 성령 론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십니까?

성령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는 물체나 사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의 뜻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들과 능력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물건처럼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성령 받으면 지, 정, 의 즉 전인적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지식도 변하고, 감정도 변하고 행동도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성령 충만 받기 위해서

 

1.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 가운데 두 군데만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과 골로새서 4:5입니다. 그 뜻은 “속량하여 낸다.”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필요한데 빼앗겼던 시간을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되찾아 내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세월은 가치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월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월이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가는 세월을 묶어 둘 수 없습니다.

한시 가운데 “소년이 늙기 쉽고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일촌광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야할 길은 멀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세월을 허송한다면 어느 세월에 자신의 꿈을 이루고 뜻을 펴겠습니까?

두 번째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 환경은 시간을 낭비하고 정신을 낭비하기에 좋은 조건들로 널려 있습니다.

주택가와 유흥가의 구별도 없이 술집이 사방에 널려 있는가 하면 오락실, 퇴폐 유흥업소가 즐비하게 있습니다. 도처에 유혹의 손길이 닿고 있습니다. 공부를 안 하고 일도 안합니다. 갈 곳도 많습니다. 할 짓도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담배를 피다가 건강이 망친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술집을 드나들다가 신세 망친 사람 음란 비디오나 음란물을 들여다보다가 인생을 망친 사람 이 사람들 모두가 악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삶을 망친 사람들인 것입니다. 죄 짓기 위해서 빼앗겼던 시간을 찾아내야 합니다. 마귀에게 빼앗겼던 시간을 도로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령 충만 받기 위해서 주의 뜻을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1-2 에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나를 산제사로 드리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주님을 본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해하라”는 말은 날마다 지속적으로 이해하며 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서 예수의 뜻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시고 기뻐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효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의 가슴을 저리도록 아프게 하면서 용돈을 드리고 관광시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가 다 빠진 부모님께 날마다 소고기 힘줄을 사다 드린다면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최상의 신앙생활 그것은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는 노래를 날마다 부르며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최선의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것이 내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 충만이 받기 위해서는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랑한 것이니” 그 당시에는 에베소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 제사에는 술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들은 술에 취해 춤을 추고 술에 취한 채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술은 정신을 마비시킵니다. 정상적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술이 있는 곳에는 방탕이 있습니다. 방탕한 사람들은 술을 마십니다. 술과 바탕은 마치 바퀴와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술을 마신 사람들 치고 실수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또 손해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업습니다. 창 9:20에 노아는 술에 취해 벌거벗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들이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못할 짓이 없습니다. 삼손은 술에 취해 들릴라는 여인과 애정행각을 버리다가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 눈이 뽑히고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31:4 이하에 솔로몬이 왕자인 므두엘왕에게 “므두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한나라의 정치나 통치가 돈과 술과 여자에 얽히게 되면 반드시 무너졌습니다. 현대도

오늘 본문에서는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갈 5:21에서는 술 취하고 방탕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 역사를 보면 한나라 우왕 때 의적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습니다. 우왕은 술 맛을 보고 난 후 훗날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며 술을 만든 의적을 멀리 하였습니다. 한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걸왕은 날마다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워 주연을 즐겼습니다. 누룩 찌기가 산을 이뤘습니다. 연못가에 3천명이 둘러앉아 북을 치며 동시에 퍼마시는 경연대회를 벌였습니다. 그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알코올 남용 중독 연구소 소장인 에노크고디스는 알코올 중독은 유전이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일 경우 거기서 태어나는 자녀는 알코올 중독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안고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속이상해서 한잔, 기분이 나빠서 한잔, 피곤해서 한잔, 그 한잔 술이 석 잔이 되고 석 잔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결국 인생과 가정을 망치는 중독자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접대해야 상담이 성립되고 술대접 받아야 진짜 대접을 받았다고 여기는 관행이 하루 빨리 사라져야 이 나라 경제가 건전해 질 것입니다. 교통사고의 주범도 술입니다. 온갖 사건과 비리의 주범도 술입니다. 술을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썩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택가에 까지 술집을 허락한 행정 책임자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술을 멀리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성령 충만히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구주라고 고백하고 찬송하는 것은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적 12: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구 주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을 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이 받으라는 것은 현재 수동태명령형입니다. 그 뜻은 현재 날마다 지속적으로 성령이 충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일회적 사건입니다.

지난날 한번쯤 성령 충만을 경험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본문을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하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여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이 주는 결과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 노래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술 취하면 골아 떨어져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 부분 떠들고 소리 지르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 소리나 노래는 괴성이고 이상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노래의 차원과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즉 하나님에 관한 노래들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노래를 부를 이유가 살아져 가고 있습니다. 한숨과 걱정과 근심 때문에 노래 부를 일들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파바로티나 도밍고가 가곡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감동하는 예는 없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산타루치아나 오솔레미오를 들으며 회개하고 평안을 찾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할머니가 부르는 찬송소리를 듣고 강도가 회개하는가 하면 가난한 어부가 부르는 찬송소리를 듣고 투신자살하려던 사람이 새 생명을 찾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평안과 기쁨으로 채우시고 노래를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 성령 충만히 받으면 감사하게 됩니다. 병들고 실패하고 삶의 벼랑에 섰다고 하여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해야 할 일이 생각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의지나 감정만으로 절망과 좌절과 실패의 쓴잔을 든 채 감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고후 8:1 이저도냐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 극한 가난 가운데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성령의 충만히 받으면 감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시편에는“능하신 이에게 우리를 구원하신 이에게 우리를 인도하신 이에게 우리를 이끄시는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우리들의 삶이 고달파 쓰러져 가는 이때 성령 충만하여 기뻐하며 노래하며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