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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 동안 두 번 정도 태어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서 태어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신체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제일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아의 탄생, 정신적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참된 자가 탄생되고 진실 된 인간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 2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소” 라는 사람은“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투 번 태어나게 되는데 한번은 어머니로부터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또 한 번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성도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한 번의 탄생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출생입니다. 신앙적인 말은 거듭난 것이고, 주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3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성경 본문을 보면 바로 이 같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430년 동안이나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압박을 받아가며 노예로 살았습니다. 땅도 없고, 국가도 없고, 내일도 없는 백성으로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구차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셔서 히브리민족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 때 애굽에서 나온 사람이 장정만 60만 명이었습니다.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들을 포함하면 약30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그냥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백성 모두가 홍해를 반드시 건너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해 앞에 모여 있는 백성들에게 “홍해를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너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3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은 노인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어려운 홍해를 건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세상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인 것입니다.
1. 이유는 노예생활의 청찬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너무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노예근성으로 아부근성으로 잘못된 생각으로 비굴한 의식으로 아주 찌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런 근성이나 생각을 가지고는 새 땅인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더러웠습니다.
사람이 새 집에 살려면 묵은 때를 벗어 던지고 새 마음과 새 정신을 가지고 들어가서 살아야 합니다. 새 옷을 입으려고 하면 먼저 몸을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도 홍해를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구시대의 생각이나 의식을 모두 홍해의 깊은 물에 장사지내고 씻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씻어 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고도 나라를 사랑한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386세대라고 해서 신선한 것을 주는 것 같지만 술타령이나 하고 무슨 장관이다. 하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기자가 일본기업인에게 질문했습니다. 한국의 기업인과 일본의 기업인과의 차이가 있다면 일본 기업인을 아무리 돈을 잘 벌리는 것이라도 나라에 손해가 되는 것은 수입하지 않은 다는 것입니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부터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라고 고집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살던 그 거지 근성 가지고는 새 땅에 들어가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세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례 받은 여러분들은 홍해를 건넌 것입니다. 홍해는 나의 옛 생활, 옛 생각 옛날의 구습을 모두 씻어내고 신성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옛날의 나를 모두 물로 깨끗이 씻어 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가 주는 뜻이고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서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홍해를 건너라고 고집하셨습니다.
2. 이유는 과거를 단절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홍해를 건너라고 고집하신 이유는 옛 생활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는 홍해를 건너라” 이것은 이제 과거와 단절하고 애굽을 잊으라는 말씀입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 번 건너가면 다시는 옛날 생활로 돌아갈 수 없도록 홍해를 아주 건너가게 하심으로써 구시대인 옛 생활과 단절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면 이제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홍해를 건너라고 하는 말은 과거의 삶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신앙인이 됩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하면 이와 같은 단절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생활로부터 과감히 단절되어야 합니다. 단절되지 않으면 과거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되지 않습니다. 단절에는 아픔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삶과 단절하려면 이 아픔을 감수하는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소매치기는 손을 씻고 새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마음과는 상관없이 손이 계속 남의 주머니로 들어가더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각오는 했습니다. 아직도 구습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고민하던 중에 도끼로 자시의 손목을 잘라 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용단입니다. 이 사람이 그와 같은 아픔을 감수하는 용단이 없었다면 옛날 생활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로마의 세속적인 삶에 염증을 느끼게 새 세계를 찾다가 아직 세속이 전염되지 않은 카르타고로 가서 살려고 나룻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배가 강가에 접안 되었을 때에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배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살다가 마음이 외로워지거나 과거가 그리워져도 배를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이것은 과거를 불태워 버린 것이고, 구태의 연한 지난날의 의식까지도 다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결단과 용단이 없으면 과거로부터 단절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라고 고집하셨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옛 날의 생활로부터 단절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과거와 완전히 단절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애굽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죽으나 사나 가나안만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오직 앞만 보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를 받으면 이런 각오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죽으나 사나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는 오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책임감이 생깁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고 하면 이와 같은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3. 이유는 참 자유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자유입니다. 진정 자유 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참 자유라고 하면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과거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밝은 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을 보세요. 그 대부분이 과거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 있습니다. 과거에 사로 잡혀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거쳤어도 여전히 옛 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은 자유하고 생활도 자유 한데 정신이 과거에 묶여서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가짐에 따라서 자유인이 될 수도 있고 감옥에 있는 사람보다 더 더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결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예수도 하늘나라도 네 마음속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거룩히 자리 잡고 있을 때 거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곳에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어두운 과거의 망령들이 없어지지 않고 가득 차 있을 때 그곳이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도록 요구하신 것은 과거의 마음을 세탁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마음의 때를 모두 씻어 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마음에 참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홍해를 건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백성들이 어떻게 홍해를 건넜습니까? 그 넓고 긴 강을 300만 평이나 되는 백성들이 어떻게 건넜습니까? 배를 타고 건널 수도 없습니다. 헤엄을 쳐서 건널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 뒤에서는 애굽의 군인들이 추적해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 14:13 을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리고는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강을 가르시고 동품으로 물을 마르게 하셔서 백성으로 하여금 강을 안전하게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가던 길 앞에 갑자기 홍해가 가로놓일 때가 있습니다.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습니다.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우리는 이 홍해 앞에 있던 사람들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길이 내가 고집해서 가는 길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가게 해서 가는 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이 가게해서 가는 길이라고 하면 내가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길을 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앞에 홍해가 아니라 더 큰 강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곳까지 나를 이끌어 오셨다면 그것은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직접 처리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홍해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직접 목격한 체험입니다. 문제는 지금 내가 주님으로부터 인도를 받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성숙한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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