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임하시면?

날짜 : 2008.06.08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성령이임하시면
본문 : 갈 5:22 - 26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 후 10일 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는 예수님이 친히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시면 우리들에게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첫째 : 성령의 은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믿음의 은사, 지식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예언의 은사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효과적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주시는 외향적인 은사입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둘째 :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아홉 가지의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보다 효율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봉사하게 하기 위한 외향적인 은사라면 성령의 열매는 자신의 신앙생활의 성숙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내향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한 성도로서 살아가려면 성령의 열매 즉 내향적인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어떻게 맺히는 것입니까? 성령의 열매는 아무렇게나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가지 순서에 의해서 열매가 맺힙니다.

1. 자기 마음에 세 가지의 열매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성령이 내게 임하시게 되면 내 마음속에 세 가지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① 사랑의 열매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정신이고 중심입니다. 십계명은 열 가지로 나누어 있지만 그 열 가지 계명을 종합하면 하나님의 사랑,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으로 압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하나로 압축하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성령의 대표적인 열매이자 동시에 성령의 대표적인 은사입니다. 신학자 하르낙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말씀을 가리켜서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심오한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만큼 사랑은 성령의 은사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열매입니다.

② 희락의 열매입니다.

희락이라는 말은 “카라”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기쁨” 이라는 뜻입니다. 희락은 구원받은 성도가 갖은 거룩한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감격의 내향적인 표현이 희락입니다. 이 희락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희락과는 그 질이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희락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 희락의 조건이 되는 요인이 살아 기면 기쁨도 살아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희락은 그러지를 않습니다. 환경과 처지와 조건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희락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죽어가면서도 빛나는 얼굴을 잃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 힘이 성령이 주시는 힘 때문입니다.

③ 마음에 나는 세 가지 열매 중 화평의 열매가 있습니다.

화평은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국가 간에 평화 개인 간의 평화 등 모든 평화가 화평입니다. 그래서 성 프랜시스는 예수님을 알고 난 뒤 기도하기를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달라.” 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평화의 사신이 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임하시면 먼저 내 마음 속에 이 세 가지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입니다. 열매들은 모두 평안과 조화와 겸손과 질서를 낳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상에서 조화의 사람이 됩니다. 인격이 다듬어지고 내적인 성숙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나의 마음속에 맺히게 되는 열매입니다.

2. 이웃에 향하여 세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① 오래 참음의 열매입니다.

이 말은 오래 참음의 힘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면 오래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인내하느냐? 이웃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것은 큰 은사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오래 참는 힘이 너무도 부족한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툼이 많은 것입니다. 회의할 때도 그곳에 사회든지, 교회 안에든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합니다. 참지 못하고 홧김에 싸우고 홧김에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 인내의 부족으로 인해서 이웃에 대한 실례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오래 참음의 힘이 부족해서 회도하여 가정불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도 커다란 죄를 범하였습니다. 모세도 혈기를 참지 못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돌 판을 집어 던져 깨쳐버리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인내에는 두 가지 인내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크론 두미아”의 인내입니다. 이 인내는 오래 참은 인내 즉 생활의 인내입니다. 인격의 성숙과 인간됨의 인내입니다. 이 인내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오늘을 참는 인내 즉 신앙적인 인내입니다. 이 두 인내는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필요한 인내인 것입니다. 생활의 덕은 모두 인내에서 오래 참음의 생활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비의 열매입니다. 자비는 이웃을 기쁘게 하고 고독과 부족과 괴로움을 덜어주는 마음입니다. 자비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긍휼입니다. 협조이고 친절이고 접근인 것입니다. 또 용서이고 수용이고 내적의 덕성의 성숙을 자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는 온유한 것입니다. 겸손이요 오래 참는 멋입니다. 자비는 이웃을 향한 내 적인 성숙의 열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웃을 향하여 이 마음이 열려야합니다. 이 마음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셋째로는 양선의 열매입니다. 이양선은 어질고 착한 마음입니다. 동양에서는 엣 부터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의 덕목을 갖춘 사람을 군자라고 하였습니다. 착하고 어진 인격은 이웃 모두에게 좋은 영양을 끼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선은 세상을 향한 어진 마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선행이 없으면 약 2:17에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의 심성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오랫동안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령의 열매로 익어가고 나타나는 것이 양선입니다.

3. 하나님을 향하여 세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그중 첫째가 온유의 열매입니다. 온유의 특성은 배타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거역하거나 배타하지 않는 수용하고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잠재적인 내적인 능력을 온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온유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강하고 뻣뻣하고 불순종해서는 내 자신에게 먼저 손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엎드려 경배하며 울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내 뜻보다 언제나 우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신 까닭이 있습니다. 에서는 너무 강하고 뻣뻣하고 자신을 과신하고 엎드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때로는 결점도 많았습니다.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눈물로 회계하였습니다. 엎드렸습니다. 도와달라고 밤새워 간구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뻣뻣한 에서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프라오스”라는 말입니다. 약함이라는 뜻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금식하고 철야하고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온유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시면 교만과 고집과 자존심이 부서지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향하여는 충성입니다. 충성은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냐? 그것이 충성입니다. 믿음이 기초가 되지 않는 충성은 맹종이고 굴종입니다. 다윗의 충성, 요셉의 충성, 아브라함의 충성 우리 야의 충성 등 이와 같은 충성은 다 믿음이 기초된 충성입니다. 그중에서 모범된 충성된 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난에 기준을 주님께 두었습니다. 생사의 기준도 주님께 두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도 찬송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에 기초한 충성입니다. 스데반 폴리캅 이사야 등 모두 이 같은 충성으로 순종하면서도 조금도 원망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내적인 힘에 의해서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향하여 절제의 열매입니다. 자기 조절 능력을 절제라고 합니다. 신앙에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절제가 없으면 신비주의나 인본주의에 빠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교만해 지기 쉬운 것입니다. 물질에도 절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물욕에 빠지기 쉽고 타락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절제라는 말은 “에크라테이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신을 꽉 붙잡는 힘입니다. 외부로부터 어떤 충동적인 도전이 오게 될 때 자신을 꽉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힘을 절제라고 합니다. 절제의 열매는 하나님께나 세상을 위해서나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신앙적인 덕성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렇게 내적인 덕성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신앙을 성숙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을 맞이해서 영적인 덕성 신앙의 열매 성령의 열매들이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결실이 하나님께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나 자신을 향하여 충만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