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가 강조하는 대강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크게 교리문제와 실천문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① 1: -11절 까지는 교리에 관한 교훈으로 죄와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②12: -16절 까지는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토록 강조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로마서의 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어야 의로워진다는 이 진리는 전파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롬 10:13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롬10: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진리요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도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10:15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죄를 짓는 대로 달려가는 발, 진흙탕을 밟고 다니는 발, 악을 행하기 위해 가는 발이 있습니다. 그 발은 불의한 발입니다. 발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입이 아름답습니다.
같은 입이 아닙니다. 남을 비방하고 허물을 들추고 악을 내뱉는 입은 아름다운 입이 아닙니다. 눈도 같은 눈이 아닙니다. 아무리 눈화장을 짙게하고 쌍꺼풀 수술을 해도 주님을 보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더 아름다운 눈인 것입니다.
사람도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여야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3절 끝을 보면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강력하게 열매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마3:10 에 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이 한 말입니다. 도끼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나무뿌리는 유대인을 의미합니다. 열매는 신앙과 삶의 결과를 의미하고 불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마21:19에는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잎사귀밖에 없다는 것은 신앙의 열매 즉 내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찾을 때 열매가 있어야합니다. 찾을 때 열매가 없으면 남은 것은 저주뿐입니다. 열매를 맺을 때, 찾을 때 맺어야합니다.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행실이 없고 열매가 없으면 남은 것은 저주뿐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서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무성하고 큰 나무인데 겨우 열매가 5개 밖에 없는 나무도 있습니다. 잎도 무성하고 나무도 큰데 단 한 개의 열매도 없는 나무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에겐 열매가 없을 것이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그런 저주를 받아도 안 되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동기와 이유가 어떻든 저주는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6장을 보면 다윗 왕이 오벨에돔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오랜만에 다윗 성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다윗으로서는 너무 감격스럽고 기뻤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자 다윗은 그 감격을 주체할 수 없어 나팔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삼하6:15 ,6:14,16)
그 광경을 다윗의 아내 미갈이 창으로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6:16) 그 이유는 품위 손상이라고 여겼습니다. 체통 깎이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다윗이 땀에 젖은 몸으로 왕실에 들어서자 미갈이 욕을 퍼 부었습니다.
삼하6:20 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냈도다”라며 조롱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입을 열었습니다.
삼하6:21에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고 하였습니다.
삼하6:22을 보면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 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삼하6:23 에는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 까지 자식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을 무시하고 조롱하다가 받은 저주 탓으로 미갈은 일평생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저주는 얼마나 무섭습니까? 열매 맺지 못하면 저주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 도 할 수 없음이라”고하였습니다. 열매 맺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떠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는 빚을 갚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고 하였습니다.
마6:12에 나오는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이라는 말씀과 본문의 “빚진자”는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가 되는 것입니다. 빚은 안지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기업치고 은행에 빚지지 않은 기업이 없습니다. 자기들의 자산 기준에 비해 수십배 수백배의 빚을 진 회사들이 많습니다. 부득이 해서 빚을 졌다면 빨리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상책입니다
우리들은 다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순교한 선교사도 있고 일생을 한국에서 전도하다가 양화진 묘지에 묻힌 선교사들도 많습니다. 복음의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돈 빚은 채권자에게 직접 갚아야 하지만 복음의 빚은 복음을 영접하지 못한 나라와 백성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빚을 갚는 것도 “이 다음에 하지 내년에 하지”라며 미루다보면 결국 그 짐이 무거워 넘어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빚을 갚으십시다. 그 누군가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합니다. 빚진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빚도 기회 있을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갚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총동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무조건 반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매사를 무조건 반대하고 나서는 사람, 무조건 반대부터 해 놓고 보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열등감을 보상하고 감추기 위해 무조건 반대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억지로 찬성하는 사람들입니다. 하기는 하는데 억지로합니다. 따르기는 따르는데 마지못해 합니다. 이 사람들은 반대파에 비하면 백배 더 좋은 사람들입니다. 구레네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난 후 그 이름이 성경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이천년 동안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셋째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교회 어떤 분들은 어떤 일을 맡기거나 시키면 “목사님 감사합니다. 일을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일도 시켜 주세요.”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안 되더라도 이야기나 해 보자는 마음으로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그들은 단 한 번도 제가 시키는 심부름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거절한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모두가 주님의 교회를 위한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 하십시다.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다 동원하십시다. 있는 힘을 다하십시다. 전력투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온 힘, 있는 힘을 다하여 공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우리들은 꾀를 부리지 맙시다. 최선을 다 하십시다. 바울 사도처럼 달려가는 길을 다 달릴 때까지 힘을 다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우리들은 부끄러워 말고 길이 열렸을 때 전도해야 합니다.
13절 끝을 보면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길만 열리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전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끄러운 분이 아닙니다. 이야기하기 창피한 분이 아닙니다. 나에게 손해를 주거나 해를 끼친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전도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전도의 문이 닫히고 길이 막힌 나라가 이 지구촌 안에는 의외로 많습니다. 회교 국가들과 불교 국가들 그리고 저 러시아나 중국 역시 길이 막혀가고 있습니다. 길이 열렸을 때 문이 열렸을 때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전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