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기독교 잡지사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질문 문항 가운데 “왜 예수를 믿는 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대답은 “ 믿으면 평안해서” “ 믿으면 구원 받기 때문에” “믿으면 유익하기 때문에” “믿으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등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1. 예수 믿으면 평안하기 때문에 믿습니다.
요14:27에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의 성격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 “나의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다른데서 가져오거나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가지고 계시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라틴말로 평안을 “ 팍스”라고 합니다. 그것은 지위, 권력, 재물, 승리 등 세상 조건 때문에 오는 평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평안을 평안 혹은 평화를 샬롬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만드는 평안이 있고 하나님이 만드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샬롬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면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오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싸움이 일어나고 불평불만이 생기는 것이 전부 마귀의 역사적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면 갈라졌다고 해도 하나가 되어 평안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둘째 : 평안 두 가지 중 하나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은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인건비며 생산 단가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의 생산 공장이 거의 제 3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제이겠지 하고 들여다보면 메이드인 타이완 베네수엘라 필리핀 차이나 등 후진국 상표가 붙어 있습니다. 상표에 따라 값이 다른 것입니다. 똑같은 나이키 베네통 구찌 아르마니 상품이라도 어디서 만들었느냐에 따라 값이 다른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만드시는 평화와 사람이 만드는 평화가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만든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만날수록 불안한 사람이 있고, 만날수록 평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날수록 평안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모양은 별로인데 신을수록 평안한 신발이 있고 모양은 멋진데 신을수록 발이 아프고 불편한 신발이 있습니다. 볼품은 없는데 맛있는 음식이 있고 빛깔은 좋은데 맛없는 음식이 있습니다. 사53:2를 보면 예수의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 53:5를 보면 그 예수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 영원한 평안입니다.
그 평안을 얻게 되면 예수님과 함께 하기만 한다면 영원히 지속 되는 것입니다. 깨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값이 없습니다.
자연 생수나 청정 공기도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값이 없습니다. 믿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내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내 마음이 평안해 지면 가정도 세상도 평안해 집니다.
크레인 박사는 말하기를 “ 만일 우리가 삶의 동반자로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삶의 긴장들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살아간다면 얼마 못가서 수많은 걱정과 근심에 짓눌리게 될 것이며 재앙 정신병 등 질병을 염려하는 건강 염려증 환자가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참 평화를 얻으려면 평안한 삶을 원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찬송468 찬송의 작자인 빌혼은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 우리에게 이 평화 주리로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뉴욕 행 비행기를 타면 15시간 이상을 비행해야 합니다. 고도 1만 2천 피트 시속 800킬로 외기 온도 영하40도 그런 조건이라면 사람은 도저히 한 시간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 있기 때문에 15시간을 평안하게 놀며 쉬며 먹으며 자며 영화 보며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입니까?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라야 합니까? 믿으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창1:22이나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 고 하셨습니다. 초목이나 짐승은 제때에 비, 이슬을 내리고 먹을 것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복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한 피조물입니다.
성경에 보면 복이라는 말이 300여회 반복 되고 있습니다. 복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들을 말합니다. 저주는 나쁜 것이고 복은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기독교는 만날 복 타령만 하느냐 왜 복 받으라는 말만 되풀이 하느냐 왜 기복신앙으로 전락 시키느냐며 공격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성경에 300여회나 되풀이 된 복이 그와 같이 싫증나고 염증나면 한 평생 저주를 받으며 사시오.” 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복은 크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으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원, 믿음, 성령의 은사 등을 말합니다. 육적인 것은 건강, 물질, 번영, 성공 등을 말합니다.
복은 영적인 것이 됐든지 육적인 것이 됐든지 간에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리거나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 :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갈3:9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통틀어 받은 복이었습니다. 건강의 복(175세_ 자식이 잘 됐습니다.(이삭) 물질이 풍부하고 (318명 일군) 땅을 많이 차지했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존경받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런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 복은 복 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딤 7:33에 “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며 복을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 받을 일을 하라 그리하면 복을 주리라는 것입니다.
복 받은 것은 자연 법칙과 같습니다. 의를 심으면 의를 거두고 악을 심으로 악을 거두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안 심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복 받은 일을 할 때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행 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빌립보 지방에서 전도하던 바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비상 섭리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방을 지키던 간수가 죄수들이 탈출한 줄로 믿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는 순간 사도 바울이 “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사건으로 간수는 놀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간수가 무릎을 꿇고 말하였습니다. “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그때 바울이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하였습니다. 이 구절 속에 구원 받은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내과 전문의인 찬드리칸트 박사는 “ 내세가 있다는 굳건한 믿음은 내적 평화를 가져다준다.” 고 하였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 전체 사망자의 20%는 신앙이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주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창조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갖는 다면 그 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 실 예로 성직자나 수녀들의 평균수명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이 신앙을 가지게 되면 주색, 흡연, 과식, 물건에 대한 집착 파괴적 쾌락을 줄일 수 있다. 만일 80%의 세계 인구가 주간에 예배를 드린다면 급사하는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그를 믿으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그를 믿으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언제 믿어야 합니까? 지금 믿어야 합니다.
어디서 믿어야 합니까? 여기서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지체하지 말고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