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가 주는 교훈은?

날짜 : 2008.06.22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6.25가 준 교훈은?
본문 : 히 12:11-13

  6월이 되면 가장 먼저 우리는 6.25를 생각하게 됩니다. 금년에는 특별히 남, 북이 대화가 중단되었습니다. 반세기가 넘어서야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상주의가 다 무너지고 중국까지도 개방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세계에서 분단된 나르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어야 하지 않나 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이제 공산주의는 주었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사한 통제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소련도 붕괴되고 동구도 해체되었으니 이제 공산당의 잔당은 가만둬도 저절로 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흐름이 “철없이 놀고 있는 일부 대학생들이 떠드는 것 가지고는 너무 신경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6.25때에 겨우 낳아서 강보에 싸여 피난을 갔던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커서 학자가 된 분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6.25하는 것은 경험적인 차원에서 회고될 일도 아니고 체험의 영역에서 다스려 질 것도 아니다. 6.25는 다만 역사일 뿐이다. 생각과 감각이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금년 6.25 58주년을 맞이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상처 있는 역사를 지닌 민족은 그 아픔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과거에 배고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공 한 후에도 아무리 먹을 것이 많이 있어도 그때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때를 망각하면 그 사람은 방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그 아픔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많이 쌓아 놓았어도 밥을 먹고 난 후 밥알을 남기는 것을 죄로 여겼습니다. 젊은 며느리들이 설거지를 하다가 밥알을 하수구에 버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난리가 났습니다. 그거이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혜 있는 삶인 것입니다. 과거에 일시 고난을 당한 것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은 “초년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것을 선하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고생은 사람들에게 한 때 아픔도 주고 고 됨도 줍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고생은 일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건강했던 사람이 한 번 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맥없이 주저 않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후 70년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로마는 그 정복 기념으로 로마 시에 개선문을 세웠습니다. 또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는 기념주화를 발행하였습니다. 그때 발행된 기념주화를 보면 그 속에 “유데아 데비크라”라는 글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우리가 유대인을 부수었다는 말입니다. 그 글귀 옆에 로마 병정을 세워 놓고 그 병정의 발 앞에 유대인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거기에 서 있는 로마 병정의 손에는 승리의 술병이 들려 있고 유대인 여인의 손에는 패배의 쓴잔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때 유대는 더 이상 회복이 가능할 수 없이 산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로마는 유대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 이 세상위에 군림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복자는 술병을 들고 서 있고 패배자는 실패의 쓴잔을 들고 정복자의 발 앞에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 후 2천 년이 지난 오늘에 그 로마는 이 지구상에서 간 곳이 없습니다. 그 때 패배의 쓴잔을 들고 무릎을 꿇고 있던 유대인들은 오늘에 세계에 남아 그 어느 민족보다도 자신 만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과거의 승리에 도취해서 살아가면 그 영광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실패한 사람은 그 실패가 내일에 살아남게 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해서 그 악착같이 살아남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승리했다는 사람, 성공했다는 사람은 그 옛날에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민족도 대단한 민족입니다. 6.25 이후에 우리 민족이 이루어 낸 발전은 유태인들을 능가하는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적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과거에 당했던 그 아픔의 역사가 기반이 되어 준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자생력을 길러주었습니다. 인내력, 개척정신을 길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 있는 민족입니다.

2. 상처 입은 민족은 하나님의 은총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나라가 6.25가 일어난 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와서 생각하면 우리 민족은 그때 공산주의에 대해서 그 실체를 아주 뼈저리게 경험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공산주의만은 안 되겠다고 해서 반공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때 공산주의에 대한 실체를 알지 못했으면 그 후 이 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로부터 실패를 보고서도 공산주의의 망령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6.25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역사라면 우리에게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처 입은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6.25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6.25 58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성도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 사회에 대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난다고 하면 사재기 하는 데만 너무 신경을 씁니다. 나라의 위기 때 성도들은 더욱 침착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공산주의와의 싸움만은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역사가가 지난 6.25 전쟁을 정의하기를 “이 전쟁은 공산주의와 기독교와의 싸움이었다.”고 정리를 하였습니다.

오늘 날에 와서 사람들은 모두가 안보의식이 희미해져도 우리 성도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6.25 때에 가장 수난을 많이 당한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일제 압제에도 6.25 사변에도 가장 많이 핍박받고 수난을 당한 것은 성도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공산주의는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만은 무자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반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공산화가 된다고 해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사회나 민주주의 사회나 어디서나 적용하면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생리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공산주의와는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쟁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전쟁입니다. 또 하나는 이념전쟁입니다. 종교전쟁은 거기에 사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한 번 벌어지면 무서운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피차순교는 할지라도 끝이 없습니다.

이념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전쟁에는 협상이 없습니다.

아주 불리하게 되면 작전상 협상이 있을 뿐이지 회복되면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종교전쟁에는 체면이 우선입니다. 인도주의라는 것이 있지만 이념전쟁에는 체면도 인도주의도 없습니다. 잔이 성과 포악성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25 때는 교회만 280교회가 파괴되었습니다. 순교하고 납치된 교역자만도 250명이나 됩니다. 충남에 가면 병촌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6.25가 터지고 나서 7월 16일 날 66명이 모여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공산군들이 들어와서 무자비하게 살해했습니다. 그중에는 유년부 학생이 21명이나 있었습니다. 유아도 5명이나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시골교회였기 때문에 66명은 거의 다 한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집안이었고 한 가족이 많았습니다. 어떤 집은 한 가정 11명이 그날 한 날에 순교한 집안도 있습니다. 66명이 낫과 쇠스랑과 망치로 무자비하게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전남 영암 교회에서는 83명이 예배를 드리는 도중 모구 사살 당해 죽었습니다. 사고 후 24명의 시신이 교회 앞뜰에 안장되었는데 그때 당시 부통령이던 함태영목사는 그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런 비문을 세웠다고 합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 붙드네.” 또 한쪽에다 기록하기를 “오호라 겨레의 어둠의 날 6.25 24성도여 주님 오실 때 까지 고이 기다리라.”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고, 공산주의에도 인도주의도 없기 때문에 잔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목적을 위해서 인간도, 생명도 존엄서도 없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실체입니다. 어쨌든 6.25는 이미 58년 전에 일어난 사변이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전쟁은 또 다시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또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 번 가정해 보세요. 다른 것보다 미사일 한 대씩만 주고 받아보세요 피차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화를 한다고 해도 마지막 자기들이 코너에 몰리면 아무리 약속을 해도 그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강팍한 바로의 마음을 움직인 하나님께서 김정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