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을 도우시는 성령

날짜 : 2008.06.01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우리들을 도우시는 성령
본문 : 롬 8:26-28

인간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내일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일은 고사하고 조금 후에 일어날 일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쥐는 배가 파선할 것을 미리 알고 미리 자리를 뜬다고 합니다. 개미는 바람을 불 방향을 미리 알고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에 거미줄을 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유독 이와 같은 예시적인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다가 화를 당하고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당한 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습을 쥐나 개미나 거미들이 보고는 아마 웃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무지한 인간을 잘 설명해 놓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소경이 길을 가다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웅덩이에 굴러 떨어지다가 나무뿌리에 걸려서 웅덩이 중간에 걸쳤습니다. 그래서 이 소경은 나무뿌리를 붙잡고 발을 땅에 대 보니 닿지가 않습니다. 이 소경이 나무뿌리에 매달린 채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이 웅덩이가 얼마나 깊은가 웅덩이 바닥에 물이 고여 있는지 아니면 바닥에 뱀이 있는지 떨어지면 죽을 만큼 깊은 웅덩이 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소경이 나무뿌리를 붙잡고 한 참을 고민하면서 생각했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인가 그래서 몇 시간을 고민 하다가 마침내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한참을 떨어질 생각을 하고 나무뿌리를 놓고 떨어지니까 땅 바닥과 발끝사이가 10센티 정도밖에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걸, 가지고 지금까지 몇 시간을 고민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이는 무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한치 앞도 모르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후에 일어날 일도 전혀 모르고 그렇게 살다가 사고를 당하고 화를 당합니다. 죽음을 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날마다 근심이 서려있고 불안한 마음이 서려 있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서 사역을 다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면 성령을 보낼 것이니 너희는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으라.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한지 열흘 만에 제자들은 모두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성령을 보내셨습니까?

 

1.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우리에게 부족한 자질을 채워 주시려고 보내셨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 보다 자질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사람됨의 자질이 부족하면 도태 되는 것입니다.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계속해서 뒤집히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승리하면서 살려면 먼저 자질을 높이고, 능력을 갖추고,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나 이성이나 재주나 지식만 가지고는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자질이 우리로 하여금 힘 있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사람의 몸은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사람은 이 몸속에 깨끗하고 맑은 정신을 가득 담고 살아야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약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릇 속에 담겨진 정신이 보잘 것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유사시에 힘이 되어 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여기에 한 가지 더 담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몸은 성령을 담고 살아가는 그릇입니다. 사울 바울은 “너희 몸은 성령의 전”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령을 내 몸에 지니고 살 때 때로는 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힘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자질을 높여 주십니다.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무능을 극복하게 해 주십니다.

존 웨슬리는 대학 시절 애송한 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토마스 아켐피스와 제레미 테일러가 지은 책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서 가명받은 그는 내적인 성결의 힘을 입었습니다. 웨슬리는 그 힘을 가지고 1735년 10월 조지아로 동생과 함께 선교하러 갑니다. 가다가 그 형제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들은 생전처음 죽음의 고비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겁에 질렸습니다. 두려움에 사정없이 떨었습니다. 죽음의 위험 앞에서 그들은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그때 웨슬리는 같은 배를 탔으면서도 태연하게 안장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목격하였습니다. 지금 똑같이 풍랑을 만났으면서도 그 사람들은 요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초연하게 앉아만 있습니다. 죽음의 위험 앞에서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름 만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런 자질을 가지고 선교 했으니 성공 할 리가 없습니다. 선교는 수양이나 지식이나 각오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실패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집회에 참석해서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1738년 5월 24일 저녁 9시 15분 집회가 시작 되면서 집례 자가 루터의 모라서 주석 서문을 낭송하는 것을 듣는 순간 웨슬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생전 처음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성령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에게 힘을 공급하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평생 35Km를 여행하였습니다. 설교를 4만 번이나 하면서 전도하다가 8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 성령이 임하신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자질을 높여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힘 있게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성령의 힘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려고 오셨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분을 내고 울고불고 합니다. 조금 손해를 보는 일만 있어도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밤잠을 설치고 한 숨을 쉽니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다투고 싸우고 갈등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는 평생 신앙을 유지 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능력 가지고 어떻게 한 두 해도 아니고 평생의 신앙생활을 유지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이 전도하니까 묻기를 몇 년 다니면 졸업합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신앙생활은 몇 년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입니다. 아이고, 그러면 나는 못한다고 하더랍니다.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평생 동안 신앙을 유지합니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힘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 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지금 우리를 돕고 계시니까 헌신도하고, 수고도 하고, 헌금도 하고, 전도도 하고, 때로는 순교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고도의 힘을 가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은 신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 너희는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수모의 극치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는 말입니다. 왜 오른 뺨입니까? 뺨은 아프라고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뺨을 때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려고 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뺨을 맞으면 참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모욕이기 때문입니다. 오른 뺨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오른 뺨을 때리려면 왼손으로 때려야 합니다. 사람이 상대방의 뺨을 때릴 때는 몹시 화가 난 상태인데 힘없는 왼손으로 뺨을 때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손등으로 오른뺨을 맞더라도 화내지 말고 왼 뺨도 돌려 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 서도 참고 인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인내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도움입니다. 성령의 힘을 의존하지 않고는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이 땅에 임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박해를 받았습니다. 죽음의 위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로마서 10:1에서 전혀 흥분하지 않고 조용하게 “ 형제들아 ” 하고 말합니다. 동족에 대한 끈질긴 사랑과 간절함을 표시하면서 호소하고 부릅니다. 사도바울은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그의 힘이 아니고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3.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합동해서 선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28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일을 유익하도록 하시는 영이십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어도 이 세상에 사는 한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고난을 당합니다. 병을 앓고 실패를 하고 사고를 당합니다. 넘어집니다. 이것은 피 할 길이 없습니다. 당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당합니다. 이것을 이상히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런 일들이 없어진다고 믿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실패를 하고 고난을 당하고 넘어졌어도 그 결과는 반드시 합동해서 유익이 되고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다 보면 사고를 당하고 실패를 하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심하고 불화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때를 지나고 보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결과 복이 되고 선을 이루는 것을 우리들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나온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보세요. 성도 여러분 지나온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보세요. 생각해 보면 이것이 실감나게 증명이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나의 증조부, 조부, 아버지도 모두 농부였습니다. 그분들은 내가 커서 고향의 읍장이 되는 것을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학사 학위를 받고 나서 석사가 된 후 학자가 되는 길을 집어 치우고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시던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결국 교황과 대항해서 싸움을 하였습니다. 파계한 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나님은 결국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 이 세상을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지배하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도 맡기고 운명도 맡기고, 영혼도 맡기고 심지어는 내 세까지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밀레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물도 적절한 장소에 놓일 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반대로 적절한 장소와 시간을 떠나면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아무리 못생긴 돌 하나도 나무 한 그루도 그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놓이게 되면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또 예술적 가치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무능하고 무지해도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을 때 성령 안에 살고 있을 때 그 인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아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어지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살아갈 때 그 인생은 최고의 값을 지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성령이 주시는 힘을 힘입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