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예수라하라

날짜 : 2008.04.20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목사
제목 : 이름을 예수라 하라.
본문 : 마 1:21 -25

  공자, 석가, 마로메트, 소크라테스, 나폴레옹, 알렉산더, 징기스칸 등 수많은 영웅과 위인들이 역사의 지평에 떠올랐다. 다시 졌습니다. 그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우리는 왜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하며, 그를 믿어야 합니까?

KBS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 6시 내 고향”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강희탁 씨가 운영하는 국수 공장이 소개 되었습니다. 강희탁씨는 금년 70세 된 노인인데 군대에서 사고로 두 손이 모두 절단 된 1급 장애인입니다. 그는 비참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25년간 국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었습니다. 새벽 4경이면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며 국수를 만드는데 국수가 건조되어 포장되기까지는 거의 30시간이 걸립니다. 공장을 직접 찾아간 현장 리포터가 국수 요리를 직접 맛 본 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직접 먹어 보니까 정말 쫄깃쫄짓 하고 맛이 그만이에요 너무 맛있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강희탁씨는 “저는 그 말을 듣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맛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굳이 맛에 비긴다면 맛이 있어서 그 어느 맛에도 비교할 수 없어서 다른 맛과는 상대가 되지 않아서 믿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는 1,200만으로 잡습니다. 그 가운데 건성으로 맛도 모른 체 교회만 드나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좋아서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 입니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 1:21에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롬 3:23 에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죄를 “ 하마르티아” 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빗나간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제 멋대로 빗나가는 것입니다.

총기가운데 오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실수로 잘못 발사 되는 것 빗나가는 것이 오발사고입니다. 오발 사고처럼 빗나가는 것 제멋대로 사는 것이 “하마르티아”입니다.

롬 6:23 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죄를 범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오신 목적은 죄 값으로 죽게 될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요3:16에서 “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죄지은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은 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건강, 명성, 인기, 지식, 소유 등 자신이 누리거나 가지고 있는 것들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건강은 믿을 것이 아니라.” 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잠깐입니다. 건강도, 지식도, 인기도, 명성도, 소유도 조선도 잠깐입니다. 그것들은 이용가치이지 절대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은 그만 두더라도 자신이라고 해서 믿겠습니까?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내일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 : 세상에는 사람을 믿는 사람입니다. 인간이란 남편을 믿고, 아내를 믿고, 부모를 믿고, 자식을 믿고, 형제를 믿고, 이웃을 믿어야 살 수 있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인간이 믿고 사는 관계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인간이 믿고 사는 관계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살 수 없어 이혼해야겠다. 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혼 사유는 간단합니다. 도저히 성격이 안 맞다 는 것입니다. 어떻게 안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급하고 부인은 느리고 남편은 겁이 없고 부인은 앞뒤를 재고, 남편은 짜게 먹고, 부인은 싱겁게 먹고 남편은 야행성이고 부인은 주행성이고 도저히 어느 것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 하나님이 주신 천생연분입니다. 둘이 조화만 이룬다면 환상적인 부부가 될 것입니다.” 그 남편이 말하기를 이혼 사유가 남편을 무시한다. 말대꾸 심하다. 단 한 번도 남편에게 고분 거리지 않는다. 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는 문간 책상위에 있는 인형이 꾸벅 절을 하면서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합니다. 식사 후 나올 때는 안녕히 가세요. 라고 절을 합니다. 이 인형은 설치비가 30여 만 원이 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분거리는 사람과 살고 싶으면 문간에 인형 설치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서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서로 믿기 어려운 것이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입니다.

셋째 :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십니다. 마 28:20에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을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영원히 함께 하시는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잠깐 함께 하다가 떠나가고 마는 사람을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를 믿으면 내 지식과 인기와 명성과 물질과 건강이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예수 믿으면 관계가 좋아지고, 부모 자식 관계가 좋아 집니다. 형제 관계가 좋아지고 이웃 관계가 좋아 진다는 것입니다. 이 좋은 예수를 안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다양한 측면에서 밝혀 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면 큰 소리로 한 말이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그 사람에게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귀신도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귀신도 알아보는 예수를 사람이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눅1:32에 천사가 태어나실 예수를 “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고 하였습니다. 마 27:54에는 로마 장교인 백주장과 군인들이 “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 증언 하였습니다.

귀신도 예수를 알고 천사도 백부장도 믿고 증언한 예수님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대학장을 지낸 알렉산더 교수가 40년간 교수로 봉직하다가 1851년 10월 2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시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 무더운 여름날 목이 탈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잔의 물이지 결코 넓은 바다의 물이 아니다. 과거나 현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온 세상 것이 아니라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합니다. 예수만이 나를 구원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무디와 함께 전도자로 활동했던 헬리 워드 비처는 이렇게 말 하였습니다. 예수는 어떤 그림도 그린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라파엘로 미켈난젤로 레오나르드도 다빈치의 걸 작품들은 거의가 예수께서 받은 영감의 산물들입니다. 예수는 단 한 줄의 시도 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테 밀턴 등 세계적인 시인들 역시 예수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걸작을 남겼습니다. 예수의 한 곡의 음악도 작곡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바하 멘델스 존 같은 거장들의 작품 역시 예수를 찬송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시인들과 음악가들과 미술가들과 조각가들과 소설가들은 예수를 알고 믿고 높였습니다.

영국이 낳은 유명한 시인 테니슨에게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없이 걷고 있던 테니슨은 “나에게 있어 예수는 이 꽃과 태양빛과 열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예수 없으면 죽고 말걸세 ”

왜 하필 예수 입니까?

그를 믿으면 살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으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를 지키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